사장 방을 다녀와 성호에게 전화하여 성호의 변명을 듣고 나서도 기철은 성호에게까지 배신감을 느껴 점심때 사무실로 찾아온 성호를 병 주고 약 주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만나주지 않고 피했다.
성호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 다시 찾아왔다.
그런 성호를 못 본 척하고 나가려고 하니 성호가 앞길을 가로 막으며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봐요.”
하고 기철의 손을 잡고 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끌러 근처의 조촐한 음식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둘이 앉게 되자 성호가
“형님이 나를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나 나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것은, 아침에 말씀드린 것이 다예요.”
하고 변명을 한다.
기철은 거기에 대하여 말하기도 싫고 할 말도 없어 침묵이다.
그런 기철을 보며 성호는 답답하다.
자기도 박국장에게서 아무런 언질이 없이 수주정보를 영식에게 준다는 통보만 받았기 때문이다.
술상이 차려지도록 아무 말이 없던 성호가 잔을 들어 기철에게 권하며
“형님 나는 정말 맹세코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나는 박국장이 아침 7시쯤 전화를 해서 수주 정보를 최상무에게 주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기에 깜짝 놀라 왜 갑자기 최상무에게 수주 정보를 주느냐? 그럼 나는 박상무님을 어떻게 보느냐고 하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어 나는 박국장이 형님과도 이야기가 된 줄 알고 있다가 형님의 전화를 받고 이상한 생각에 다시 박국장에게 전화를 해 박상무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까 나보고는 걱정말고 기다려 보라는 말만 하고 끊어서 아무래도 형님이 나를 오해하실 것 같아 형님을 사무실로 찾아갔던 거예요.”
긴 성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기철은 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고, 성호는 기철을 돕자고 했던 일로 기철의 오해만 사게 돼 마음이 씁쓸해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기철을 그런 상태로 몰리게 한 것은 자기에게 일 말에 책임이 있고 기철이 아직도 자기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성호가
“형님!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하고 침묵을 깨자
“알았으니 그 말은 그만해요.”
그 말 한마디만을 하고 기철은 술만 마신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성호가 너스레를 떨고 시중드는 아가씨에게도 눈짓하여 아양을 떨게 했지만, 기철은 여전히 저기압이다.
그날 저녁에 술에 떡이 되어 집에 들어간 기철은 처를 보자 아침에 큰소리를 치고 나간 것이 생각나 자괴심에 빠져 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기분이 그렇게 좋던 남편이 저녁 늦게 정신 불성이 되도록 술이 심하게 취해 집에 들어와서는 “너희들 그러는 것이 아니야. 괘심한 놈들! 나쁜 놈들!”하고 생전 하지 않던 술주정을 하는 남편의 평소와 다른 행동에 이상하게 생각한 영희는 회사에서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 짐작하고 남편을 달래서 재웠다.
다음 날 아침
기분 좋게 먹은 술은 그다음 날 아침도 큰 어려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속 쓰림도 덜하지만,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먹은 술은 다음 날 아침에도 영향을 주어 속도 무척 쓰리고 정신도 잘 차려지지 않는다.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있어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밥상에 앉는 기철에게 아침에 기철이 눈을 뜨자마자 묻고 싶은 것을 참고 있던 영희가 끓어 놓은 술국을 떠 주며
“어제저녁 당신 술이 많이 취해 들어와서 안 하던 술주정까지 하던데 어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고 묻는다.
“일은 무슨 일?”
“아니에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없었다면 평소에 당신의 행동으로 보아 당신이 그렇게 취하도록 술을 먹지 않았을 것이고 더욱이 그런 주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아니야 아무 일 없었어.”
처에게까지도 챵피를 당할 것 같아 이렇게 대답하는 기철에게 영희사
“그러지 말고 이야기 해봐요. 좋지 않은 일을 가슴에 묻어 두면 병이 되요. 나는 당신의 아내예요. 내게 못 할 말이 무엇이 있어요.”라고 한다.
영희의 말을 듣고 자기의 분한 마음을 아내 아니면 누구에게 말하랴, 하는 생각과 어제 아침 그렇게 큰소리치던 자기의 모습과 저녁에 자기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궁금해할 영희를 생각하고
기철은 그동안에 사연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영희도 무슨 그런 못 쓸 사람들이 있느냐? 당신이 공사 수주를 할 때마다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느껴서 수주가 건설사 간 전쟁 같은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수주가 전쟁 같다고 해도 상도의가 있고 더군다나 최상무는 같은 회사 사람인데 같은 회사에서 그럴 수가 있느냐? 사장에게 사실대로 말하라며 분이 나서 흥분한다.
그러나 흥분은 흥분으로 끝날 뿐 사장에게 사실을 말을 하면 기철이 바보가 될 뿐 아무 소득이 없다.
그리고 날은 흘러
9월 하순 00에서 00을 있는 00도로건설공사의 입찰공고가 났다.
「 〇 입 찰 공 고
공 사 명 ; 00에서 00을 있는 00도로 건설공사
공사기간 ; 84개월(7년)
입찰자격 ; 일 년 매출 = 일조 오천억 이상인 자
공사 실적 = 장대 터널 2,500m 이상
장대 교량 1,500m 이상 시공실적이 있는 자.
입찰방법 ; 제한경쟁 입찰 중 총액 내역입찰
입찰기간 ; 1995.10.01〜 1995.11.01
낙찰자 결정 방법 ; 최저가 입찰자
낙찰자 발표 ; 1995년, 11월 15일
※ 기타
낙찰자의 낙찰금액이 예정가격에 대한 낙찰금액의 비율인 낙찰률을 계산하여 그 비율이 90% 이하가 되는 금액으로 낙찰을 받는, 경우에는 예정가격과 낙찰금액의 차액을 현금으로 국토관리청이 지정하는 은행에 보증금으로 예치하고 공사 시행률에 따라 기성(공사 시행한 금액을 청구할 때 내는 서류)에 포함하여 찾아가는 것으로 한다.
위 금액에는 공사이행보증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 공사이행보증금은 보증 보험으로 대처 할 수 있다.
- 끝 -
발주처 ;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장」
위에서 제한 입찰은 자격 제한을 말하며 총액내역 입찰이라고 하는 것은 입찰 시에는 공사를 시행하는데 소요되는 총공사비를 얼마에 하겠다고 1식으로 하여 제출하고 낙찰을 받은 후에 입찰시 발주청에서 받은 공내역서에 따라 각 공종 별 단가를 넣어 입찰된 그 총공사비에 맞추어 내역서를 작성 제출하여야 하는 입찰이다.
입찰공고는 국토관리청에서 나름대로 작성하였지만, 대영건설로 기운 박국장이 있어 대영건설의 요구가 일부 수용되었다.
특히 기타 부분의 낙찰율이 90% 이하일 경우 예정가격과 낙찰금액의 차이를 국토관리청이 지정하는 은행에 보증금으로 예치하여야 한다는 구절은 대형공사의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낙찰률을 90이하로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하지만 실제는 대영에게 상당히 유리하도록 작성된 것이다.
예정가격이 알려진 대로 3,500억이라면 이에 대한 10%가 350억 원인데
대영건설에서는 추석이 지나고 얼마 안 돼 가지고 있던 부동산의 매각이 이루어지고 있어 11월 말까지는 400억 정도의 현찰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이번 공사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부터 팔려고 내놓은 부동산 매각이 우연히 이때 이루어지고 다른 일로 현금이 필요했던 대영이 상대에게 부동산 판매가를 당초 보다 다소 싸게 하고 현찰 지불을 요구하여 그 요구를 관찰했었는데 이 현금을 차액 보증금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므로 박국장에게 이야기하여 위와 같이 00도로 건설공사 입찰에 반영한 것이다.
전에 없던 워낙에 큰 대형공사라 부실공사를 방지한다는 명분하에,
그러나 추석이 9월 20일 경에 이였던 이해에 다른 회사에서는 추석에 기성을 받아 추석 자금으로 사용하여 한달 내에 350억의 돈을 만든다는 그것도 현금으로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유사 이래 대형공사 발주로 군침을 삼키던 전국에 모든 건설회사들이 입찰자격으로 걸러져 대영건설을 포함해서 한국에서 누구나 굴지라고 인정하는 5개 정도가 입찰자격을 얻었다.
입찰자격에서 떨어진 회사들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야 했고 입찰자격을 얻은 회사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입찰 전쟁을 치러야 한다.
대영건설에서 박국장을 통해 이미 알게 된 정확한 공사예정 가격은 3,650억 원으로 이 총공사비 3,650억만 원의 90%인 3,285억 원 내외로 입찰할 것을 잠정적으로 정하고 다른 회사의 동태를 살피었다.
우선 박국장의 경우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입찰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감시하고 특히 입찰에 참가하는 회사들이 주 거래를 하고 있는 은행에 줄을 넣어 각 회사의 현금 보유 고를 매일 확인하며 낙찰률 90%이하 입찰하여 낙찰을 받았을 경우 차액을 현금으로 넣을 금액을 확보할 수 있는지 동태를 살피었다.
다른 회사의 현금 동원 능력에 따라 정확하게 입찰률을 얼마로 할 것인지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입찰 대상자들은 공사비 총액이 3,500억 원 정도라도 입찰금액 90%로 해면 대한건설 공제조합에서 끊는 공사이행보증 보험금 이외에 현금으로 350억 원의 차액 보증금을 넣어야 한다며 서로 연막전술을 폈다.
입찰자격을 얻은 5개 회사는 대영 외에 대영과 1, 2위를 다투는 막강한 경쟁상대인 태림건설과 건설 계에서 대영과 태림 다음에 3위로 자타가 공인하는 계림건설 그리고 4위인 정우건설이며 나머지 한 곳은 조금 처진 7위 권의 신우건설이다. 신우는 10위의 동명 건설회사와 컨소시엄을 맺어 자격을 얻었다.
5위와 6위의 효정건설과 평화건설은 각각 2,500m 이상의 터널 시공실적과 1,500m 이상의 장대교량 시공실적에 걸려 탈락을 했다.
이렇게 입찰자격을 딴 다른 회사들도 대영에 못지않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어 00도로 건설공사가 발주된다는 것과 총공사비가 3,500억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처음으로 발주되는 이런 대형공사를 꼭 수주하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들도 수주정보를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
잘 보고 갑니다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감사합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다음 글을 올리겠습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