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와 에이스 각각 NL과AL 서부지구의 오랜역사를 자랑하는 구단이죠
리그가 틀리기에 인터리그가 있기전엔 월드시리즈에서만 만날수 있었던 양팀은 흔히 말하는 라이벌관계도 아니었고 특별한 비교대상이 되어오지도 않았죠
헌데 작년말 부터 심심치않게 비교대상이 되곤 하는데
그게 바로 다저스는 돈을 물쓰듯 쓰고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못올리는 팀으로
에이스는 다저스의 1/3정도의 돈을 쓰고도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는 팀으로
특히 국내팬들에게 자주 비교되곤 했죠
오늘은 이 유서깊은 양팀의 과거와 약간의 미래에 대한 예상을 해보죠
1890년 NL과 경쟁하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이란 리그가 있었고 이해 그곳의 최강자 브루클린 브라이드그룸스가 NL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팀이 바로 후일 다저스란 이름으로 NL을 호령한 팀의 시작이었죠
이해 다저스는 단번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죠
그러나 그렇게 출발은 좋았으나 그후 다저스는 40년동안 리그 우승을 두 번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팀으로 전락했죠
한편 에이스는 1901년 아메리칸리그의 창립멤버로 필라델피아를 연고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명장 코니맥의 지휘아래 1902년 첫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또한 1905년에는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으나 뉴욕 자이언츠의 크리스티 매튜슨에게 3번의 완봉패를 당하며 비참하게 물러나고 말았죠
허나 8년뒤인 1910년 에이스는 에디 콜린스와 잭 배리의 영입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만달러짜리 내야진'을 구축하며 1914년까지 5년동안, 4번의 리그우승과 3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죠
1910년이 에이스의 빅리그 2위인 9회 월드시리즈 제패의 첫단추 였습니다.
1911년에는 9년전 자신들을 망신준 매튜슨에게서 2승 뺐어내며 월드시리즈 2연패를 이룩했죠
이듬해 3위로 약간의 부진을 겪고는 1913년 다시 자이언츠를 꺽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 당시 최고 명문구단임을 천하에 알렸습니다.
1914년 다시 아메리칸리그의 챔피언이 되었으나 보스턴 브레이브스에 밀려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치고 말았고
이때를 끝으로 정상에서 한발 물러서고 말았는데 그이유는
1915년에 새로 생긴 페더럴리그와의 영입경쟁으로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할 것으로 예측한 에이스는 팀의 핵심선수들인 콜린스(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베이커(뉴욕 양키스), 잭 배리(보스턴 레드삭스)를 팔았고, 벤더와 플랭크는 조건없이 풀어줬으나 연봉인플레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페더럴리그는 2년만에 붕괴됐습니다.
이헤프닝으로 최강팀 에이스는 이후 1921년까지 7년간 리그 꼴찌의 서러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랜 부진에 허덕이던 에이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지금의 오리올즈가 아닙니다.)에서 그유명한 레프티 그로브를 비롯, 조지 언쇼, 조 볼리, 맥스 비숍 등을 영입하고
양키즈가 거절한 지미 팍스를 2천5백달러에 차지했습니다.
당연한 전력상승으로 그해 리그2위에 올랐고
1927년부터는 베이브 루스,루 게릭의 무적양키즈에 대항해 싸웠죠
1927,28년 양키즈에 밀려 리그 2위에 만족햇던 에이스는
1929년 157타점을 올린 시먼스를 비롯한 6명의 선수가 79타점 이상을 올리는 고른 공격력으로 양키스를 꺽고 월드시리즈에서는 자신들의 첫 시리즈우승 파트너였던 시카고 컵스를 4승1패로 누르고 4번째 왕자가 되었고
아듬해에는 지금은 절대 불가능한 투수부문 5관왕(다승.방어율.탈삼진.승률.세이브)의 그로브를 앞세워 5번째 패권을 차지합니다.
1931년에도 프랜차이스 기록인 107승을 거뒀지만, 전해의 패배자였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월드시리즈를 내주며 3연패에 실패합니다.
그리곤 다시 긴 암흑기를 거치는데 대공항으로 인한 관중수의 감소를 선수세일즈로 타개하려는 전략의 결과 였고
1935년부터 1950년까지 10번의 꼴찌와 2번의 7위를 차지하며 명문팀의 이미지를 구겼습니다.
한편 기나긴 침체기를 겪던 다저스는
최초의 팜 시스템 개발자로도 유명한 리키가 구단운영을 맡으며 1947년 최초의 흑인 재키 로빈슨을 영입하며 개척자로서의 이미지를 심으며
팀성적에서도 성공을 거둡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다저스는 리그 우승 6회를 기록하면서 NL 최고의 팀으로 군림합니다.이때를 풍미한 선수가 재키 로빈슨(2루수), 피 위 리즈(유격수),로이 캄파넬라(포수)였고 1949년에는 이후 윌리 메이스, 미키맨틀과 중견수3인방 시대를 연 듀크 스나이더가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죠
1953년에는 무려 105승의 팀 최다승 기록을 수립했는데 LA로 옮긴후 투수력에 의존했던것과는 달리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득점, 홈런, 총루타, 도루 등 공격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한 공격력이 팀의 힘의 원천이었죠
그러나 이때부터 다저스에겐 영원한2위라는 달갑지않은 칭호가 붙여졌는데
그건 6번의 월드시리즈에서 단 1번만 우승을 차지하고 무려 5번을 양키즈에게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양키스 돈 라센에게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의 수모를 당한 1956년
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듬해 팀을 LA로 옮기는 파격을 단행합니다.
결국 다저스의 이 결단은 대단히 성공적이지 않았나 보여집니다.
물론 최대의 시장인 뉴욕을 포기했지만 그와 버금가는 미국 제2이며 서부지역 최대의 도시인 로스엔젤리스에 단독으로 자리를 잡으며 부루클린 시절 67년 동안 단1번 이룬 월드챔프의 영예를 무려 5번이나 안으며 지긋지긋한 2인자의 악령에서 벗어나며 서부 최고의 명문으로 자리잡았는데
이것은 옆동네 라이벌이자 뉴욕시절 무려 5번의 월드시리즈를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다저스를 앞섰던 자이언츠가 같은시기 샌프란시스코로 프랜차이즈를 옮긴후 단한번의 월드시리즈타이틀도 차지하지 못하고 관중동원에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것에 비하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 막강 60년대 LA다저스를 이끌었던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최강의 원.투펀치인 샌디 쿠펙스과 돈 드라이스데일이었습니다.
1962년 시즌내내 선두를 달리다 뉴욕시절 부터의 '숙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막판 뒷심에 밀려 시즌을 동률로 마친후 타이브레이크 끝에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빼았긴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1963, 65, 66년 원조 외계인 쿠펙스와 드라스데일을 앞세워 리그우승을 차지하고 1963 65년에는 월드시리즈 챔피온에 오르며 화려한 60년대를 구가 합니다.
이것은 뉴욕시절 타격으로 강자로 군림하면서도 만년2인자에 머물던 한을 신개척지인 LA에서 투수력으로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 하겠으며 이후 다저스는 언제나 타력보다는 전력의 근간을 투수력에 두는 팀컬러가 자리잡은 시기라 할수 있습니다.
또한 1965년에는 62년과는 거꾸로 막판 13연승으로 시즌내내 선두를 달리던 자이언츠를 누르고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복수함으로 뉴욕에서부터 이어져온 양팀간의 숙명의 라이벌관계를 지속시키며 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저스가 신천지에서 화려하게 성공한 반면
1954년에 에이스는 아놀드 존슨이란 새주인을 맞이했는데 이사람의 잘못된 결정에 의해 이듬해 에이스는 동부 시장중 하나인 필라델피아를 포기하고 중부의 촌동네 캔자스시티로 프랜차이즈를 이동했으나 이 캔사스시티에서의 에이스는 13년동안 리그우승 근처에도 못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68년 서부의 오클랜드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70년대로 들어서며 다저스는 우리에게도 잘알려진 피터 오말리 체체가 시작되며
돈 서튼을 앞세운 마운드로 NL역대 최고라고도 할 수 있는 신시내티 '빅 레드 머신'과 10년간 9번을 지구우승을 나눠가지는 투.타의 명승부를 일구어냈습니다.
물론 3번의 우승으로 6번을 우승한 레즈에 밀렸고
세 번의 월드시리즈에서도 74년에는 또다른 오늘의 주인공 에이스와 최초로 만나 무릎을 꿇었고 77,78년에는 뉴욕시절 그렇게도 자신들을 괴롭혔던 양키즈에게 또다시 분루를 삼켜야 했습니다.
다저스의 70년대가 강했으나 더강했던 레즈,에이스,양키즈에 의해 최고에 오르지 못한 아쉬운 시간이었다면 에이스의 70년대는 긴부진의 늪에서 벗어나는 활력의 시기라 할수 있죠
오클랜드로 자리를 옮긴 에이스는 이때부터 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팜이라 평가받고 있는 팜의 전통을 만들어 나갔고 '10월의 사나이' 레지 잭슨 · '불펜 에이스' 롤리 핑거스 · 3각편대 중 두 명인 캣피시 헌터와 바이다 블루를 비롯, 중심선수들의 대부분을 자체생산해냈습니다.
위의 화려한 멤버를 앞세운 에이스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5번의 지구우승과 3번의 리그및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고 양키스만이 이룬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루는 위업을 이룩하여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1975년 시즌을 마친후 캣피시 헌터의 자유계약선언으로 전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법정까지 가는 우여곡절끝에 에이스는 블루 · 잭슨 · 핑거스 · 홀츠먼 · 조 루디라는 팀의 핵심전력을 잃으며 화려한 시대를 마감합니다.
다저스의 70년대의 월드시리즈의 한은 1981년 나타난 멕시코 청년 페르난도 발렌주엘라에의해 시원하게 한풀이가 됩니다.
그 유명한 역회전볼을 앞세운 신인 발렌주엘라는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석권하며 '페르난도매니아'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아구팬의 저변을 히스패닉계로 확산시키며
팀을 월드시리즈에 올렸고 여기에서 언제나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겨준 양키즈에게 4승2패로 멋지게 복수하며 16년만에 팀에게 월드챔프의 영광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1988년 오렐 허샤이저의 불독투와 커크깁슨의 홈런을 앞세워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에이스에게 74년의 빚을 갚으며 마지막 월드시리즈를 차지합니다.
80년대 후반까지 리키 핸더슨의 도루외에는 볼것이 없던 에이스는
1988년 그유명한 명장 토니 라루사의 지휘아래 배쉬브라더스 호세 칸세코와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포와 데이브 스튜어트와 밥 웰치라는 막강 투수진과 데니스에커슬리라는 최강의 마무리를 내세우며 최강의 전력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는 의외로 불독과 깁슨의 다저스에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지만 최초로 팀관중 200만명을 넘기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습니다.그러고 드디어 89년 최초의 베이시리즈로 치뤄진 월드시리즈에서 CM포의 대결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가볍게 누르며 자신들의 9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를 품에 안았습니다.
당시 국내언론에서 칸세코와 맥과이어, 클락과 미첼의 CM포라 지칭했었는데 이것이 국내언론만의 작품인지 미국내에서도 그렇게 불렸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1990년 최강의 투수진을 앞세워 10번째 월드시리즈를 노렸으나 호세 리호와 나스티 보이즈가 버틴 신시내티 레즈에 4전4패로 무릎을 꿇었고 1992년 다시 서부지구 챔피언으로 복귀했지만 리그챔피언십에서 캐나다의 신흥강호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넘지 못했고
이때를 마지막으로 에이스는 맨도사라인 언저리를 넘나드는 타율속에서 간간이 터지는 맥과이어의 홈런포외에는 볼거리가 없는 비참한 모습을 90년대 내내 보여줍니다.
88년이후 다저스는 추락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2년에는 99패를 당하며 그 해 메이저리그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다저스팜의 위력이 보이기 시작하며
1992년에는 에릭 캐로스 1993년에는 마이크 피아자 1994년에는 라울 몬데시로 이어지는 팜출신 신인왕들을 배출했고
1995년에는 일본에서 수입한'토네이도' 노모가 그 전통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토드 홀랜스워스까지 전무후무한 5년연속 신인왕 배출이라는 기록을 세웠죠.
또한 이들을 바탕으로한 탄탄한 전력으로 꾸준히 선두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95년 지구우승
96년 와일드카드등의 성적을 올렸으나 월드시리즈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48년간 오말리家의 지배를 받아오던 다저스는 1998년 언론재벌 FOX의 루퍼트 머독에게 넘어갔고테드 터너와의 앙숙관계가 유명한 머독은 터너의 애틀란타를 이기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다저스에 뿌려댔습니다.
1999시즌 당시 사상 최고의 금액으로 '우승청부사' 케빈 브라운을 영입하고, 명장 데이비 존슨을 새사령탑에 앉히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아 98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지구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렇게 다저스가 20세기의 마지막을 우울하게 보내고 있을 때
에이스는 꾸준히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을 그들의 자랑 팜에서 키워 마침내 그결실을 2000년 보게 됩니다.
리그 최하위 수준의 팀연봉으로 헛슨,지토,멀더의 영건과 지암비라는 걸출한 스타를 만들어내며 당당 서부지구 우승을 거머쥡니다.
이렇게 이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그들의 과거를 간단하게 집약해보면
뉴욕이라는 미국 최대시장에서 시작했으나 양키즈라는 큰산을 넘지 못하고 결국 신천지인 LA로 자리를 옮긴 다저스는 이후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구어 내며
당당히 NL최고명문팀중 하나로 또 미국의 한축인 서부지역의 최고팀으로 자리를 잡으며 78년에는 최초로 300만 관중시대를 열면서 지난 20년간 300만 가까운 관중(298만)을 끌어들이며 당당 관중동원 1위 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렇게 다저스가 꾸준한 성적으로 팬들에게 사랑받은 반면
에이스의 경우 양키즈에 이은 9회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는 성적을 올렸지만 또한 무려 28번의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이부문 최고를 기록하기도 하는등 명암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는데이는 팀이 시작할 무렵 필라델피아라는 괜챦은 시장을 가졌음에도 투자를 꺼리는 구단운영으로 자신들이 키워낸 선수들이 대선수가 되어 몇 년 우수한 성적을 올린후에는 그들을 팔아버리는 행태를 거듭했고
연이은 연고지 이전의 사실상의 실패로 팬들에게 호응 또한 받지 못해
연편균 168만명의 관중입장으로 26개 빅리그(신생팀 제외) 팀중 21위를 기록하는 흥행부진으로 또한 자신들이 키운 선수의 연봉을 감당못해 팔아치우고 다시 수년의 극도의 침체기를 겪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런 양팀의 여태까지의 모습은 어쩌면 이후 이들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데에서도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여겨집니다.
그럼 이제 이들의 미래를 간단하게 나마 점쳐 보겠습니다.
올시즌 중반부터 리빌딩의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다저스
천문학적인 투자에도 만년2위의 성적으로 머독역시 흥미를 잃어버린 다저스
90년대 그들의 자랑이던 팜마저 말라버린 다저스
그런 그들은 에이스에게서 배워야 할까요?
그들이 현재의 스타들을 팔고 몇 명의 유망주를 받아 그들을 수년간 키워 5~6년후에 리그우승을 노려야 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에겐 결국 미국 제2의 시장을 잃어버리는 결과만이 남을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거의 300만이 꾸준히 찾아준 다저스스타디움
LA는 미국 제2의 도시이며 헐리우드와 팝의 중심지이며 레이커스와 다저스라는 농구와 야구의 최고인기팀을 수용하는 거대시장이면서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풋볼팀인 레이더스와 램즈가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LA의 팬들이 과연 그렇게 오래 다저스를 기다려 줄까요?
다저스가 진정 가야할길은 현재의 스타를 팔아 몇 년후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전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멍청하게 피아자를 버리며 선택한 프랜차이즈스타 캐로스를 대신할 자신들의 스타를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물론 현재 그들의 팜은 황폐해졌지만
가장 먼저 중남미를 개척한 것도 그들이며 동양권에 눈을 돌린것도 그들입니다.
아직도 중남미의 그들의 농장에는 맨발의 몬데시들이 우글거리고
동양권선수들은 여전히 다저스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가장많은 관객으로 답해주는 LA라는 거대시장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한번 멍청한 선택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최고의 명문이자 인기팀으로 남을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저스가 몰락한다면 그건 어쩌면 ML전체의 몰락을 의미할수도 있습니다.
최고 관중의 팀이 선수연봉을 감당못해 리빌딩을 해야 한다면, 그외의 팀들은...
물론 작년에 다저스가 무려 3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이건 전적으로 구단수입의 4~50%를 차지하는 방송중계료를 헐값에 폭스스포츠에 넘겼기 때문이고
작년과 현재 다저스의 관중수가 기대에 못미치지만 이건 장기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머독의 팀인수이후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로 팬들에게 우승의 기대를 심어주고 무참히 그기대를 무너뜨리는 일을 몇 년간 해왔으며 잘못선택한 프랜차이즈 스타 캐로스의 부진의 영향이라 보여집니다.
이렇게 몇 년간 비난을 받아온 다저스의 미래가 의외로 어둡지 않은 반면
현재 성공한 리빌딩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에이스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 센세이션을 일으킨 에이스지만 팬들은 기대만큼 콜로세움을 찾아주지 않았고
오클랜드시는 새구장의 건립을 거부하며 여전히 에이스에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투자를 모르는 공동구단주들인 스티브 쇼트와 켄 호프먼이 과연 당장 내년에 FA가 되는 팀의 전부인 지암비와 데이먼, 다이 , 이스링하우젠 중 과연 한명이라도 잡을지 의문이며
이렇게 됐을 때 그들의 내년은 영건 삼인방의 선발진의 부상없는 더나은 활약과 여전히 아직은 더 지켜봐야할 테하다,제레미 지암비, 차베스가 또한번 업그레이드 하길 바랄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질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것은 그들이 인구30만(확실친 않습니다.)의 협소한 그들의 시장을 벗어나 좀더 나은 시장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과거의 에이스가 늘 그랬듯이 잠깐의 호성적과 긴 침체의 기간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