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수들이 해외진출 러쉬를 이룬 것은 지난 2002한일월드컵을 전후해서. 16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또 개최국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안정환, 설기현 등의 기대주들이 전략적으로 유럽클럽에 진출했었고 월드컵 직후에는 한국선수들에 대한 해외구단의 관심이 높아 박지성, 송종국, 차두리, 이을용, 이천수 등이 대거 유럽세에 합류, 봇물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난 현재의 상황은 많이 변한 듯 하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주장 김진규(전남)와 안태은(조선대)의 매니지먼트사인 '오앤 디'의 김양희 사장은 "최근 들어 국내선수의 영입에 관심을 표명하는 해외구단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심지어 프로필 자료를 내밀어도 별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주요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대표팀의 성적 부진이다. 성인대표팀의 아시안컵 8강 탈락에 이어 17세이하 청소년대표팀의 8강 탈락 등 한국축구는 올해들어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성인대표팀이 오는 13일 벌어지는 레바논과의 2006독일월드컵 2차예선에서 패해 사실상 최종예선 진출이 좌절될 경우 국내 선수들의 해외진출 가능성은 '제로' 상태에 빠진다는 게 현재 에이전트들의 생각이다.
이는 2004년 한국축구의 현주소. 그러나 대표팀 성적과는 별도로 대부분의 유럽클럽들이 더 이상 용병수입에 적극성을 띠고 있지 않다는 게 유망주 해외진출 위기설을 불러온 더욱 큰 이유일 을 듯 싶다. 2002월드컵을 시작으로 거세진 세계축구의 평준화 흐름, 이와 더불어 자국리그를 통한 자국출신 선수의 육성을 원하는 각국 협회의 바람이 커졌고 이에 따라 기존 용병들을 대폭 축소하자는 게 현재 유럽축구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주요리그의 용병들은 포화상태다. 리그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잉글랜드나 스페인 리그의 경우 용병과 비 용병간 구분을 EU 가입국의 여부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즉 국적은 틀리다 하더라도 EU 가입국 선수라면 용병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잉글랜드 국적이 아닌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수치는 약 30%를 넘어서고 있으며 스페인의 경우, 비 용병 출전제한을 3명으로 두고 있음에도 이중국적을 보유한 남미선수들이 산적해 잉글랜드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분데스리가나 세리에 A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분데스리가는 EU 국가내의 선수가 아닌 UEFA 가입국 출신의 선수들에 한해서는 무제한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규정를 갖고 있으며, 세리에 A는 기본적으로 EU 가입국 출신의 용병이니 UEFA 가입국 출신의 용병이니 하는 식의 제한이 없다. 용병들은 그 수에 관계없이 무제한적인 경기 출장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해 9월 독일축구협회장 마이어-포어펠더는 분데스리가 용병제한 규정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 논란이 됐다. 용병들의 대거 영입으로 클럽의 전력향상을 꾀했지만 자국축구의 기반약화도 동시에 불러왔다는 데 기인한 대응책이다. 유럽 현지의 사정이 이러한데 아시아출신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쉽게 성사될 리가 없다. 마케팅적 차원의 전략적 영입이 아닌, 또 에이전트의 물밑작업이 아닌, 오직 순수한 실력으로 해외진출의 성패여부를 가늠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