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6월의 어느 날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는 나와는 모든 게 비교가 되었다
깔끔한 용모 흉내 낼 수 없는 서울 언어 공부까지 잘해
난 그 애 뒤편에서 놀았다
방과 후 더위를 피하려 나무밑에 앉아있을 때
잠자리가 나의 가방에 앉아 그 애의 시선을 끌었다
조금 후 숨소리 죽이며 그 애가 나의 가방에 손을 대자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메고 다니는 가방은
형이 사용하던 낡은 가방이었기에
그 친구가 단정히 맨 고급스러운 가방을 보며 창피해서였다
방과 후 가방 어깨 끈을 칼로 잘라
어머니에게 너무 오래돼 끊어졌다고 거짓말하였다.
아무 말 안 하신 얼굴에 표정이 없으셨고
다음날 실로 덕지덕지 꿰맨 우스운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야 했다.
며칠 후 어머니를 따라간 시장
필통 연필까지 새것으로 새로 산 가방에 넣어주시니
뛸 듯이 기뻐 엄마의 팔짱을 끼고 돌아올 때
엄마의 차분한 말씀을 그땐 건성으로 들었다.
너에게 공부 잘하란 얘긴 안 한다.
하지만 "가방이 필요하면 사달라 하지 왜 칼로 끊느냐고"
"그 가방은 너 아닌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었던 가방이라고"
그땐 새 가방이 너무 좋아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의 진심을 왜 몰랐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말씀드린다
엄마! 제 생각이 짧았어요.
첫댓글 짠하네요
그 시절에 제가 다른 친구들보다 부유하게 살았건만
몰랐던거죠
감사합니다~
시골바다님은
그시절에 부르주아였네요.ㅋㅋ
초등학교 때는 보자기에다 책을 싸서
허리에 질끈 동여매던지
두손으로 모시듯 떠받들고 다녔는데
양은 도시락에서 새어나온 김칫국물이
책마다 빨갛게 물들였지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가방도 들어보고
맹꽁이 운동화도 신어 보고
읍내 양품점에서 처음본 브래지어는
귀마개인줄 알았다니까요.
ㅎㅎ 제라님도 부르주아 셨어요
전 그나마 보따리는 커녕 학교 자체를 못가봤어요 ㅠㅠ
그 당시 챔피온 가방 가지고 다니던 친구 몇 안되었지만
전학 온 그 여자친구에게 너무 비교가 되~
어머니의 깊은 뜻을 몰랐던 거죠
슬프지만 추억 속의 이야기 제라님 감사합니다~
@운선 학교가 없었나요?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인데 ....
@시골바다 아, 부모가 어린 저를 여기 저기 친척집에 맡겨 놔서 국민학교를 입학만 하고 못했지요
5살 적에 나 혼자 고향 청송에 데려다 놓고
찾으러 오질 않는데 어른들이 남자 고무신을
신겨 놔서 창피하고 코 고무신을 신고 싶어
찢었는지 버렸는지 어른들이 진보 장에 가서
고무신을 사다 신겼던 기억이 납니다
50년대 끝자락이었지 싶네요
전쟁 끝난 나라에 거의가 가난했겠지요
바다님 오랜만입니다 ㅎㅎ
어떤 선교사가 50년대에 한국에 도착해서
펑펑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가난하고 못 살아서~
우리는 빈곤과 풍요를 다 경험한 세대네요^^
아~~~
그러셨구나!
운선님에 비교하면 저의 집은 갑부였었군요
우리 동네에서 자전거는 우리 집 뿐이였으니까요
슬픈 지난날이지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가방을 메고 다니셨다는 그자체가 부유 였지요
우린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묶고 다녔는데..
뛰어가면 철통 으로 만든 필통이 달그락 ~ 하나뿐인 연필이 부러지기도 했던
어려웠던 그시절...그래도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오랜 만에 바다님 글 읽고 그때 그시절로 돌아 가 보았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가방 속에서 도시락이 뛰어노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ㅎ
힘들었던 시절
하지만 그때는 정이라는게 있었는데 ...
감사드려요 사랑님
즐거운 유월 보내십시오~
새 가방을 메고 싶어서 가방 끈을 자른 그 동심도 이해가 되고,
어머니의 속 깊으심은 뭉클하네요.
그 시절을 살아온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의 깊으신 뜻을 모르고 살았어요
어머니가 대 바늘로 꿰만 어깨 끈이 창피해
안 보이게 손으로 감싸고 다녔다니까요
감사드려요
달 항아리님을 사진으로 나마 볼 수 있어 감사드려요
즐겁고 기쁜 유월 보내시길 바랍니다
ㅎㅎ
저두 보자기에 책을 ~~~~~
남학생들은 어깨에
여학생은 허리에 차고 다녔죠
힘들었지만
그시절이 그리워 집니다
난 여고 들어갈때도 언니가 3년 입었던 교복을 소매만 꿰매서 입고 다녔던 순둥이.
이 말을 했더니 언니가 미안하다고ㅠ했지만 일곱남매 가르치신 부모님 고맙습니다.
그시절이 그립기도하고
가족들이 고맙죠
언니가. 미안 할 일이 아닌데
일곱 남매를 키우신 부모님이 훌륭하신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