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1-19)
교회 신자들의 신앙의 정도가 어떤 분은 어린아이의 신앙, 어떤 분은 청년의 신앙, 어떤 분은 아비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청년의 신앙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교만합니다. 아비의 신앙을 가진 분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남을 돌보며 섬깁니다. 매사에 감사합니다. 겸손합니다. 너그럽고 사랑이 많습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진 아비가 될 때 교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본문에서 10명의 나병환자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희망을 잃고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들이 어떻게 희망을 가지게 되었는지 본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던 그들이 치료받고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다니엘 기도회 강사인 김인강 교수님은 2살 때 소아마비로 절망에 빠졌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얼마나 그가 놀라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절망의 문제들이 있다든지 병들거나 사업이 어렵거나 가정의 문제 등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이 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으실 때 주님은 그것을 듣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더 좋은 복을 받아누릴 수 있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공동체가 예수님께 합심하여 구할 때 응답을 받습니다. 본문 13절에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병은 당시에 불치병이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전염성과 부정한 몸이기에 집과 동네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하나님께 벌을 받은 사람인 양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고쳐주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자기들도 고침을 받으리라 믿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그들을 지나가시게 되자 기회를 놓칠새라 큰소리로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이들이 서로 마음을 모아서 한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계속해서 외치자 예수님이 그들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 남이 고침을 받았다면 나도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이 응답을 받으면 나도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기도보다 공동체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때 더욱 강력한 응답을 가져옵니다. 우리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함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면 혼자 기도보다 더 응답이 빠릅니다.
교회 목장 식구들이 함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빨리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86: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러한 약속과 같이 주님께 함께 부르짖은 자들이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공동체의 기도는 더욱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제자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감옥 문이 열리고 베드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 수 있다면 교회에 나와서 함께 공동체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함께 은혜받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20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개인이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공동체가 기도를 드릴 때 그곳에 이미 주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문 14절에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14장은 나병 환자들이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았다는 확증을 받고 정결하게 하는 규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을 고치시지 않고 먼저 제사장에게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병의 증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면 가는 길이 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집에 가까이 오는데 나병환자들은 아직도 진물이 나오고 나병이 그대로입니다. 그런데도 이 나병환자들은 끝까지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진물이 흐르고 냄새가 나고 썩어가던 피부가 어린아이 피부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직도 그대로인데 제사장에게 가는 순종이 그들의 나병을 치료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도 달라진게 없을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순종하다가 그만두면 기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십시오.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워야 포도주가 되듯이 끝까지 믿음을 채우십시오.
아람 제국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에게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나아만이 한 두 번 물에 들어가도 여전히 나병이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일곱 번을 물에 들어갔을 때 몸이 어린아이 피부처럼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매일 새벽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며 백성들이 함께 성을 한 바퀴 돌라고 하였습니다. 6일째까지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일곱 번을 돌며 제사장이 양각나팔을 불 때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행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하는지 아니하는지 보시고 도와주십니다. 믿음은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직분도 끝까지 섬겨야 복이 됩니다.
기도도 끝까지 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셋째로,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본문 15-19절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은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명의 나병 환자들 중에 예수님께 돌아와서 병 고침을 받은 것에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습니다. 불치병에서 고침을 받아도 예수님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이 중요했지, 예수님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나병환자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기만 했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복을 받고 건강하고 형통하기만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신앙은 나병환자와 같이 타락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필요한가요?
아니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필요한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아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기도도 하고 예배도 잘 드리지만 문제가 끝나면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기도하는 것도 끝납니다.
본문에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볼 때 하나님이 버린 자들로 여겼습니다. 신앙이 잘못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나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은 19절에서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 나병환자들은 나병만 치료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은 그의 몸만 아니라 영혼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치유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건강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복을 주십니다. 기적을 붙잡는 사람은 기적이 지나가면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기적을 붙잡지 말고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계속해서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천국의 또 다른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설교=김상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