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한결같이 기억하시고 아버지의 풍요로운 은총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며,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아드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립시다.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환자가 구급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시골에 살 때에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주변에서 정말 시끄럽게 굽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닭장에서 닭이 울어댑니다. 밤새 목을 꺾어서 가랑이 사이에 넣고 잠들었던 닭이 새벽이 되기도 전에 고개를 펴고 고개 운동을 하면서 길고 큰 소리로 아침을 알립니다. 그 울어대는 소리는 언뜻 들으면 ‘빨리 일어나야 먹을 게 있다. 어서 일어나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닭 울음을 듣고 개가 짖어댑니다.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의 개들이 덩달아 따라 짖습니다. 그렇게 개가 짖는 것을 보고 ‘폐영폐성’(吠影吠聲)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는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당황해 할 필요도 없고, 또 들을 가치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그렇게 쓸 데 없는 말을 가지고 신경 쓰고 산란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닭이 울고 개가 짖으면 활개 치며 돌아다니던 귀신들까지도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 소리에 부지런한 할아버지 할머니나 엄마 아버지들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납니다. 논에 물꼬를 보러 가거나 밭을 돌아보시거나 두더지가 파 놓은 두더지 구멍을 메우러 가시기도 하고, 아침을 지을 산천 정기 가득한 정한수를 뜨러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향합니다. 그러면 온 동네가 아주 부산스러워집니다. 아이들도 일어나 재잘거리고 게으른 사람들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마당도 쓸고, 소여물도 끓이고, 이부자리를 개고, 방을 청소하고, 그날 일할 일거리를 준비하고,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아침을 엽니다.
닭이 우는 시간은 거의 규칙적입니다. 매일 정확하게 그 시간이 되면 닭은 새날을 시작합니다.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닭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종탑 위에 닭이 있어서 종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대비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보다는 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1. 그리스도교에서 닭은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은총의 상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메시아처럼 암흑과 같은 밤에 뒤이어서 아침의 도래를 알리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의 첨탑에 닭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탈무드'에서도 닭의 울음소리는 신이나 천사의 강림을 알리며, 예언자의 말을 전하는 존재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2. 유럽의 중세기에 지은 성당의 모든 탑과 지붕에는 닭이 조각돼 있습니다. “게으름을 경계하라, 죄를 깨달을 때 즉시 회개하라, 아직 동이 트기 전에 깨어서 세상을 지키는 자가 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늦잠을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여 딸을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많이 잡는다.’라는 격언이 절대로 헛소리가 아닌 것입니다.
3.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닭 울음 성당,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은 예수님께서 대사제의 관저로 끌려 가셨을 때,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3번 배신(마르 14,66-72:마태 26,69-75:루가22,56-62:요한18,15-27)하고 닭이 울자 회개의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전입니다. 이 기념 성당은 당시 대사제 가야파의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1925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조심하고 깨어 지키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인의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조심하는 신중함도 있어야 하며, 주인이 잘못 될까봐 걱정하는 사랑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이제 대림절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런 순수함과 지극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설렘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림(待臨)은 임이 오시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닭이 아침을 기다리고 외치는 것처럼, 학이 고개를 우아하게 빼고 기다리는 것처럼, 아이가 엄마를 칭얼대며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임이 오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창문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버지가 돌아오는 자식을 기다리며 동구 밖을 자꾸 올려다보는 것처럼, 불난 집에서 소방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환자가 구급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 동안의 내 모든 잘못을 말끔히 씻고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주님을 기다리며 이 대림절을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축일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 Xavi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 연도 : 1506-1552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사베리오, 사베리우스, 사비에르,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Javier, 또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하비에르)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 성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파리(Paris)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에 있는 생 드니(Saint Denis, 오늘날의 Saint Pierre de Montmartre) 성당의 지하 묘소에서 서원을 했다. 그들은 정결과 청빈 서원을 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선교 활동에 헌신하기로 서원했다.
그는 성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다음 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다. 당장 예루살렘 성지 순례가 불가능해지자 그와 동료들은 선교에 대해 교황에게 순명하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해 교황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540년 9월 27일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에 의해 예수회의 탄생이 승인되었다.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해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포르투갈의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했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에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했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며 왕성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1551년 12월 일본에서 몰루카로 돌아온 그는 2년 전에 도착한 편지 두 통을 받았는데, 그 한 통에는 그가 ‘인도와 그 너머의 나라들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는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들어가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고, 산타 크루즈호를 타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함께 출발해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산첸(上川, 샹추안) 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광둥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수소문하던 중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2년 12월 3일, 중국 본토까지 불과 14km의 뱃길을 남겨두고 산첸 섬에서 선종했다.
흔히 그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했고, 그가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해도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또는 ‘일본의 사도’로 불린다. 그는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바로 이어서 1622년 3월 12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 Xavier)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