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한국 기업들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외적으로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보호무역 기류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판로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며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고,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 등으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됐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2016년 한 해 동안 세계 일류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글로벌 석학 등 64명을 인터뷰해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기업들에 각종 해법을 제시했다. 올해 경영자들의 고민을 '한국 기업 7대 화두'로 정리한다.
1. 조직문화, 평가위주 조직은 죽고 함께가는 조직만 산다
올해 한국 기업들 전반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는 조직문화였다. 그동안 한국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왔던 위계적·수직적인 문화가 이제는 창의성을 억압하고 생산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장영주 잡플래닛 사업개발본부장은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기업 조직문화에서 창의성이 발휘돼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개발되기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더비즈타임스는 성공한 해외 기업들에서 해법을 찾았다.
직원만 33만명인 GE의 인사를 총괄하는 수전 피터스 GE 글로벌 HR 총책임자는 더비즈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디지털'시대에 제조업 중심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조직문화를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했다. 첫째, 인재들이 급속히 변하는 시대에 빠르게 배우고, 또 배운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실리콘밸리처럼 신속하면서도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존의 성과평가(performance review) 방식을 바꿔야 한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올해 조직문화 혁신을 선언했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 같은 변화를 준비하면서 참고 대상으로 삼은 기업 중 하나가 미국 대표 제조기업인 GE다.
직원들의 성과평가에 대해서는 '성과평가를 없애라'의 저자인 팀 베이커가 구체적인 방안을 많이 내놨다. 그는 "성과평가제도는 직원이 관리자의 평가를 받지 않으면 성과가 저하된다는 잘못된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면서 "직원뿐만 아니라 관리자들도 성과평가제도를 싫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가정도 잘못됐다"면서 성과평가제도가 잘못된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직원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것 △직원을 평가하지 말고 향상법을 논의할 것 △직원의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할 것과 같은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
선진화된 새로운 조직문화에서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혹은, 어떤 인재가 되어야 할까. 더비즈타임스와 인터뷰한 앤절라 리 더크워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의 '그릿(grit·투지)'이라는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학업성적을 이뤄낸 학생, 영업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실적을 달성한 세일즈맨 등은 모두 재능(talent)이 아니라 '그릿'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는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서 '그릿'을 이끌어내려면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고 소통하라"고 조언했다.
2. 혁신, 세상을 보는 틀 다시 짜기
조직문화만큼이나 한국 기업들이 많이 고민한 것은 혁신(innovation)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혁신은 기업들에 상시적인 것이 됐다. 더비즈타임스가 만난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제각각 혁신에 대한 자신들만의 경험을 나눴다.
칼 배스 오토데스크 CEO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기(reframe)'를 강조했다. 세상을 보는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만 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토데스크는 '오토캐드(AutoCAD)' '마야(Maya)' 등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30년 이상 설계·디자인 프로그램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는 혁신을 위해 수없이 실패할 것을 조언했다. 다이슨의 혁신적인 제품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술혁신을 '유레카 모멘트'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끝없는 실험의 반복과 셀 수 없는 실패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페인트 기업인 악조노벨의 톤 뷔히너 CEO는 기업이 고객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글로벌 기업으로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피셔 노벨리스 CEO는 파괴적 혁신(disruption)이 닥쳐올 경우 기민함(nimbleness)을 가지고 대응할 것을 조언했다. 알루미늄캔을 만드는 것이 주력이었던 노벨리스가 자동차용 알루미늄차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민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조슈아 갠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 교수는 혁신에 대해서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과는 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먼저 움직이는 것보다 나중에 움직이는 것이 파괴적 혁신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코닥이나 블록버스터(넷플릭스에 밀려 망한 영화 대여 체인)도 새로운 혁신에 일찌감치 대응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다"고 설명했다.
3. 구조조정, 선제적 행동이 성공 이끈다
2016년은 뼈아픈 구조조정의 한 해 였다. 우리나라 최대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조선업이 대규모 인력 감축을 했다. 더비즈타임스는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CEO들과 인터뷰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 푸조시트로엥 그룹 회장은 2014년 경쟁사인 르노에서 PSA그룹으로 스카우트됐다. 회사는 2년 동안 50억파운드(약 7조44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는 취임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10억파운드의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5%를 달성했다.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노동조합과의 '윈윈'이었다. 그는 "(노조와 대화에서) 사측이 어떤 복지를 줄지 얘기하는 것으로는 직원을 보호할 수 없다. 노사 간 대화에서 사측은 정확한 전략과 비전,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크 던컬리 하와이안항공 CEO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잊기 쉬운 '기본 중의 기본'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변호사와 재무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본업(business)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은 실패한다"고 조언했다. 회사를 분할하고 중요 사업을 매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던컬리 CEO는 이를 위해 항공사에 제일 중요한 정시 운항에 집중했다. 망해가던 하와이안항공은 정시 도착률이 가장 낮은 항공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를 상위권으로 올려놓자 직원들도 자신감이 생겼고 다른 사업에서도 하나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카린 토르번 노르웨이 경제대 교수는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해낸 기업들은 이를 선제적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이럴 경우 기업은 현금을 확보해 놓을 수 있고, 채권자 및 이해관계자들과 지루한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더 큰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큰 조언이다.
데이비드 예르막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 교수도 "최근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 트렌드는 기업이 하나의 산업에만 집중해 사업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면서 "이는 한국 재벌기업들에 시사점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 마케팅,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야 승리한다
기업들은 언제나 마케팅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은 '디지털 마케팅'일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전자는 점점 디지털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어떻게 잡을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후자는 점점 디지털 채널에 빼앗기는 고객들을 어떻게 기존 채널에 붙잡아 둘 것인가다. 세계적인 온라인 명품 쇼핑몰인 '파페치'와 '스타일밥'의 창업자들은 더비즈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온라인 쇼핑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명품 시장에서도 온라인 쇼핑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예상과 달리 명품 온라인 매장과 인스토어 매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소비자의 국경도 무색해지면서 명품 유통업계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폴 울밍턴 캔버스월드와이드 CEO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현재 고객과 브랜드가 만나는 접점 셋 중 둘은 고객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검색, 제3자 사이트, 고객 리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마케터들도 디지털 마케팅 수단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 1위 프리미엄 아웃렛인 맥아더글렌그룹의 줄리아 칼라브레스 CEO는 온라인 쇼핑몰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아웃렛이 단지 쇼핑하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놀이 공간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싼 물건만으로는 아웃렛이 온라인 쇼핑몰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지배구조, 한국 대기업 새 지배구조를 찾아라
2016년 대한민국 최대 뉴스는 누가 뭐래도 '최순실 게이트'다. 이는 정치권 뉴스이지만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주요 재벌기업이 연루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한국 재벌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화두가 됐다.
벨기에의 '삼성' 솔베이와 370년 된 네덜란드 기업 악조노벨의 지배구조는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63년 만들어진 솔베이는 상장 주식회사이면서도 창업주 가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족 기업으로 남아 있다. 창업주의 5세대 후손 2500여 명이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경영과 감독은 완전히 분리돼 창업주 가문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과 인수·합병 등에는 창업주 가문이 결정에 참여해 주인 없는 회사의 약점을 보완한다.
한때 노벨평화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 소유하기도 했던 악조노벨은 수많은 인수·합병을 거쳐 지금은 주인 없는 기업이 됐다. 악조노벨이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370여 년간 지속 가능했던 것은 기업 이사회의 다양성 때문이다. 유니레버, 노키아, BP, 록히드마틴, 알카텔루슨트,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 출신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확고한 기준을 통해 악조노벨의 인수·합병을 결정한다.
그리스의 '롯데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FF그룹의 CEO는 우리나라 재벌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큰 조언을 했다. FF그룹은 '폴리폴리' 등 주얼리 브랜드와 그리스 백화점, 아웃렛 등을 소유한 유통그룹으로 상장사이면서 대주주 가문이 지분 39%를 보유하고 있으며 CEO는 창업자의 아들이다. 한국의 재벌그룹과 소유구조가 유사하다. 게오르게 쿠초유초스 FF그룹 CEO는 "가족 소유 기업에서 최고의 기업가(entrepreneur)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적절한 매니저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배력이 있는 오너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조화를 이뤄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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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회공헌, 사업 자체를 사회에 기여하도록 운영 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된 또 한 가지 경영학적인 주제는 바로 사회공헌(CSR)이다. 바로 한국 대기업들이 K스포츠·미르재단에 출연한 돈이 모두 명목상으로는 '사회공헌'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강압에 의해 돈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같은 그릇된 행동 때문에 단순히 기업이 남는 이윤을 사회에 주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자체를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공유가치창출(CSV)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더비즈타임스와 인터뷰한 닥터브로너스는 작은 화장품회사지만 CSV라는 측면에서 많은 교훈을 주는 기업이다. 데이비드 브로너 닥터브로너스 CEO는 "나는 CEO로서 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운동가(activist)'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기업이 성장하는 데 불필요한 이익을 의미 있는 사회적 운동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목표"라고 더비즈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밝혔다. 이 같은 닥터브로너스의 철학은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의 비즈니스모델과도 일치한다.
'아벤느'로 유명한 프랑스 제약·화장품 기업인 피에르파브르그룹은 대주주가 공익재단이다. 창업자가 전 재산을 공익재단에 넘겼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나온 수익이 배당을 통해 공익재단으로 들어가고 이는 저개발국가의 의료 현실을 개선하는 데 쓰이고 있다.
노벨리스는 지속 가능성을 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삼는 기업이다. 노벨리스에서 생산하는 알루미늄은 차량 경량화 소재로 쓰여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노벨리스는 이 알루미늄을 최대한 재활용해 전체 공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
7. 창업, 실패를 두려워 않는 스타트업이 성공 올해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은 점점 더 한국 경제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창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더비즈타임스는 지난해 많은 창업자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우리 스타트업에 주는 인사이트를 들었다.
앤디 벡톨샤임 아리스타네트웍스 창업자는 1982년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시작해 다섯 개의 회사를 창업하고 다섯 개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풀고 싶어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비전과 아이디어' '회사를 만들고 인재를 모으는 능력' '제품을 판매하고 돈을 버는 경영능력'의 삼박자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이 중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좋은 외부의 인재를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앤디 벡톨샤임이 '천재형' 창업자라면 영국 크래프트맥주 회사 브루독의 제임스 와트 창업자는 '또라이형' 창업자다. 하지만 기존 상식을 뒤집는 브루독의 충격적인 마케팅은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브루독은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자금을 모으는 수단이 아니라 팬을 만드는 또 하나의 마케팅으로 생각했다.
브루독의 이 같은 성장 경험은 '1등 스타트업의 비밀'의 저자 션 아미라티의 조언과 일치한다. 성공한 스타트업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끄는 두 번째 단계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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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의 대표적인 기업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 업체인 '에어비앤비'의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15년 세계지식포럼에서 더비즈타임스와 만났다. 그는 형체가 전혀 없어 보이는 에어비앤비가 255억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이 '신뢰'라고 설명했다. 집주인(호스트)과 손님(게스트)이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길 수 있는 리뷰시스템과 금전거래를 에어비앤비가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것이 이러한 신뢰를 만드는 바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