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분의 일의 아픔, 그리고 은혜의 자리>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 부부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친구는 늘 모든 일의 계획을 세우고 진행을 이끌어 가는 우리의 멋진 친구이다.
말없이 궂은일을 하면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걷는 것이 불편해졌고,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일이 쉽지 않아서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들끼리 한 달에 한 번은
친구 집에서,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라도 식사를 하며 만나기로 했다.
그날도 친구 부부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기쁨을 나누었고,
찻집에서 오랜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가는 부부들과 아쉬움을 안고 헤어진 뒤
우리는 친구 집 거실에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작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십자가를 보는 순간, 얼마 전 친구와 헤어질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말없이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이.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친구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이 함께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천분의 일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아파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아픔마저 감당하기 어려울 때,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수는 있지 않을까.
아픔 앞에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며,
나는 벽에 걸린 십자가 앞에 그 천분의 일의 아픔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아픔까지도 그의 눈물까지도 주께서 품어 주시길.
십자가 아래 내려놓은 천분의 일의 아픔이
주의 은혜 안에서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친구의 깊은 아픔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어설픈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친구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며 >
어느 날,
"왜 나에게 이러하십니까?"
하나님께 눈물로 묻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시련과 아픔마저 받아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자리가 있다.
벽과 벽 사이,
작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기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자리이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의 향기로 하루를 채우고,
유한한 생명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본다.
시련의 날들,
눈물과 아픔을 지나 메말랐던 영혼은
하나님의 손길로 깎이고 다듬어졌다.
눈물과 시련의 상처 틈 사이로 은혜의
빛이 스며들었고,
십자가 아래 머문 시간은 감사로
채워졌다.
이 작은 공간은 단순한 창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빚으시고
비움을 통해 충만을 배우는 자리이다
말씀이 주는 깊은 은혜는
하루가 저물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이 자리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유한한 삶 너머 영원을 바라본다.
첫댓글 친구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게인님 모습이 자애롭습니다
원래 기도의 염원은 나를 위함이 아닌 남을 위해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이지요
지극한 기도 속에 친구님의 건강이 치유 되시길 바랍니다 .
더 이상 진행이 안되면 좋은 것이지요.
오늘 처음 전동 휠체어 연습하는 영상이 올라 왔어요. 남은 삶 같이 즐겁게 지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