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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여름날,
신우회 회원 6명과 중국 이도백하의 부성장 초청 받고
3박4일의 일정을 잡고 백두산을 보기위해
여행한 기억을 되살려 추억의 앨범에 담아봅니다.
8월3일 김포공항에서 오전 9시 요녕성 성도 심양행 중국항공기를 타고
정오를 조금 지난 12시 20분경 선양(중국표기)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식 버스를 타고 심양의 상업지역인
조선인 밀집지구 (시장) 서탑거리에 내린다.
곧바로 한국식 전주식당에서 전주비빔밥과 참이슬로 늦은 점심을 하다.
이곳에서는 고가의 고급식당이란다. 주인은 한국 사람인가보다.
식사 후 서탑거리의 환전 및 여행수속을 중개해주는 조금 큰 식품가게를 찾았다
벌써 10여 차례 중국을 사업차 출입한 권영식 사장과 여주인이 스스러움 없이 대한다.
오후 5시 출발하는 안도 행 기차 침대권을 6장 예매해주고 수수료를 건낸다
당일 승차권 예매가 어려운데 이곳도 비공식인 편법이 가능한 듯,
이 곳 수퍼에는 남한의 음식료,잡화 없는게 없을 정도로 마치 남대문 시장의
외제품 취급점과 유사하다.
문명은 明,暗 다같이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물 흐르듯 한다.
2시간 정도의 여백이 있어 권사장이 사우나의 발맛사지 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가운을 입고 무릎아래부터 발바닥까지 맛사지를 30분 받으니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한국화폐 2천원정도 하니 이곳의 물가는 상당히 저렴하다.
8월초의 북만주도 상당히 덥다.
역전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도요다,닛산,폭스바겐의 20년이 지난 낡은 밴형의 붉은색 차들,
기사는 상의는 벗고 반바지 차림이 아닌가....이곳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오후 5시에 열차를 타니 4인 1실 2층침대 열차라 4명은 한 곳에 2명은 옆칸에 자리를 잡는다.
정복을 입은 여자 열차공안원이 검표 하며 주의사항을 설명하고는 돌아간다.
특이한 것은 뜨거운 물을 공급해주는 별도의 칸이 있다.
준비해간 컵라면으로 팩소주를 기울이며 異國의 여행의 첫날 밤은
기차바퀴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깊어만 간다.
대륙의 여름밤은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2층 침대에서 잠 못 이루어 뒤척이며 토막 잠을 잔다.
한여름의 미명이 어슴프레 밝아오는 새벽 4시,
백두산행의 첫 발을 내딛는 안도역에 도착하니
초청자의 조선족 김과장이 도요다밴을 대기시키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안도현 일대는 일제때 김일성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던 지역이란다.
북한의 김일성이 유격대 활동을 하던 사실이 정설로 알려진..
아침이 밝아오는 낮으막한 구릉지대를 2시간 여 올라가니
3,4가구가 있는 조선인 집으로,아침식사를 예약했다고 한다.
그집 가족과 우리일행이 함께 보신탕을 먹고 소주도 나누어 마셨다
우리의 1960년대의 시골 풍경과 흡사한 듯 하다
민족의 동질성은 흘러간 세월만큼 희미해지고 지금은 화석이 되버린
옛 조선어가 마치 삼대 지난 선조들과 대화하는 것만 같다
완만한 황토구릉지대를 계속 오르는데 하늘은 맑고 기온은 따듯하다.
다시 1시간 정도 더오르니 우리의 면 소재지 같은 소도시가 나타난다
이도백하
장백(창바이)산맥의 고원지대로 공기맑고 깨끗한 여름의 더위도 상쾌하다.
점심을 먹고 바로 백두산까지 오르기로 출발한다
가는 길에 울창한 침엽수가 그 키를 열병처럼 줄 서 있고
곳곳에 도로포장공사 중이라 편도로 통행하니 정체가 답답하다
오후 3시가 되서야 장백산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다.
이곳은 지방 조직폭력인 삼합회(트라이어드)가 관장한다고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 요금액이 다르다.
조선족 김과장의 증명서로 중국 내국인 으로 인정받고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장백산 보호구역으로 들어간다
조폭이라지만 지방의 하급원이라 그런지 순진한 면이 있다
삼합회의 태생이 장개석 독재정권의 악랄한 하수인 노릇을 하였던
비밀정보기관인 남의사에 대항하기 위하여 농민 근로자들이 만든 조직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미국의 마피아,일본의 야쿠쟈와 더불어 세계 3대 폭력 조직으로 확장되어
중국 전지역 대만 화교권까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일기는 변화하여 운무가 젖어들며 비안개가 산능선을 덮어 버린다
고산지대의 키 작은 관목만이 능선을 보도블럭으로 포장한 길을
구비구비 1시간 여를 오른다
천지의 정상,바로 밑,50미터 아래에 자리잡은 중국의 천문대에 도착한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한복을 입은 동포 여인네들도 보인다
정상부에 도달하니 천지가득 덮혀있었던 먹구름은 회색빛으로 퇴색하면서 물러나고
하늘이 열리며 밝은 햇살아래 백두의 품에 잠자고 있는 하늘호수가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열번을 올라야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맑은 天池가 아니던가....
표고 2,744미터,백두봉,징군봉,,,,장엄한 봉우리들의 품 안에서 숨쉬고 있는 하늘호수,
민족 태동의 성지,상고시대의 神權통치의 母胎,일만년 조상의 혈맥이 이어지는 곳
벅찬 감격과 역사의 숨결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곳곳에 조선인 사진사가 스냅사진 찍기를 권유한다.
우리가 가지고 간 카메라를 주고,그네들이 요구한 금액의 절반으로 사진을 찍고 나니
백두연봉 주위에 회색빛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와서 하늘은 다시 어두워지고 비바람이 친다
백두의 산신님은 하늘호수를 닫아 버리시나보다.우리에게 일순간을 보여 주시고....
매표소 왼쪽으로 돌아가니 하늘호수에서 직접 떨어지는 장백폭포가 보인다.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두만강,송화강(쑹화강)중 천지에서 발원하는 송화강의 시원지이다.
주변 길 가의 얕은 물들에서 뜨거운 증기가 솟아 오른다, 곳곳에 달걀을 삶아 팔기도 한다
백두가 활동하는 휴화산으로 화산지대임을 나타낸다
이 곳에 대우에서 운영하는 온천 호텔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 까지 진출한 대우의 저력이 놀랍다
중국을 지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유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김우중회장을
구미의 경쟁자들은 김키스탄이라고 두려워 하며 국내 매국 정치인들이 타국으로 �아내었다
중국을 거쳐 유럽을 떠돌다 베트남에서 있었다는 소문이 돌고
우여곡절 �에 전 정권말에 귀국하여 외환관리법등으로 사법처리 받고 지금은 세인의 눈에서
사라져간 과거의 입지전적인 사업가, 그는 큰 사람,큰 집 이었다.
금강대협곡,
다시 장백산 매표소를 돌아 나와 4키로 정도 내려와
삼림 울창한 숲 으로 들어간다.권사장의 안내로
한참을 들어가니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땅 속에서 들려오고
1,2미터 폭에서 10미터 폭까지 지하협곡이 흘러서 하류에 큰 강물이 된다.
백두산 자락의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흘러 협곡을 만든 것이다.
이도백하로 돌아와서 햇살좋은 고원의 민속박물관을 간다.
호랑이 박제가 있고 민속물품이 흡사 우리 민족의 손 때가 묻어 있는 듯 하다
조금 조악한 장백산지도가 그려 있는 스카프 2장을 샀다.
저녁 만찬을 이도백하 부성장의 초대를 받아 6인이 참석하고
주최측은 부성장 경제국장 김과장 목재소장 4인이 자리 잡았다
원탁에는 처음 대하는 중국요리와 양고기 술은 도수가 50도 이상인 바이주가 나왔다.
맥주 컵 정도의 잔에 바이주를 가득 부어 한 번에 마시라고 한다.
나는 죽었구나 생각하고 한 잔을 마시니 어지럽기만 하고
갖가지 요리는 그놈의 향신료 향채(향차이)의 역겨운 냄새가 비위를 거스린다.
권사장은 콧수염이 꼬부라진 목재소장 회족(아랍계중앙아시아인)과 벌써 다섯번의 간빠이를 하니
목재소장이 고개를 흔들고 잔을 엎어 꼬리를 내린다.
비오는 거리를 지나 우리나라 지방 여관 같은 삥관(병관)에 잠자리에 들어가
백두산 여정의 둘째 날은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밤으로 깊어만 간다.
첫 날은 안도행 야간열차에서 일박하고
둘째 날에 이도백하에서 숙박 했으니
이제는 제3일째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침 햇살이 화사하게 펼쳐지는 고원의 도시 이도백하는
맑은 정기가 흐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식당으로 모여 아침식사를 한다
집은 잠만 자고 식사는 식당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여자들이 대부분 직업을 갖고 활동하기 때문이란다
식사후에 일행 중 한사람이 보이지 않고 찾을 길이 없다
지나는 마차를 타고 시가지를 헤매다 한참 후에 돌아와
오전 10시가 지나 김과장이 준비한 도요다 밴을 타고 연길을 목적지로 출발한다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고 대륙의 고원지대를 넘어간다
대흥안령 산맥을 한 없이 넘고 넘어 하늘을 찌를듯 서있는 침엽수림을 지나
크나큰 계곡밑 댐 조성하는 곳을 내려다 보고 4시간을 달려와 화룡현에 다달으니
온 옴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흡사 1960년의 서울 변두리와 같은 풍경의 무더운 8월 여름의 무기력감이 도시 전체에 흐르고
그 중 유명하다는 화룡냉면집으로 들어갔다.
얼음이 들어있지 않은 물냉면을 먹었지만 맛은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행중 목재 수입을 하는 권사장의 거래처인 목재소를 들러서 조선 동포와 물품을 확인하고
길림성 성도인 연길시로 밴은 출발한다
이제는 끝없는 벌판에 옥수수와 호박밭이 이어져 나가고 그 옆의 도랑의 개울물은 길 따라 흘러간다
민가는 보이지 않고 10여 키로지나니 한 울타리 안에 대 여섯호의 집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광활한 지역에 마적,비적의 침입에 자구책인 듯 싶은데 어쩌다 우리동포의 주거마을도 있다고 한다
연길 입구의 용정에 이르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의 항일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중학교를 지난다
서 시 윤동주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래 전 가슴으로 읽어 내렸던 시가 생각나 적어본다
연길로 들어가니 제법 큰 도시다운 분주하고 번잡한 거리가 사람들의 왕래
오가는 차량들의 행렬 한글 간판들이 조선족 자치구의 위상이 대단하다
하루 종일 차 안에서 비포장 길을 달려 먼지를 뒤집어 쓴 몸을
연길 호텔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었다
직원들 모두가 한국말을 하니 국내의 한 지방도시에 온 듯 한 느낌이다
오후 7시 연길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풍경도 30여년 전 우리의 지방도시와 흡사하다
기차안은 일반실 3층으로 마주 보고 있고
자는 사람,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남녀 구별없이 선반처럼 매달린 3층 침대에서
덜컹거리는 기차바퀴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누웠지만
냉방장치 안 된 열차는 후덥지근 하다
자정을 지나 2시경 심양역에 도착하여 서탑거리 가까운 정창호텔로 가서 여정을 풀었다
제 4일
점심은 옥류관이라는 북한에서 직영하는 식당에 갔다
김일성 뱃지를 달고 짙은 자주색 한복을 입은 종업원의 안내로
평양식 온반을 먹고 금술이야요 하는 여자 접대원의 권유로 마시는데
남자 직원들의 눈매가 선뜻선뜻한 것 같아 식사를 끝내고 바로 나왔다
택시를 타고 중국인 밀집지역의 전문 발 맛사지 업소(5층 건물 전체)에 가니
방문자 사진에 닉슨 전 미대통령도 걸려있고 1개의 방안에 3인의 의자(왕,장군이 사용한것 같은)에 앉으니
15~6세의 여종업원 3명과 악사 한 명이 들어와 무릎 아래 발의 근육을 이완 시켜 풀어주고 중국악기를 켜서 연주한다
발맛사지의 시작은 전국시대에 각기 영주 아래서 전쟁을 치루고 돌아온 장군들의 피로감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지금도 고관대작,지방토후,관광객등에게 널리 사용한다.
오후 7시가 지나 현지의 한국교민 2명이 가이드로 중국민속시당을 안내한다고 찾아왔다
IMF전에 남대문 시장에서 의류 제조업을 하던 30대 후반의 그들이 중국에 온지는 1년여 되었다고한다
둘다 중국말이 유창하다.
현지에서 의류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장의 현지 중국여자들과의 대화를 집중적으로 하니
의사 소통이 빨리되었다고 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는 여자하고 대화하는 방법이 효율적인가 보다
관광빈속식당이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이 더 많이 와있었다 1000명 정도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다
각 분할된 방에 원탁의 테이블 가운데서 주방직원이 직접 음식을 나누어 주고
주요 요리는 다른 곳에서 날라온다.원숭이 골도 있다고 하나 주문은 하지 못했다
과연 요리의 왕국다웠다.온갖 종류의 넉넉한 양과 식욕을 당기는 내음새등....
풍족한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고 숙소인 정창호텔로 돌아와 북만주의 마지막 여름밤을 보냈다.
첫 날은 안도행 열차에서,2일 째는 리도백하의 병관에서 3일째는 심양행 야간열차에서
마지막 제 4일에는 심양의 정창호텔에서의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4박5일의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여러가지 사건들과 사람과 풍경,풍물에 대한
느낌이 많던 두려움 모르고 자신에 차있던 불혹의 장년이던 내 모습이 그리워진다
돌아오지 않는 세월역에서의 백두산 여행기를 회상하면서 이 글을 써 봅니다.
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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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멋진 여행기 감사해요
11년 전 백두산에 다녀온 일이 꾸만 같습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유학갈 아드님 께서도 잘 지내고 있는지요
늘..
건강 하시고..
흔적 남기고 갑니다
예,8월 초에 갑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한 번 소주 한 잔 하고 싶지만 가까운 날안에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이 해가 가기전에 조우하길 기대해 봅니다
저두 가보고 싶어지네요.
거운여행기감사합니다.
근데,마음뿐,몸이 따라가주질 못해서,,,
안내 관광 여행은 많이 있습니다만
현지인의 초청으로 실재로 그들과 부딪혀 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