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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1996년도 4월 회사의 승진 계절이 되었다.
기철은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박국장이 진급이 되도록 하여준다는 약속을 했지만, 박국장이 부탁한다고 꼭 진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별 기대를 갖지 않았다.
아니 자기는 전무가 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았고 하나뿐인 전무 자리는 마땅히 영식이 올라가게 되어있는 지금은 자기로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고 혹 맡은 00도로 건설공사나 잘 마무리하여 공사가 완공된 7년 후에나 어떻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예 포기하였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도 중간에 별 대과 없이 공사를 잘 맞추었을 때 가능하지만.
단지 이상한 것은 다른 승진은 다 발표되어 새로 상무가 된 사람들의 인사도 받고 축하도 해주었는데 전무 자리는 아직 발표가 안 됐다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의례 00도로 건설공사 수주에 많은 공헌을 한 최영식 상무가 전무로 승진될 것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아직 발표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직급의 승진 발표가 있고 10여 일 지난 후 전무 승진 발표가 났는데 영식과 기철이 나란히 전무로 승진을 했다.
다만 영식은 전무로 되며 회사의 건설 관련 업무 전반을 총괄하게 되고 기철은 여전히 00도로 건설현장 소장으로 업무가 분담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같은 전무라도 기철은 영식의 담당업무 한 부분인 00도로 건설 현장의 소장 임무를 받은 것이다.
기철은 기분이 씁쓸했지만, 아무 공로가 없이 전무로 승진했다는 사실에 위로받으며 박국장이 약속을 지켜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승진 발표가 있고 곧 기철은 박국장에게 찾아가 ‘고맙다 박국장님이 돌보아 준 덕택에 진급했다.’라는 말과 적당한 답례로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받으며 박국장은 그동안 마음속을 누르고 있던 기철에 대한 부담감을 안상호에 대한 꺼림칙함을 비로소 떨쳐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안 돼 회사 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기철이 전무로 승진된 것은 순전히 최영식 상무의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 내에 ‘박상무와 최상무가 서로 앙숙인 줄 알았는데 이번 승진 때 보니 최상무가 박상무를 끔찍이 생각하더라, 최상무가 박상무 진급을 안 시켜주면 자기도 진급하지 않겠다고 우겨 사장단에서는 없는 T.O를 만들어 박상무를 진급시켰다더라.’ 하는 소문이 일고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처음에 회사에서 승진계획을 세울 때 박국장이 기철의 승진을 부탁한다는 전화를 했고 그 전화를 받은 사장이 영식을 불렸다.
물론 영식이 박국장에게 승진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지만
“박국장이 이상한 전화를 했어.”
영식을 맞으며 사장이 하는 말이다.
“이상한 전화라니요?”
사장의 말을 듣고 전화 내용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영식이지만 이렇게 묻는다.
“박국장이 박기철 상무 승진을 부탁하는 전화를 했어.”
“그래요?”
영식은 시치미를 뗀다.
“왜 박국장이 박상무 진급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글쎄요?”
영식은 수주 관계로 자기가 박국장에게 한 약속을 사장에게 그대로 말할 수 없어, 이렇게 대답했다.
“박국장과 박상무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지 않아? 박국장은 최상무하고 선후배 관계로 가까운 것은 알고 있는데. 박상무와는 어떤 관계야?”
사장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척하던 영식이
“박국장의 부탁도 있고 하니 이번 승진에 박상무도 승진을 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한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무 자리는 하나뿐이고 그 자리는 자네가 올라가야 할 자리야.”
그 말을 들은 사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다른 회사는 건설 부분에 전무가 두세 명은 되는데 우리 회사도 전무를 한 사람 더 둔다고 무슨 일이 생깁니까? 그리고 박국장의 부탁도 있으니.”
“아니 이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왜 이래? 사장이라도 회사의 임원 자리를 내 마음대로 늘리고 줄이고 하지 못한다는 것, 자네도 잘 알잖아. 그것은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말아야.”
“주주의 승인이야 이번에 00도로 건설공사 수주로 회사의 위상도 높아지고 일이 많이 늘어 건설 부분에 전무를 한 사람 더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득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하여 박상무를 승진시키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영식의 태도가 이상하게 생각된 사장이 따지듯 물었다.
“저의는 무슨 저의가 있어요? 박국장이 부탁하고 박상무도 이번 수주 관계로 고생 많이 했잖아요.”
이렇게 얼버무리는 영식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속이 떫은 감 씹은 기분이다.
그리곤 그때는 00도로 건설공사 수주 정보를 얻을 생각으로 급한 마음에 별생각 없이 박국장에게 너무 지나친 약속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는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떼를 쓰는 것이다.
사장과 영식은 친척이면서도 아주 가까운 사이라 사석에서는 물론 공석에서도 다른 사람이 없으면 형제처럼 행동한다.
지금 영식이 그런 관계를 이용해서 떼를 쓰는 것이다.
“아니 자네 박상무에게 무슨 죄지은 것이 있어? 그렇게까지 하면서 박상무를 승진 못 시켜서 안달이게.”
지난번 영식이 수주 정보를 박국장에게서 받기로 했다는 보고 직후 사장실에 들어와서 박상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최상무가 박상무에게 무슨 짓인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사장이 이렇게 묻는다.
“죄는 무슨 죄를 지어요? 그런 것보다는 결과야 어떻게 되었던 박상무도 고생을 많이 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결과가 안 좋으면 말 그대로 고생만 한 거지 소용없는 일이야.”
“박상무도 승진할 때는 됐잖아요.”
“승진할 때가 됐다고 다 승진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 상무 아니 이사도 못 해보고 정년퇴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날 이렇게 사장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던 영식이 승진 발표 전날 승진자 명단에서 기철이 누락 된 것을 알고 그대로 발표하면 자기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사장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영식이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말로만 그러는 줄 알고 승진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날 승진자 명단을 그대로 발표하려던 사장은 그날 아침 정말로 사표를 들고 들어온 영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자네 왜 이러는 거야?”
지난번 영식과 말씨름할 때 영식은 아니라고 하지만 00도로 건설공사 수주와 관련해서 영식이 기철에게 무엇인지 마음에 걸리는 짓을 하여 기철에게 마음에 빚을 갚으려고 영식이 그러는 것으로 대강은 눈치를 채고 있었던 사장은 영식이 정말 그 일로 사표까지 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는 행동으로는 괘심하여 사표라도 받고 싶지만, 영식은 친척이기 이전에 사장의 오른 팔이다.
대지나 헌 집을 사서 집을 짓거나 새집을 만들어 파는 집 장사를 해서 돈을 번 사장의 아버지가 건설회사를 만들 때 친척 중 토목과를 나온 영식의 아버지를 영입하여 회사를 발전시키고 20여 년 전 사장의 아버지가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온 아들을 회사에 입사시켜 경영인으로 키울 때 영식은 토목과를 나와 사장보다 몇 년 뒤 대영에 입사하여 10년 전 지금의 사장이 회사를 맡을 때 부장이 되었고 회사를 이만큼 키우는데 꾀가 많고 영악한 영식이 크게 일조했기에 그런 영식이 그만두면 당장 회사의 건설 부분은 금방 타격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 일 말고 여태껏 사장을 곤란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영식의 이번 행동이 사장을 곤욕스럽게 했다.
“지난번에 말한 것과 같이 박상무를 빼고 승진 발표를 하면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사장님이 저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그러니까 이번 승진에서 전무 진급을 빼든지 아니면 박상무를 넣어주시든지 하세요. 사표는 놓고 갈 테니 사장님이 결정하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박상무 없이 승진 발표를 하시면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니까 자네가 이렇게까지 박상무 진급에 신경 쓰는 이유가 무어냐고?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설명해봐.”
“특별한 이유라면 동지애라고 할까요, 한솥밥을 먹으며 고생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면 진급 때 누락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어찌 됐든 저는 저 의사를 밝혔으니, 사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영식은 사장이 말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사표를 내놓고 나간다.
영식으로선 박국장과의 약속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주 정보 관계로 박국장을 호텔로 찾아가서 자기가 박상무를 진급시키도록 할 테니 박국장은 의례적으로 전화만 한 통 하라고 할 때 박국장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자기는 걱정말라고 장담까지 했다.
그런데 만약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박국장에게 신의 없는 놈으로 낙인되고 더욱이 기철에게 승진을 약속한 박국장이 기철과 성호에게 신의 없는 사람으로 되면 입장이 난처해진 박국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국장의 입김으로 건설업계에서 자기의 운신 폭이 무척 좁아지게 될 것이므로 그러면 계속해서 건설회사에 있는 것이 건설회사를 떠나는 것만 못하다는 판단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약속을 지키려는 영식의 노력이 영식을 이렇게 하게까지 만든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있는 영식이 사장이 자기의 사표를 쉽게 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장은 난감했다.
전무의 자리가 비어 있는지, 오래되어 이번 인사에서 또 전무 자리를 누락시킬 수도 없고 그냥 발표하자니 영식이 사표를 낸다고 저 야단이고 기철을 승진에 포함하자니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칙에 임원의 숫자를 늘일 때에는 주주들의 동의를 받도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전무 승진 발표를 늦추고 주주총회를 열어 임원의 증원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사장은 영식을 불러 주주들을 설득하게 한 것은 물론이다.
영식은 열심히 설명했다.
이번에 3,650억의 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하여 회사 규모가 커져 공사의 적절한 관리를 위하여, 또 앞으로는 이런 대형공사가 계속 나올 것이므로 대형공사의 수주와 시공에 대비하여 회사 기구를 개편하고 전무도 한 사람 더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영식의 설득 덕분인지 아니면 대형공사를 수주하고 그 수주와 관련하여 연고권 주장으로 그와 같은 공사를 앞으로 또 수주할 것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주주들이 전무의 수를 한 명 더 늘리는 것에 쉽게 동의를 했다.
이렇게 기철도 모르는 유여 곡절 끝에 기철이 전무로 승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소문이 나서 영식이 기철의 승진을 위해 무척 노력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고 또한 무척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그것은 영식이 기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박국장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대영의 인사철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박국장이 몇 번 전화하여 영식에게 약속을 환기시킨 것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라는 말이다.
어쨌던 그 소문을 들은 기철은 영식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자기의 진급을 위해 그렇게까지 힘을 써준 영식을 몰라라 할 수가 없어 전화로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로해서 영식과 기철의 사이가 조금은 좋아졌다.
첫댓글 즐~~~~감!
ㅈ2ㅡㄹ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혈님!
대보름 49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못처럼 아침부터 화창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대보름 49님은 처음이네요. 감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