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요, 그럼요, 물론이죠. 짱구가 살고 있는 거리, 카스카베에 일본의
6~70년대의 거리와 문화를 옮겨놓은 '20세기 박물관'이 들어섭니다. 일본 전역에 위치한 이 박물관에 전국의 어른들은 추억을 회상하며 거리는
복고의 열기로 물들고 '20세기 박물관'의 세는 점점 커져만 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20세기 박물관'을 운영하는 비밀단체 'yesterday
once more'는 어른들을 최면상태로 만드는 광고를 방송해 전국의 어른들의 정신을 아동으로 퇴행시키고, 그렇게 퇴행한 어른들을 '20세기
박물관'에 모아들이면서 온거리에는 아이들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yesterday once more'들은 세계를 20세기로 되돌리려는 계획을
위하여 아이들마저 박물관으로 끌어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짱구는 그에 맞서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을
감히 이제까지 보아왔던 모든 단편 애니메이션중에서 가장 감동적이다라고 평하고 싶으나, 방금전 <캡틴테일러 OVA-혼자만의 전쟁>을
보아버렸으니, 둘의 공동 1등이라고 해두겠습니다. 한시간 반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작품의 기본 줄거리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과 많이 흡사합니다. <20세기 소년>이 아마 2000년부터 연재된 작품(인가 1999년 작품이던가
-_-;)으로 기억하는데,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 2001년에 개봉되었다하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것은 의심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승-전을 수없이 반복하며 억지감동을 강요하는 끔찍한 <20세기 소년>에 비하여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은 깔끔하고 확실한 전개로 주제전달에도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은 등장세력을 셋정도로 분류하는게 설명하기 쉬울 것 같네요. 맹목적인
과거회귀로 어린시절의 평안을 끊임없이 유지하려는 'yesterday once more'의 리더 켄. 어른이 되고 싶어하며 미래를 꿈꾸는 짱구.
그리고 과거회귀와 미래지향의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짱구의 아버지, 히로시. 이렇게 셋이 작품의 축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작품의 주역은 짱구가 아닌, 두 세력사이에서 갈등하고 결정을 내리게 되는 히로시겠지요? 골칫덩어리 밝힘증 아들래미와 사치와 향락에 빠져지내는
마누라한테 괴롭힘 당하던 불쌍한 이 시대 가장의 표본이 드디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라지만 뭐 멋진 장면은 당연히 짱구가 다 차지하고
있지요 ^^; 그래도 명장면 명대사가 많은 멋쟁이 아저씨입니다. 'yesterday once more'가 가지는 이미지는
모두 회귀를 지향합니다. '바깥'이 아닌 박물관의 '안'에다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만들고, 그 거리 안에서의 삶만이 진실된다 믿고, 미니어쳐로
옛날의 박람회를 재연하고 어린 아이 장난감으로 어른을 유혹합니다. 그들은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과 세상을 부정하고 20세기의 냄새, 해질녘의
거리로 전세계를 20세기로 되돌리려합니다. 이런 과거회귀와 미래지향의 대립을 그리는 작품에선 대부분 미래지향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데-<20세기 소년>에서 나온 과거회상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닌 켄지의 자뻑일 뿐이죠-<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짱구의 부모, 히로시와 미사에는 계속해서 과거의 유혹에 넘어갈 뻔하고, 특히 히로시는
과거의 거리를 눈물을 흘리며 차로 질주하는 둥...정말 과거를 버리고 나아가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짱구아빠는, 히로시는,
어른들은 안타까워합니다. 과거회귀단체인 'yesterday once more'의 보스 켄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야망, 아니 꿈이 붕괴된 시점에서도 담담하게 자신과 이제까지 함께하고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안녕을 고하는 모습마저 보여주지요.
이렇게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존재,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회귀의 거부의 이유
역시 보통 작품과는 다릅니다. 미래를 나타내는 어린아이들의 희망적인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 것으로 끝내는 작품이 많은 것에 비하여,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에서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할 이유로 '가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점에서 이 작품은 과거-미래
둘의 대립적인 구도가 아닌, 과거와 미래사이를 방황하며 사는 히로시, 어른들이 주역인 것을 알 수 있겠지요-과거회귀를 갈구하는 켄은 챠코라는
동반자가 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가정을 꾸미지 않는 것은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인 히로시와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이유로 '가정'을 말하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운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정'으로
현실과 어른이 지니는 책임을 말하는 것이죠. 물론 현실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박물관'에 재현된 20세기의 거리는 아름답고 향수를
자극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을 세뇌하는데 사용하는 '20세기의 냄새'는 저녁노을 카레향이 창 밖으로 새어나오는-일본만화에서 향수를 자극할
때 자주 묘사되는 광경이더군요-달콤한 향입니다. 그에 반해 그 즐거운 환상에서 히로시가 깨어나게 해준 것은 현실의 냄새, 자타가 공인하는 자신의
구린 발냄새였습니다. 하지만 히로시는 어른이 된다는 것. 책임을 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그것이 잘못되고 그릇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바꾸어야 할 과오가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는 것. 부모가 되는 것이 아이의 기쁨을 위한 희생이 아닌, 자신의 기쁨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각박하고 힘든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의 대답이겠지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답말이에요. 작품의 마지막은 석양이 지는 카스카베의 짱구네집에 온가족이 돌아오며 끝이 납니다. 네, 현재는 다시 과거가
되고 히로시의 아들, 히로시의 아들의 아들은 21세기를 추억하며 22세기의 미래를 살아가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현재를 조금씩 과거의 추억으로
바꾸어가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겠지요.dcdc가 이제까지 본 모든 극장판 애니메이션중 가장 감동받았던 작품,
<짱구는 못말려-어른제국의 역습>이었습니다 :) 덧//...짱구와 철수의 Y동인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그것도 작중공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