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호랑이가 담배피던 그 옛날,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을 받아 햇병아리 교사요 직장인이 되었던 그 해...
첫 월급을 타고서도 두어 달 뒤, 갓 시작한 직장 생활에 대한 멀미가 좀 가신 뒤에,
봄의 향기가 무르익던 1982년의 5월의 한 주말에 난 친구들을 종로로 불러냈다.
돈 벌기 시작한 인사로 늦었지만 한 턱 쏜다고, 저녁도 사고 술도 사겠다고, 호기롭게 불러냈다.
3월의 첫 월급으로 친구들에게 신고식을 했어야 옳았지만 신규 교사의 신학기는 너무도 힘들고 감당하기가 벅찼기 때문에,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3월과 4월을 다 보내고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친구들 챙길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종로통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저녁을 샀다.
우아하게 저녁을 먹었으니 터프하게 술을 살 차례였다.
지금도 그 이름이 기억에 선명한 관철동 뒷골목의 술집 '오작교',
어둑 어둑한 조명이 침침했지만 분위기는 포근했던 주점이었다.
소주병을 깠다.
한 순배, 두 순배 잔이 돌았다.
맥주는 좀 마셔봤지만 소주를 마셨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것도 기회다, 여자들만 있을 때 내 소주 주량은 얼마인지 알아봐야지,
그래야 유사시(?)에 대비할 수가 있지 않겠나, 라고 생각을 하고
주는대로 받아 마시는 객기를 부렸다.
친구들은 아직 다 학생, 난 당시 2년제이던 교대를 졸업한 사회인.
"자~~ 난 돈 번다고오~~ 얼마든지 산다~~ 니들 꼭지가 돌 때까지 마셔~~"
하지만, 내 술독은 시원치가 않았나보다.
한 서너잔 들어가니, 눈물이 났다.
난 술버릇이 안 좋다. 취하면,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꼭 운다.
처음엔 깔깔대며 웃다가, 눈물이 좀 비치면 닦다가 했다.
그 상태에서 몇 잔이 더 들어가니... 아, 수도꼭지 열렸다...
엉엉~~ 으엉엉~~~ 앙앙앙~~~
난 울었다. 큰 소리로 울었다.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 가며 울었다.
뭐라고 떠들며 울었는지, 생각이 난다..
"울 엄마 불쌍해~~ 울 엄마 불쌍해~~~
나 따라서 낯선 포천까지 와서
사람도 잘 못 사귀고, 맨날 집안에만 있는 울 엄마 불쌍해~~~
나 하나 믿고 사는 울 엄마 불쌍해~~~
엉엉~~ 울 엄마 불쌍해~~~ 나도 불쌍해~~~~"
나는 그 때,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한 직장 생활이 힘들었고,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울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처녀가장이 된 내 위치가 버거웠고,
무엇보다.. 산 설고 물 선 낯선 고장에 딸 직장 따라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쉽게 못 사귀는 성격때문에, 우두커니 하루 종일 방안에서 딸내미 기다리시는 울 엄마의 하루가..
그 긴 하루가.. 그렇게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취해 징징대는 바람에 술자리는 파장이 되었다.
남가좌동에 사는 친구집에 가서 잠을 청한 그날 밤
난 밤새 뒤집히는 속을 부여잡고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내느라 잠을 못 잤다.
그것이, 나와 소주의 쓰라린 첫 만남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험한 세상살이에 첫발을 내딛은 버거움으로 휘청대던 스물 둘의 처녀,
지금도 그 무렵을 떠올리면 눈물이 핑도는 그 힘들던 봄날의 기억.
하지만, 너무도 그리운 그 시절, 그 날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반가운 리진님 안녕하세요? ^^
무더위 속에 어머님과 지내시느라 수고하시지요?
모쪼록 어머님 병세가 나빠지지 않으시길 기도합니다.
온화함과 지성미의 아이콘인 우리 리진님은 맥주 잔을 들고 있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겠어요. ^^
리진님이나 저나 만나도 커피를 마실 뿐이지만 차 한 잔 앞에 놓고도 할 이야기는 많고도 많지요.
낮 더위는 벌써부터 혹독하나 아직은 밤엔 선선하니 견딜 만합니다.
아직은.. 아직은 우리들도 폭삭 늙지는 않았으니 이 시절이 호시절이고요. ㅎㅎ
지리적으로 가까이 사셔서 리진님 만나고플 때 언제든 콜할 수 있으니 좋지요.
무더위 잘 보내고 좀 시원해지면 또 보십시다.
늘 건강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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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 옛날의 일인데도 소상히 기억을 하시네요.
그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몹시 기뻐하실 텐데요.
저도 초임지에서 가르쳤던 저랑 11살 차이나는 제자들과 지금도 소통하며 함께 늙어갑니다.
런던안개님 잔잔한 감동을 주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