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한국 명품 세계에 알릴 겁니다...
최창환 장수산업 회장
세기말이 갓 지난 2000년대 초 센세이셔널한 광고 한 편이 탄생한다.
나이 지긋한 중년 신사는 이마에 빨간색 별을 붙이고 등장해 손바닥을 쫙 펴면서 “별이 다섯 개”라 외친다.
배우나 가수도 아닌 낯설기만 한 광고모델은 다름 아닌 장수산업의 최창환 회장.
최근엔 종종 CEO들이 등장하는 광고들이 많아졌지만 기업 권위의 상징인 회장이
직접 광고에 나와 친근함을 주는 광고는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만난 ‘CF스타’ 최창환 회장의 모습은 광고에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탈하고 유쾌하면서 에너지가 넘쳤다.
병든 아내 위해 만든 돌침대, 스테디셀러로
“저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해병대를 다녔고
유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노동자로 3년간 공부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겠지만 풍부한 사회경험을 했고 사업을 하면서 전혀 불편함은 없었어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또래에 비해 일찍 사회에 진출하게 됐다는 최 회장은
20대에 3년간 중동지역에서 일을 시작했다.
수년간 타향에서 열심히 일해 모은 목돈으로 건설 중장비를 사들였다.
불혹이 되기 전까지 최 회장의 주업은 중장비 사업이었고
92년에 탄생해 최 회장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된 돌침대 사업은 당시에는 부업에 불과했다.
“아내가 두 아이를 낳을 때 저는 사우디에 있었어요. 신랑 없이 혼자 많이 고생했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몸이 많이 망가진 거예요. 몇 년 동안 시름시름 앓아누운 아내를 위해
‘뭐 해줄게 없을까?’하다가 우연찮게 (돌침대를) 만들게 된 거죠.”
참숯 화롯불 위에 약탕기를 올려놓고 복사열로 보약을 달이는 것을 보고
돌침대를 만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최 회장은
아내가 온돌 침대로 점차 아내의 몸이 호전되는 것을 보면서 사업화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러브스토리를 담은 드라마에 항상 시련이 따라오듯 로맨틱한 스토리 끝에 시작된 돌침대 사업도
초기에는 순탄치 않았다.
장래성을 보고 주력사업으로 전환했지만 폭신한 매트리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생경한 돌침대를 외면했다.
설상가상, 가구로 인정받기 위해 찾아간 조합에서는 ‘돌침대는 가구로 받아줄 수 없다’는 퇴짜까지 맞게 된다.
“돌침대 사업은 초기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1년에 매출 1억이 안 나왔으니까요.
백화점에서는 다리가 아픈 사람들만 잠시 앉아보고 쉬어가는 용도였어요.
가구 업계에서는 중장비 하던 놈이 언제부터 침대 전문가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죠.”
몇 년간 헤매던 사업이 흥하게 된 계기는 홈쇼핑이었다.
1996년 처음 등장한 홈쇼핑 방송은 초창기 상품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판매를 유도하는 인포머셜(Informercial)형태의 3~5분 분량의 방송이 주를 이뤘다.
상품은 주로 소형의 저가제품 위주여서 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가구를 판매하겠다는 최 회장의 요구는
터무니없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행과 예상은 모두 깨졌다.
“출연해서 처음 20분간은 판매하기 위해 멘트를 하고 있는데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이건 대형 방송사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멘트를 멈추자마자 주문이 밀려오는데 바로 매진이 됐어요.
이후 97년에는 1시간 방송을 따내 7억 넘게 매출을 올려 방송사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죠.
그때부터 장수돌침대가 인지도를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홈쇼핑에 성공을 거둬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장수돌침대는
2000년대 들어 ‘별이 다섯 개’라는 케이블 광고가 도화선이 되어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치게 된다.
한해 두해 장수돌침대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최 회장은
2004년 10년 전 ‘장수돌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며 퇴짜 놨던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직에 오르게 된다.
이후에는 아시아태평양가구협회 회장, 세계가구연합회 부회장 등 가구업계에 주요 요직을 거쳤다.
“스포츠로 치면 IOC위원쯤으로 보면 되겠죠?(웃음)
어느 자리를 가더라도 열심히 하다 보니 업계에서도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제가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점이죠. ”
구조조정 하자고? “월급 순으로 합시다”
초기 어려움을 딛고
현재 단일품목으로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장수산업도 성장통은 있었다.
하룻밤 지나고 나면 수십 개의 기업이 사라지던 IMF당시 매출이 극심하게 줄어들게 됐다.
당시 한 임원이 최 회장을 찾아와 회사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제안했다.
이에 최 회장은 “구조조정할 대상자 리스트를 가져오세요.
단, 월급 순으로 가져와야 합니다”라고 되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구조조정을 제안했던 임원은 다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장수돌침대는 ‘구조조정이나 강제해고가 없는 회사’라는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연말 송년모임 때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하는데
회사가 구조조정을 생각하다가도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거예요.
나무가 겨울이 되면 잎을 떨궈 스스로를 지킨다고 하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떨어진 잎이 다시 나무에 붙진 않거든요.
그래서 사철 상록수가 되기로 결심했죠.(웃음)”
2000년대 들어서는 장수돌침대가 유명세를 타자 유사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골머리를 썩이기도 했다.
상표나 상호를 비슷하게 하거나 심지어 똑같이 장수돌침대라고 사용하는 업체마저 생겨났다.
부실한 다른 업체 상품을 구매하고 장수돌침대에 AS를 의뢰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왔다.
“상표권은 등록했지만 여전히 유사 제품이 팔리는 통에
법적인 부분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저희 브랜드를 차별화 할 방법을 밤이 새도록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별이 다섯 개’를 강조하는 광고도 직접 찍게 된 거죠.
최근에는 대법원이 장수돌침대의 주지성을 인정하면서
이전보다 짝퉁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외전시장 ‘한국판 명품’을 소개하는 허브로
최 회장은 한국표준협회의 주관 하에 국내 100여개 기업들의 수장들이
글로벌 명품브랜드를 탄생시키기 위해 집결하는 ‘명품창출 CEO포럼’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직함에 걸맞게 최 회장은 세계시장에 한국판 명품을 알리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CF를통해 낯익은분이 해병대 출신인것을 오늘에야 일았네요!
성공신화가 영원히 이어지기 바랍니다.
몇기이신지,,,,해병대란 글은 안보이네요,,,그리고 해병대 소식은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