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터널의 굴착공사가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됐지만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하반기가 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공사를 빨리 진행해 달라는 재촉이다.
2000년 하반기에 월드컵 조직위원회 측에서 2002년 월드컵 대회에 맞추어 공사를 준공해 달라는 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냥 흘러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2001년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거론이 됐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서울로 들어오는 교통량이 많아지니 기왕에 혼잡스런 교통을 해소키 위해서 하는 공사이니 월드컵 대회전에 00도로 건설공사를 준공하여 월드컵 때 늘어나는 교통량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2002년 5월까지는 00도로 건설공사를 준공하여야 해서 공기를 6개월이나 단축하여야 한다.
기철은 반대했다.
시행 중인 건설공사의 공사 물량이 줄든지 늘든지 하는 공사 물량 증감과 관계된 이유가 아닌 다른 논리로 건설 중인 공사의 공기를 줄이는 것은 부실공사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공사 물량이 줄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경우가 아니면 공기를 줄여서는 안 된다는 평소의 소신을 피력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더욱이 00도로 건설공사 현장에 있는 장대 터널은 공사 구간의 용지매수 지연과 민원 발생으로 공사 시작이 많이 늦어져 2000년 초에 시작하여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당초 공기라야 공사를 마칠 수 있다는 점도 누누이 설명했다.
그러나 다음에 공사 수주를 생각하고 대외의 신뢰도를 생각하여야 하는 사장이 기철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토관리청의 요구를 받아들었고 그로해서 6개월 공기 단축이 국가의 방침으로 굳어져 공문으로 하달되었다.
공사 준공 날짜가 2002년 11월에서 2002년 5월로
공문을 받아든 기철이 회사로 달려가 사장을 만났다.
“어쩌자고 국토관리청의 요구를 받아들었습니까? 제가 그렇게 누누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기철이 사장에게 한 푸념이다.
“아! 박전무 미안해요. 그렇지만 우리 대영에서 국토관리청에서 하는 그런 청 하나 못 들어 준다면 회사 위신에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 입장도 이해해 주세요.”
“지금 당분간 입장이 곤란하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잠깐이지만 부실공사가 되어 공사에 하자가 생겨 나중에 더 큰 곤란을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이때는 염려스러운 마음에 가정으로 한 이 말이 정말로 큰 문제를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국토관리청에서 당장 대영같이 큰 회사가 84개월이나 되는 공사 기간 중 오륙 개월 못 줄이냐고 하며 자존심을 건드리는데 어쩌겠어요.”
“그 사람들 자기들이 현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해요?”
“국토관리청에서도 공사과 직원들은 반대한 모양이더군요. 그러나 국토관리청도 건설교통부 전체 분위기에 눌려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니 박전무가 이해해요.”
‘그러면 현장 소장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세요. 저는 못 하겠습니다.’
기철은 이런 소리가 목구멍에서 막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전무라는 직책을 가진 회사의 임원이라는 사람이 현장이 어려워졌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그리곤 힘이 다 빠진 소리로
“그렇지만 현장 사정을 고려하셨어야죠. 만약 공기를 못 마치면 어쩌시려고요?” 한다.
“알았어요. 내가 최대한 지원을 할 테니 박전무가 열심히 해 주세요.”
사장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이렇게 얼버무린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없나요?”
“이미 경기국토관리청에서 건설부로 그렇게 보고가 돼 바꾸지를 못하겠죠.”
“참으로 큰일이군요”
기철이 한탄하듯 하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기철이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던 사장은 그제야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짐작을 하고
“현장 사정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공사 초기나 중간 정도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공사 말이고 남은 공사인 장대 터널이 아시는 것 같이 민원으로 워낙 시공이 늦어져서---”
“미안하게 됐어요. 본사 각 부서에 00도로 건설공사 현장을 최우선으로 도우라고 특명을 내리고 나도 최대한 도울 테니, 박전무! 우리 한번 열심히 해 봅시다.”
사장이 이렇게 말하고 이미 공문으로 하달되어 다시 번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기철이
“할 수 없군요. 사장님!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저도 현장에서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한다.
“알았어요. 내가 약속은 꼭 지키리다.”
그렇게 본사를 다녀와서 기철은 공기를 2002년 5월 말에 맞추어, 수정하기 위해 다시 공정을 따져보았다.
터널 굴착공사를 끝내고 방수 처리를 하고 라이닝 콘크리트를 치고 바닥에 포장을 하고 벽면에 타일을 붙이고 전기 및 통신 시설 등을 다 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있어야 하는 데 그러려면 터널의 굴착공사를 2001년 말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료해야 한다.
2001년 3월 말 현재 남아 있는 터널의 굴착 길이는 상하행선 두 곳 다 약 1,000m(터널 전체길이는 2,500m) 정도씩 남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3.0m를 굴착 한다면 340일, 입 출구 양쪽에서 굴착 한다면 170일, 그리고 한 달의 평균작업 일을 20일로 하면 약 9개월, 이렇게 계획대로 된다면 그러면 이제 곧 2001년 4월이니 2001년 12월까지 굴착을 완료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굴의 한쪽에서 하루에 3.0m씩 굴착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암반인 터널 단면에 드릴로 착공하여 화약을 장약하고 발파를 해서 굴착된 암석을 퍼내고 지보공(굴착된 터널의 붕괴를 막기 위해 H-형강으로 만든 받침대)을 세우고 굴착 면에 숏크리트(뿜어 붙이는 콘크리트)를 쳐서 터널의 붕괴를 방지하고 다시 굴착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한 발파라 하는데 한 발파에 걸리는 시간이 8〜10시간이다.
그리고 하루에 3.0m을 굴착 한다는 것은 한 번 발파에 1.50m 씩 굴착 하여 하루에 2번 발파할 수 있는 경암의 경우이고 토사나 풍화대를 만나면 한 발파에 0.8〜1.0m가 되어 하루에 굴착 길이가 1.6〜2.0m가 된다.
다행히 이때는 터널 굴착이 어느 정도 진척되어 토사나 풍화대가 있을 확률은 적을 것으로 판단하여 하루의 굴착을 3.0m로 잡았다.
그러나 이것도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이야기고 작업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일이 있어 이 시간은 참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작업시간을 최대한 줄어야 가능한 시간이다.
혹자는 그러면 하루에 굴착하는 길이를 3.0m 이상으로 늘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겠다.
터널이 쌍굴에 입구와 출구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맞교대(쉽게 말하면 한조가 12시간작업을 하며 교대하는 것)를 하더라도 작업조가 한 곳에 2조, 쌍굴이니까 입구 출구가 합해 4곳에 8조가 필요하고 장비도 한곳에 하나씩 4개조에 고장을 대비해서 한두 조는 더 있어야 한다.
터널 한 곳에 이렇게 많은 장비와 인원을 수배하여 충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터널 중간에 사갱이나 직갱을 만들어 들어가는 것은 시기적으로 늦어져 생각할 수가 없다.
이미 터널의 굴착이 산의 중앙부에 들어가 있어 사갱이나 직갱의 위치가 높아지고 길이도 길어지며 사갱의 위치까지 진입로를 만들고 사갱을 뚫고 하는 등의 준비를 하는 데에도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어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철은 이때처럼 터널 입구와 출구 측 용지매수 및 보상으로 늦어진 일 년여의 공기와 민원으로 놓쳐버린 7개월의 공기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 공기만 놓치지 않았으면 6개월의 공기 단축은 휘파람을 불며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지난 일, 2002년 5월 말까지 공사를 마치기 위해 기철은 장대 터널을 중점 관리하며 모든 공사가 목표 일까지 종료될 수 있도록 독려해 나간다.
하지만 터널 굴착이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계절의 여왕 5월 뜻 깊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