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麗君私家相冊 덩리쥔 개인 앨범 (3편)
时间:2010-3-24 23:36:37 点击: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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邓丽君12岁时与同伴和修女在一起的合影,她蹲在前排右一的位置,微笑着,在镁光灯一闪的时候,恰好闭上了眼睛。
这让喜欢拍照的邓丽君有一阵子非常不高兴。 在台湾的天主教教会,20世纪60年代时为了传教,规定只要信奉天主教,
就会分发一些面粉、白米等粮食给信徒,当时台湾社会经济状况并不好,而邓家只有邓父一人有收入来源,经济状况也比较拮据,
所以邓丽君信奉了天主教,多是为了教会发放的那些面粉和白米。和哥哥一起去教堂,成为邓丽君童年时期的一个难忘记忆。
邓丽君长大后,却是比较信仰佛教的,她和密宗大师林云相熟,常穿紫色的服饰出行。邓丽君家中也收藏有密宗的法器,
她去世的前几年常住的泰国清迈也是一个佛教圣地。 据邓丽君弟弟邓长禧透露,邓丽君也很相信算命,经常去算命释疑解惑,
对于人生中一些不如意的困境或遭际,常以命中注定的想法安慰自己。演艺圈也是个大千世界,其中的五花八门、
潮起潮落让人身难由己,从这点看,邓丽君或演艺圈的其他明星信命也是不足为奇的。1966年,13岁的邓丽君在外岛义演。
15岁登台出道之前,邓丽君已有很丰富的舞台经验,12岁时,她代表金陵女中参加由金马奖唱片公司所主办的歌唱比赛,
以一曲《采红菱》摘得桂冠。 还在芦洲读书的时候,邓丽君就喜欢在学校唱歌,有时候她甚至就在课堂中轻声哼唱,
搞得坐在她后面的一位男同学没法专心听讲,当时她梳着长辫,于是这位男生就将她的辫子绑在椅子上,
等到下课班长叫“起立”的时候,她在慌乱之中连同椅子一起抬了起来,惹得班上的同学哄堂大笑。
덩리쥔이 12살 때 친구와 수녀와 같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앞줄의 오른편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며 있는데
마그네슘 플래시의 섬광이 터질 때이어서 마치 눈을 감은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덩리쥔을 한동안 매우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대만에서 천주교 교회가 20세기 60년대에 포교를 위하여, 단지 천주교를 믿기만 하면은 약간의 밀가루, 쌀 등 양식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어 있었다. 그때 대만 사회의 경제 상황이 결코 좋지 않았는데, 덩리쥔의 집은 아버지 한 사람만이
수입원이어서 경제 상황도 비교적 궁핍하였다. 그래서 덩리쥔은 천주교를 믿은 것은 아마도 천주교가 나누어 주는 그 약간의
밀가루와 쌀을 위한 것이다. 오빠와 같이 함께 천주교회당에 갔는데 덩리쥔의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덩리쥔이 다 자란 뒤에는 오히려 비교적 불교를 믿었는데 그녀는 밀종 대사인 林云'린윈 과 친밀하여서 언제나
자주빛 옷을 입고 다녔다. 덩리쥔의 집안에서도 밀종의 종교 도구를 소장하고 있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동안
늘 살던 곳인 태국의 치앙마이도 불교의 성지이다. 덩리쥔의 남동생인 덩창시(鄧長禧)가 밝힌 것에 의하면,
덩리쥔도 점치는 것을 매우 믿어서 언제나 의심이나 걱정을 풀기 위하여 점을 보러 가곤 하였는데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곤경이나 상황에 대하여, 언제나 숙명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하였다.
연예계도 大千世界라는 끝없이 광활한 세계이어서 그중에는 오행진(五行陣)과 팔문진(八門陣)의 세상으로 변화가
매우 다양하고 물결이 어지러이 출렁이어서 자신의 처지가 마음대로 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덩리쥔 또는 연예계의 다른 스타들이 점을 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1966년 13살의 덩리쥔은 외도에서 공연을 하였고 15살 때 무대에 오르기 전에 덩리쥔은 이미 매우 많은 무대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12살 때 그녀는 진링(金陵)여중 대표로 金馬奬(Golden Horse Prize) 음반 회사가 주최한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여서 [采紅菱]이라는 노래로 우승을 하였다. 또한 芦洲로주에서 공부할 적에 덩리쥔은 학교에서도 노래하기를 좋아 하였다.
어느 날 그녀가 심지어 수업 도중에도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리어서 그녀의 뒤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수업에
전념할 수 없었는데, 그때 덩리쥔은 머리를 길게 땋았는데 그리하여 이 남학생은 그녀의 머리채를 의자에 함께 묶어 두었다.
수업이 끝나고 반장이 일어서 라고 말할 때 그녀는 당황하면서 의자와 같이 일어나서 반의 친구들을 떠들썩하게 크게 웃게 하였다.
(외도에서 공연: 역자 주: 대만 섬이외의 곳 즉 싱가포르 를 말함), [金馬奬唱片公司 Golden Horse Records]
第一部分: 小城故事中的“清贫乐”台北姑娘小城故事中的“清贫乐”台北姑娘(3)-(图)
제1부분: 작은 도시의 이야기(小城故事) 가운데의 "청빈의 즐거움" 대북아가씨(台北姑娘) (3)
小时候的邓丽君长得瘦小,但她酷爱在大人面前表演,如能登台则更是高兴。
邓丽君在屏东时就认了邻居周将军及其夫人为干爹、干妈。小时候她酷爱表演,干妈与母亲曾是她最忠实的观众。
住在附近的干妈家也是邓丽君常去的地方,因为干妈家有台收音机,于是四岁的她便跟着收音机播放的音乐一起哼唱,
那时邓丽君最喜欢的是白光与周璇的歌。爱听音乐的母亲也经常倾听女儿歌唱,并为她买了许多的歌本。
邓丽君还因为哼唱周璇的歌而与她的恩师常荫椿结缘。
어린 시절의 덩리쥔은 작고 날씬하게 컸었는데 그녀는 어른들 앞에서 공연하기를 매우 즐거워했다.
마치 무대에 오르면 더욱더 신이 나는 것처럼, 덩리쥔이 삥동(屛東)에 있을 때 이웃에 사는 주장군(周將軍)과
그의 부인이 수양아버지 수양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어릴 때 그녀는 공연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여서
수양어머니와 어머니는 일찍이 그녀의 가장 충실한 청중이었다. 근처에 사는 수양어머니 집도 덩리쥔이 언제나
가던 곳이었다. 수양어머니가 라디오가 있어서 4살의 덩리쥔은 라디오 방송의 노래에 따라서 흥얼거렸다.
그때 덩리쥔은 가장 좋아하는 것은 白光과 周璇의 노래이었다. 음악을 듣기 좋아하는 어머니도 늘 덩리쥔이
부르는 노래를 귀 기울였다. 또한 덩리쥔을 위해서 많은 노래책을 사주었다.
덩리쥔은 또한 周璇의 노래를 흥얼거렸기 때문에 그녀의 은사인 常蔭椿과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다.
有一天,邓丽君在自家门口的台阶上,哼唱周璇在电影《董小宛》中唱的插曲《飘渺歌》,其时天空下着淅沥的小雨。
就在她专心哼歌的时候,蓦然发现旁边默默站着一位老人,他两鬓斑白,穿着一件银灰色的西服,有五十多岁的样子。
这位老先生举着把黑色的雨伞,在细雨中朝小院子里张望,仿佛已经听她唱了很久。
这位默默听她唱歌的老人就是台北济众声乐学校的教师常荫椿教授。他认定邓丽君是个可造之才,
于是当晚便登门请求邓丽君的父母许可她随己学习声乐。在学校举行的一次晚会上,邓丽君和同伴一起登台表演前的照片,时年十岁。
从小喜欢表演的她,曾被大人称做“歌仔戏小公主”。邓丽君是学校文艺活动的积极分子,二年级就参加芦洲桥大先修班的晚会演出,
之后学校各种晚会都可以见到她的身影。她年纪虽小,但每次登台唱完,台下的掌声总是很热烈。也因此,
邓丽君在学校就获得了许多奖状。譬如“梁祝电影插曲空中歌唱比赛个人组第一名”、“芦洲小学国语演讲比赛第一名”等等。
这些演出也影响了她的学习成绩,在芦洲小学,邓丽君的学习成绩一般,国语尚可,朗诵尤其是她的强项,成绩不俗,
但是她的算术较差,经常不及格。
어느 날 덩리쥔이 자기 집 문 앞의 섬돌에서 周璇의 영화 [董小宛] 중에서 노래한 삽입곡 [飄渺歌]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하늘에서는 보슬보슬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덩리쥔이 온 마음을 다해서 노래를 흥얼거릴 때 문득 곁에서
말 없이 서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였는데, 그 사람은 귀밑머리가 반백이며 은회색의 양복을 입고 있는 50여 세의
모습이었다. 이 노선생님은 검은 색 우산을 받치고 보슬비 속에서 작은 뜰 안을 향해서 쳐다보는데 그녀가 부르는 것을
오랫동안 이미 들었던 것 같아 보였다. 말 없이 덩리쥔의 노래를 듣던 그 사람이 바로 대북제중성악학교(台北濟衆聲樂學校)의
선생님인 常蔭椿 교수이었다. 그는 덩리쥔이 키울만한 인재로 판단하고, 그리하여 그날 밤에 바로 방문하여서 덩리쥔의
부모에게 덩리쥔을 자기를 따라서 성악을 배우기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학교에 거행된 맨 처음 야간 공연 때
덩리쥔과 동료가 함께 무대에 오르기 전의 사진으로 나이는 10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연하기를 좋아하던 덩리쥔은
일찍이 어른들로 부터 歌仔戲(대만 본토의 전통 희극)의 어린 공주라고 불려졌다.
[주: 어린 공주_타이완(台灣) 전통극의 일종. 타이완(台灣)과 푸젠(福建) 남쪽의 샹장(薌江) 일대에서 유행함.]
덩리쥔은 학교 문예 활동의 적극적인 학생이었고 2학년 때는 芦洲(루조우)橋大先修班의 야간 공연에 참가하였는데
이후에 학교의 여러 야간 모임에서 모두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비록 어렸으나 언제나 무대에 올라
완전히 노래를 다 하였다. 무대 아래에서의 박수 소리는 늘 매우 뜨거웠다. 이로 인하여서도 덩리쥔은 학교에서 많은
상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양산백과 축영대의(梁山伯與祝英台) 영화 삽입곡 공개 노래자랑 대회 개인 부 일등상,
루조우(芦洲小學) 초등학교 북경어 웅변대회 일등상 등등이다.
[웅변대회/ 역자 주: 아마도 이래서 홍콩이나 파리에서 한 천안문 사태 규탄 연설에 힘이 넘쳤나 봅니다.]
이런 공연도 그녀의 학업 성적에 영향을 미쳤는데 루조우초등학교 때 덩리쥔의 학습 성적은 보통이었으나 국어(북경어)는
오히려 괜찮았다. 닝독은 특히 그녀의 주된 학과이었고 성적은 뒤쳐지지 않았으나 그녀의 산술은 비교적 떨어져서 늘 낙제이었다.
鄧麗君'덩리쥔_[采紅菱 채홍릉]☜붉은 마름을 따네..
[발췌문헌] [鄧麗君私家相冊]☜(1편)~(18편)
[등려군노래검색목록표'1250곡]☜내사랑등려군/ 金康顯 飜譯 2010-9-14
BaiGuang白光(1921~99)a1.jpg Zhouxuan 周璇(1918~57,중국)3a1.jpg
첫댓글 1966년 13살의 덩리쥔은 외도에서 공연을 하였고 ..............역자 주: 대만 섬이외의 곳 즉 싱가포르 를 말함.............추가 삽입 바랍니다
추가했습니다, 기쁨 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늘 즐겁고 힘차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김강현드림
저도 산술(수학)이 낙제이고.....머리채가 의자에 묶여서 모두가 웃어도 화를 내지않고 웃기만하는 등님은
모든일에 천성적으로 인품이 착하셔서 존경을 드리는 이유입니다!
산술이 낙제일지라도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