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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발자취 목차
황무지 창립 1964. 3.
1. 황무지회가 - This then is Texas
2. 황무지와 나 – 소권호
3. 스승 소권호 선생님 – 이영승
4. 황무지 회지 머리말 . 권두시 – 이기반 67. 9
5. 3.4기 재학생 수련회 – 선유도 67. 7.28 – 7.31.
6. 임실 신정초 활동 68. 9.1 –73. 2.28
7. 선유도 하기 세미나 71. 8
8. 구천동 야유회 81. 10.9
9. 지리산 하계수련회 – 한신계곡 천왕봉 82. 7.25-7.27
10. 내장산 야유회 82. 10.24
11. 해남 대흥사 영산강 하구언 화엄사 가족 여행 83. 6.5
12. 덕유산 하계수련회 - 구천동 적상산 83. 8.19-8.21
13 변산 야유회 84. 6.17
14. 지리산 하계수련회 - 달궁 반야봉 84. 7.29 –8.31
15. 군산 월명공원 85. 4.21
16. 용인 자연농원 85 .6.23
17. 조계산 하계수련회 - 선암사 85. 8.5-8.7
18. 목포 유달산 광주 지산 유원지 86. 6.22
19. 남덕유산 하계수련회 – 원촌초. 월성치 86. 7.26-7.27
20. 내변산 가족등산 87. 5.24
21. 남해금산 가족여행 87.6.21
22. 운장산 하계수련회 – 대불초 87. 8.2-8.3
23. 입암산 등산 87.10.25
24. 금오산 등산 88. 6.8
25. 운장산 등산 88. 7.30
26. 교수님 회갑연 –코아호텔 89. 1.22
27. 한라산 등반 – 영실 서북벽 정상 89. 2.24-2.26
28. 민주지산 – 대미분교 89. 7.29-7.30
29. 선운사 가족여행 89.10.22
30. 쌍계사 성삼재 춘계아유회 90. 4.15.
31. 설악산 등반 – 한계령 대청봉 90. 7.27-7.29
32. 용추사 추계야유회 90. 10.28.
33. 장수 번암계곡 춘계야유회 91. 4. 28.
34. 주왕산 등반 91. 8.3 – 91.8.4
35. 치악산 등반 – 구룡사 비로봉 92. 7.24-7.25
36. 담양 추월산 추계야유회 92. 10. 25
37. 오대산 등반 – 월정사 적멸보궁 노인봉 93. 7.26 –7.28
38. 월악산 등반 – 송계계곡 덕주사 93. 8.14-8.15
39. 지리산 대원사 추계야유회 93.10.24.
40. 교수님 정년퇴임식 - 94. 2.23
41. 지리산 등반 – 치밭목 천왕봉 칠선계곡 94. 7.30-7.31
42. 대둔산 둥반 - 춘계야유회 95. 4.23
43. 소백산 등반 - 희방사 비로봉 95. 8.5 –8.6
44. 모악산 금곡사 춘계야유회 96. 4. 21
45. 청옥산 두타산 등반 96. 8.15 –8.16
46. 고창 방장산 1997.6.22.
47. 향일암 춘계야유회 97. 4. 20
48. 태백산 등반 – 청량산.태백산 97. 8.9-8.10
49. 청학동 춘계야유회 98. 4.26
50. 청량산 등반 - 98. 7.27-7.28
51. 운주사 야유회 - 쌍봉사 광주 5.18묘역 99. 5.5
52. 동상면 장군봉 하계수련회 99. 8. 9
53. 양촌 바랑산 월성봉 야유회 2000. 4. 13
54. 강화도 북한산 – 석모도. 북한산 2000. 8.4.-8.5
55. 운주 추계야유회 2000, 10.28
56. 문경새재 부처님 오신날 봄 가족 야유회 01. 5. 1
57. 천황산 등반 – 밀양 사자봉 .천왕산 01. 8.6-8.7
58. 목포 봄 야유회 02.5.19
59. 도봉산 등반 - 도봉산. 신륵사 02. 8.17 –8.18
60. 속리산 봄야유회 03.5.5
61. 사량도 - 진주 옥천사. 사량도 03. 8.15-8.16
62. 진도 봄 야유회 04.5.5.
63. 삼악산 – 춘천 삼악산.남한산성.남이섬 04. 8.20-8.21
64. 구천동 – 안국사. 백련사 05. 8.9 –8.10
65. 어청도 – 군산 어청도 06. 8.8-8.9
66. 교수님 회혼례 – 백리향 07. 4.15
67. 통영 미륵산 매몰도 - 07. 7. 31-8.1
68. 부산 – 용궁사 태종대 광안리해수욕장 08. 8.11-8.12
69. 황백모 창립산행(모악산 천일사) 09. 4.15
70. 선유도 – 야미도 09. 8.3-8.4
71. 고산 수목원 – 곰바위 산장 10. 8.5-8.6
72. 백두산 - 중국 심양 연길 11. 6.8 –6.11
73. 고흥반도 –나로도 소록도 순천만 11. 8.4-8.5
74. 장사도 – 장사도 삼천포 남해 광양 12. 6.15-6.16
75. 실크로드 – 중국 청도 서안 난주 둔황 청해호 12. 8.29-9.7
76. 고산 수목원 – 곰바위 산장 13. 6.7-6.8
77. 스승님께드리는 헌시- 이재옥
78. 황산 삼청산 – 중국 13. 9.3-9.6
79. 거제도 – 지심도 바람의 언덕 청마유적지 14. 6.9-6.10
80. 홍콩 심천 마카오 14. 9.16-9.19
81. 변산 - 격포 내소사 대명콘도 15. 6.1-6.2
82. 라오스 - 비엔티엔 방비엔 메콩강 15. 8.31-9.4
83. 포항 삼척 강릉 - 동해안 일주 16. 6.27-6.28
84. 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16. 9.2-9.6
85. 위도 - 격포 대명콘도 17. 6.8-6.9
86. 대마도 아리아케산 트레킹(황백모100회기념) 17. 7.4–7.5
87. 임실 시티투어 10월 마지막날 행사 17. 10. 31.
88. 타이완 -17. 11.14 - 11.17
89. 태안 안면도 부여 - 18. 6.11 - 6.12
90. 중국 귀주 - 18. 8.31 - 9.4
91. 부산 가족여행 10월의 마지막날 18. 10.31
92. 담양 광주호 강천사 - 19년 6월 4일 ∼ 5일
92. 중국 서안(황백모 120회기념) -19. 6.17 -21
93. 인도 북인도 -19.10.22 - 10.27
94. 교수님 별세. 황무지 가족 영결식 조사 - 박명래 - 20.3.18
荒蕪地 발자취
1964. 3. 황무지 창립(1기)
최병균 이영승 김광홍 김영건 박길수 오근량 장정기
(荒蕪地歌)
This then is Texas
Just like a sleeping giant sprawling in the sun, In one great hand the Rio Grande In the other, Galveston. Where oil wells laugh at angels And buzzards wheel above, This, then, is Texas-- Lone Star State of Texas. This, then, is Texas—Land I love.
My ma was born in Dallas, Father in Ft. Worth. You can bet your boots I got my roots In the good old Texas earth. Just see the silver dollars Falling from above. This, then, is Texas--Lone Star State of Texas This, then, is Texas--Land I love.
God made these lonely acres where I ride alone, But the devil cursed this land with thirst And he bleached it like a bone. One day a wild tronato Next a gentle dove. This, then, is Texas--Lone Star State of Texas This, then, is Texas—Land I love .
Yellow Rose of Texas
There's a yellow rose in Texas, that I am going to see,
No other darky knows her, no darky only me
She cryed so when I left her it like to broke my heart,
And if I ever find her, we nevermore will part.
Chorus:
She's the sweetest rose of color this darky ever knew,
Her eyes are bright as diamonds, they sparkle like the dew;
You may talk about your Dearest May, and sing of Rosa Lee,
But the Yellow Rose of Texas is the only girl for me.
When the Rio Grande is flowing, the starry skies are bright,
She walks along the river in the quite [sic] summer nigh
She thinks if I remember, when we parted long ago,
I promised to come back again, and not to leave her so. [Chorus]
Oh now I'm going to find her, for my heart is full of woe,
And we'll sing the songs togeather [sic], that we sung so long ago
We'll play the bango gaily, and we'll sing the songs of yore,
And the Yellow Rose of Texas shall be mine forevermore. [Chorus]
The Eyes of Texas
The eyes of Texas are upon you,All the live long day.The eyes of Texas are upon you,You cannot get away.Do not think you can escape them,At night, or early in the morn'.The eyes of Texas are upon you,Till Gabriel blows his horn!
텍사스가(황무지가) 그대를 주시하니,
오랫동안 살아 온 모두가.
텍사스가 그대를 주시하니,
그대는 결코 도망가지 못 하리, (황무지를)
밤이나 이른 아침이나.
텍사스가 그대를 주시하니,
가브리엘이 나팔을 불 때 까지.
(김대한 회원 拔萃)
荒蕪地와 나
소 권 호
오스트리아의 유태계 종교학자요, 윤리학지인 M. Buber는 ‘人間實存의 基本的인 사실은 人間이 人間과 함께 있는 것이며 그 人間을 가르치는 敎師의 使命은 평생 삶의 지침을 주는데 있다’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교사와 학생과의 참다운 만남은 知적인 정규수업에서 보다 情적인 과외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교육대학 이전의 교사생활에서는 웅변부와 산악부를 맡아 과외 활동의 보람도 컸지만 교육대학에서 서클 荒蕪地와의 인연은 동아줄로 묶여진 것처럼 이제는 나의 인생애서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서클 황무지와의 만남은 1966년이었다. 당시 2년제 교육대학 초창기, 많은 학내 서클 중에서 황무지만은 오직 남성들로 구성된 서클인데다 전고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전고 3년여의 재직 중 내 손을 거친 제자들이었고 사제간이만 志氣가 相合하는 점이 있어 지도교수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끈끈한 정으로 40
년이 넘도록 다져진 사이다.
전고학생들이 서울 그것도 일류대학 지향의 분위기가 팽배한 터에 가정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전북대학보다는 졸업 즉시 교직에 취업이 보장된 전주교대에 진학했던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따라서 전고 출신 교대생의 공통점이 희망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불만과 전고출신이라는 자존심이 얽혀 내적 갈등이 많고 비관적 기질이 강한 있었다. 황무지 회원 중에도 교직에 관한 공부보다는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많았고 회원의 분위기가 이론적이 면이 강하여 자연 입심이 센 학생들이 많았다. 이러한 점은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 황무지 전체 회원들의 기질이나 분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황무지라는 명칭이 일구지 않은 미개척지, 황량하고 썰러한 땅, 그러면서도 사람의 손길을 기다라는 땅을 의미한다면 황무지라는 이름은 그들의 기질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들이 ‘자이언트, 나 선구자등을 즐겨 부르는 것도 부드럽고 세련되기보다는 조금은 뻗센 기질이어서 일 것이다.
황무지는 비록 미숙하지만 어느 Circle보다 활발하게 독서회, 토론회, 수련회, 등산 을 하여왔다. 이러한 황무지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1968년 여름 任實 館村面 大理 앞 말목 川邊에서 가졌던 2박 3일의 하계수련회였다. 당시 3기 회원까지 현직에 있었던 터에 토론 주제가 ‘젊은 교사의 문제점이었다. 갈등 속에서 대학생활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푸른 꿈을 안고 막상 교단에 서보니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데서 오는 또 하나의 갈등의 표출이었다. 준엄한 자기비판과 함께 이상을 향한 젊은 교사의 불타는 정열은 조금은 엉뚱하게 돌파구를 찾으려 하였다. 즉 황무지 회원들로만 교사 조직을 하여 학교운영을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학교로 꾸려나갈 수 있겠고 젊은 꿈을 불태우는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이러한 의견은 세상물정을 모르고 교원의 인사규정이나 직원 조직의 일반 원리에도 어긋나고 엉뚱하고 돈키호테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행동력이 강한 그들은 젊은 정열만 믿고 당돌? 하게 교육감 면담을 요청하여 그들의 뜻을 청원하였다. 당시 설인수 교육감은 그들이 누구도 가기를 꺼려하는(벽지학교 진흥법은 그 후에 실시)문화적으로 낙후된 벽지에 가서 젊은 교사의 푸른 꿈을 실현해보겠다는 열성에 감동되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마침 임실 新亭 국민학교에서 모종의 불미한 일이 일어나서 그 학교 전직원이 관련된 터라 당국에서도 묵과할 수 없는 데다 지역사회에서도 비난의 소리가 거세었다. 결국 학교장은 면직되고 6학년 담임을 제외하고 전직원을 인사조치하게 되었는데 그 후임을 황무지 회원들로 충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나에게까지 가세하게 되어 당시 姜仁鶴 초등교육과장,林永錫 임실 교육장과 연락하여 1차로 최병균 이영승 김성만, 2차로 유동옥 정기수 김대한이 우여곡절 끝에 합류하여 황무지의 신정초등학교 8년(1968-75)이 시작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교육대학 출신교원으로 이어지는 自生 Circle이 한 학교를 차지하여 그들의 꿈을 펼쳐가는 교육을 실천해간다는 것은 엉뚱한 발상인데다 前後後無한 일이었다. 교육 경험 3년인 젊은 총각 여섯은 기본적으로 두뇌가 우수하였고 불타는 교육열에 연구, 토의, 실천에 심신을 불태우는 완벽한 공동체였다. 개척단이라고 불리웠던 이들은 낙후된 교육을 一新하고 지역사회의 문화적 센터로서 역할을 다져가면서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와 협조를 얻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임실읍에서 번화재(400m)를 넘어 산길로 12Km거리에 위치한 望田里, 里仁里, 新亭里, 竹溪里 4개 부락의 소쿠리 속 같은 山間僻地였다.
낙후된 이 지역에 활기찬 교육신풍이 일자 신정초등학교 황무지 교사들의 활동은 地方紙, 교육관계 신문은 물론 중앙지까지 소개되어 어쩌면 겨우 봉오리진 꽃망울이 피기도 전에 열매가 맺었다고 외쳐대는 양 당국의 성급한 홍보가 뒤따랐다.
어찌됐던 그 벽지학교에 교육청 관계 인사들의 방문이 잦았고 나도 그들을 격려 지도 차 번화재를 전후 10여 차례 넘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럴수록 부담도 컸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청춘을 불살랐다.
1969년 당시 임실 출신인 李尙圭 편수국장이 이곳을 불시에 방문하였다. 이들로부터 신정국민하교 靑寫眞과 연차계획, 현재의 활동과 주민들로부터의 의견을 들은 이 국장은 이들 젊은 교사의 Team play에 감동하였던 갓 같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번화재까지 배웅나와 잘 가시라는 고함소리를 들으며 재를 넘어오는 이 국장은 센티한 감상에 눈물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보니 ‘대한국민 젊은 교사’ 여기 있다고 생각 했으리라. 그곳을 다녀왔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전주 비행장에 나가 신정국민학교에 대한 격의 없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 후 그분은 아동도서 1질을 보내왔고 당신소관의 연구비 20만원을 규정상 나에게 지급하는 형식으로 전달하여 황무지 신정교사들을 치하하고 이에 따르는 연구보고서 “벽지학교 일기 부진아의 지도방안을 ” 작성 제출한 바 있다. 또한 그분의 추천과 주선으로 이들에게 문교부 장관상이 수여되기도 하였다.
한편 당시의 검찰총장 申稙秀씨는 지상보도를 통해 이들 모교후배들의 갸륵한 활동을 알고 이들을 격려하는 뜻에서 70년 5월 12일 신우산악회 이름으로 감사패와 격려금 20만원을 보내와 이들을 학구내 자연부락 단위로 어린이놀이터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도교수로서 재학생 후배 황무지 회원들에게 신정은 황무지의 본당이요 신정을 황무지의 교사 수련장으로 삼자고 역설하였다.
실상 나도 10여 차례 번화재를 넘었지만 1968년에서 75년에 이르는 신정 8년 시절 황무지 회원들은 거의 이 이곳을 찾았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10여일 선후배 회원 간의 토론과 대화 ,수련과 봉사에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황무지는 영글어갔다.
그들은 신정을 통하여 자긍심과 연대감이 강하여졌고 교육대학내의 모든 서클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교육활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허봉대 교장의 후임으로 申天錫 교장이 부임한 71년에 신정국민학교는 도지정 벽지학교로 지정되어 그 이듬해 가을(72. 10.17)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벽지학교 운영체계의 개선방향’이란 주제로 공개 연구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교육감을 비롯한 道 獎學陣과 시도 관계 장학사, 도내 벽지학교 교장 등 100여명이 지프차로 소형 트럭으로 도보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곳에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외래객과 차량이 붐빈 고장 최대의 행사였다.
잘 다듬고 가꾸어진 학교환경, 벽지 아이들의 놀라운 학습발표와 실제 수업을 보여주었고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그간의 학교운영을 당당하게 가식없이 슬라이드에 담아 발표하였다.
지역주민과의 교육적 연대와 향토학교로소의 一新된 면모는 벽지학교의 시범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절찬을 받았다. 지도교수인 나에게도 과분한 찬사와 황무지 회원을 우리학교에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사실 이 문제는 나의 처신에 어려움을 주는 문제이기도 하였다.
1969년부터 벽지학교 진흥법이 발효되면서 벽지 근무교사에게 각종혜택이 주어지자 누구나 가기를 꺼리던 벽지학교를 희망하는 교사들이 생겨나고 이런 상황에서 황무지회원만을 新亭으로 모이게 한데는 인사 실무자들로부터 눈에 안 보이는 제동이 걸려왔고 신정 인사는 교대 蘇교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이러한 어려움을 넘어 황무지 6년의 결실을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나와 황무지가 당초 마음먹었던 新入舊出하면서 신정을 황무지 수련도장으로 삼자는 염원은 8년으로 75년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황무지 신정 교육활동은 어쩌면 지도교수인 나를 포함하여 회원들의 세상 물정 모르는 엉뚱한 발상이 뜻밖의 기회를 맞아 제대로 이루어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실적인 제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많은 것이며 황무지의 6년이라는 현실이 다시는 없을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회고해보아도 나는‘ 人類의 最後는 聖書에 나온 불의 심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주의가 사라지는 날 최후가 온다 ’는 그 누군가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어째든 황무지 선구자들이 젊음을 불살랐던 신절활동 8년은 황무지의 영원한 전신적 요람으로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인간관계나 어떠한 조직 단체조직도 구심점을 두고 원근의 파동을 그어가면서 이어가거나 단절되기도 한다.
황무지는 남성만의 Circle이요 같은 교직에 종사하는 동질성 위에 구심점을 신정에 두고 자긍심과 연대감을 강화해 가면서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그러나 會齡 10년, 회원이 130명으로 그 식구가 비대해지면서 조직력이 느슨해지는 면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고 그들은 일단 대학내 Circle활동을 10기 회원을 마지막으로 마감하고 회원 정예화를 위한 정리 작업을 단행하였다. 그 방안으로 일단 발전적 해체를 하고 황무지 기금조성에 착수, 기금 적립으로 백미 1가마 상당의 금액을 헌금 받아 정회원으로 입회시켜 황무지 기금을 조성하고 매년 년 회비를 납입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지속적인 황무지 활동에 참여한 회원이 30명이었다. 73년 이루어진 양을 버리고 질을 정예화한 이 전환 이래 , 그들의 기금은 8천 만원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이 기금을 뒷날 황무지 공동사업으로 준비 중이며 황무지 가족 복지를 위해 착실히 키워가고 있다.
황무지 회원의 주례는 거의 내가 하였다. 이제는 그들도 知天命을 넘었거니와 耳順을 넘어가는 장년으로 그들 자녀인 황무지 2세들도 고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100여명 가족이 넘는다.
교육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40년에서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직에 남아있다.
그들이 재출발한지 30년 그들의 위계적 전통과 우애는 그야말로 끈끈한 정으로 뭉쳐진 황무지 가족 공동체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지는 연례 주요행사는 수련회, 정기총회, 황무지 가족 일일관광 , 등산회, 부부 파티, 황무지 가족 운동회 등이다. 수련회에서의 토론은 이제는 장년기답게 원숙해지면서 황무지다운 격론은 여전하다. 가족 일일관광은 처음에는 버스 한 대였지만 이제는 두 대도 모자라며 20여년 째 전국의 사적과 경승을 돌아보는 우리들의 잔치다. 등산은 지금까지 지리산 천왕봉, 적상산, 북덕유산, 지리산 반야봉, 남덕유산, 운장산, 장안산, 89년에는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하였다. 매년 가을 10월 일요일을 택해 학교 운동장을 빌어서 치루는 가족 운동회는 황무지 전 가족의 축제인 남편이 아내를 업고 돌아오는 家寶運搬은 그 중의 히트라 할까.
음력설에는 좁은 우리 집이 빽빽하다. 그들이 세배를 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교육자로서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옷깃을 여민다. 그러면서도 술이 거나해지면 나의 사단 황무지, 내개는 핏줄의 아들 손자 말고도 아들 손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객기를 부린다. 영원할 지어다 황무지. 번창할 지어다 황무지!
(2007년 2월 25일 발행 自敍傳 敎學無邊 3권에 실린 글)
(賀書)
스승 牛溪 蘇權鎬 선생님
李英承
선생님께서 우리 ‘荒蕪地’를 지도해 오신 지 23년.
회원들 개인적으로는 이미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부터 가르침을 받아온 사람들도 있고 , 緣이 늦은 사람도 14년 이상 보살핌을 받아왔으니 선생님과 ‘황무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불혹을 못미처 그렇게도 靑壯하시던 선생님께서 어느덧 화갑을 맞으셔서 주변을 돌아보시며 근 40년간 몸 바쳐 오신 교단생활을 회고하시는 모습을 뵈올 때 세월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흔히 교단의 樂을 맹자삼락 중 ‘得天下 英才而敎育之’에 비유하여, 가르치는 이들의 보람이나 위안으로 삼아왔는데, 요즈음의 세대는 꼭 그렇다고 할 수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은 많은데 존경받는 스승이 적고, 학생은 많은데 사랑스런 제자가 적다는 말이 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실에 비추어 사제의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행이도 선생님과 우리 ‘황무지’는 23년 동안을 사제가 함께 사랑과 존경의 끈끈한 정을 다져왔기에 해를 더해 감에 따라 오히려 가슴 뿌듯한 즐거움으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어느 일방의 성의와 노력만으로 두터워지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들 제자가 선생님을 따르고, 받들고, 존경해온 데에는 그에 못지않은 선생님의 보살핌이나 이끌어주시는 사랑의 행적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즉 선생님께서 사랑의 동행을 앞장서서 실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타고나신 성품이나 풍모가 質朴 疏脫하셔서, 어쩌다가 가까운 친지나 제자들을 만나게 되면 선술집, 포장집을 가리지 않으시고 청주, 탁주를 불문하시고 그저 따뜻한 정담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십니다.
사람을 대하실 적에도 지위를 다지지 않고 오로지 성의로 일관하시며, 매사를 부지런하게 정성을 다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혼자 독선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和를 살리십니다.
부드러운 것이 크고 강한 것을 능히 제압한다고 하시면서도 선생님은 주견을 잃어 흔들이거나 휘어짐이 없으십니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에도 겉으로 조심히는 척 하시면서도 우리들 제자 앞에서 그 是非曲直을 분명히 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으셨습니다. 한 때 사람들 눈, 귀, 입을 터놓고 못하고 서로들 움츠릴 때에도 주위가 두려우면 저 산 꼭대기에라도 올라 실컷 터뜨려보자고 하셨습니다.
뚜벅뚜벅 한걸음씩 걸어서 기어이 높은 정상에 오르시는 선생님의 산행 길을 따르면서, 저희들은 세상을 깨닫고 인심과 풍물을 배우며, 항상 마음 든든하게 선생님을 본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회갑을 앞두고 저희들 ‘황무지’제자들이 그동안 발표하신 글, 적어주신 글, 생각해 두셨던 글을 생떼 쓰듯 챙겨서 단행본으로나마 책을 한권 펴내드리는 일이 어쩌면 선생님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는 손톱만한 정성이요, 도리가 아니겠는지요.
또한 선생님과 뜻을 함께하셨던 훌륭한 어른들이나 선생님의 손을 거친 제자들 중 揚名顯達한 분들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미미한 제자 한사람이 귀중한 지면을 차지하여 書賀를 드리게 됨이 더욱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런 외람됨을 무릅쓰게 된 까닭은 오로지 선생님의 훌륭하신 뜻과 정이 여러 친지 분들과 후진들은 물론 선생님 댁 가족 후대에 소중하게 전해져서 간직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 선생님 내외분께서 더욱 강령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988년 11월 立冬節에( 敎學無邊 1권 書賀)
1967. 9. 황무지 1집 발간 (3,4기 재학중)
머릿말
혼돈에서 질서를 속박에서 자유를 그리고 僞에서 眞을 추출해보려는 우리의 염원을 소소한 것에서부터 점차 차원을 높여 행함으로써 행동 속에 삼투되는 합리적인 사고를 이젠 제법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정된 연륜의 생 하에서 무엇을 꿈꾸고 지고의 것을 추구하며 제 나름의 생각을 모색해 보려는 우리의 의도는 어찌 보면 무척 어리석기 짝이 없겠으나 항상 생애 대하여 경건한 태도를 지니고 구도자적 자세를 지녀보려는 우리의 안간힘은 긎지 않는 행동의 미학으로 대변되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미숙한 사고와 유치한 문체로 엉성하게 짜여진 작품들이나마 알뜰하게 모아서 한권의 소책자로 내게 되었음은 작품의 질의 고하에 대한 것을 논외로 접어두고 거의 시도 만에 전 의미를 두었대도 과언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모르는 것의 수치를 자기 만에 의하여 은닉함 보다 적나라하게 자기를 노출시켜봄으로써 참다운 자기를 알고 거보에의 초석을 삼으려는 우리의 의도는 어찌 생각해보면 눈물겨운 바도 있다 하겠습니다. 이제 초라한 내실을 숙지한 우리는 이를 의욕의 촉매로 삼아 나름대로 정진을 행해볼까 합니다.
끝으로 탁월하신 옥고로 본지를 더욱 빛내주신 이기반 은금련 양 교수님과 긎지 않는 陰祐로 본회를 이끌어주시는 소권호 지도교수님께 사의를 표하며 졸업 후에도 간단없는 성원을 보내주시는 선배 회원들과 우리의 이념에 동화되어 열심히 활동 중이신 재교회원 그리고 작은 책자나마 출판되기까지 심신의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편집인 일동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卷頭詩)
荒蕪地
李基班
별빛 흘러간 –곳
숱한 神話와 함께
지금은 바람만치 울먹이는 大地
이 荒蕪地에 農夫로 살으리라.
가난의 流荊地를
脫出하는 날
눈시울 뜨겁도록
어둠을 토파가던 밤의 祝祭는
아! 萬歲부르며
이 땅 위에
불을 밝히리라
大地의 주름살이 풀리는
五色旗의 圓舞에 싸여
刑地에서 돌아온 局外者는
어둠을 耕作하던 피와 땀으로
싹트는 씨알을 가꾸며
목 놓아 불러도 좋은 숲의 노래를
母國語 茂盛한 沃土에서
그 때 나 또한
이 荒蕪地에 묻혀
한 줌 거름으로 썩으리라.
1967년 (3,4기 재학시절)
1967. 3. 25일 : 체육대회, 배구 축구 후 도서관 앞 잔디위에서 막걸리 들이 붓고 교수님 참고조언에 따라 앞으로 계획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비판 을 행하다.
1967. 4. 1일 : 교수님 모시고 두 시간에 걸쳐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청년학생 운동의 대체적인 추이와 현시점에서 청년학생들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강론 듣다.
1967. 4. 16일 : 모악산 등산 .앨범에 태초의 등산이라고 명기
1967. 4. 20일 : 춘계음악회, 칸소네에서 C.D.A와 합동으로 성황리에 마침.
1967 .5. 6일 : 김주택 교수를 모시고 史觀이라는 論題下에 현재 젊은이들 이 지녀야 할 세계관에 대한 열강을 들음
1967. 7. 10일 : 소교수님 모시고 현재의 정치적 각축전과 어지러운 정국에 대한 전망을 듣고 우리들이 지켜야할 태도에 대해 토론
1967 .7. 28일– 31일 3박4일 변산 해수욕장을 가다.
(김광홍 박명래 선배참가)
※ 회원 생일 시 10원씩 갹출 거울을 사주기로
1968.7. 황무지 3집 발간 (4,5기 재학중)-2집은 찾지 못함
1968. 2. 17일 : 3기 졸업식 송별회 (아관원) 교수님 모시고 짜장면 파티
1968. 3. 7일 : 5기 신입회원 환영회 (태풍거) 짜장면 파티
1968. 3월 25일 – 7월 1일
대학생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대학을 이해하고 대학생의 할 일을 찾아
사 명을 다하자 라는 취지로 1, 2학년 전원 윤번제로 발표하고 열띤 토의.
※ 발표 후 열띤 논쟁 정말 열기가 대단했음
1968. 4. 6일 : 구기대회 농구 배구(1 2학년 대결)-월 1회 개최
1968. 4. 21일 : 제1회 황무지세미나(가정실)
주제–대학생-유동옥 황영주 선배 참여
1968. 4. 27일 : 소풍 (사선대) 김광홍 황영주 김성만 세 선배참여
황영주선배 입대 환송 파티겸
1968. 12. 황무지 4집 발간 (4,5기 재학 중)
1968. 11, 3일: 전북대 아카데미와 친선 체육대회 –배구 축구
※막걸리 통 갖다놓고 경기, 수위실과 언쟁
1968. 11. 9일 : 제3회 음악회 –경다방
※ 체육대회 연구발표는 월1회 계속됨
※ 임실 신정초등학교 ※
–벽지학교에서 황무지 뉴프런티어 정신 실현
1968.9.1. 최병균 이영승 김성만 부임
1969.3.1. 유동옥 정기수 부임
1970.7.1. 김대한 부임
1972.10.17.벽지학교 운영 연구학교 공개
활동하는 동안 여러 신문에 활동상황이 보도되었는데 그중 동아일보 70.5.7일자 (벽지에 부농 심는 교사들)이라는 박주린 기자의 기사 내용...
교육대학 시절부터 개척정신을 기르기 위해 황무지라는 클럽을 조직 활동했던 5명의 교사들이 벽지학교에 자원 재건학교를 운영하면서 주민들에게 보다 잘 살자는 운동을 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임실군 신정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이영승(27) 최병균(26) 유동옥 (25) 정기수(25)씨등 4명의 교사는 3년전 교대를 졸업 각기 정읍 순창 등지로 분산 발령을 받았으나 학창시절부터 바라던 황무지 개척을 위해 교육감에게 벽지학교에 함께 일하게 해줄 것을 간청 작년 9월까지 모두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학교 숙직실에서 함께 자취를 하면서 신정학교를 자활학교로 키우고 주민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재건학교를 설치했다.
이들은 재건학교에 모인 주민들에게 성인교육을 비롯 농가 부업장려까지 농촌을 위한 것이라면 모두 가르쳐 주었다.
이들은 학교에 묘포장을 설치 이탈리아 포플러 작약 등을 가꾸어 학부모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학교 뒷동산에는 유실수를 심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학교 환경이 크게 좋아지고 부락민들은 학교를 자주 찾아와 나무 심는 것을 알아가기도 하고 자신들의 설계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영승 교사는 작년에 5천 그루 올해 2천 그루의 포플러와 전주교대에서 보내준 40종의 꽃씨를 각 부락에 보냈다고 밝히면서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데 까지 이곳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산교육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1969. 4 세미나, 교육대학 학교도서관(5, 6기 재학중)
1971. 8 하기 세미나
(선유도 해수욕장)
1976 – 1980 : 회원집 방문친목회(전 가족 가정방문)
1981.10.9. 무주구천동 가족 여행
1982. 4.18 친목모임 음식점 오륙도 26명 참석.
끝나고 배구시합
1982. 7.25 – 7.27(2박3일) 지리산 하계수련회
백무동 – 한신계곡(폭우속에 비박) - 세석평전
–천왕봉 – 법계사 로타리 산장(1박)
교수님 최병균 박명래 유동옥 노경화 황영주
문영곤 임재경 이계풍 정일락 이근종 이한수
박정훈 교수님따님 임선생님 (16명 참가)
※한신계곡 빗속에서의 비박
1982.10.24. 내장산 관광
버스대절(26명 참가)-김영식회원. 모임유사
1982. 운영진 임기만료시 금뺏지 증정 하기로(회장 총무 재무)
임재경 도안.
교수님은 추석 때 증정
1983.1.22. 총회
5명1조 친목모임 결정 – 시내에서 하기로
1983.4.17.1친목회모임 한국식당
(유사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노경화 송기용)
1983. 6.5 해남
대흥사 영산강 하구언 화엄사 가족 여행
1983.8.19-21(2박3일) 덕유산 하계수련회
안성 -덕유산-구천동(1박)-괴목-적상산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전이곤
문영곤 손정우 황영주 김영식 이한수
박정훈 이종원 노경화 이계풍 (14명 참가)
1983.10.30. 2회 친목모임 형제회관
(유사-황영주 문영곤 유동옥 한상인 김영식)
1984.1.22. 총회
정기모임 4회 결정(4. 6. 8. 10월 –1회수련회)모임경비 유사제
1984.6.17 격포 가족여행
1984.7.29-31 지리산 달궁 하계수련회
1일 – 육모정 –선유폭포-정령치- 달궁(민박)
※ 밤 9시에 도착한 달궁에서 다음날 반야봉을 포기하자고
결의해놓고 교수님 한마디에 반야봉 등산 강행.
2일 – 달궁-반야봉-노고단 – 화엄사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문영곤 노경화 김영식 황영주
김창규 임재경 손병엽 정일락 이한수 이종원(13명)
1984.10.21. 추계체육대회(원동초)–청백으로 나눠 운동회
1984.12.22. 교수님 교육회장 당선 축하
1985.1.20. 총회.
친목회운영 협의
4월 친목모임, 6월 여행, 8월 수련회. 10월 체육대회 결정
1985.4.21 군산횟집 친목회 -월명산공원
1985.6.23 용인 자연농원 가족여행
1985 .8. 5 – 7 조계산 하계수련회
1985. 10. 20 가을 체육대회(상관초)
1986.1.18 총회
월1회 부부동반 등산결정(유동옥회원 주관)
1986. 4.20.금천 저수지 춘계야유회
1986. 6.22.목포유달산 광주 지산유원지 여행
1986. 7.26 – 27(1박2일) 남덕유산 하계 수련회
조별로 취사
원촌초(1박) -월성치-남덕유- 영각사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유동옥 송기용
황영주 김영식 문영곤 정기수 노경화 김대한
임재경 정일락 이근종 이한수 박정훈 이종원
1986.10.19. 추계 체육대회(청완초교)
1987. 2. 22 원등사 가족 등산
( 9세대 참가)
1987. 4. 26 송광사 까치산장 춘계 야유회
1987. 5. 24 내변산 가족등산
1987. 6. 21 남해도 금산 가족여행
1987. 8. 2-3(1박 2일) 운장산 하계수련회
대불초(1박) -운장산 서봉- 부귀 방곡
조별 취사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유동옥 송기용 황영주
김영식 문영곤 김창규 손병엽 김대한 임재경 정일락
이근종 이재옥 이한수 이선희 이종원
1987.10.18. 체육대회 금평초교
1987.10.25 입암산 가족등산
정읍 입암 산성
1988. 5.1 경천 춘계야유회
경천저수지-화산(중식) 대둔산(40명참석)
1988. 6. 8 금오산 등산 (삼남관광 2대) 유사 15명
1988. 7.30 운장산 등산 교수님외 13명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송기용 황영주 정기수 문영곤
노경화 김창규 이계풍 이근종 이재옥 이종원
1988.10.23. 추계체육대회(동북초교)
1989.1.22 교수님 회갑연
코아호텔 무궁화홀 -논문집 증정
원고지 1200매를 가지고 여기저기 물색한 끝에 서울 교육사에 출판을 맡겼다. 활판인쇄에 신국판 布크로스 금박양장 고급지를 써서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다.
내 집에 책이 도착한 것이 맡긴지 50여일 만인 2월 29일이었다. 정산을 하고보니 300만원 권당 3000원 꼴이다.
그런데 누구의 폐도 안 끼치려 했던 것이 나와는 20여년 인연을 맺은 교육대학 제자들의 모임인 황무지 제자들이 집필 중간에서 그들 사이에서 말이 되어 막무가내로 고집을 그들이 전액을 부담해주니 고맙기 그지없었지만 미안한 마음 또한 이를 데 없다.
아이들과 며느리들은 회갑기년 출판회를 서둘러 그들끼리 몇 번 회합을 가졌다. 예로부터 회갑이나 고희는 자식들이 어버이를 위해 챙겨 드린 것이라서 두고 보았지만 두 가지는 제시하였다. 그 첫째는 축의금을 사절하고, 또 하나는 손님을 정중히 모시는 뜻에서 호텔 뷔페식이 아닌 앉은 자리에서 웨이터들이 나누어드리면서 시중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들도 기꺼이 받아들여 1월 22일 (음 12월 15일)일요일 전주 코아 호텔 무궁화 홀에서 하기로 하였다.
황무지 회원들은 당일 손님에게 책을 나누어드리고 안내와 진행을 맡기로 하고 , 진행의 리허설까지 하는 정성을 보였다. 당일 가족끼리의 인사는 한 시간 앞서 별실에서 미리 끝내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오신 손님은 300여명, 자리가 260석이라 실례가 될까봐 세심하게 배려하였던바 대체로 들어맞은 편이었다. 일가친척, 사돈댁, 처가, 외가, 인척, 종친회, 동기들, 죽마고우, 고향친구, 완산, 전주고 시절의 직장친구, 아들친구, 이렇게 지나온 60년의 삶에서 은혜를 주고 정을 나누었던 분만 순수한 뜻에서 초청한 것이다. 분에 넘친 화환과 플레카드까지 화려하게 장식된 출판축하회는 40여 분간 황무지 회원들이 리허설까지 한 마당에 빈틈없이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교수님 자서전에서 발췌)
1989. 2. 24.-2. 26 제주도 한라산등반(2박3일)
20명참가. 경비 1인당10만원, 회비애서 보조5만원.
1일 영실–서북벽–정상, 제주시숙박
2일 자연사박물관-용두암 –협재굴-쌍룡굴-한림공원
–천지연 서귀포숙박
3일 삼굼부리-성산일출봉-만장굴-광주공항-지산유원지-무등산-백양사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유동옥 송기용 황영주 김영식 문영곤
김창규 손병엽 김대한 임재경 손정우 정일락 이근종 이재옥 이한수
이선희 이종원
※ 폭설로 조난을 당할 뻔 한 눈 산행. 셀파 동반
1989.4.23. 대아리 봄 야유회
시외버스터미널 집결-31명
대아리 웃보 배편으로 단지동-동광초-위봉폭포-오성리-송광사
1989. 7. 29 -30 민주지산 등산
교수님 외 10명 대미분교 1박
1989.10. 22. 고창 선운사
추계 야유회 (21가족 참가)
1990. 4.15. 지리산 춘계야유회,
쌍계사-천은사-성삼재-정령치-육모정 (21가족)
1990. 7.27-29.(2박3일) 설악산 등반수련회.
15명 참석
오색(1박)-한계령-대청봉 정상-천불동계곡-낙산사(1박)
1990.10.28. 안의 용추사 추계야유회
용추사(18가족)
장계-안의 –용추사
1991. 4. 28. 장수춘계야유회
장수 번암 계곡 (23가족)
1991. 8. 3-4 주왕산 수련회
(17명)
1991.10. 8. 마곡사 추계야유회
(21가족)
논산 – 공주-칠갑산 –마곡사-대천 -장항 – 군산
1992. 4.26. 안성 원통사 춘계야유회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송기용 정일락 김문희
1992. 6. 27. 전이곤 동시집 출판기념 모임
1992. 7.24-25.(1박2일) 치악산 수련회 등산
구룡사 – 사다리병창- 비로봉
최병균 박명래 노경화 정일락 이재옥
김문희 박정훈 송기용 손병엽 이한수(10명)
1992. 10. 25 담양 추월산, 추계야유회
1993.1.30. 교육대학생 장학금 수여
(6명 630,000원)
1993.4.19 고창 춘계야유회
모양성 선운사 석정온천 14가족
1993. 7.26-28(2박일) 오대산 수련회
1일 월정사-중대-적멸보궁-비로봉-상원사-월정사 소금강입구민박
2일 소금강-노인봉 산장-만물상-구룡폭포-금강사 (민박)
3일 강릉-동해-삼척(죽서루)-도계-태백-고한-사북-영월
-고수동굴 –노동동굴-단양 –노동동굴 –구담봉 –월악산 입구-증평IC
김문희차-유동옥 김대한,
최병균차-노경화 정일락,
송기용차-황영주 문영곤
1993. 8.14-15 월악산
(1박2일 송계계곡 민박)
송계 – 영봉 정상 –마애석불-덕주사-송계
최병균차-노경화 정일락 정기수 송기용,
박정훈차-박명래 유동옥 김창규
1993.10.24. 지리산 대원사
추계야유회, 지리산 대원사, 조별 취사
1993.12.31. 불우이웃돕기 –호성보육원 170,000원
1994. 2. 23 교수님 정년퇴임식
교육대학 황학당
초등 5년, 중등 10년, 대학 28년 -43년간 교직생활.
퇴임사-이제 남은 인생애서 새로운 場 새로운 幕이 시작됩니다. 무엇보다 나는 앞으로의 삶은 成就慾에서 해방되고 직업에서 오는 많은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기대 속에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심신의 기력이 쇠약해지는 天理에 순응하면서 悠悠自適, 그러면서 이승의 끝까지 내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은 안 섰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베풀고 봉사하면서 보람 있고 아름다운 노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모교이면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전주교육대학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정년퇴임 기념식수 - 본관 앞 정원 동편
전 회원 부부동반참석 –점심 학교식당
교수님 자녀의 저녁식사 초대– 코아호텔 백합실 행운의 열쇠 증정,
교수님 1천만 원 황무지 기금으로 하사, 여흥으로 노래자랑
1994. 4.17 삼천동 춘계야유회
33가든 교수님내외, 24가정 참석
활짝 핀 복사꽃 속에서 김대한 회원의 진행으로 노래자랑
1994, 7.30-31 (1박2일) 지리산 칠선계곡
1일 대원사 11;05– 유평리-치밭목 산장 18:00도착 (1박)
2일 치밭산장 출발 06;30 -천왕봉 09;20 – 칠선계곡
– 추성동18:45 (12시간15분 산행)
※치밭목 산장에서의 손에 잡힐듯한 별들... 힘들었던 칠선계곡
※최병균 박명래 한상인 차가 추성리에 마중 나와 오수에서 저녁식사
1995. 4. 23 대둔산 춘계야유회 등산
점심 – 오전 화암사 등산하고, 운주 일미 한우집
대둔산 등산 –오후 교수님 모시고 15명 정도 회원
배티재에서 정상 개척탑까지 등산
1995. 6. 4 교수님 동서학동에서 우성 아파트로 이사
회장 등 10여명 터 울림
1995. 8. 5-6 (1박2일) 소백산 하계등반
14명 , 오후2시 집결
증평 - 괴산 -죽렁 -희방사
1일 희방사-천문대-연화봉-비로봉-희방사 (산행 6시간 40분)
2일 영주-예천-상주-보은-옥천 –추부-대둔산 –운주 저녁식사
1조 –이영승 이한수 임재경 (조별 식사 해먹음)
2조-유동옥 정일락 박정훈
3조 –교수님 박명래 김영식 정기수
4조 –최병균 한상인 문영곤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박정훈 차이용
1996. 4. 21 중인리 춘계야유회
중인리-금곡사-북봉 헬기장-정상-금곡사-중인리 16명
혼자 -유동옥 박명래 이재옥 송기용
부부-이영승 박정훈 손정우 문영곤 정일락 임재경
하산후 모임 30명 참가 - 33가든
1996.8.6. 오봉산 등산
교수님 모시고
(최병균 유동옥 송기용 손정우 임재경)
1996. 8. 15 –17(2박3일) 청옥 투타 등산
교수님 외 10명 참석
김영식 이한수 박명래 이근종 유동옥 임재경 이계풍
( 최병균 송기용 손정우 승용차 )
1996.12.1 우리문화유산 사랑회 창립총회 (교수님)
1996.12.31 송년모임 14명 참석
1997.1.1 교수님 신년인사
15명(한상인 회원 주관)
1997. 1. 12. 만덕산 산행
교수님 최병균 류동옥 송기용 정일락
월상리 시내버스-미륵사-폭포-정상-대흥리-마치-신리
정기 버스가 없어 트럭을 손들어 타고 술취한 김에 노래 부르며
전주까지. 남부시장 여수식당에서 순대국에 하산주,
1997.2.2. 변산 월명암 산행
교수님 최병균 송기용 김창규 임재경 정일락 7명
내소사 원암 –직소폭포-월명암-남여치
변산해수욕장, 민어메운탕-직행으로 전주와서 완산동 해장국
1997. 2 23 운장산
교수님 모시고
맑음, 잔설이 남아있는 등산로 .따뜻한 날씨
피암목재-서봉-동봉-내처사동-독자동
최병균부부 황영주부부 유동옥 송기용 정일락
1997. 3. 23 운주 천등산 등산
교수님 모시고
고산촌 -정상-석굴-하산북
정상부근 때마침 활짝핀 산벚나무 아래서 신선주 일품.
최병균부부 박명래부부 유동옥 송기용 정일락
1997. 4. 20 돌산도 춘계야유회
금구-광주-순천
여수 –돌산도- 돌산대교 점심- 향일암 (2:20-4:00)
교수님 외 13쌍 22명
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박명래 유동옥 황영주 문영곤 윤진근
손정우 임재경 이근종 박정훈 이선희 정일락
1997.5.25. 곡성 동악산 도림사 동악산 배넘이재 도림사
최병균 박명래 박정훈차14명 부부 최병균 박명래 임재경 문영곤 송기용
혼자 교수님 유동옥 박정훈 정일락
1997.6.22. 고창 방장산
석정온천 - 앙고살재 -임공사 -벽오봉 -정상
올때 백양사 -복흥 -치재 -쌍치 -산외 -정자리
부부 -고수님 최병균 류동옥 박명래 송기용
혼자 -한상인 박정훈 정일락
최병균 류동옥 박정훈 승용차
1997.7.27. 강천산 병풍바위 정상 저수지 목욕
직행버스이동5명 교수님 최병균 송기용 임제경
1997. 8.9-10(1박2일) 태백산 하계수련회
태백시 1박
22명 참석 (부부동반)
부부 -교수님 최병균 송기용 임재경 이근종 문영곤 정일락
혼자 – 이영승 손정우 손병엽 이한수 유동옥 박명래 이재옥 김영식
1일차 서대산-옥천-마로면-화령재-상주-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청량산 –현동-태백시1박 서초등학교(전주 교대출신 교사배려로),
태백서초등학교에서 밤 야외무대, 회원 장기자랑
2일차 태백산등산
(우중산행)유일사–태백산정상–단군성전-탄광박물관하산
만항재-정암사(적멸보궁 수마노탑)-고한-영월
-제천 -충주댐 청풍관광단지-증평IC
1997.12.13. 이웃돕기 37만원 전달(자매의집)
1998. 4.26 청학동 춘계야유회
하동-청학동 28명
전주-하동-청학동-칠불사
부부-교수님 최병균 이영승 송기용 한상인 문영곤
전이곤 김대한 임재경 이재옥 이한수
혼자 –박명래 유동옥 윤진근 손정우 정일락 박정훈
1998. 7.27-28(1박2일) 청량산 하계수련회
교수님 내외분 포함 17명 (남11여6)
병산서원 –봉정사-소수서원-부석사-청량산
1998.10.31. 추계단합대회 전동 백송회관 교수님외 35명
최초 부부노래방 공연
1998.12.18. 불우이웃돕기 60만원
1999. 5. 5 전남 운주사 가족 야유회
30명 참석
5.18묘역 참배 –운주사-쌍봉사 ,국보 철감선사탑-소쇄원
부부-교수님 최병균 박명래 유동옥 문영곤 송기용 윤진근
김대한 손병엽 임재경 정일락 이한수 이재옥
혼자-손정우 박정훈 염시열 노경화
1999. 8. 9 하계수련회 동상면 장군봉 등산 교수님 내외분외 30명 참석
1999.11.6 추계단합대회 38명 참석 효자동 할매 곰탕집. 부부노래방 공연
1999. 12.17 불우이웃돕기 60만원 전(익산 자매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