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의 종착점은 처음 출발한 자리라고 한다.
그 말만 떠올려도 금방 가슴이 출렁거린다.
황금 들판이 따사롭게 익어가는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착실하게 잘 여문 저 알곡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뜨거운 여름 비,
따글거리는 초가을 햇살을 따라 걸어온 생명의 여정, 어디 들판뿐이겠는가.
바다와 섬과 노을의 몸짓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적한 바닷가와 수평선 너머로 반짝이는 섬들을 좋아하며
그 위로 내려 앉는 일몰의 황홀경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가을의 중간을 달리는 10월이 열리는 길목에서,
산과 강과 계곡을 찾았던 예년과는 달리
올 가을에는 남쪽 끝 해안 길을 걷고 싶어, 무작정 차를 몰아 “물미해안”을 찾았다
“물미해안”은 경남 남해의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12km정도의 해안도로로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며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노을이 바알갛게 물들어 있고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은 여인의 나신(裸身)처럼 아름답고,
미풍이 그 곡선을 타고 미끄럽게 흘러 내린다.
물건리는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건방조어부림과
독일마을이 함께 자리한 마을 이름이다.
남해 금산리 보리암, 상주 은모래비치, 노도(서포 김만중 유배지), 다랭이 마을도
가까운데 있고, 어떻게 보면 백석의 표현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림 같은 느낌이나
‘달콤한 사랑’과 ‘관능적인 자연’의 화음 같은 느낌이 묻어나는 곳이다.
먼바다의 푸른 보자기 위에서 빛나는 그리움도 껴안아 보고,
두고 온 일상의 추억 잔뿌리도 어루만져보고, 세월의 무게와 삶의 질곡도 내려놓고,
짓누르던 상념의 스트레스도 날려 보내보고….. 돌아온 뒤에도 그리움의 허기가
가라 앉지 않는다면 그때는 노을 지는 서해의 섬 길이나 강화도 해안 길을 걸어야겠다.
결국에는 떠난 자리로 돌아오지만, 이 모든 것이 ‘결핍’에서 출발해 ‘완숙’으로 돌아오는
우리 삶의 행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이 가을에는 곱게 단풍 들어가는 산과 계곡을 찾지 않고, 먼 해안길을 찾은 이유를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올 가을엔, 허리에 남창남창 감기는 바람을 보듬고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리 해안길을 먼저 만나보기 위해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되고 싶어서이다.
그러니 그대여!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제발 속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시라요!”
나는 이번 길에 동행한 시(詩) 한편이 있으면 얼마나 정감이 있고 애틋할까 싶어,
고두현씨의 아래 시 한편과 함께 했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는 말고
속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첫댓글 선생님과 차 한 잔 하고 싶습니다.
경관에 쏘옥 빠져들고 싶은 표현, 정말 선생님은 시인이십니다.
과분한 칭찬, 고맙습니다.
언제든 연락하십시요, 시간을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은파 선생님! 가을 파도 보시려고 남해바다로 나들이 가셨어요? 좋은 곳 구경 많이 하시고 그 동안 힘들어ㅅ던 것 모두 가을 바다에 버리시고 홀가분한 마읍으로 붉게 탄 노을 마음껏 가습에 품고 오세요 .과거 는 흘러 가ㅅ습니다 희망을 안고 큰 꿍을 안고 오세요 , 쓴 글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먼바다의 푸른 보자기 위에서 빛나는 그리움도 껴안아 보고,
두고 온 일상의 추억 잔뿌리도 어루만져보고, 세월의 무게와 삶의 질곡도 내려놓고,
짓누르던 상념의 스트레스도 날려 보내보고…..
지구가.등근건.끝이.곧시작이니까.좋은곳.여행하셨군요.붉은노을이.여신처럼.아름답다.멎있는표현..
가슴에남은불순물.노을진바다.파도에.앃어버렸게군요.감정이.풍부하신.은파선생님.좋은밤되시와요.
그러니 그대여!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제발 속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시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