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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2篇 天地篇 第9章(장자 외편 12편 천지편 제9장)
공자가 노담(노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닦는데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합니다. 변론가들이 말하기를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누되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하니 이 같은 사람은 성인이라 할 만합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니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산림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자여.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고,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연 없다.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天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천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컫는 것이다.”
夫子問於老聃曰 有人治道 若相放可不可然不然
辯者有言曰 離堅白若縣㝢 若是則可謂聖人乎
(부자 문어노담왈 유인이 치도호대 약상방하야 가불가하며 연불연하나니
변자 유언왈 이견백호대 약현우라하나니 약시즉가위성인호잇가)
선생(공자)이 노담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닦는데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합니다. 변론가들이 말하기를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누되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하니 이 같은 사람은 성인이라 할 만합니까?”
- 부夫子 : 선생. 뒤에 이름이 구丘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공자를 가리킨다. “이하 설화의 등장인물은 공자孔子와 노담老聃이고, 문답의 내용은 〈응제왕應帝王〉편에 보이는 양자거陽子居와 노담老聃의 문답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인지人知를 사용하는 유위有爲의 정치를 배척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치를 찬미하고 있다.”(福永光司).
〈응제왕應帝王〉편 제4장의 내용. 양자거陽子居가 노담老耼을 만나서 이렇게 물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아주 민첩하고 굳세며, 만물을 잘 꿰뚫고 만사를 분명히 알며, 도를 배우는 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명왕明王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이런 사람은 성인과 비교하면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이다. 게다가 호랑이와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의 민첩함과 살쾡이를 잡는 개는 우리를 불러오는 법이니 이 같은 사람을 어떻게 명왕明王에 견줄 수 있겠는가.” 양자거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고 말했다. “감히 명왕의 다스림에 대해 여쭙습니다.” 노담이 대답했다. “명왕의 다스림은 공功이 천하를 뒤덮어도 자기가 한 일로 여기지 않고, 교화敎化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이 느끼지 못하며, 베풂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이름을 일컫지 않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하여,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인 경지에 서서 아무 것도 없는 근원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 유인치도有人治道 : 도를 닦은 사람이 있음. 치도治道는 수도修道와 같다.
- 약상방若相放 :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남. 방放은 어긋난다는 뜻으로 논쟁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다.
- 가불가可不可 연불연然不然 :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함.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함은 만물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일로 삼는 것이다.
- 리견백離堅白 약현우若縣㝢 :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눔이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함. 리견백離堅白은 ‘단단하고 흰 돌[견백석堅白石]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주장하는 궤변詭辯으로 〈제물론齊物論〉, 〈덕충부德充符〉, 〈변무騈拇〉, 〈거협胠篋〉편 등에 이미 나왔다. 단단하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사물과 분리시켜서 이해함으로써 사물의 내적 연관을 부정한 논변이다. 약현우若縣㝢의 우㝢는 宇로 읽는다. “약현우若縣㝢는 변론의 명백함이 마치 집에 매달아 사람들 앞에 보여 주는 것과 같다.”(司馬彪)
老聃曰 是胥易技係 勞形怵心者也 執狸之狗成思(來田) 猿狙之便 自山林來 丘予告若而所不能聞 與而所不能言
(노담왈 시는 서역기계라 노형출심자야니 집리지구성사(래전)코 원저지편이 자산임래니라 구아 여 고약이의 소불능문과 여이의 소불능언호리라 )
노담老聃(노자)이 말했다. “그런 사람은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니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산림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丘(공자)여.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 서역기계胥易技係 :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 서胥는 서리胥吏의 서胥로 하급 관리를 뜻하며 역易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잡역雜役의 뜻. 기계技係는 기술에 얽매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기술자의 잔재주를 의미한다.
- 노형출심자야勞形怵心者也 :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임. ‘노형勞形’은 몸을 지치게 한다는 뜻이고 ‘출심怵心’은 “마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다.”는 뜻.
- 執狸之狗成思(來田) 猿狙之便 自山林來 :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음. 成思는 來田의 잘못. 來田은 ‘사냥에 동원된다는 뜻’. 모두 자신이 가진 재능 때문에 화란을 자초하게 된다는 뜻이다.
- 여予 고약이소불능문告若而所不能聞 여이소불능언與而所不能言 :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若과 而는 모두 2인칭.
凡有首有趾 無心無耳者衆 有形者 與無形無狀 而皆存者盡無
其動止也 其死生也 其廢起也 此又非其所以也
(범유수유지호대 무심무이자는 중하고 유형자의(가) 여무형무상이개존자는 진무하니
기동지야와 기사생야와 기폐기야에 차우비기소이야라)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고,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연 없다.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범유수유지凡有首有趾 무심무이자중無心無耳者衆 :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음, 머리 있고 발이 있음은 곧 오체五體가 구족具足(충분充分히 갖추어 있음)함을 말한다. 이처럼 오체五體가 멀쩡하면서도 〈무형無形‧무성無聲의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없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뜻이다. “몸뚱이를 갖추어서 사람이 되었지만 지각이 없고 견문이 없는 자는 모두 이에 해당한다.”(王先謙)
- 유형자有形者 여무형무상이개존자與無形無狀而皆存者 진무盡無 :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혀 없음. 무형무상無形無狀은 도道를 가리키며, 이 도道와 함께하여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存在란 도道와 함께 영원한 생명生命을 누리는 자란 뜻이다. “형체를 가진 것은 잘 변하기 때문에 무형무상의 도와 함께 존속할 수 없음을 말한 것.”(곽상郭象)
- 기동지야에其動止也 기사생야其死生也 기폐기야其廢起也 차우비기소이야此又非其所以也 :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 소이所以의 이以는 위爲와 같다. 이 부분의 내용은 유형有形의 존재存在가 동動하고 지止하고, 사死하고 생生하고, 폐廢하고 기起함에 있어 그것이 그 유형有形의 존재 스스로의 작용作用의 결과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有治在人忘乎物 忘乎天其名爲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
(유치는 재인이니 망호물하며 망호천은 기명이 위망기니 망기지인을 시지위입어천이라하나니라)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天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천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컫는 것이다.”
- 유치재인有治在人 :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음. 성인은 부득이 천하를 다스릴 일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맡겨서 스스로 다스리게 한다는 뜻.
- 망호물忘乎物 망호천忘乎天 기명위망기其名爲忘己 :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함. “천天과 물物을 모두 잊어버렸으니 자기 자신만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다시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郭象). ‘망기忘己’는 〈대종사大宗師〉편 제7장에 나오는 좌망坐忘과 유사한 표현.
- 망기지인忘己之人 시지위입어천是之謂入於天 :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천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컬음. “사람이 잊기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인데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렸으니 또 무엇을 알겠는가. 이것이 바로 알지도 않고 지각하지도 않으면서 자연과 명합冥合하는 것이다.”(郭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