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요셉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언급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하였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악 때문에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나의 생명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모든 강아지들은 주인의 손에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아지가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이끄는대로 갑니다. 주인이 데리고 가는 곳이 강아지가 싫어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아지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의 생각과 의지입니다. 무조건 주인의 생각과 의지를 따라야 합니다.
강아지로 비유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우리 인생도 주인 되신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이끄심이 우리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래도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한 선교사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채 포기하고 있는데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자신이 길을 잃었으니 길을 찾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원주민은 선교사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선교사에게 “나를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원주민을 따라가던 선교사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하여 원주민에게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갑니까?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그러자 원주민이 말했습니다. “길은 없습니다. 내가 바로 길입니다. 믿고 따라오시오.”어디로 가는 지 몰라도, 주님이 유일한 길되심을 믿고 사는 것이 인도하심을 따르는 인생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믿음은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은 긍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남겨진 두 아이는 다른 자녀들에 비해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아버지로서 당연히 요셉과 베냐민은 마음이 더 쓰일 수 밖에 없는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마음이 다른 형제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채색옷을 입히고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요셉을 두둔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형들에게 자리잡았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기댄 요셉은 형들을 자기 발아래 두는 꿈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부모들도 그의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꿈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냈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향한 형들의 미움도 요셉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17살 때 도단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요셉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만약 요셉과 형들의 관계가 좋았다면 요셉은 형들과 도단의 들판에서 바비큐를 즐기다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을 것이고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 쓰인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형들의 미움이 결국 요셉을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로 사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도단의 구덩이 사건을 통해서 요셉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왁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노예생활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역경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시위대장으로 왕의 신임을 받는 남편, 부족함이 없는 삶의 환경과 노예를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여인이 자기 집의 노예청년을 흑심을 품고 바라봤습니다. 이집트라는 나라가 성적으로 문란했던 것을 생각하면 요셉에게 일어난 일은 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이방의 땅에서 고단한 노에로 살아가는 젊은 청년을 손쉽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셉은 자신의 삶이 Coram Deo, 하나님앞에 살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여인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청년의 삶을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여인이 망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친 댓가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나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나 동일하게 섬기는 그의 모습에 간수들은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인생이 수렁에 빠졌을 때도 믿음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도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인도자 되심을 믿었던 요셉처럼 어디서나 한결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길어지자 요셉도 감옥에 들어온 술맡은 관원에게 자기를 옥에서 건져달라고 하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고난이 길어질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사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고난과 역경이 길어질 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더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주십니다.
2년뒤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계시대로 7년 풍년이 지나가고 7년의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일어났습니다. 가나안의 형들이 양식을 얻기 위해 이집트까지 와서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시몬을 잡아두고 다시 양식을 구하러 올 때 막내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끝까지 베냐민을 내주지 않던 아버지 야곱이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아들을 잃으면 잃으리라”는 결단을 통해서 형제들을 다시 만난 요셉은 자기의 정체를 알립니다. 그때 요셉이 했던 말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창45:4-5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다는 이 고백은 그의 인생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안에서 용서와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요셉처럼 인도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요셉처럼 권력자가 되어 영광을 누리고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자가 되어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분임을 인정할 때 우리에게는 분노의 대상도 용서할 수 있고, 갈라졌던 형제들도 하나로 회복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불편할 수도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기에 원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도하심이 우리를 가장 완전하게 보호하며 행복하게 만드는 것임을 요셉을 통해 깨닫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미래를 보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2050년이면 지구의 온도가 2도쯤 올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때가 지구가 기후문제로 심각한 고통을 받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0.5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장밋빛이 아닙니다. 큰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지구촌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의 리더쉽이 오늘 지구촌에 필요한 이유는 그가 다가올 기근을 준비했고, 미래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바라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라는 책에서 이재철 목사는 이런 간증을 소개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한 여성도로부터 그녀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일터에서 갑작스런 심장 쇼크로 쓰러졌지만,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완벽한 후속 조처로 목숨을 구하게 된 간증 내용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만약 1초만 늦었더라도 회복 불능이었을 것임을 간증하는 그녀의 얼굴 표정은 은혜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은혜롭던 그녀의 간증은 한숨으로 끝이 났습니다. 남편은 그 사건으로 인해 직장에서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평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남편은 퇴직금으로 몽땅 주식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의 주식 시장은 얼어붙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주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 남편과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긴 한숨으로 자신의 간증을 끝 마쳤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하나님께서 심장 쇼크로 쓰러진 남편을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구해 주셨음을 믿고 간증했다면, 왜 그 하나님께서 남편과 자신의 내일 역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지 못할까? 과거에 자신과 함께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비록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가격이 지금 떨어질 망정, 그 과정을 통해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오늘보다 더 보배로운 내일을 빚어 주고 계심을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 과거의 하나님만 믿으려는 믿음은 참된 믿음일 수 없습니다. 어제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시며, 내일 또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참된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을 위해 빚으시는 내일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여인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가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새로운 역경속에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원망과 근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행하신 하나님의 큰 권능과 홍해를 가르신 놀라운 역사하심을 잊은 채 길이 험하다고, 만나만 먹어야 하느냐고 불평을 쏟아 놓은 것처럼 지난 날의 은혜가 오늘도 새 은혜로 임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미래지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요셉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언급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하였습니다.”요셉은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믿음의 다음세대에게 우리가 주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들”입니다. 멋진 교회를 남겨주고, 멋진 프로그램들을 남겨주는 것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남겨주지 못한다면 교회의 미래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도 사라질 것입니다. 요셉의 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가 그들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물론 그 땅에서의 삶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을 밟고 사는 우리에게 요셉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땅은 너희들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대한 소망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붙잡는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총리로 왕들은 바뀌어도 그의 자리는 공고히 유지되어 80년을 총리로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지만 그의 마음은 이집트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언젠가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날에 자신의 유해를 갖고 나가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수백년이 지나 흙이 된 그의 유해조차 이집트 땅에 남기지 말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요셉은 수백년후에 이루어질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밝은 미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간 사순절 묵상을 통해서 눅22:37절 칼을 준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넘어 부활이후 성령의 강림이후 땅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가야할 제자들의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씀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칼을 준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시선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넘어 복음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미래를 보신 것처럼 우리도 오늘 우리의 현재가 아닌 복음이 펼쳐갈 놀라운 미래를 향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어떤 상황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용서하고 연합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에 매여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