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문화기획 - 잊혀져가는 사찰음식을 찾아서>는 자연 재료들로 빚어내는 사찰음식을 통해 우리 전통 음식 문화의 원형을 되짚어 보고자 마련했다. 이를 위해 깊은 산골 암자 등을 찾아 아직도 오롯하게 지켜지고 있는 절집의 숨은 맛을 발굴하고, 사찰음식 전문가 스님들의 자문을 받아 복원,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찰 공양의 전통문화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 기획은 격월로 실린다. _편집자
겨울철 절집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밑반찬이 부각과 튀각이다. 부각은 소채나 해조류 등의 재료에 간단한 양념을 하고 밀가루나 찹쌀가루 풀로 옷을 입힌 다음 말려서 튀기는 것이고, 튀각은 이들 재료에 양념과 풀을 묻히지 않고 말린 원재료를 그대로 튀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이사 비닐하우스에서 특수하게 키운 녹황색 소채들이 사철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굳이 풀을 끓여 옷을 입히고, 찌고, 말리고, 튀기는 등속의 번거로운 먹을거리를 만들 필요조차 못 느끼는 ‘철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예전 우리 사찰에서는 봄여름에 무성한 산과 들의 푸성귀들을 채취하여 삶고 데치고 옷을 입혀 말리는 저장식품 만들기가 스님들의 큰 울력이 되곤 했다. 온갖 묵나물과 부각, 장아찌, 김치류가 그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들깨송아리부각은 거의 모든 지방의 절집에서 흔하게 만들어 먹던 저장 밑반찬이다. 더러는 들깨의 씨 알갱이가 아직 여물기 전인 여름철에 일부러 송아리를 따서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을 수확기에 뒤늦게 생겨나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있는 초록송아리들을 거두어 만드는 것이 주였다. 세간에서는 잘 해 먹지 않는 사찰 고유 음식 대부분이 그러하듯 들깨송아리부각도 말하자면 ‘되살림의 먹을거리’인 셈이다. ‘송이’를 ‘송아리’로 부른 이름의 내력을 보아하니 그 시초는 경상도 어느 절집일 것 같다. 아직 풋것이지만 고소한 들깨 알갱이가 송송 박혀 있는 귀한 먹을거리를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다른 잎채소들처럼 삶아 묵나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연구해낸 것이 부각의 응용이었으리라. 그런데 만들고보니 그 맛이 기막히다. 송이째 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내니 제법 억세다 할 수 있는 껍질과 줄기 부분까지 하나 버리지 않고 온전히 먹을 수 있고, 이는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섬유소와 비타민류 섭취에 도움이 된다. 더욱이 육식을 금하는 절집에서 수행승들에게 필요한 지방을 보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산속에서 소채밭 안 가꾸는 절이 없고, 그 소채밭에 들깨 안 심는 절이 없었던 만큼 들깨송아리부각의 소식은 금세 이곳저곳의 절집으로 퍼져나갔을 것이고, 하여 어느새 우리나라 사찰의 겨울철 대표 별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리라. 그 들깨송아리부각을 올가을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작은 절집에서 만났다. 사찰박물관 안양암에서였다. 100여 년 전 중창될 당시의 조촐한 상태를 지금까지 아무런 보수 없이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해오고 있는 안양암은 그 외양만큼 살림 속내도 옛 가풍을 오롯하게 지켜오고 있다. 특히나 세끼 공양에 쓰는 소채류를 지금도 거의 대부분 절집 안에서 가꾸는 것으로 해결하는 전통을 고수한다. 없는 것이 없다는 동대문 창신동 골목시장 끝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러하다. 그러기로서니 스님도 많지 않은 도심의 작은 절집에서 들깨송아리부각을 만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년 전 절집 전체가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등록된 이후 그 안부가 궁금해서 이런저런 구실을 들고 가끔씩 들르고 있던 절이었다. 갈 때마다 절집 안의 널찍한 소채밭에 철마다 종류별로 풍성히 가꿔지고 있는 온갖 소채들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기는 했어도, 설마 들깨송아리부각까지 만들어 갈무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참으로 의외였다. 그냥 오래된 보물 같은 안양암의 늦가을 풍경이 보고 싶고, 또 해마다 요맘때면 거두어 지장전 축담 앞에 줄줄이 앉혀놓고 햇살바라기를 시키곤 하던 ‘누렁호박 열병식’이 보고 싶어 찾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공양주 보살이 풀 묻힌 들깨송아리들을 장독대에 널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달려가다 펀뜻 귀한 장면 놓칠까, 걱정되어 얼른 사진부터 담고 있으니 낯익은 공양주가 영문을 몰라 손사래를 친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싸릿대 채반이 두 개, 플라스틱 채반이 두 개, 참 많이도 만들어 널어놓았다. 그 작은 송이 하나하나를 집어 들고 일일이 풀물을 묻혀 널자면 손품이 좀 들었을까 싶어 치사를 드리니 신도들이 모두 도와 한 일이라고 또다시 손사래를 친다. 이미 만들어 갈무리해놓은 것만도 한 자루나 되고, 그러고도 뒤란에는 아직 여물지 못한 들깨가 남아 있어 혼잣손으로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란다.
지난여름의 유난히 긴 장마로 제때에 열매를 영글이지 못한 들깨가 가을 들어 반짝한 햇살을 보고 그제사 열매들을 영글이는 바람에 올해는 들깨 수확은 아예 포기하고, 대신 송아리부각은 푸지게 만들게 생겼다는 설명이다. 그 유명한 안양암 지장전 축담의 누렁호박 열병식도 일별하고 뒤란으로 쫓아 올라가니 절집 뒤를 병풍처럼 둘러선 암벽 앞 햇살 바른 들깨밭에 아직도 청청한 들깨송아리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기어이 제 몫으로 주어진 한살이를 아름다이 마무리하고야 말겠다는 듯, 바야흐로 찬 바람 섞여 부는 11월 초순임에도 어느 들깨송아리는 이제도 꽃잎을 열고 있다. 공양간 소임을 마치 수행하듯 올곧게 지켜내는 삭발 공양주에게도, 거룩한 한살이를 위해 저리 열심인 늦가을 들깨에게도 찬탄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뜬금없이, 참 복에 겹게도, 귀한 들깨송아리부각을 맛보게 되었다. 있는 음식만도 종류가 흘러넘치는 세상에 어줍지 않게 사라진 음식까지 찾아다니는 중생을 위해 (참으로 황감하게도) 공양주 보살이 부러 들깨송아리부각을 추가하여 저녁 공양을 차려준 덕분이었다. 그 바삭하게 씹히는 들깨송아리부각의 환상적인 고소함이라니……. 돌아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 안에 그 즐거운 미각이 꼬소소하게 살아 침샘을 자극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 중생도 들깨농사는 꼭 좀 지어보고 싶어진다. 따지고 보면 들깨송아리는 재료를 구하기가 좀 까다로울 뿐 값은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 그 맛과 영양이 어떤 음식보다 고급한 식재료가 아닌가. 더군다나 들깨는 잎도 먹고 열매도 먹고 송아리까지 먹을 수 있는 다용도 식재료에다 화분에서도 쉽게 잘 자라는 우리 토종 허브 식물이다. 그러니 구하기가 어렵다면 직접 기를 수밖에. 이경애(북촌생활사박물관 관장)
첫댓글 김 부각은 우리 일상에 파고 들었지만 들께 송아리부각은 일반화 되지 않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전통음식들은 자연그대로를 즐길수 있는 여유가 있어 멋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