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10주일설교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2:1-25)
제목: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본문: 창세기2:1-25
오늘은 창세기 2:1-25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지난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군산남부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50여명 정도 와서 수련회를 하고 갔습니다. 교사들과 식사를 준비하러 오신 권사님들를 포함하면 60명이 넘게 와서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의 큰 형수님도 왔었고 큰 조카도 왔었습니다.
1984년도부터 1986년도까지 나도 중고등부교사로 군산 남부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1977년도부터 1986년도까지 또 아동부 교사로 있었습니다. 또한 나도 중고등학생으로 1971-1976년도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이 부장으로 수고하고 있었고, 후배들의 아들 딸들이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후배들의 자녀들이 학생으로 수련회를 참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 학생들이 와서 수련회 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 있었고 또한 신경도 더 쓰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우리 교회 성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나 다른 도시 교회를 위해서 예배당을 건축하였는데 또한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 좋았고 특히 나의 모교인 군산남부교회에서 와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실상 많은 돈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인들이 와서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사용하는 것에 그것도 함부로 사용된다고 생각될 때는 속상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려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우리 교회의 예배당이 우리도 많이 사용하여야 하지만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나 이웃들이 사용하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고 위로받고 힘은 얻는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부터는 우리 교회 아동부 어린이들이 여름성경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교회 학생들이 예배당을 사용하는 것보다 우리 교회 학생들이 사용하니 더 기쁘고 더 아름답고 더 좋았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2장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곳에 나무와 식물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그 사람이 사는 땅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사람이 생령이 되니라(7절)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진흙을 이겨서 도공처럼 사람을 빚어서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진흙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흙은 티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원소가 땅의 비천한 티끌을 취해서 만드셨다는 것을 말해 주려는 것이지 무슨 아이들 공작 시간에 진흙을 매만지고 뭉치고 다져서 만드신 것으로 생각하면 성경기록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흙 곧 티끌은 히브리어 “아팔”인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음역할 때는 아담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란 말은 사람이란 뜻도 되고, 티끌이란 뜻도 되고 첫 사람의 이름도 됩니다. “아담아”이렇게 부르는 것은 “티끌아”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담아”라고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자기 존재가 비천한 것으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순종만 하도록 지어진 그런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다는 것은 티끌인 존재에게 영혼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실 때 그 때에 사람이 생명을 얻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생기 곧 영혼이 없다면 우리는 티끌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키가 크고 피부가 곱고 아름답다고 하여도 육체만으로는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아무리 멋진 사람도 영혼이 떠나 죽으면 그는 썩으며 티끌로 돌아가는 육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기를 걷어간 순간 우리는 단지 티끌일 뿐입니다.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다 그렇습니다. 돈이 많다는 사람들도 역시 티끌이 되고, 권력이 크다는 사람도 역시 티끌이 되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역시 티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만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그것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은 죽은 송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은 송장에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힌들 그것을 누가 탐내겠습니까? 죽은 송장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은 들 누가 그것을 부러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이 계셔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셔야 우리는 생령 곧 의미있는 존재가 됩니다. 마땅한 일을 할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2.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창설해 주셨습니다. 에덴이란 말은 “기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이 된 사람을 위해서 기쁨의 장소 곧 합당한 장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곳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요즘 나는 복숭아나 포도 사과는 어떻습니까?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도 좋은 과일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다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 때 항상 예술성과 실용성을 다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튼튼하기는 한데 멋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안됩니다. 아름답기는 한데 튼튼하지 못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 못됩니다. 우리 교회 장의자가 그렇습니다. 아름답기는 한데 튼튼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곳이 기쁨의 장소 곧 에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만 나오면 불평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으로 먹되” 에덴 동산에는 각종 나무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과일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있는 과일나무도 있습니다. 사과 배 포도 복숭아 자두 살구 밤 감 대추 호두 잣 아몬드 귤 딸기 수박 참외 열대 과일인 키위 바나나 파인애풀 오렌지 망고 메론 파파야 두리안------
내가 알지 못하는 수도 없이 많은 과일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과일을 우리가 먹고 싶은대로 먹고 살라고 에덴동산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열거한 것만 하여도 20개가 됩니다. 사과 종류만 하여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수도 없이 많은 과일들을 보기도 좋고 맛도 있는 것으로 에덴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왜 선악과를 심어 놓아서 범죄하게 했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술이 사납다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을까요? 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것만 만들어 놓고 우리 마음대로 먹고 싶은대로 먹도록 하지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그것은 먹지 못하도록 했을까요?
그냥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마음껏 먹으면 우리가 주인인 줄 압니다. 우리가 무엇을 우리의 뜻대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티끌이며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강제로 하지 않고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바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관자임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십일조 생할과 같습니다.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 주셨지만 십분의 일은 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우리의 왕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신앙생활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부모님께도 그래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을 나를 낳아 주시고 나를 키워주시고 이렇게 살도록 가르쳐 주고 보호해 주신 그것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3.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들어 그곳에서 기쁨으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 혼자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와를 만들어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셨기에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쌍하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쌍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쌍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쌍이 아니면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모든 것을 좋다고 하셨지만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아니하니” 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보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부른 이름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부르는 가에 따라서 부르는 것이 그의 이름이 됩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르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만 나쁜 사람으로 부르면 그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부르면 그것은 그렇게 되게 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불러야 합니다. 잘 이름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어떻게 이름 짓겠습니까? 여러분의 이웃을 어떻게 이름 짓겠습니까? 우리 교회를 우리 교회 성도를 어떻게 이름 짓고 살며 그것으로 인하여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렇게 행하는 아담을 보시면서 혼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하나 취하시어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아담에게 돕는 베필로 주셨습니다. 함께 도우면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제도를 마련해 주시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결혼제도입니다. 가정의 기본이요 사회의 기초는 부부입니다.
그리고 결혼 생활은 이렇게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결혼 생활은 하나가 되는 것인데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감추어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으며 그리고 무엇을 주시고 무엇을 하도록 하셨습니까?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티끌이며 하나님의 생기로 우리는 생령이 되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을 마련해 주셔서 그곳에 부족함 없이 기쁨으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 우리에게 문제는 없습니다. 부족함도 없습니다.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족함 없이 기쁨으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혼자 두지 않고 함께 살도록 아내와 형제와 친척과 이웃과 성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지어 불러야 하며 먼저 부부가 한 몸을 이뤄 부끄럼이 없이 살아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로 살도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