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30. 열여덟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기도 조용림 권사(549)
성경말씀 골로새서 2:16~23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주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찬송 474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광고 가족방문-백춘자 권사 가족, 이정석 집사 아드님
새 가족- 이정석 집사, 이현우 성도 퇴원, 미용봉사- 강혜원 전도사(감사)
다음주 어버이 주일 카네이션 준비(신우회, 강성자 권사)
찬송 460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엊그제 느티나무에 농약을 뿌렸더니
입안이 시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다녀오고
어제는
우리 박영숙 집사 약 처방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에
우리 박영수 집사님과 동행했습니다.
날씨도 꾸물해서 우리 셋이서 팥죽집으로 향했습니다.
배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거짓말하는 목사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절,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절,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절,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하는 것이니
22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절,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사도바울도 오늘 말씀을 왜 해야만 하는지?
그것도 옥중에서
거짓 목사들에 대한 말을 해야 하는 사도바울의 심정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목사인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전혀 은혜롭지가 못합니다.
그렇지만 피해 갈 수도 없습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절,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5월 2일 우리 팀장님들 모임이 있습니다.
총채보리한우 식당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예산이 약 50만 원은 족히 들 겁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행복합니다.
모임에서 술도 한 잔씩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면 옆자리에서
예수 믿는 것들이 ~
그렇지만 목사님은 먹고 마시는 것에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우리를 폄론할지라도
목사님은 우리 선생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삶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월指月이라 합니다.
달을 보지 못하고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만 보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요즘 방송국 일로 큰 사옥을 비울 수 없어 자주 갑니다.
서울 방송국 일이 전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 딸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때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Who am I?
나는 누구일까?
정직한가?
진실한가?
목사가 맞는가?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다면
누군들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래서 점적천석點滴穿石이라 했습니다.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돌이 페이지 않습니까?
18절을 다시 읽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생각 따위를 버려야겠습니다.
우리의 생각 따위는
헛된 과장이고,
헌 된 맹세이고,
헛된 신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어떤 권사님을 보면 가관입니다.
서울에서 전도왕이라 자부하는 권사 말도 가관입니다.
약속은 지키지 말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궤변입니까?
이러니 믿음 따위란
상황에 따라서 쉽게 저버릴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었습니다.
이런 가롯유다가 지금까지도 교회에 득실거립니다.
그러니 목사 따위가 권사 눈에 보이겠습니까?
지금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지주의일 것입니다.
지나친 금욕주의 지나친 겸손 겉치레 아니겠습니까?
겉모습에는 예수쟁이들 아니겠습니까?
20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하는 것이니
22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절,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은퇴한 선배 목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문제는 없는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도 항상 그런 고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율법과 규례가 신앙인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간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대형화되어 버렸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체 살아갑니다.
대형교회의 진리는
아마 그 교회의 우상화가 되어버린 목사님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8장 32절입니다.
진리眞理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여기에 자유함도 있습니다.
목사님 역시도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21절, 22절 말씀을 생각해 보면 깨달아집니다.
21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하는 것이니
22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우리 박영숙 집사님이 10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80세가 되면 또 10년을 더 살고 싶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도 이기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만 더 있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붙들고
세상을 맛보고
세상을 만지고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6절입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붙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세상을 맛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고
세상을 만지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지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주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은혜로운 성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