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며칠 전 미국에 있는 딸아이로부터 사진 몇 장을 이메일로 받았다.
딸아이와 같이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이 찍어준 것이라는데
이번에 34회 생일을 맞는 딸아이를 위하여 마련해준 조그만 생일케이크 앞에서 서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딸아이는 즐거운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나에게는 왠지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라면 제 엄마가 하다못해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었으련만 거기서는 그럴 사람도 없고 하니 그냥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미역국이 중요한 게 아니고 여자아이가 그것도 나이 삼십이 넘도록 아직 제 짝도 없이 저렇게 혼자 지내는 것이 옆에서 보기 안쓰러워서 그런 것이다.
딸아이가 멀리 미국에서 혼자 생일을 맞곤 한 게 어느덧 5년이 된다. 그러니까 5년전 2008년 여름 UC sandiego 국제관계대학원에 입학하여 2010년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뉴욕 한국일보 기자로 몇 달 있다가 아무래도 기자란 게 적성이 안 맞는다고 집어 치우고 대사관에 들어간 지도 벌서 2년이 된다. 딸아이의 인생 진로에 생각이 미치면 나는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건 내가 딸아이의 진로에 그간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중고등 학교시절 과외는 물론 그 흔한 학원에도 보내지 않았다. 공부는 제 힘으로 혼자 해야 한다는 제 엄마의 지론에 내가 동조한 까닭이다. 고등학교 입학 때가 되어 그 당시 처음 시작한 외고도 응시조차 안 시켰다. 대입 때에는 아무래도 SKY갈 성적은 안 되어 차순으로 서울시립대, 동국대, 홍익대에 원서를 넣었다. 서울 시립대는 제 오라비도 다니고 있었고 등록금이 싸기도 하여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원서 접수 날 학교에 같이 따라간 제 엄마가 본래 지망하기로 한 영문과가 아무래도 경쟁율이 높아 걱정된다며 한 단계 낮추어 국문과로 해야 한다며 본인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바꾸는 바람에 결국 국문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통에 딸아이는 4년 내내 흥미 없는 국문과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딸아이는 시립대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캐나다로 유학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틈에 준비 했는지 캐나다 York University에서 편입 허가를 받아 놨다는 것이다. 이걸 어쩌나 망설이고 있다가 아무래도 여자아이 혼자 낯선 땅에 보내는 것이 걱정이니 일단 시립대나 졸업하고 보자며 뒤로 미루어 버렸다.
그 뒤 딸아이는 시립대를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여기 저기 입사원서를 넣어 보았으나 잘 안되었고 우선 동네 어린이 영어학원에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 일 년 하더니 이게 전망도 없고 본래 본인의 꿈이 외교관이 되는 것이라며 외무고시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외무고시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가? 게다가 전공도 국문과라 여러 가지로 불리해서 이것도 잘 안되고 하니 이번에는 대학원에 진학한다며 고대 국제관계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사이 학비를 벌어야 한다며 서울시청 행정 서포터즈로 3개월씩 몇 차례 일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국에 유학을 가야 한다며 그것도 국제관계로는 Johns Hopkins가 최고이니 거기를 목표로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집에서 유학할 돈을 대주기 어려우니 장학금을 받는다며 국비장학생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Johns Hopkins에서 입학허가가 왔다.
6000불의 장학금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등록금이 년 6~7만불 수준으로 무척 비싸다.
그때 딸아이는 국비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첫해에는 합격하기 어려우니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며 deposit 500불을 보내고 입학을 일 년간 미루어 버렸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얼마 후 교육부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그런데 2008년 5월경 같이 원서를 넣었던 UC Sandiego에서 2년간 장학금 년 13000불과 12000불을 준다며 오라고 통보가 왔다. 여기는 등록금도 년 30,000불 수준으로 싸다. 이 정도면 국비장학금 년 32,000불로 추가 부담 없이 유학 할 수 있다고 여기로 가겠단다. 그래서 아깝지만 Johns Hopkins를 포기하고 UC Sandiego로 가게된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래 저래 나는 딸아이한테는 미안한 마음인 것이다.
얼마 전 내가 프린터를 갖고 싶다고 하니 딸아이가 하나 주문해 주었다.
캐논 프린터인데 스캔도 되고 복사도 되고 하여 요지음 내가 쓰기에 딱이다.
그간 잘 해주지도 못했으면서 덕만 보다니...어서 마땅한 신랑 만나 오순도순 사이좋게 사는 모습이 보고 싶다. 딸아! 사랑한다...(끝)
첫댓글 56까페에 아비의 애틋한 딸내미 사랑의글이 떳으니 틀림없이 훌륭한 배필을 만나는 계기가 될것 같군요.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따님에게 걸맞는짝궁이 나타날거예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