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天生山을 오르다
3월 4일 천생산으로 간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2월 5일 산행시에는 출발점에서 빙판에 미끄러져 오른 발목을 꼽치는 바람에 산 아래서 하늘만 쳐다보고 친구들 얼굴도 다 보지 못한 체 되돌아 왔다.
그날은 참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이었다. 예정된 출발지점으로 가지도 않는 버스를 탔다가 중간에서 내렸고 다른 버스를 타려 했으나 그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없는 바람에 부득이 약속시간에 신경이 쓰여 택시를 타고 갔더니 평소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기에 친구 찾느라 먼산팔며 기웃거리다가 경사진 빙판길에 미끄러져 오른 발목을 꼽쳤다
친구들 얼굴들도 다 못 보고 빨리 돌아오기 위해 먼저 출발하는 버스를 탄 것이 마을길을 몇 바퀴를 도는지 어디를 도는지 반월당까지 도착하는데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병원 진료시간이 토요일은 오전까지 이기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통증도 없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냥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친구 권굉보의 동생 권굉우에게 갔더니 인대가 놀란 것 같다면 2-3주는 안정해야 된다면서 반기브스라도 하라고 권하는 것을 그냥 견디기로 했다
과연 2주가 지나서야 지팡이 신세를 버릴 수 있었고 그 후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조금씩 낳아지는 기분이었으나 맘속으로는 3월의 산행에는 갈 수 있어야 할 텐데 라고 걱정하던 중 드디어 산행통지를 받고 이틀 전 우리 마을 천을산에 오르면서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오를 때는 무게 중심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좋은데 내리막은 그게 잘 안 되었지만 천생산이 높지 않고 산행시간도 2시간 30여분이라 하니 가보기로 했다
天生山은 경북 구미시 신동, 황상동, 금전동. 장천면 신장리에 걸쳐진 산인데 우리는 가장 쉬운 산행로를 택해 동쪽 장천면 신장리 쪽에서 오르기로 하였단다.
하늘이 내려놓은 산이라는 의미의 천생산 이름은 그 생김새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자로 보이고 정상이 일자봉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낳은 산이라는 의미로 천생산이라고도 하고,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방티산, 한일자로 보인다 해서 일자봉,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르며, 장천면 일대에서는 천생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혁거산이라고 부른다.
天生山城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이고 인근의 金烏山城과 架山山城과 더불어 영남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산성이다.
반월당 동아쇼핌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인원을 확인하니 海岩 조병로와 한상훈은 부인을 대동하여 나왔고, 겨울동안 서울 등산모임에 참석하던 서수백 청장이 봄이 되자 대구로 되돌아왔고, 韶南 양태지가 오랜만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東江 강민본 대장, 강석호, 酒聖 박재언, 酒仙 박주식, 서기성, 空谷 안승완, 정재운, 珠峯 조순희, 홍대춘, 鎬永 황영일, 그리고 나 최영진 이렇게 모두 17명이다.
쌍용사 주차장
버스를 타고 장천에서 천생산 동쪽 쌍용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여 천생산성 안내도를 보니 주차장에서 쌍용사, 군기고, 북문 옆 갈림길에 오른 후 동쪽으로 말무덤, 통신바위를 지나 산성을 따라 갈림길로 되돌아 온 다음, 북문, 동문, 미득암에 올라보고 점심을 먹은 후 산성을 따라 북문, 쌍용사,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쌍용사 오르는 길에는 작년 가을에 국화전시회를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쌍용사 전경
쌍용사는 최근 천생사라고도 부르고자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지도에는 천생사라 표시하고 괄호 속에 “구 쌍용사”라고 표시한 곳도 있었다.
쌍용사 대웅전 섬돌 아래는 거대한 호랑이 부부가 법당을 향하고 엎디려 부처님께 무슨 소원을 빌고 있다.
사람으로 환생하고 푼 소원일까? 만약 그런 소원이라면 별로 좋지 않은 소원일 것 같은데.......
호랑이 부부의 소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천생산을 오른다.
일기예보에는 날씨가 맑지만 바람이 세고 춥다면서 외출하는 사람은 조심하라더니 참으로 청명하고 예상 밖으로 바람도 적고 춥지도 않아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웃옷을 벗는 친구들이 생겼다
어유 목 말라
여보 이거 한잔...
역시 당신밖에 없어
이 바위 부근에 軍器庫가 있었던 모양이다.
산 중턱에 왠 군기고냐 하면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이 이곳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조총 갑옷 등 수많은 군기를 획득하자 이곳에 군기고를 짓고 보관하였던 모양인데 지금은 전부 분실되고 군기고마저 없어져 버렸다. 하기사 그런 사적이 있었던들 일제치하에 그대로 보존될 리가 없지......
가파른 길을 잠시 지나자 곧 이어 완만한 경사길이 다소 조심스러운 발목의 부상도 잊게 했고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주었다.
한 달을 방안에서 뒹굴다 나온 기분은 그야 말로 날 것 같다.
갈림길 위에 올라 쉬면서
여기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가서 통신바위와 말무덤을 보고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북문을 지나 정상으로 가기로 했다.
통신바위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바위 끝에 서면 위험하다. 엉덩이를 빼고 내려다보는데 구미 시가지와 산동 쪽이 훤히 다 보인다. 여기 바위 위에서 저 아래 연락병과 아마도 봉화 비스 무리한 것으로 통신하지 않았나 싶다.
통신바위 쪽에서 앞으로 가야할 정상쪽 으로 본 관경
통신바위 부근에서 내려다 본 파노라마
말무덤 까지 가보기로 했으나 길도 잘 모르고 여기서 부터는 내리막길이어서 다시 올라 오기가 힘들겠다며 발길을 돌려 천생산 정상 쪽으로 쳐다보니 산세가 아득하고 수려하다.
발걸음이 늦은 홍대춘이 아득한 산세를 배경삼아 한 컨 담아 달란다.
드디어 북문으로 돌아왔다 북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인데 왼 쪽으로 동문으로 통하여 정상으로 가는 길과 오른 쪽 능선으로 곧장 올라 산성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아마도 선두는 동문 쪽으로 갔나보다.
珠峯 조순희 회장은 그의 호가 말해주듯이 산행실력은 우리 산모임 중에서 가장 앞서는 구릅의 한사람이고 또 산사진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발 늦은 홍대춘과 발목이 신통찮은 나를 돌보느라 뒤처지게 되어 등산이 아니라 괘목을 만나고 명경을 만나면 사진을 찍은 등 그야 말로 山遊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정상 미득암
드디어 천생산의 정상 미득암에 도착했다
미득암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천상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광경 그대로이다.
우리글로 미득암이라 쓰여 있는데 확인한 바는 없지만 아마도 “쌀로서 뜻을 이룬 바위”라는 뜻으로 米得巖이라 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바위가 미득암이라 부르는 사연은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이 이곳 산성에 웅거하자 왜군들이 산성 안에 물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물이 없으면 결국 항복하리라 여겨 산성을 포위하고 여러 날을 지내며 항복하기를 기다렸는데 홍의장군이 그러한 왜군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 바위 위에 말을 세우고 말 등에 흰쌀을 부으며 말 등을 씻는 흉내를 내었다. 멀리 산 아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왜군이 산성 안에 말 등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족하다고 생각하고 포위를 풀고 퇴각하였으므로 그 후 이 바위를 미득암이라 부른다고 한단다.
기념촬영을 하는데 걸음 빠른 한상훈 부부가 사라지고 조병로는 부인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득암 옆에는 천생산성 유래비가 있는데 우리들이 그 옆에 점심상을 펴니 밥은 뒷전이고 술이 먼저 나왔다
막소주는 말 할 것도 없고 복분자, 머루, 구기자 등 갖가지 요강깨는 술과 서수백의 자경 무공해 냉이즙까지 나왔는데 나는 막소주와 냉이즙을 칵테일 해서 마셔보니 이 또한 별미였다.
주선 박주식의 머리 위에 코펠을 얹으면 라면 하나는 충분히 끓일 것 같다
점심이 끝나자 기분이 한껏 업그래이드 된 친구들이 자청하여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먼저 안승완
조순희와 안승완
홍대춘
홍대춘, 양태지, 정재운, 서기성, 강석호
앞에 사진에 이어 조병로와 황영일이 들어오고
한상훈 부부와 조병로 부부
산성을 따라 내려오니 핼기장도 있었다
하산길에 보물찾기
도토리 껍질이 너무나도 크고 탐스러워 집에 가지고 가서 장식품을 만든단다
오전에 지나왔던 통신바위 쪽의 자연산성 모습
쌍용사를 지척에 두고 산에서 내려가기 싫은 친구들이 하늘이 만든 분재용 소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경치와 햇볕에 빠져 담소를 즐기고 있다
한상훈, 조병로, 정재운, 강석호
한상훈 조병로 부부와 강석호
강형 열 내지 말고 그대도 다음부터 부인을 대동하시구려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포대화상이 저렇게 웃는 건지
그러고 보니 좀 닮았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팔공산 지묘동의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하고 그 옆의 보리밥집에서 저녁을 했는데, 빛에는 맥을 못 추는 나의 똑딱이가 촬영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기에 그 사진들은 생략하였다
첫댓글 청강, 산행기 잘 보았소 . 삐친 발목 그만하기 다행이요. 산을 좋아하는 이에겐 발이 보배아니던가. 사진에서나마 여전히 건강한 고향 친구들 면면을 볼 수 있어 기뻤다네. 항상 건강하고 좋은 사진과 글 자주 오려주게.
자구 수정도 하기 전에 인사부터 받게되어 감사하오. 나도 경상이었음을 천지사방과 조상님께 감사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