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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오 영 수
평지보다 한 시간도 더 해가 짧은 산골이었다.
그러나 서남으로 거창한 지리산(智異山)을 등지고 동북으로 덕천강이 흐르는 질펀한 골짜기였다. 강을 건너 산청(山淸)이 이십리가 될까 말까? 사람이라곤 일 년에 한두 번 바랑을 멘 대원사 중이 보일 뿐이다.
여기 동남향으로 후미진 골짜기에 억새와 솔가지로 덮은 움막이 하나 보인다. 양동욱(梁東旭) 내외가 들어 있다.
동욱 내외는 이 지리산 공비 소탕이 완료되던 다음해 봄에 여기를 찾아들어 막을 매고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피난살이를 부산에서 했다. 아무리 버둥거려봐도 살 수가 없었다. 살아갈 재간이 없었다. 무슨 짓이든 못할 게 없겠으나 할 짓이, 할 일이 없었다.
약만 쓰면 살릴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지 못해 아이까지 죽였다.
영선고개 판잣집마저 헐리게 되자, 별 작정도 없이 그만 떠버렸다.
진주에서 몇 달 동안 살았다.
목수나 미장이 뒷일꾼으로도 다녀봤다. 한 달에도 며칠, 그나마도 작자가 달라 품삯은 고사하고라도 제 몫에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의 아내가 양은그릇을 받아 이고 장사로도 나서봤다. 주로 촌마을을 찾아다녔다. 본전도 더 깍지 않고는 팔리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갈 수가 없었다.
산청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더 할 일이 없었다.
“여보, 두더지가 땅 밖에 나오면 죽게 마련이라오. 우리 그만 깊숙이 산골로 들어가서 밭농사나 짓자……”
이래서 돈푼 될 것은 모조리 팔았다.
밀가루 두 포대와 감자씨 반 말을 사고 우거지 한 꾸러미를 바꿨다.
괭이, 호미, 톱, 낫 이런 연모와 함께 된장 몇 사발, 소금 두 됫박 그 밖에 석유 한 병, 사기호롱 한 개를 꾸려서 산청을 뒤로 하고 산골로 접어들었다.
십 리도 넘게 들어갔다. 동욱의 걸음이 뜬다.
누구나 그래도 다 살아가는데, 누구나 다 사는 세상에서 나만 살지 못하고 이렇게 무인 산골로 쫓겨가다니…… 하니, 동욱은 어떤 패배감 같은 설움이 치밀어 목이 멘다. 그럴수록 뒤따라오는 그의 아내가 측은하기도 하고 미덥기도 했다.
“어쩔까, 산골은 어디 없이 매한가지가 아니겠나?”
하고 동욱이 골짜기를 두리번거리자,
“매한가질 바야 더 들어가요. 길이 막히는 데까지 가보자요!”
해는 벌써 한나절이 가까웠다. 어느 산굽이로 희부옇게 강물이 보였다. 먼발치로 강만 바라보고 무작정 걸었다. 벼랑을 끼고 얼마를 돌아나가자 강은 발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이 밭은 강이었다. 강을 건넜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오솔길을 따라 산기슭을 돌고 몇 등을 넘어 골짜구니로 들어섰다. 들어갈수록 질펀한 골짜기였다. 길 옆에 오지 그릇 조각들이 보였다.
“동네였나부지?”
“그런가 봐요!”
하잘것없는 이 오지그릇 조각들이, 이날 이 두 내외에게는 먼 조상의 무덤이나 찾은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반가웠다.
들어갈수록 골짜기는 더 넓고, 잡초가 엉클어진 속에 해묵은 밭들도 많았다.
두 내외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후미진 골짜기 든직한 바위 옆에다 짐을 내렸다.
동욱은 이날로 톱을 꺼내 움막 세울 나무부터 베기 시작했다.
이날 밤은 산짐승도 쫓을 겸 푸지게 불을 놓고 담요때기로 등만 두르고는 앉아 새웠다.
사흘 동안에 명색만의 움막을 얽어놓고 동욱 내외는 밭을 일구었다. 거의 폐답이 되어버린 밭뙈기에 불을 놓고 탄 자리부터 일구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괭이를 쥐면 어두워서야 놓았다. 그의 아내는 풀뿌리를 추리고 골을 지었다.
2월도 거의 다 갈 무렵 해서야 마지기 반 턱이나 감자씨를 넣었다. 씨가 모자라 조각조각 눈만 떼서 심었다. 그의 아내의 손끝이 갈기갈기 칼금이 지고, 동욱의 부르튼 손바닥이 무살로 굳어갔다.
3월달 접어들자 산나물이 지천으로 돋아났다. 우거지도 아끼는 참에 산나물은 뭣보다도 대견했다.
비가 한번 지나가자 감자도 움이 돋았다. 그와 함께 땅이 안 보이도록 풀도 성했다. 모두 작년 가을에 씨가 떨어진 풀들이었다. 동욱 아내는 손끝에 잡히지도 않는 어린 풀싹들을 서캐 잡듯이 하면서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해가 지고야 동욱이 먼저 괭이를 놓고,
“여보, 그 김 매려다 싹수 다치겠소, 그만 일어나지!”
해서야 일손을 놓았다. 이런 때 그의 아내는 으레 종일 매고 허빈 밭골을 돌아보면서
“소두엄이나 한 불 깔았으면…….”
하곤 했다. 정말 거름이 아쉬웠다.
동욱은 뒷골짜기 개울로 올라간다.
윗옷을 벗어 먼지를 털고 손발을 씻는다. 허리에 꽂은 수건을 물에 짜고 개울 옆 평퍼짐한 바위에 걸터앉아 낯을 문지르면서 산을 올려다본다. 이것은 동욱이 여기로 들어와서부터 아침저녁의 한 습관처럼 되었다.
동욱은 산이 좋았다.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은 깊을수록 좋고, 나무가 많을수록 좋다. 소나무보다는 잡목이 많을수록 더 좋다.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다.
가을이 더 좋고 겨울도 싫지 않다.
이렇게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든든하고 미덥다. 산골에 들어온 것이 마치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한결 마음이 흐뭇하고 너그럽다.
산골에 들어오기를 열 번 잘했다 싶다.
간간이 산이 쩌엉 하고 울 때가 있다. 하루에 한번쯤, 어쩌면 한 달에 몇 번쯤…… 산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산은 자주 운다. 먼 지축에서나 울려나오듯 은은하면서도 맑고 중후한 그런 울음이다.
동욱은 산이 울 때마다 산의 생명감 같은 것을 느끼고 마음이 경건해진다.
어느 골짜기에서 수노루 울음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온다. 땅거미가 진다.
움막으로 내려간다. 움막에는 저녁 삭정이가 빨갛게 타고 있다.
산나물에 밀가루를 섞어 끓인 죽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노곤히 피로가 젖어든다. 석유도 아낄 겸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감자밭 김매기나 마치면 고사리랑 더덕이랑 도라지랑 부지런히 캐다 놔야지…… 산나물도 늙기 전에 뜯어 말리고……”
“초벌은 한 이틀이면 끝날걸!”,
“감자는 싹수가 괜찮죠?”
“글쎄, 거름이나 한 불 깔았으면!”
“두어 가마니나 캘까?”
“두고 봐야지…….”
“햇감자나 빨리 났으면……
“……”
“여보?”
“……”
동욱은 벌써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궁리가 너무 많았다.
어느 밭머리에는 무슨 씨앗을 뿌리고, 어디든 뒤져서 봄상치를 갈고…… 그러나 때가 늦어 가는데 씨앗이 없다. 김매기나 끝나면 더덕을 한 보퉁이 이고 산청장에 나가서 씨앗을 바꿔 오리라. 옥수수와 호박씨도 잊지 않으리라, 하고 마음에 다지면서 눈을 감는다.
겨우 김매기를 마치자 동욱 아내는 부랴부랴 더덕을 캐 이고 산청장으로 나갔다.
동욱은 덕천강 저쪽까지 그의 아내를 바래다주면서,
“마중을 나오래?”
“뭘요, 빨리 올 텐데!”
“까짓 거 힐값에라도 넘기고 해안에 오라고!”
“그러 먼요!”
바위 벼랑을 돌아나가면 잡목 사이 오솔길, 이따금 다람쥐가 앞을 가로지를 뿐, 십 리를 가도 사람 하나 구경할 수가 없다.
정수리가 저리고 목이 가슴패기로 내려앉는다. 아무렇게나 바위에 기대 보퉁이를 내리고 가슴을 헤쳐 땀을 닦는다. 문득―이런 골짜기에서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도 남자라면, 순순히 길을 비켜줄까? 하니 그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리나케 보퉁이를 끌어 이고 허둥지둥 골짜기를 빠져나간다.
산청은 아직 초장이었다. 장머리 버스 정거장 옆에 보퉁이를 내리자, 차를 기다리던 안노인 둘이 더덕을 보고 반색을 하면서 팔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모두 얼마 받겠느냐고 한다. 생각해서 달라니까 사백 환에 주겠느냐고 한다. 좋다니까, 두 노인은 더덕엮음을 두 몫으로 챙겨놓고, 그중 두어 살 더 먹어 보이는 뚱뚱한 노인이,
“야산 더덕은 앙이제?”
그러고는 백 환을 더 붙여주면서,
“시상에도 말이 그렇지 응야, 이거로 한 뿌리씩 찾아 캐는 데 얼마나 욕을 봤겠노!”
경상도 어느 대처에서 절구경이나 다니는 할머니들 같았다.
동욱 아내는 돈을 받고 보자기를 접어 쥐고도 왠지 쉬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한 이웃에서 낯이 익고 정이 든 그런 할머니만 같아서 였다.
두 노인이 차에 오르고, 차가 미적미적 머리를 돌리자 동욱 아내는 들릴 리도 없는 “고맙시요, 고맙시요!” 하고 서투른 고개 절을 두 번이나 했다.
함경도에 더 가까운 강원도 산골에, 아직도 살았으면 그의 어머니도 저런 나이려니…… 하니 눈시울이 더워진다.
해는 한나절 가까웠다. 씨앗전으로 갔다.
무, 배추 합해서 백 환어치를 사고, 파, 부추, 고추, 호박, 박 씨를 꼭 십 환어치씩만 산다.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를 사 넣고 일어서려다 문득 생각이 나서 담배씨 이십 환어치를 더 샀다.
남편은 술보다 담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동욱 아내는 해를 한번 쳐다보고 남은 돈을 세어본다. 삼백 환도 더 남았다. 아쉬운 것을 생각해보면서 씨앗전을 돌아나오자 어물전이 있었다. 어물전이라야 북어, 간조기, 절인 고등어 이런 것들뿐이다. 눈 질끈 감고 소금투성이 간고등어 한 마리를 샀다. 인젠 가야지…… 하고 치마끈을 졸라매면서 또 한번 해를 쳐다본다. 그러나 아직도 돈이 남았다. 돈을 남겨 간대도 산속에서는 쓸 데가 없다. 석유는 아직도 켤 것이 있고 소금도 남았다. 아쉬운 것이 뭐더라? 그러면서 시장 어귀로 나왔다. 길가에서 파는 막말이국수가 눈에 뜨인다. 갑자기 입 안에 군침이 돌고 못 견디게 시장기를 느낀다. 값부터 물어보고 국수 한 대접을 먹었다. 오십 환을 치르면서,
“할머니, 산나물을 이고 오면 된장과 바꿔줄까요?”
“된장도 된장 나름이지…… 새댁 어데 사요?”
“대원사 가는 골짜기요!”
“인젠 그게도 괜찮던교?”
“그러먼요!”
“우리도 난리 전에는 여게서 삼십 리나 들어간 산골에서 살았소. 난리통에 논밭 전지 다 버리고 이리로 나왔소!”
“……“
“휴우, 우리도 자식 놈이나 돌아오면 들어가야지…….”
“그래도 우리가 살 곳은 산골밖에 없더만요!”
“새댁, 고사리나 두릅 따가 오소, 내 묵을 만한 장하고 바까줄 게니요!”
“예, 그럼 이담 장날 오께요!”
혼자만 국수를 먹은 것이 남편에게 뭔지 미안한 것 같아, 남은 돈으로 몽땅 엽담배를 사 가지고는 걸음을 빨리한다. 줄곧 마음이 흐뭇하다. 남편 앞에 불쑥 내밀 담배를 생각해도 즐겁다. 고등어 한 토막을 구워놓으면 남편은 어떤 상을 할까, 그것도 보고 싶다. 올 때는 무거운 짐 때문에 고개도 돌려 보지 못한 벼랑이나 산골을 두루 살피면서도 걸음은 재빠르다. 골짜기마다 벼랑마다 진달래가 무더기무더기 피었다. 검도록 푸른 소나무 사이사이, 잡목 새움들이 고물처럼 부드럽고 단풍보다 곱다. 어디서 수자리를 보는지 낮꿩이 깃을 치고 운다.
벌써 산속은 해가 설핏하다. 강을 건너고 산모퉁이를 돌고 등을 넘어 골짜기로 들어서자 움막이 보인다. 여보 하고 소리를 칠까 하다 그만둔다. 그토록 반가웠다.
남편은 움막 저만큼서 등을 보이고 괭이질만 하고 있다.
“좀 쉬어요!”
동욱이 그제야 흠칫 돌아보고,
“어, 왔군! 나가볼까 했는데…….”
하고 다가온다.
“왜요, 길 잘못 들까봐?”
“나무꾼에게 업혀 가지나 않았나 하고!”
“업혀 갈래도 사람이 있어야지, 자 이거……”
“뭐야?”
“보기나 해요!”
“음, 담배다……”
동욱은 담배를 코에다 대보고는 신문지에다 굵지감치 한 대 말면서,
“그래, 씨앗은 대강 바꿨나?”
“위선 급한 것만 대강대강…….”
“담배보다 그 갈퀴 하나 살걸 그랬지?”
“미처 생각이 안 나서…… 담 장날 사지!”
동욱은 담배를 붙여 물고, 두어 발 남은 해를 바라보면서 또 괭이를 든다.
“옜소!”
“이건 또 뭐야?”
“펴 보라요!”
“……음, 담배씨! 이왕이면 요게 뭐야, 요게 얼마 어치야?”
“그게 그래 뵈도 한 마지기 넘게 간대요, 어느건 담배씨라니!”
동욱은, 이런 그의 아내가 볼이라도 꼬집어주고 싶도록 귀엽고 고마웠다.
이날 저녁상 위에는 고등어 한 토막이 놓였다. 동욱은 코가 벌름해지면서,
“웬 생선이야?”
“돈이 남기에 한 마리 사왔지!”
동욱은 뻑뻑한 죽을 두어 숟갈 떠 넣고, 생선 한 점을 떼어 씹으면서,
“이거 입버릇 사나워지겠는데……”
“아따 그럼, 간생선도 한 마리 못 사먹고 살랑가베?”
“그야 말이 되나, 하지만도 사람의 입처럼 간사한 게 없거든!”
“간사 아니라 무슨 사라도 없으면 할 수 없고!”
동욱은 벌써 한 그릇을 비우고 두 그릇째를 받아놓고 눈으로 생선 접시를 가리키면서,
“왜 안 먹어, 같이 먹자오?”
“그 머 한 토막, 난 오늘 국수 한 그릇 먹었시요!”
“그 잘했군, 건데 그 국수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그 동침에 메밀국수 말야 응?”
“그야, 꿩고기 다져서 밀국수는 어떻고!”
“아무래도 메밀 좀 해야지…….”
“가을엔 밀씨도 좀 갈아요!”
“거름이 문제야. 거름 때문에 돼지는 꼭 한 마리 길러야겠는데……”
“난 어떡해서라도 열중이(닭) 한 자우* 사 칠래요.”
“살키랑, 쪽제비 때문에 어려울 걸, 닭은!”
“어떡 허나. 많아요, 살키랑 쪽제비가?”
“산골이 이토록 깊은데 많잖을라고!”
“낮에도 오나요?”
“올걸 아마!”
그러나 동욱의 속심은 그의 아내 못지않게 닭을 치고 싶었다. 살쾡이나 족제비를 막으려면 개를 길러야겠는데, 사람의 입치레도 못하는 지금의 형편으로서는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래도 한 자우만 쳐볼래……”
“닭보담은 틈틈이 나무나 잘라 놨다가 추이 나기 전에 집부터 세워야지!”
“집이 그렇게 쉽나요, 품삯이 얼마나 들겠는데?”
“까짓 기둥만 세워주면…… 건데 산꼭대기에 오래 전부터 막을 매고, 목기(木器)를 깎고 사는 노인이 있대. 절(대원사)에도 간간 내려온대. 내 한번 찾아가볼까부다.”
“햇감자나 나거든 두어 됫박 가지고 가보지.”
“감자는 싹수가 될 성한데!”
“서너 가마 팠으면·…….”
“운 욕심도…….”
“……”
“석유 닳는데 그만 자지!”
다음 날부터 동욱 아내는 양지 바르고 흙살이 두터운 밭머리를 골라 씨앗을 뿌려놓고는 줄곧 산을 타고 오르내렸다. 부지런히 고사리를 꺾고, 더덕, 도라지를 캐다 날랐다. 밤에는 도라지를 짜갰다.
실상 더덕은 장아찌감으로 한철 물이지만, 고사리나 도라지는 말려두고 일 년 내내 아쉬운 대로 팔아 쓸 수가 있다. 이쪽 풍속은 제사 때 뭣을 못해도 고사리, 도라지 나물만은 빼지 않기 때문이다.
꽃대가 돋기 전에 산나물도 넉넉히 뜯어 말려야 했다. 산나물도 말려두면 우거지 대신 산골에서는 요긴한 찬거리다.
다음 장날에는 두릅을 꺾어 가서 장과 바꿔올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두릅도 양달은 벌써 늙었다. 응달을 더터야 했다.
동욱은 동욱대로 풀이 성하기 전에 몇 뙈기 더 일구느라고 기를 쓰고 괭이를 놓지 않았다.
삼사월 긴 해도 이들에게는 이토록 짧기만 하고 바쁘기만 했다,
산은 날마다 풍성히 부풀어오르고, 철쭉이 이울자부터 산나물도 늙어버렸다. 동욱 아내는 호롱불 밑에서 말린 도라지와 고사리를 한 주먹씩 꾸러미로 꾸리고 있다. 동욱은 취를 섞어서 아끼는 담배 한 대를 말아 들고는,
“늦어도 중복까지는 조도 씨를 넣어야지.”
“메밀씨랑 콩씨랑 바꿔야겠네!”
“초복이 언제지?”
“낸들 아우, 그저께 장에 나가보니 보리가 벌써 누렇고 곧 모내기도 하겠데!”
“딸기가 어 때?”
“아직도 좀!”
“비가 오나부지?”
“와야지, 그새 가물었는데!”
중복을 며칠 앞두고 두어 마지기는 실하게 조씨를 뿌리고 메밀도 두어 골 갈았다. 좀 이르기는 했으나 산골은 철이 늦드는 대신 가을이 빠르다.
그새 감자는 꽃도 이울고 잎마저 누렁누렁해왔다. 꼭 파기 알맞은 때다
“내일쯤 감자를 팔까?”
“왜 아직 더 둘까?”
동욱 아내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두긴, 파기가 아까워서 그렇지!”
하기야 아직도 매운 산골짝 바람에 입김으로 손을 불어가면서 일군 밭이었다. 씨가 모자라, 꿩알 같은 감자 낱을 세 쪽 네 쪽으로 잘라서 심은 감자였다. 그런 만큼 움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해서 조바심도 여간이 아니었다. 미처 싹수가 보이지 않는 구덩이는 일일이 파보기도 했다. 더러는 곯아진 씨도 있었다. 그런 구덩이가 김을 매고 북을 돋울 때마다 이가 빠진 것같이 보기 싫고 서운했다. 움이 돋고부터 아침저녁 할 것 없이 하루에도 한두 번은 밭골을 돌아보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중복 무렵부터는 두더지가 지난 것처럼 흙이 부풀고 금이 간 사이로 발간 감자알이 보이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헤집고 굵은 것부터 조금 캐어 먹고도 싶었다. 그러나 누가 엿보기나 하듯 얼른 흙을 덮어두곤 했다. 미리 파내기가 뭔지 아깝고 손끝이 저렸다. 하루를 더 두면 그만큼 더 굵을 것도 같았다.
이토록 살뜰히 가꾸고 아낀 감자 농사고 보면, 파기가 아깝다는 그의 아내의 심정을 동욱도 모를 바 없다. 그러나,
“허, 농사를 지어놓고 거두기가 아까워?”
하고 동욱이 웃자, 그의 아내도 따라 웃으면서,
“날씨만 좋거든 내일 파자요!”
산속의 날씨는 변덕이 많다 파랗게 갠 하늘이 금세 흐리고 흐렸는가 하면 어느새 구름이 활짝 산너머로 걷혀가버리곤 한다.
다음 날 동욱은 괭이로 골을 파헤치고, 그의 아내는 뒤따라 감자를 줍는다. 여윈 땅이라 푸수는 좋지 않아도 알은 소복소복 오지게 찼다. 한나절 가까이 해서 감자는 가마니로 찼는데 아직도 캘 것은 반도 더 남았다. 내외는 감자 캐는 재미에 시장기도 잊고 한 구덩이씩 골을 따라 갔다가 골을 따라 오는 동안 어느새 해가 산머리에 가깝다. 동욱이 허리를 펴면서,
“아무래도 오늘은 못 다 캘걸…….”
이때 난데없는 목탁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동욱 내외는 누가 먼저도 없이 서로 눈을 맞부딪고는 돌아본다. 밭머리에 중이 바랑을 멘 채 합장을 하고 있다.
“대원사 스님인가보지요?”
“그런가봐!”
동욱이 앞서 중에게로 다가간다. 오십은 넘어 보이는 곱게 늙은 중이었다.
“지나는 길에 축원이나 드리고 가려고…… 나무관세음…….”
동욱 내외에게는 그토록 사람이 아쉽고 그립던 나머지라 중이 무척도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지 않아도 일손이 좀 뜸해지면 스님을 한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하고는, 움막에 가서 좀 쉬었다 가라고 한다. 중은 연신 합장을 하면서,
“황송하옵니다!”
앞서 가던 동욱이 그의 아내를 돌아보면서,
“그 감자 좀 빨리 씻어 삶지…….”
그렇지 않아도 그의 아내는 벌써 감자를 한 바가지 담아 들었다. 동욱이 움막 옆에 억새방석을 깔고 자리를 권하자,
“이른 봄, 산청에 조그마한 불사가 있어 지나갈 때 먼눈으로 봤습죠. 전에 여기에서 살던 분들이 돌아오셨거니 했습죠!”
“전에는 여기 몇 가호나 살았는지요?”
“네 가호가 살았음죠. 그 통에 집도 태워버리고 지남지북으로 다 혜어졌습죠. 모두들 살았는지 죽었는지 휴우, 나무관세음……”
“차차 찾아들 오겠지요. 건데 스님, 이 산꼭대기에 목기를 깎는 노인이 계시다는데 혹…….”
“있습죠, 왜 그러시오?”
“딴 게 아니고, 가을이나 거두면 취 나기 전에 집을 한 칸 세워야겠는데, 보시다시피 이런 꼴입니다…….”
“그러먼요, 그러먼요!”
“집이래야 까짓 비바람이나 막으면 그만이니깐요!”
“소승이 명념하고 알아봅죠. 노인이 간간 절에도 내려오죠. 간단히 절 중수도 늘 그 노인이 와서 하죠!”
“꼭 좀 부탁합니다!”
이러는 동안 감자가 나왔다.
“대접이 아닙니다만 드십쇼!” '
“황송하오이다!”
“첫농사를 지어 이제 막 거두는 참인데, 마침 스님 이 오셔서…….”
“황송하오이다!”
막 캐낸 감자라서 그런지 까풀이 살을 붙이고 가로세로 터진 것이 타박하면서도 매끄럽고 구수하다.
“그 참 맛이 좋소이다!”
“스님이 시장하셨지요!”
나무바가지에 그득했던 감자를 거의 다 먹고, 냉수 한 사발을 마시고서야 중은 산마루에 두어 뼘이나 남은 해를 바라보면서 일어선다.
“길이 얼마나 되는지 해가 다 됐는데……?”
“시오 리지만 밤길도 예산데 상관 마십쇼!”
“시월 중순께부터면 좋겠는데, 그 노인 꼭 좀…….”
“여부가 있겠습니까. 염려마십쇼!”
중은 또 한번 합장과 함께 허리를 굽히고 돌아섰다.
두 내외는 밭머리까지 따라가면서, 동욱이,
“스님, 지나는 길에는 꼭 들러주시오…….”
“황송하옵니다!”
바쁜 걸음도 아니었다. 산발치 오솔길로 해서 중은 천천히 골짜구니로 사라져갔다.
“한 골 더 캘까?”
“내일 하자요, 해도 다 됐는데!”
동욱 내외는 더욱 바빴다.
담배밭도 손질도 해야 했고 풀도 베다 썩혀서 거름 준비도 해야 했다. 집나무도 쳐서 그새 말려도 둬야 했다.
그의 아내는 아내대로 채전밭 손질이며, 섬감자나 되는 감자도 잔 것은 가려서 씨앗감으로 간수도 해야 했다. 고추 모종도 옮겨야 했고, 딸기도 이울기 전에 한두 번은 따다 내야 했다. 이러는 동안, 움막이 하도 허전해서 울삼아 심은 옥수수는 벌써 뿌리에 엄발을 내고 반 허리나 자랐다. 밭두렁에 올린 호박이 줄을 뻗고 눈이 부시도록 노란 꽃이 피었다.
추석 무렵부터 산꼭대기는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을 거두기까지 아직도 한 달쯤, 틈을 타서 동욱 내외는 그때그때 쳐놓은 집나무를 내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기둥감을 골짝 밑으로 굴려 내려놓고, 그의 아내는 머루 열림새를 보러 간다고 등을 타고 옆 골짜기로 넘어갔다. 동욱은 몇 거듭 더 연목을 날라놓고 그루터기에 앉아 그의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한나절이 가까웠다. 그의 아내는 쉬 돌아오지 않는다. 동욱은 옆골짜기를 향해,
“그만 내려가지―”
하고 큰 소리를 질러본다. 그러나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 대답이 없다.
“어딨어, 내려가오.”
입 가장자리에 손을 모아 또 한번 큰 소리로 지르고는 귀를 기울인다.
“이리 와봐요―”
그의 아내의 쨍한 목소리가 메아리와 함께 들려온다. 동욱도 산 중턱을 가로지르면서 ,
“어디야?”
“여기요!”
소리를 따라 나무 사이로 보아하니, 그의 아내는 땅바닥을, 살피고 허비고 한다. 동욱은 이만치에서 뭣을 빠뜨렸나…… 하면서도,
“아니 여보, 머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긴 하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돌아보지노 대답도 않고 연방 땅바닥만 살핀다.
“아니 당신네 고향에서는 머루가 땅속에서 돋는가?”
그제서야 그의 아내는 해죽이 웃고 돌아서면서 눈 위에다 송이를 몇 개 흔들어 보인다.
“응, 송이를 찾는군!”
그러고 보니, 송이 냄새가 풍기긴 한다. 동욱도 발밑을 살피고 내려가면서,
“있어?”
“송이밭인가봐요, 그 마구 밟지 말아요!”
“가만뒀다 비 온 담에 와보지?”
“그럴래!”
“ 루는?”
“머루는 통 달리지 않았어!”
“내려가지?”
“가요!”
그러면서 그의 아내는 아직 샅샅이 피지 않은 탐스러운 송이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면서 킥킥 하고 웃는다. 동욱이 건너다보고,
“뭐?”
“이거!”
하고, 송이를 보이면서 더욱 킥킥 댄다. 동욱도 따라 웃으면서,
“못되게스리!”
그러나 그의 아내의 눈이 자꾸만 부드러워진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따끈한 볕살, 폭신한 마른 풀발은 음침한 움막보다는 한결 좋았다.
산은 너그럽고 허물이 없어 좋다.
이런 일도 있다.
여름 동안은 매일같이 뒷개울로 땀을 씻으러 가기 마련이었다. 움막에서 훨훨 벗고는 앞만 가리고 그대로 올라간다. 언젠가는 동욱이 그의 아내의 등을 밀어주다가,
“요즈막 살쪘다!”
그러면서 궁둥이를 한번 찰싹 때렸다. 그의 아내는 킥 하고 돌아앉으면서 동욱의 배 밑으로 마구 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동욱은 보란듯이 그대로 버티고 섰다. 연거푸 물을 끼얹던 그의 아내는,
“어머나 무서라!”
그러고는 도로 돌아앉아버렸다. 동욱은,
“임자한테 인사를 드리는 거 야!”
“에구, 인사도 무슨…… 얌치머리도 없이!”
이날 동욱은 기어코 알몸인 그의 아내를 알몸에 업고 내려오면서,
“당신이 나를 업으면 어떻게 되지?”
“망측해라!”
이틀 후에 비가 왔다. 동욱 아내는 한 광주리나 송이를 따왔다. 다음 날 동욱 아내는 송이를 이고 산청으로 나갔다. 동욱은 종일 집나무 껍질을 벗기고 깎았다.
이날 그의 아내는 병아리 세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동욱도 속으론 무척 반가우면서도,
“집을 짓자면 못이 더 급하잖아?”
“또 가지 뭐!”
동욱은 강아지를 안아 올리면서,
“송이가 어데 늘 있나?”
“아직 첫물인데 두어 번은 더 따요!”
“비가 와야지?”
“내일도 또 가볼래!”
“송이는 날래 팔리지?”
그의 아내는 광주리에서 병아리를 꺼내면서,
“차 타는 손님들이 내려놓기가 바쁘게 사가두먼…… 이봐요, 토종이지?”
“요게 수놈인가?”
“벼슬이 그런가봐!”.
“건데 어따 기르지?”
“위선 싸리나 베다 우리나 만들어요!”
동욱은 병아리보다는 아무래도 강아지가 좋았다. 산골에서는 개 한 마리가 몇 사람보다 더 요긴한 때가 있다. 더구나 이런 깊은 산골일수록 개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컹컹 짖어주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싶다.
저녁을 치르고 자리에 누워서도 동욱은 강아지를 끼고 쓰다듬고 하면서,
“강아지도 팔던가?”
“팔긴, 전에 장 바꿔 온 할머니네 개가 난 새낀데!”
“그래, 그저 가져가라던?”
“이담에 옥수수라도 한 광주리 갖다줘야지!”
“암캔가?”
“산속에서는 수캐가 좋대!”
다음 날 동욱은 싸리를 베다 닭우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됐는데 가둬 보지?”
“옜다, 요것들 고생했다!”
“건데 모이는 뭘로 주지?”
먹을 게라곤 밀가루 몇 됫박과 감자뿐이다.
“조 이삭을 꺾어다 줄까?”
“낮에는 그대로 내놓지, 제멋대로 주워 먹게!”
“쪽제비가 안 올까 몰라?”
“낮에야 설마!”
“어데 산으로 달아나버리면 어떡해요?”
“위선 한 이틀 가둬 먹이지, 그 물부터 좀 떠와요.”
양재기에 물을 떠다 놓고 조 이삭을 꺾으러 나간 그의 아내가 허둥지둥 되돌아오면서 ,
“여보, 저기 누가 와요!”
우리 안에만 눈을 박고 있던 동욱이 누가 온다는 말에 흠칫하고 일어선다. 아내가 가리키는 조발 저편에 분명 누가 오고 있다. 노인이다. 군복 같은 윗옷에다 망태기를 메었다. 망태기는 연장 망태기가 틀림없었다.
“산꼭대기 목수 노인일까?”
“그런가봐!”
“이리로 오지?”
“오잖구요!”
동욱이 우적우적 마중을 나간다.
두어 간 앞에서 동욱이 먼저,
“산막에서 오시는……?”
“그렇소, 대원사 스님이…….”
너무나 반갑고 대견했다.
“그 수고 많았습니다!”
그와 함께 노인의 연장 망태기를 끌러 든다.、
노인은 육십이 좀 넘었을까? 초췌한 얼굴에 말수가 적고 조용하나 기력은 아직도 좋아 보인다.
동욱은 그의 아내에게 노인 점심을 눈짓으로 시키고,
“양동욱이 올씨다!”
“예, 박× × 임더!”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예, 달포 전에 절간에 갔라가 스님에게 얘기 들었지요. 인제 이 골짜기에도 사람이 살게 되는구나 하니 얼매나 고맙고 반갑소. 그래서 일찍이 왔소!”
“고맙습니다. 건데 아직 가을을 못 거둬서 노인 진지가…….”
“댁들은 뭘 잡숫소?”
“먹는 게 형편없죠!”
“그래 대관절 뭘 잡숫소?”
“나물죽이나 감자로…….”
“좋지요, 그저 댁들 자시는 대로만 먹겠소. 그런데 집나무는 좀 쳐놨소?”
“네, 그새 말려서 내려놓기는 했는데…….”
“어데 봅시다.”
박노인이 먼저 일어선다.
뒷골짜기에 내려놓은 나무를 보고 박노인은,
“통나무로 대강 자귀질이나 해서 세웁시더.”
“아 그러먼요. 그저 비바람이나 막고 흙벽이나 좀 두툼하게 바르면 되죠!”
“이만하면 나무는 되겠소!”
“건데 지붕을 덮을 억새를 아직 못 벴는데…….”
“지천으로 있는데, 기둥이나 세워놓고 천천히 비지요.”
감자로 점심을 때웠지만, 저녁 엔 해콩을 까 넣고 끓인 밀가루 나물죽을 박노인은 달갑게 그릇 반이나 먹었다. 시원한 트림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싫고,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들어와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사는데 그게 앙입디더. 역시 사람은 사람끼리 이렇게 살아야 귀천이 있겠십디더.”
동욱은 초벌에 따 말린 엽초를 빼다 노인에게 권하면서,
“아무렴요!”
“이 운 담배가……?”
“그 조금 심었더니 땅이 박해서 그 꼴입니다.”
“전에는 이쪽 둘레만 해도 틈틈이 수백 호가 박혀 살았는데, 그놈의 난리통에 많이도 죽고…… 에밋 끔찍한 놈의 세상도…….”
“그동안 노인은 쭉 산에만……?”
“아니지요, 절에도 가 있고 했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무인공산임더!”
“여기 들어오신 지 이십 년이면, 젊었을 땐데 무슨 곡절이라도……?"
박노인은 피우던 담배를 멎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박노인은 경상북도 청송 극방에서 살았다. 목수 겸 흙일을 했다. 사십에 장가를 들었으나 자식도 없었다.
어느 해 봄, 육칠십 리 떨어진 읍내에 가역을 맡아 한 달 동안 일을하고 돈푼을 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나이 어린 아내 옷감도 끊고 신발도 샀다. 반은 차를 타고 반은 걸어야 했다. 늦게 떠난 길이라 밤 늦게야 닿았다. 달밤이었다. 마을은 죽은 듯 잠이 들어 있었다. 그의 집 앞에서 기침을 할까 하다 그만뒀다. 좀 놀라게 해줄까 하고 축담 밑에 다가섰다. 방문 앞에 낯선 고무신이 놓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그럴 리가…… 하고 고무신을 손끝에 걸고 달빛에 비춰 봤다. 자기가 신던 신은 아니었다. 그는 문구멍으로 눈을 갖다댔다. 창으로 스며든 달빛으로 해서 방 안이 어슴푸레 보였다. 난장판이었다. 눈을 닦고 몇 번 깜박여 자세자세 보았다. 분명 일손이 급할 때 데려다 쓰던 방구(尹邦丸)녀석이었다. 녀석의 팔을 베고 모로 누운 그의 아내가 녀석의 배 위에다 한 다리를 올리고 잠이 들었다. 그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뒤로 돌았다. 짚단을 가져다가 방문 앞에 쌓았다. 그 위에다 옷감이랑, 신발이랑 얹고 성냥을 그어댔다. 불을 댕기자 그는 연장 망태기만 메고 집을 빠져나왔다. 마을 뒷길에까지 나섰을 때, 불은 이미 처마로 옮아 붙었다. 그는 그만 미친 듯이 ‘불이야 불이야’ 하고 두어 번 고함을 질러놓고는 마을을 뒤로 하였다.
그가 하동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오기는 그로부터 두 달 뒤였다.
박노인은 잠에서나 깬 듯 다시 담배를 붙이면서,
“곡절이야 없겠소만 그 머 다……”
그의 아내가 옥수수를 삶아 내왔다. 알이 덜 여문 것이 박노인에게는 이빨에 맞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동욱은 조부터 한 골 베 깔았다. 아직도 좀 이르기는 하나 박노인의 끼니 때문이었다.
이날부터 기둥 나무를 깎는 박노인의 자귀 소리는 종일 메아리로 산골짝을 울렸다.
이래서 엿새 뒤에는 움막 옆에다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칡으로 서까래를 얽고 나흘 뒤에는 억새로 지붕을 덮었다. 지붕은 되도록 두텁게 덮었다. 지붕을 덮고 보니 반 일은 더 된 것 같다.
싸리와 칡으로 벽을 얽고 초벽도 하였다. 벽이 마를 동안 구들을 놓기로 한다. 구들돌을 찾아다니면서 박노인이,
“어림으로 봐서 여기쯤 방앗간이 있었는데…….”
“디딜방아지요?”
“아암요!”
다음 날 박노인은 기어코 방앗간 자리에서 돌확을 찾아냈다.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동욱이 아내였다. 그렇지 않아도 집 일이나 끝나면 절구를 하나 파달라고 박노인에게 조르려던 참이었다.
벽과 재세가 마를 동안 문 짤 나무를 켜기로 한다. 박노인은 문만은 나무를 좀 말려야 한다고, 그동안 울부터 두르자고 한다. 동욱은 울이 무슨 울이냐고 했으나, 박노인은 울 없는 집은 갓 쓰고 두루마기 벗은 것 같아 집꼴이 아니라고, 허술한 집일수록, 외딴 집일수록 울이 있어야 한다고 우긴다.
박노인 말대로 울을 둘러놓고 보니 월등 아늑한 것이 더욱 정이 든다. 생각할수록 울 두르기를 잘했다 싶다.
명색만이라도 사립이 있어야 한다코 박노인은 또 사립까지 해 달았다.
방구들이 거의 마르자, 박노인은 움막이 옹색하다고 억새방석을 깔고 잠자리를 옮겼다.
이날 밤 동욱 아내는 오래간만에 남편 겨드랑 밑으로 다가들면서,
“집도 거반 다 됐는데 품삯을 어떡하오?”
“글쎄 보아하니 여기 눌러 살 것 같아!”
“그랬으면 좀 좋겠소?”
“아마 그럴 거야, 두고 보라고!”
사흘 뒤에 문 세 짝을 달고 부엌문도 달았다. 양 방에 선반도 하나씩 걸었다.
일이 거의 끝나자 박노인은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돌아다니면서 저물도록 잔손질을 했다.
저녁을 치르고 나서 담배를 말던 박노인이 동욱 아내를 보고,
“철은 늦었지만 포고(표고) 밭에 가보시지.”
한다. 표고 말을 듣고 동욱 아내는 눈에 광채를 내면서,
“어딘데요. 낼이라도 가볼래요!”
지리산은 옛날부터 표고가 하나의 특산물로 되어 있다. 박노인의 말인즉, 전에 여기 살던 사람들은 해마다 표고 가마니씩이나 따서 용돈으로 바꿔 썼다고 한다.
동욱 아내는 내일은 기어코 표고 밭으로 가보리라 마음먹고 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 동욱 아내는 일찌감치 서둘러 광주리를 들고 나서는데 박노인이 연장들을 챙기면서,
“잘 기시오, 나는 오늘 갑니더!”
한다. 동욱 아내는 얼떨해서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움막으로 되돌아가서,
“여보, 노인이 가신다는데…….”
“뭐이?”
“아이, 노인이 가신다고 연장을 챙겨요!”
동욱이 눈을 뚱그래 가지고,
“가다니 어딜?”
하고 나오자, 박노인은 다가오면서,
“인젠 가겠소. 그동안 신세 많았습니더!”
“아니 가시긴 어델……”
“산으로 가봐야지요!”
동욱 내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욱은 침을 꿀꺽 삼키고 노인의 소매를 잡으면서,
“아니, 이렇게 집을 지어놓고 우린 같이 계실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올 때 나무를 캐놓고 왔심더. 가서 대목 전에 방망이나 깎아 내야지요!”
동욱 아내는 손을 맞비비다시피 하면서,
“여기서는 못해요?”
“그게 나무를 캐놨이더!”
그러고는 연장 망태기를 어깨에 건다. 동욱은 연장 망태기를 잡고,
“어데 이럴 수가……그래서 실상은 품삯도·……”
“품삯이 무슨 말인교, 입 살았으면 그만이지, 자 가겠심더, 잘 기시오…….”
그러나 동욱은 더욱 망태기를 검잡고, 그의 아내는 앞을 막아서서,
“가시더라도 이 망태기는 좀 끌러요!”
“그럼 오늘 하루만이라도 더 묵고 가시오!”
“달포 동안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이게 될 말요!”
“그러시오, 오늘 하루만이라도…….”
박노인은 할 수 없어,
“허 참!”
하고는 망태기를 내린다.
동욱 아내는 재빨리 썰어 말린 감자와 함께 메밀을 한 됫박이나 섞어 빻기 시작한다.
박노인은 그냥 놀기가 멋쩍다면서 판잣조각으로 등잔을 만들고 재떨이도 하나 만들었다. 닭장이 허술하다면서 고쳐도 주었다.
동욱 아내는 메밀가루 반죽을 해놓고 그의 남편을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병아리 한 마리 잡아요!”
가을 해는 서둘 나위 없이 짧다. 점심 겸 저녁 겸해서 닭국에 메밀국수를 푸지게 먹었다. 동욱은 잘 마른 엽담배를 한 사리 노인 앞에 내다놓으면서,
“가시긴 하되 고대* 내려오시오.”
“형편대로 합시더!”
“우리도 적 하고 노인도…….”
“나도 그러고 싶소만…….”
“가을이나 거두면 세 식구 양식쯤은 걱정 없을 게고 방도 둘이고 한데…….”
“오거든 괄세나 마소!”
“무슨 그런 말씀을…….”
“어찌 됐기나, 이 골짜기에 들어와 사는 기 얼매나 고맙소·…….”
누구에게 뭣이 고맙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박노인은 말말이 고맙다고만 한다.
다음 날, 박노인은 가는 길에 절에 들러서 스님을 보고 가겠다고 일찍 떠날 채비를 한다. 동욱은 보따리 속에서 안이 인조털로 된 반외투를 꺼내 가지고는,
“산꼭대기는 바람이 세차고 추울 덴데!”
하고, 박노인 앞에다 내민다. 그러나 박노인은 펄펄 뛰면서 될 말이냐고 사양을 한다. 그러자 동욱 아내가, “웬만만 하면 솜옷이라도 한 벌 지을 참인데, 위선 이거라도 입흐시소!”
박노인은 한동안 먼 곳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외투를 받는다. 그와 함께 고개를 옆으로 돌려 훅 콧물을 한번 들이키고는 그대로 사립 밖으로 나선다.
“일 마치고 고대 내려오시오!”
“스님 만나거든 안부 전해주세요!”
박노인은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 언젠가 대원사 중이 돌아간 그 모퉁이로 천천히 돌아갔다.
이날로 동욱 아내는 표고밭을 찾아갔으나 표고는 벌써 다 지고 없었다.
옻나무는 성급히도 서둔다 했더니 어느새 신나무도 불이 타듯 물이 들었다. 아침마다 된서리가 차북히 내리고 먼 산등성이는 날로 엉성 해간다.
가을을 서둘러야 했다.
조부터 거둔다. 메밀도 털고 고춧대도 뽑고 호박도 따 들였다.
보리만 갈면 가을일도 뜸해진다.
동욱 아내는 맞머리부터 따 말린 고추를 말 반 턱이나 이고 산청장으로 나가 보리씨와 밀씨로 바꾸고, 헌 가마니랑 신문지랑 문종이랑 사왔다.
보리씨는 거름이 없어 반밖에 넣지 못했다. 그동안 알뜰히 모은 잿거름을 내다 마늘도 한 골 심고는 소금물에나마 김장도 담갔다.
인젠 급하게 서둘러야 할 일도 없다.
도배를 시작했다. 신문지로 벽부터 바르고 양회봉지를 풀어 방바닥을 발랐다. 문까지 바르고 보니 방 안이 한결 훈훈하다.
박노인이 만들어놓고 간 등잔을 내려다 불을 댕기고 보니 방은 더 오목하고 정이 든다.
동욱이,
“신방 같지?”
그의 아내는 걸레로 방을 훔쳐가면서,
“도배를 했으니 신방이지!”
“아니 그 왜 총각 처녀가 처음 만나는 날 밤 그 신방 말야!”
이날 밤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별나게 오래도록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을밤은 겨웁도록 길다. 훈훈한 방에 사지를 쭉 뻗고 한잠 실컷 자고 나도 날은 안 샌다. 문에 달이 환하다.
그의 아내가,
“김장 무렵이라 고춧금이 좋던데!”
“내년엔 고추를 좀 많이 할까?”
“마늘도 그렇고!”
“거름 때문에 내년엔 어떻게든지 돼지 새끼를 한 마리 길러야겠는데……”
“얼마나 주면 살꼬?”
“글쎄 금이 어떤지?”
“닭은 알자리를 보던데…….”
“봄엔 한 배 깨야지!”
한동안 말이 뜬다.
“날이 새나?”
“아직도…… 건데 여보, 북술이(개이름)가 왜 통 짖질 않우?”
“바보야!”
“산골에 오면 개도 마음이 착해지나부지?”
“뭘 보고 짖겠어, 짖을 것이 있어야지!”
사실 북술이는 중개가 다 됐는데도 좀체 짖는 일이 없다. 어쩌다 달이나 뜨면 끄응! 하고 한두 번 짖을 뿐이다.
동욱 아내 말과 같이 산속에서는 개도 마음이 너그러워지는지도 모른다.
“도토리를 줘얄 텐데…….”
“양식이 넉넉하겠다, 까짓 도토리는 주워 뭣하게?”
“넉넉한 양식일수록 아껴야지.”
“에따, 조가 섬이나 되겠다, 감자도 두어 가마니 돼, 콩, 팥, 메밀, 이래저래 몇 말 되잖아, 게다가 호박만 해도 몇 덩이야?”
“도토리를 잘 빚기만 하면 떡도 좋고 묵도 좋아요!”
날이 샌다. 일찍 일어나야 별 할 일도 없다. 뜨뜻한 방에 등을 붙이고 꾸물대다가 닭장문이나 열어주면 그만이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서도 해가 퍼지고야 괭이를 메고 나가 밭골이나 일구고 아니면 삭정이나 들여온다. 그의 아내는 북술이를 앞세우고 도토리를 주워다 나른다. 사흘째 모은 밤 도토리가 벌써 가마니로 찼다.
억척같이도 길기만 한 겨울밤, 동욱 내외는 농사 계교를 되풀이하면서 동욱은 담배를 연거푸 말아 붙이고, 그의 아내는 대목장에 여낼 고사리와 도라지 꾸러미를 사리기* 마련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생각하면 참 허수룩하지?”
“피난생활하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꿈같애!”
“그놈의 뒷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깡통 몇 개 얻을라고 밤마다 철조망 밑을 기던 일을 생각하면…….”
“그걸루요. 부두에서 들병 술잔이나 팔아보지. 그게 사람이라고…… 젖가슴과 궁둥이는 술안주지 뭐……”
“그놈이나 살았으면!”
“……”
“대신동 뒷산 어데지, 갖다 묻은 데가?”
“옳게 묻기나 했다고…… 갖다 버린 게지!”
“건데 그 뒤로 왜 아무런 기미가 없어?”
“기미가 뭔데?”
“그게 태기 말야!”
“없었기 망정이지, 그 판에 애라도 딸렸으면…… 그 명수네 봐요!”
“참, 그 명수 엄마는 어떻게 사는고?”
“사는 게 뭐요, 목숨이 붙었으니까 사는 게지!”
“오징어 한 마리 때문에 당신하고 아귀다툼을 하더니…….”
“그때는 잘난 오징어 한 마리가 어이 그리도 대수롭던지 몰라!”
“여기 와서 같이 살았으면…….”
“정말!”
다음 날 밤이었다.
보리밭에 꿩이 내린다고 동욱은 덫을 만들고, 그의 아내는 역시 마른 고사리를 가렸다.
“내일은 꿩을 한 마리 잡아 국수를 해먹을까?”
“어데 눈 먼 꿩이 있답디까?”
하는데 갑자기 북술이가 기를 쓰고 짖어댄다. 내외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왈칵 겁이 난다.
“뭘꼬?”
“글쎄!”
“내다봐요?”
동욱이는 앉은걸음으로 문을 반쯤 열고 내다본다. 낮같이 달이 밝다. 분명 두 사람이 밭머리로 결어오고 있다.
“누가 오는데!”
동욱은 문고리를 잡은 손이 부들거리고 말소리도 떨린다. 그렇게도 사람이 아쉬우면서도 이토록 또 사람이 무섭다.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그렇게도 이 잡듯 뒤졌다는 빨치산이 어디 또 숨어 남았던가 하는 생각이었다.
동욱은 우선 그의 아내를 옆방으로 밀어넣고 축담으로 나선다. 어떻게 한다는 아무런 작정도 없다. 동욱이 나서자 북술이는 더 기를 쓰고 사립 밖까지 나가 짖어댄다. 그러자,
“어어이, 북술이 북술이 내다!”
“앗, 박노인!”
동욱이 사립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의 아내도 뒤미처 쫓아나온다.
안도와 반가움에 내외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박노인의 한 팔 씩을 잡고,
“어째 이렇게 늦게 오셨소?”
“허, 그렇게 됐소!”
“어서 들어가요!”
박노인은 같이 온 사나이를 돌아보면서,
“들어와!”
그러고는 마당에 들어서자,
“움막은 그대로 비었지요?”
“움막은 뭣 하게요?”
“불을 좀 땔까고!”
“아니, 옆방이 만장인데 뭘 그러시오?”
“이야기는 나중 합시더 !”
그러고는 사나이를 데리고 움막으로 돌아간다. 동욱은 삭정이를 안아다 불을 지피고, 그의 아내는 부랴부랴 밥을 짓는다.
박노인과 사나이는 연장통과 짐을 풀어 챙기고 자리를 들여다 깐다.
밤이 됐다.
박노인과 사나이는 마주앉아 구수한 내가 물씬 풍기는 잡곡밥을 후후 불어가면서 걸귀같이 먹는다. 연신 흘러내리는 콧물을 손등으로 훔쳐가면서 소금물에 담근 총각김치를 와삭와삭 맛나게도 씹는다.
사나이는 사십이 좀 넘었을까? 동욱보다는 몇 살 더 먹어 보인다. 그을리고 푸석하니 마른 얼굴에 터부룩한 수염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나이는 시종 말이 없다. 박노인이,
“어허, 너무 잘 먹어서 인사할 말이 없소.”
그러고는 상을 내민다. 동욱은 담배를 권하면서,
“산꼭대기는 벌써 얼었죠?”
“바람이 세서……”
“인젠 눌러 계시죠?”
박노인은 대답 대신 사나이에게 담배를 한 모금 쥐어주면서,
“가서 일찍 자지!”
하자 사나이는 말없이 일어서 나간다.
“불김이 들었는지?”
하고 동욱이 일어서자 박노인이,
“지가 볼 거요, 앉이소, 의논이 좀……”
박노인은 담배를 붙이고 동욱 내외에게 번갈아 눈을 주면서,
“신세를 좀 져야 하겠심더.”
“신세라니요?”
“머, 일깐*이나 세우고 목물이나 깎으면 먹는 거야 어떻게 되겠심더만…… 그동안 댁의 양식이 어떤지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조, 감자 해서 좋이 몇 가마 거뒀으니까 양식을랑 아예 걱정 마십쇼!”
그러자 동욱 아내가,
“콩, 팥, 옥수수도 서너 말 되고 호박도 스무 덩이나 따 들였어요.
또 도토리도 한 가마니가 넘고·…….”
그러자 동욱이 또,
“그러시오, 뭐가 어떠니 해도 사람 아쉬운 것같이…….”
“그렇소, 사람이 뭐니 해도 사람끼리 사는 기요. 난리 전에는 골째기마다 사람이 살았소. 어느 골째기에 동네가 있고, 어데쯤에는 및 집이 있거니 하면 맘이 든든하고 외롭지는 안했소. 하다 못해 먼 불빛이나 개 짖는 소리만 듣고도 살 수 있었소. 난리 뒤로는 사람새끼 하나 구경 못하겠으니 멋 때문에 사는 건지 귀천이 없고 적막해서……”
“우리도 한끼 입을 살지 못해 산골로 들어왔습니다만, 여기서는 먹고 산다는 게 참 허수룩하더군요. 정말이지 인제는 먹는 것보다 사람이 더 아쉬워요!”
“그렇기에 댁이 들어온 게 하도 고마워서 집을 서둘러 세운 거요!”
“인제는 한 식구로 같이 살자요!”
부엌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든다.
“사람은 산골에 살아봐야 사람이 귀하고 소중타는 걸 아는 거요, 미워도 고와도 그게 다 사람 사는 이치거든요!”
감자를 삶아 들였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 봤지요?”
“누굽니까?”
“원래는 내하고 같은 고장(靑松)에서 내가 일손이 급하면 데려다 쓰던 녀석인데, 무슨 실수를 해서 고향에서도 못 살고 삼척인가 하는 탄광으로 간 거지요. 그래서 사변 때도 못 오고 빨갱이 군대에 끌려댕기다가 나중에는 이리로 쫓겨 왔다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하고 벌써 혼은 반 나간 사람임더. 피아골서는 영락없이 죽은 걸로 내가 숨켰지요. 한때는 절간에도 숨켜두고 구러니깐 이 산속에 남은 딱 하나 빨갱이지요. 그런데 이거 어짜겠소. 어데로 가라카겠소. 이게 또 내 곁을 죽어도 안 떠날라케요. 내 곁만 떠나면 당장 죽는 줄로 알거든요. 그러니 이걸 어쩌겠소…….”
내외는 침을 삼키고 박노인의 입만 쳐다본다. 박노인은 씹던 감자를 꿀꺽 넘기고,
“그러니 어짜겠소. 여지껏 내가 데리고 있었지요. 저번에 부랴부랴, 올라간 것도 실상은 저것 때문에 간 기요. 올라가니 모닥불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나를 보자 그 반가워서 날뛰는 꼴이란…… 내가 먼데, 나를 믿고 저렇게 기다리뇨 저렇게 기뻐 날뛰는고…… 하니 가엾은 생각이 들어 주책없이 그만…… 허어허……”
동욱이 그의 아내를 보고 움막에 감자를 좀 들여다주라고 한다. 그러나 박노인이, 아마 잘 게라고 굳이 말린다.
“산꼭대기는 벌써 눈이 덮이오. 저걸 데리고 눈 속에 갇혀 양식 준비도 넉넉잖게 겨울 날 일이 하도 막막해서 그래서 데리고 왔심더!”
“내려와야죠. 내려오시길 만분 잘했습니다!”
“그러니 어짜겠소. 저게 소가지는 괜찮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거요. 내 일도 거들고 댁 농사토 짓고…….”
“뭐 여부가 있겠습니까. 싫대도 잡을 텐데!”
“고맙소!”,
그러자 동욱 아내가.
“고마운 인사는 우리가 해야지요!”
박노인은 일어서면서 ,
“그럼 내일부터 일깐을 하나 세울기요!”
“아니 여기 주무시오, 방이 이렇게 넓은데!”
“그럴 수가 있소!”
“우리만 이렇게 편히 자서야 어디……”
“괜찮소!”
박노인은 문을 열고 나선다.
박노인이 움막으로 돌아가자 동욱 아내가,
“일깐을 세우는 김에 방도 하나 꼭 다시오. 노인 잠자리가 아무래도…….”
“참, 그렇군!”
다음 날부터 박노인은 자귀질을 하고 동욱과 사나이는 나무를 날랐다. 사나이는 성이 윤(尹)가고, 이름은 방구(邦九) 라고 했다. ‘윤생원’ 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나흘 뒤에는 일칸을 세우고, 열흘 뒤에는 일칸에 달아 붙인 방에 재새를 하고* 문도 달았다.
박노인은 대목장을 보기 위해서 방망이랑 쇠죽 바가지랑 밥주걱들을 서둘러 깎았다. 윤생원은 옆에서 톱질 아니면 나무를 구웠다. 틈이 나면 잡목 골짜기로 들어가서 도끼자루 아니면 도리깨 살을 베 오기도 한다. 동욱은 생각나면 밭골이나 일구다가 싫으면 일칸에서 뒷손질이나 봐준다.
“방구, 내일 모레가 산청장인데 한 짐 져낼래?”
“장에는 안 갈래요!”
“장에 가면 누가 잡아묵나?”
“……”
“그러면 중간까지라도 좀 져내줄래?”
“그러먼요!”
돌아오는 장날, 바가지 한 죽*과 밥주걱 두 죽을 윤생원이 지고 동욱 아내는 고사리와 도라지를 한 보퉁이 이고는 박노인과 함께 일짝 산청장으로 떠났다.
윤생원은 시오 리 밖까지 짐을 져다주곤 헐레벌떡 돌아왔다. 이날 동욱과 윤생원은 종일 밭을 일구었다. 밭을 일구는 데는 동욱 유가 아니었다. 힘이 좋았다.
박노인과 동욱 아내는 해가 져서야 돌아왔다. 사온 것이 수두룩하다. 방구 옷(물들인 헌 군복) 한 벌과 양말 두 켤레와 신문지, 소금, 석유, 호롱, 드럼통 그 밖에 간고등어 한 손과 봇, 철사 이런 것들이었다.
드럼통은 동욱네와 일칸 중간에다 묻고 뒷간을 만들었다. 거름이 아쉬워 두고두고 별러만 오던 뒷간이었다. 철사는 방구가 덫을 만드는 데 쓴다고 한다.
마지막 대목 장날도 박노인과 동욱 아내가 갔다 왔다. 박노인은 전번 장날 남겨둔 물건을 마저 넘기고, 동욱 아내는 제사 나물감으로 역시 고사리와 도라지를 이고 갔다. 이날 동욱 아내는 기름과 돼지비계를 조금 사왔다. 설비짐*으로 빈대떡을 굽고 호박 부침개를 한다고 한다.
이 산골에도 오래간만에 그러나 산골답지 않게 구수한 기름냄새가 풍겼다.
그믐날 밤은 어디 없이 장등*을 하고 밤을 새운다. 동욱은 담배를 두어 모숨* 가지고 일칸으로 갔다. 박노인은 무슨 나무뿌리를 가지고 담뱃대를 깎고 있고, 윤생원은 산돼지를 잡겠다고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고 있다.
박노인은 담배를 말면서,
“멧돼지가 어딨어? 난리통에 산짐 승이라곤 씨가 말랐는데·……”
그러자 윤생원이 씨익 웃으면서,
“발자죽을 봤는데요!”
“어디서?”
“잡목골에서요!”
“커?”
“두어 살내기 돼 뵈요!”
“아아나 니한테 잡힐라!”
그러나 윤생원은 연방 싱글거리기만 한다. 동욱이,
“돼지 말이 났으니 말이지 거름 때문에 돼지 새끼 한 마리는 길러야겠는데…….”
하자 박노인이,
“그렇지러, 돼지는 꼭 길러야지, 백 날치먼 얼매나 할꼬?”
“글쎄, 요즈막 돼짓금이 어떤지…….”
그러자 윤생원이,
“빠꾸샤는 비싸지만 보통은 얼매 안 줘도 사요!”
한다. 박노인은 동욱을 보고,
“그 한번 알아봅시더.”
그러자 또 윤생원이,
“이왕이면 한 자우를 사야지!”
“저른 쑥맥 바라, 멀로 묵이고?”
하고 박노인이 퉁을 주자,
“도토리만 주워도 까짓거야 설마…….”
“그러면 돼지는 내가 살게, 키우기는 니가 할래?”
“그래 봅시더, 사기만 하소!”
이때 동욱 아내가 부침개와 오지항아리를 얹은 개다리소반을 들여놓는다. 동욱이 항아리를 보고,
“뭐여 이건?”
“뭐라요, 술이지!”
“술?”
세 사람이 다 놀란다.
“저번 장날 누룩 한 장을 사왔지요. 설도 씜이지만 노인도 계시고 해서……”
“허, 이건 원……”
“좁쌀술인데 맛이 어떤지?”
동욱이 사발에 술을 따르자 박노인이 손으로 막으면서,
“이럴 게 아니요, 오늘 밤은 누구 없이 다 제사를 모시는데, 선영은 못 모시도 우리는 산에 의지하고 사는 게 아니요, 우리 이 뒤 동삼바우 밑에 가서, 산신에 고사나 디리고 옵시더. 어떻소?”
하고 동욱을 건너본다.
“좋은 말씀이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보자어, 그러면 시간이 어떻게 됐노, 닭이 울기 전에 가야지!”
“닭 울 때까지는 아직도…….”
그러자 박노인은 동욱 아내를 보고,
“그러면 안댁이요, 이걸로 도로 좀 채리주소!”
동욱 아내가 소반을 물려 내자,
“우리 그러면 세수나 하고 옵시더!”
그러고 일어선다.
세 사람은 뒷개울에서 살얼음을 깨고 세수를 하고 왔다.
박노인과 윤생원은 양말을 갈아 신었다.
윤생원이 소반을 들고, 동욱이 깔자리를 들었다. 박노인이 횃불을 들고 앞서서 셋은 동삼바위 밑으로 올라갔다. 깜깜한 하늘에 관솔이 타는 그을음과 함께, 불꽃만 튀길 뿐 아무도 말이 없다.
자리를 깔고 소반을 내린 다음, 박노인은 술을 따라 먼저 땅에 뿌리고 다음 잔을 올려놓고는 두 걸음 물러서서 오른쪽에 동욱을, 왼쪽에 윤생원을 손짓으로 다가세운다. 한번 절을 하고 두번째는 그대로 정강이를 꿇고 엎드린 채,
“산령님이요, 우리는 산령님에 의지하고 사는 백성임더! 험악한 꼴도 많이 보시고, 그래도 노염 안하시고 우리들도 여게 살도록 하시고 그 은혜 망극합니더. 내년 농사도 재 없이 해주시고, 또 이 골째기에 살던 사람들도 다시 와서 살두룩 신령님께 빕니더!”
마쳤다.
술을 또 땅에 뿌려버리고 부침개 한 개를 뜯어 흩고는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박노인이, 옛날 여기에 (바위 밑) 동삼(童蔘)이 있었는데, 이 동삼이 상주로 화해서 늘 산청장에 내려왔다고…… 그래서 동삼바위라고 한다고 했다.
일칸 방에 소반을 그대로 들여다놓고, 박노인이 먼저 술잔을 받고 다음 윤생원이 받는다.
윤생원은 술사발을 들고,
“막힌 술꼬를 틔워서 어짤고?”
그러자 박노인이,
“농사나 부지런히 지우면 설마 술배야 곯겠나!”
그러자 동욱이 받아,
“그러먼요!”
동욱도 한 잔 마셨다. 박노인이 두 잔, 윤생원이 석 잔을 하고 항아리가 비었다.
닭이 두 홰를 울자 동욱은 돌아왔다.
동욱은, 박노인이 뭔지 마음에 더 든든하고 고사를 지낸 것이 아무래도 잘했다 싶다.
한 이틀 쉬더니 윤생원은 괭이를 들고 나선다. 놀자니 온 전선이 근질거린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눈이 덮이기 전에 거름을 한 불 먹여야 한다고, 아직 차지도 않은 구덩이에다 물을 타서 보리밭에 퍼내기도 한다. 박노인은 놀기 심심하다면서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베곤 한다.
정월달도 그럭저럭 넘어가고 이월 초순 어느 날 밤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그대로 담배를 피우며 박노인이,
“벌써 진달래가 폈데!”
그러자 동욱 아내가, '
“곧 나물이 돋겠네, 좋아라!”
“나물은 역시 야산이 빨라. 여기는 산이 깊어서…….”
동욱이,
“그럼 감자씨도 널까?”
하자 박노인이,
“씨는 넉넉한지?”
동욱 아내가,
“잔 것만 가려서 두어 말 돼요!”
그러자 윤생 원이 불쑥,
“돼지는 언제 살 기요?”
하자 박노인은 비로소 생각이 난 듯,
“세전*에 누가 구시(구유) 두 개 파달라커는데, 구시 두 개 파먼 돼지 새끼 한 자우 사질까?”
그러자 윤생원이 또,
“안되면 도끼자루하고 도리깨 살도 다 내지!”
“나도 산나물 나면 여내다 보탤래!”
이틀 뒤에 동욱과 윤생원은 새로 일군 밭부터 골을 치기 시작한다. 삽에다 칡새끼를 걸어 동욱이 당기고 윤생원이 삽질을 했다. 서 마지기 턱이나 씨를 넣었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감자갈이를 마치고 동욱과 윤생원은 박노인을 따라 산에서 구유감을 굴러내렸다.
며칠째 꽃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산은 날로 물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닭이 품자리를 찾는다. 알은 딱 열일곱 개밖에 낳지 않았다.
동욱 내외는 뜰 옆 양지 쪽에서 '닭을 품기면서 그의 아내가,
“여보, 아무래도 방을 한 칸 더 달아야 해요!”
“뭣 하게 방은 또…….”
“윤생원 말요?”
동욱은 그의 아내의 입을 바라본다.
“명숙이 엄마를 데리고 올까고!”
동욱은 비로소 말뜻을 알아차리고 씨익 웃으면서,
“올까?”
“오다뿐이겠소. 인제 나이 서른일곱인데, 아이를 달고 그게 어데 사는 게라고!”
“그렇게 됐으면 좋긴 하겠는데…….”
“윤생원도 알고 보니 당신보다 세 살 위인 마흔둘입디다. 마흔둘이면 한창인 데 이 산속에서 어떻게 홀애비로 늙겠소?”
그러면서도 자기를 바라보는 윤생원의 눈길이 날로 이상타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긴 그래!”
“여비만 되면 산나물이 퍼지기 전에 갔다 올래…….”
“그럼 방을 하나 더 달도록 해볼까?”
“위선은 옆방이 있으니 온 담에 천천히 해요.”
며칠 뒤 동욱 내외는 박노인과 의논을 했다. 박노인은 바로 자신이 며느리나 보는 것처럼 기뻐하면서,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소!”
하고는 한동안 뭣엔지 생각에 잠겼다가 또 한번,
“참 고마운 일이요!”
한다.
이러고 난 한 보름 뒤 윤생원이 구유 두 개를 쌍바위 밖까지 져내던 날, 동욱 아내는 도끼자루를 이고 박노인과 함께 산청장으로 나갔다.
동욱과 윤생원은 일칸 방에서 장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욱은 구유와 도끼자루를 손쉽게 넘기고 그의 아내가 부산으로 떠났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러나 윤생원은 잔뜩 돼지를 기다리면서,
“밤나무를 심구먼 십 년 만에 밤을 따는데…….”
“밤뿐이요, 감나무도 심어야지!”
“벌통만 있으면 벌을 씰어 오겠는데.”
“벌이 어딨소?”
“벌 많아요. 여기 산꿀이 참 좋데요!”
“꿀이야 우리 고장이지, 강원도 석청 하면 모르는 사람 없죠!”,
“여기 꿀은 백청이라고, 옛날부터 진상꿀이라요!”,
다 질 무렵 해서 박노인이 혼자 돌아왔다. 동욱은 일이 제대로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윤생원은 못내 서운한 눈치로 돼지를 살피고 찾는다. 동욱이,
“떠났어요?”
하자 박노인이 웃으면서 ,
“갔소!”
그러자 윤생원이,
“돼지는?”
“돼지? 돼지는 마땅한 게 없어셔 안댁이 존 거로 사오기로 했다!”
그러고는 동욱과 눈을 맞보고 웃는다.
“돼지는 한 자우 사오지요?”
이렇게 윤생원이 또 불쑥 내미는 말에 박노인은,
“니는 돼지밖에 모르구나. 니 밉어서 암퇘지 한 마리만 사오라캤다!”
그러고는 또 허허 웃는다. 동욱도 따라 웃는다. 윤생원도 히죽이 웃으면서,
“북술이 데리고 올개미나 가 볼까…….”
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선다.
이윽고 어느 골짜기에서 컹컹 짖어대는 북술이 수리가 쩡쩡 산을 울려오고, 메아리는 또 물팔맥처럼 골짜기로 골짜기로 까무러져갔다.
『현대문학』 52호(1959. 4); 『현대한국문학전집』 1권(신구문화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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