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지만, 재즈에 대한 지식도 정말로 얇기 그지 없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건데 틀린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꽤나 많을거라 생각됩니다만, 일단 아는데까지
써보겠습니다.^^
1.재즈의 태동 - 근대 바둑의 시작
흑인음악의 뿌리는 블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인음악뿐 아니라 ROCK음악의 모태도
블루스라는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재즈의 기원도 블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스가 음악자체에 애조띤 경향이 강하고 흑인노예들의
한이 서려있는 음악이라면, 재즈는 좀더 분방하고 자유스러운 음악이지요.
재즈가 흑인들이 일하면서 즉석에서 흥얼거리는 곡들이 발전된거라는 얘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즈의 기원이랄 수 있는 것이 '랙타임(Ragtime)'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다음에 검색해서
살펴보니 행진곡형식에서 따온 음악이라고 하는군요.
흑인들의 춤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재즈가 처음 발전된 도시는 뉴올리언스입니다. 재즈의 도시라고 불리는 몇안되는 도시중 하나죠.
19세기말, 그러니까 1890년대언저리이 뉴올리언스는 유럽인들과 인디언, 그리고 흑인노예들이 혼합되서 살고 있던
다인종도시였지요.
아프리카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오면서 통과하는 항구가 뉴올리언스였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흑인음악이 여기서
파생된것입니다.
19세기말이라고하면 클래식음악이 여전히 대중음악으로 자리잡고 있던 시대입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클래식음악은 유럽의 것이지요.
새로운 대륙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미국에서 클래식을 그대로 대중음악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면에서 새로운 유행음악이 필요했을테고 거기에 자연스레 흑인음악이 발견된것입니다.
랙타임을 연주하는 밴드들이 생겨나면서 재즈는 점차 음악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이 밴드들이
연주하는 앨범도 나오게 되고.. 점차 랙타임이 새로운 음악의 물결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몇몇 유명한 밴드들이 있는데... 그중에 킹 올리버밴드를 주목해야 합니다. 킹 올리버라는
사람 자체도 상당히 음악적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만, 그 밴드에서 재즈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바로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사치모(Satchmo)'라는 별명, 소년원시절 트럼펫을 배우고 입이 작아서 입을 칼로 찢었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겐 쇼프로에 나와서 만담을 떨어대던 흑인 아저씨 그리고 '굿모닝 베트남'의 주제가인 '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거에 비해서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계에선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소위
재즈보컬이라는 형태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구요, '스캣'이라 부르는...그러니까 가사없이 입으로 흥얼흥얼 리듬을 타는 재즈보컬의 한 형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재즈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트럼펫연주자이기도 하지요.
루이 암스트롱의 가장 큰 공헌중 하나는 역시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을 섰다는 겁니다. 그는 언제나
음악을 즐겁게 했고 무대에 서서는 특유의 입담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으며.. 유성시대로 넘어와서는 방송에 나와서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백인들의 광대'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그가 재즈계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가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Kiss of Fire
Louis
Amstrong
1920년대 들어서면서 재즈는 좀더 하나의 음악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재즈는 시카고와
뉴욕으로 퍼져가며 많은 밴드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밴드가 플레쳐 헨더슨악단입니다.
플레쳐 헨더슨이란 사람은 초기 재즈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운이 너무 없는 사람이었죠.
좀더 클 수 있는 조건을 눈앞에 두고 운나쁘게 그런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는등 결국 빚에 쪼들려 살게 됩니다.
그당시 플레쳐 헨더슨악단을 필두로 재즈의 한 장르인 스윙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어떤면에서 재즈가 대중화되는데 공헌을 한것이 스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스윙은 백인들의 무도회장에 많이
쓰여졌고, 그러면서 그 음악에 매력을 느낀 백인들도 밴드를 창단해 스윙을 연주하기에 이르릅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이때를 '스윙의 시대'라고 합니다. 스윙은 재즈의 기본골격인 즉흥연주를 배제하고
많은 연주자들이 악보에 맞춰 일정한 형태로 음악을 연주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그안에서도 독창적인 솔로연주자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들은 나중에
솔로로 나오면서 역시 재즈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또하나의 재즈계의 거장이 나오는데요. 그가 바로 루이 암스트롱의 영원한 라이벌인 듀크
엘링턴입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루이와는 달리 듀크 엘링턴은 백악관집사출신인 아버지덕에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생활을 보냈습니다. 그의 고상하고 귀족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듀크'라고 칭했고.. 듀크 엘링턴은 그에 걸맞는 영향력을
보여주었죠.
듀크는 그 자신의 밴드를 가지고 하는 연주도 좋았지만, 재즈계 최고의 작곡가로 더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는 죽을때까지 1000곡이 넘는 곡들을 작곡했고, 그 곡들은 그뒤에도 수많은 후배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됩니다.
이전에 최철한9단이 이창호9단을 가리켜, '언제가 전성기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었죠. 언제나 꾸준히
활약을 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언제나 꾸준한 성적을 올려주고 있으니 언제가 전성기인지 모르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듀크 엘링턴이 바로 그런 존재이지요. 20년대 스윙이 휩쓸던 시절에 시작해서..그뒤로 비밥, 쿨재즈,
퓨전재즈, 프리재즈등이 대세를 차지하던 시절에도 언제나 그는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했었죠.
듀크 엘링턴 1899년생, 루이 암스트롱 1901년생.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두 사람은
사람들에 의해 라이벌로 불려지게 됐죠. 그러나 다른 라이벌과 달리 둘의 사이는 돈독했습니다. 둘은 같이 음반을 내기도
했었지요.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
랙타임으로 시작해서 ..스윙의 시대가 온 1920년대. 재즈는 점차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가지의 이유로 이 많은 밴드들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스윙의 시대도 끝이 나기
시작합니다.
첫댓글 흥취있게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