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액추얼리] 반전(反戰)의 노래 ‘백학(Zhuravli)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는 음악의 보고다. 조금만 뒤져보면 주옥같은 음악이
숨어 있다. 최신 유행 음악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 음악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선 만나기 힘든 세계 각국의 음악도 찾을 수
있다. ‘유튜브 음악산책’은 유튜브에 숨겨진 음악을 찾아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세계 각국의 음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곳에 담고 싶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드라마 삽입곡 백학을 부른 이오시프 코브존.ⓒ기타
1995년 우리사회를 휩쓴 모래시계와 백학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유명 드라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응답하라 1995’다. 1995년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상투적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다. 대구 가스폭발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참사가 끊이지 않았던 해다. 또 노태우와 전두환이 비자금 조성, 12.12와 5.18 등 군사반란 혐의로 구속된
해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옴진리교가 일본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도 바로 1995년이다. 사회가 시끄럽던 1995년 초 대중을 사로잡은 드라마가
있었다. SBS 드라마인 ‘모래시계’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학 PD와 인기작가인 송지나 작가가 각각 감독과 각본을 맡은 모래시계는 5.18 등 대한민국 현대사 격동기를
지내온 주인공들의 삶을 다뤄 화제가 됐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조차 힘든 평균 시청률 50.8%를 기록했다. 방송이 시작되면
거리는 한산했고 ‘귀가시계’라 불리기도 했다.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방송에 삽입된 음악도 인기를 끌었다. 당시로선
생소하던 러시아 음악이었다. 바로 ‘백학(白鶴, Zhuravli)’이란 노래다. 당시 ‘백학’이 담긴 OST 음반은 5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수교한 것은 지난 1990년이다. 러시아가 소련이라 불리던 시절 ‘러시아 음악’은 사실상
금지곡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백학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히트를 기록한 러시아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음악산책
다섯 번째 순서로 소개할 음악은 남자 가수가 중저음으로 읊조리듯 쏟아내는 목소리가 일품인 반전(反戰)의 노래
‘백학(Zhuravli)’이다.
드라마 모래시계 삽입곡 ‘백학’. 이오시프 코브존의 목소리다
타게스탄 시인 감자토프의 시를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다
‘백학’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지만 이 노래와 관련한 정보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백학’은
러시아에 속한 자치공화국인 다게스탄(Dagestan) 출신의 시인 라술 감자토프(Rasul Gamzatov, 1923~2003)가
쓴 시에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인 얀 프렌켈(Yan Frenkel, 1920~1989)이 곡을 부친 노래다. 감자토프가 시를 쓴
건 1950년대지만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68년이다. 프렌켈이 작곡한 이 노래는 우크라이나 출신 배우이자 가수인 마르크
베르네스(Mark Naumovich Bernes, 1911~1969)가 노래했다. 베르네스는 1965년 구 소련에서 ‘인민
공연예술가’로 뽑힌 이름난 배우이자 가수였다. 하지만 모래시계 삽입곡으로 쓰인 ‘백학’은 베르네스가 세상을 떠난 뒤 이오시프
코브존(Iosif Kobzon, 1937~)이 다시 녹음한 노래다. 코브존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 국민가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코브존 역시 1987년 ‘인민 공연예술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1989년엔 러시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백학’은 우리나라에 러시아 노래로 소개됐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와 작곡자는 물론 가사를 쓴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과거 소련
연방에 속해있던 국가들 출신이긴 하지만 ‘러시아’ 민족은 아니다. ‘백학’이란 시를 남긴 라술 감자토프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다게스탄의 민족시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백학’이란 시를 쓰게 된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감자토프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겪었고, 그 전투에서 죽은 이들이 가슴에 남아 이 시를 쓰게 됐다는 것이 우선
첫째 사연이다. 두 번째 사연은 감자토프가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의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학을 받쳐
들고 있는 원폭 피해자인 소녀 사까끼 사다꼬의 동상을 보고 영감을 얻어 백학을 쓰게 된 것이 두 번째 사연이다. 두 살이던
1945년 원폭 피해를 입은 사다꼬는 12살이던 1955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녀의 투병 과정에서 나고야의 고교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보낸 것이 화제가 됐고, 사다꼬의 동상이 학을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사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백학(白鶴, Zhuravli)’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지
피로 물든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고향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린듯 하여
그들은 옛날부터 하늘을 날면서
우리를 부르는 듯하여
때문에 우리가 자주 슬픔에 잠긴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 아닐런지.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의 지친 학의 무리들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 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런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함께
나는 회청색의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을
하늘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면서
러시아 우표에 등장하는 시 ‘백학’을 쓴 시인 라술 감자토프ⓒ기타
추모의 음악이면서 반전(反戰)의 노래
‘백학’의 가사를 읽어보면 전쟁의 아픔이 드러난다. 추모의 음악이면서 동시에 반전(反戰) 노래이기도 하다. ‘백학’을 감자토프는
다게스탄에서 사용하는 소수 언어인 ‘아바어’로 발표했고, 이 시는 모스크바에서 발간되는 문학잡지에 번역돼 실렸다. 시가 알려지면서
프렌켈이 곡을 썼고, 1968년 이후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유행하는 노래가 됐다. 하지만 이 노래와 관련해선 아직 많은
오해들이 있다. 체첸 공화국의 전사들을 추모하는 노래라는 소개도 있지만 앞서 소개했듯이 시를 쓴 감자토프가 태어난 다게스탄은
체첸의 옆에 있는 공화국일 뿐이다. 작곡자와 작사가가 분명한 이 노래가 러시아 전래 민요하고 소개한 자료도 있다. 1957년
만들어진 ‘학이 난다(The Cranes are Flying)’라는 러시아 영화의 삽입곡이란 잘못된 소개도 있다.
만들어진 지 50여년이 채 안 된 노래가 이렇게 많은 사연을 갖게 된 건 오히려 ‘백학’이란 노래가 가진 힘을 말해준다.비장한
멜로디와 목소리로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듣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가사는 알지 못해도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아는
우리나라였기 때문에 ‘백학’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우리에게 친숙한 코브존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백학’에서부터 작곡자
프렌켈이 부른 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버전의 ‘백학’을 이곳에 소개한다.
마이클 베르네스가 부른 ‘백학’이다. ‘백학’의 원곡이다.
이오시프 코브존이 1971년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부른 ‘백학’
‘백학’의 작곡자 얀 프렌켈(Yan Frenkel)이 직접 부른 ‘백학’
러시아 출신 세계적 바리톤 오페라 가수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Dmitri Hvorostovsky)가 부른 ‘백학’.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가운데 하나인 엘레나 바엔가(elena baenga)가 부른 ‘백학’. 여성의 목소리로 부르는 ‘백학’도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러시아 걸그룹 세레브로(Serebro)가 부른 ‘백학’. 세레브로(Serebro)는 댄스음악 ‘mi mi mi’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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