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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7월 1일 수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고을 주민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들의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한다(복음).
제1독서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15.21-24
14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정을 세워라.
어쩌면 주 만군의 하느님이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1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23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24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을 글로 대하다 보면 당시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낯선 지명이나 등장인물의 뜻밖의 말과 행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속도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 마귀 들린 사람 둘, 그들이 예수님과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갑작스러운 돼지 떼의 죽음과 고을 주민들의 반응까지, 여러 가지 상황이 연이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미궁에 빠뜨리는 물음은 과연 이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두 가지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첫 번째는 마귀 들린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아본 그들은 그분의 칭호를 대담하게 부르며 외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 8,29) 그들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자신들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이 불편하고 못마땅하였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을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한마디에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예수님께 그 고장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마귀를 쫓는 놀라운 기적보다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문제였나 봅니다. 그들 또한 예수님과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너무 오래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탓일까요. 마귀들은 돼지 떼와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느새 고을 주민들의 마음에 다시 자리 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돼지’, 곧 세속적 가치나 소유물을 잃을까 두려워 예수님과 맺은 관계를 부인하려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마귀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오직 주님에 대한 굳센 믿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복음 말씀 분위기가 꽤 음산하고 우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라다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얼굴과 행색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밤낮없이 마귀들이 횡포를 부리니, 두 사람의 심신은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마귀에 시달리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몇 달째 제대로 씻지도 못했으니 심한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밤잠을 제대로 못 자니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습니다. 머리는 산발한 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무덤을 거처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괴로우니,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고... 다들 무서워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목숨이 붙어있었지만,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그분께서 그리하시니, 마귀들이 사람들로부터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달려, 모두 익사하고 맙니다.
마귀란 선하신 하느님의 대척점에 서서, 그분을 모욕하고, 그분의 나라와 다스림을 폄하하며, 사람들을 악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지닌 두드러진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음산하고 기괴합니다. 그들에게서 기쁨이나 희망, 사랑이나 자비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꼭 가보자고 해서 어딜 갔는데, 분위기가 음산하거나 기괴하다면, 영 불편하고 꺼림직하다면, 초 스피드로 빠져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깜도 안되는 나약하고 부족한 한 인간 존재에게 황금색 도포를 입히고, 왕관을 씌운다고 그가 구세주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색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거듭 연출되고, 인간의 기본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엉뚱한 이벤트가 계속되는 그런 장소는 마귀가 활동하는 장소가 틀림없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분위기는 기쁨 충만한 분위기입니다. 밝고 화사한 분위기입니다. 비록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록 살아있지만, 죽음의 권세에 억눌려 참삶을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희망이 없는 상태가 곧 죽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마귀의 세력이 창궐합니다.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두르고, 분열과 전쟁을 획책하는 무리들이 곧 악령입니다.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살살 꼬드겨 벗겨 먹고 삶아 먹는 사이비 교주들이 곧 이 시대 사탄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세력, 사탄의 권세 안으로 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잘 성찰해봐야 하겠습니다. 가까운 이웃들이 저리도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만, 우리 가정만, 우리 공동체만 별 탈 없으면 그만이라며 희희낙락하는 이기주의도 큰 악입니다.
반민족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끝도 없이 유포시켜 선량한 백성을 악으로 끌어들이는 매체들도 반드시 배척해야 할 이 시대 악령입니다.
숱한 죽음의 세력과 사탄의 무리에 꿋꿋이 맞서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오직 우리 주님에 대한 굳센 믿음, 그리고 그분 현존에 대한 강력한 확신, 그분에게서 퍼져나오는 강력한 구원의 빛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녹용은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여겨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능이 좋은 녹용은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살아가는 사슴의 녹용이라고 합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혹독한 추위와 거친 환경을 견디어 낸 생명력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도 그렇습니다. 편안함만이 사람을 깊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시련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눈물이 사람을 깊게 만들고, 고통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지난 5월 17일에 본당에서 ‘제8회 청소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38명의 아이가 함께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피아노의 발판을 밟기에도 아직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첼로가 자기 몸보다 더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3년 전에는 조금 어설펐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만의 음악을 표현하며 성장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 곡의 음악이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울리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실수도 있었고, 지루함도 있었고, 다시 시작하는 수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8년 동안 청소년 음악회를 이끌어온 음악 감독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한 말씀을 전합니다.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고,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지냈지만, 그들의 삶 안에는 정의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짓밟히고, 약한 이들이 억울함을 당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모양만의 제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삶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의와 진실과 자비가 흐르는 삶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한때 ‘사바사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밀가루 선거’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촌지 문화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안에는 정의와 부정이 함께 머물 때가 있습니다. 편의성이라는 이유로, 학연과 지연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때로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와 타협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의와 부정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진실과 거짓은 한집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손에 박힌 가시는 뽑아야 하듯이, 마음과 공동체 안에 박힌 불의와 부정도 뽑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구원이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님께 마을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편한 평화를 흔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치유받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손해와 불편함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들 안에도 편견과 이기심과 욕망과 탐욕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이런 불편한 동거를 밝히는 빛입니다. 신앙은 진실과 거짓이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정의와 부정이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마음 안에서 오래 머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우리를 살리는 불편함입니다. 가시를 뽑을 때 아프지만, 뽑아야 상처가 낫습니다. 회개는 아프지만, 회개해야 영혼이 삽니다.
청소년 음악회에서 아이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까지 많은 연습과 기다림이 있었듯이, 우리의 신앙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대나무가 마디를 통해 곧게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시련과 회개의 마디를 통해 하느님께로 자랍니다. 시베리아의 추위를 견딘 사슴의 녹용이 귀한 약재가 되듯이, 신앙인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깊은 은총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아모스 예언자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그리고 오늘 화답송의 말씀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하느님의 평화가 있습니다. 진실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하느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성령의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이기심, 욕망과 탐욕, 시기와 질투를 몰아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 진실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길을 걷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마태 8,28)
길을 걷다
새로 길을
내고자
길을 걷다
닫힌 길을
열고자
길을 걷다
막힌 길을
뚫고자
길을 걷다
끊긴 길을
잇고자
길을 걷다
다시 길을
내고자
길을 걷다
오늘의 성인
성녀 에스테르(Esther)
신분 : 왕비, 구약인물
활동연도 : +5세기경BC
같은이름 : 에스더, 에스데르, 에스델, 에스떼르, 에스터, 에스텔
구약성경 에스테르기에 등장하는 에스테르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잡아 온 유다인 중 하나이다. 그녀는 벤야민 지파 출신 아비하일의 딸로 부모가 죽은 뒤 수사 성읍의 왕궁에서 봉직하는 삼촌 모르도카이의 양녀가 되었다. 에스테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용모가 어여쁜 처녀였다.
당시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시대였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신하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벌이는데 취흥이 돋자 와스티 왕비를 불렀다. 백성과 고관들에게 왕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비는 임금의 분부를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임금은 왕비를 폐위시켰다. 새로운 왕비를 찾던 임금은 에스테르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다. 에스테르는 삼촌의 명대로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당시 궁궐 대문에서 근무하고 있던 모르도카이는 우연히 임금의 내시 둘이 불만을 품고 임금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에스테르 왕비를 통해 임금에게 고하여 음모를 막았다. 그런데 하만이 재상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모르도카이가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않자 그의 출신이 밝혀지고 하만은 왕국 전역에 있는 유다인들을 모두 몰살하기 위해 임금에게 거금을 약속하며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서 지정된 날에 유다인들을 모두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임금의 서신이 제국 내에 발송되었다.
곳곳에서 유다인들이 단식하고, 울고 탄식하며 크게 통곡하고 있을 때 에스테르는 모르도카이의 말을 전해 듣고 목숨을 걸고 임금 앞에 나아가 이 불행을 되돌리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하만은 더욱 기세등등해서 모르도카이를 매달 말뚝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모르도카이는 역적모의를 신고하고도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임금으로부터 최고의 영예를 받고, 하만은 오히려 자기가 마련해 놓은 말뚝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번 작성한 임금의 칙령은 취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스테르는 임금에게 청하여 반대 칙령을 내리게 하였다. 즉 유다인의 학살일로 정해진 그 날에 유다인들 스스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봉기해 그들에게 대적하는 무리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윤허를 받았다.
그리고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의 결정에 따라 하만이 유다인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주사위, 아카디아어로 ‘푸르’를 던져 정한 이날을 해마다 ‘푸림절’로 경축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푸림절은 원수들로부터 평안을 되찾은 날이고, 근심이 기쁨으로, 애도가 경축으로 바뀐 날이 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쁨의 날로 지내면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축제로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모르도카이는 왕국의 제2인자가 되어 동족인 유다인들의 평화를 지키고 그들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에스테르는 ‘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 아론(Aaron)
신분 : 구약인물, 사제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아론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했던 출애급 사건과 이어지는 광야 여정 중 모세와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첫 번째 사제이다. 성서에서는 아론을 모세의 형제이며 공동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사제 계급의 시조라고 하였다.
성 아론은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세가 그의 동생이고(출애 6,20), 미리암은 그들의 누이였다(민수 26,59). 암미나답의 딸이며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한 뒤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을 자녀로 둔(출애 6,23)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려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세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출애 7,7). 그러나 그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성서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벌인 파라오와의 담판에서 그는 모세의 대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 출애급 이후 광야 여정에서도 모세와 함께 공동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탄원을 듣고(출애 16,2)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자비의 구원을 선포하였다(출애 16,6).
시나이 산에 이르러 그는 야훼가 명한 대로(출애 29,4-9) 성대한 임직식을 통해 사제로 축성되는데(레위 8장), 그의 사제직은 여러 징표들을 통해 확인된다(민수 16장; 17,16-28). 또 바란 광야에서는 모세와 더불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정찰대를 맞았으며(민수 13,25-29),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실행하기도 하였다(민수 14,26-38).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대부분 함께하였던 아론은 에돔 땅 경계 부근의 호르 산에서 모세와 자신의 아들 엘르아잘이 지켜보는 가운데 므리바에서의 물 사건(민수 20,12) 때 하느님이 선언하였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민수 20,22-29).
아론의 죽음에 관해서는 민수기 33장에서 보충되는데, 그가 죽은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되던 해 다섯째 달 초하룻날이었고, 그의 나이는 123세였다(민수 33,38-39). 이스라엘의 온 집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민수 21,29).
성 시메온 살로(Simeon Salus)
활동년도 : +6세기경
신분 : 은수자
지역
같은 이름 : 살로, 살루스, 시므온
성 시메온은 친구인 성 요한(Joannes, 7월 21일)과 함께 사해 근방의 사막으로 들어가서 29년 동안이나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는 실로 겸손 자체라 할 정도로 겸손의 덕을 닦았다. 그 후 그는 시리아의 에메사에서 잠시 동안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때 '살로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말은 '미쳤다'는 뜻의 그리스어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수많은 특은을 허락하셨다. 그의 사망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88년의 대지진 이후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복자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활동년도 : 1713년 ~ 1784년
신분 : 교수, 수도자, 선교사
이름의미 : 하늼어 광대(= 주니페로)
1987년 9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Carmel Mission을 들렀다.
이 때 교황은 Junipero Serra의 무덤에 헌화하였다.
1988년 9월 25일 교황은 이 프란치스칸 복음 선포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Junipero Serra는 1713년 11월 24일 Majorca의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Miguel Jose Serra였고, 그 가정은 겸손한 농부의 가정이었다.
Miguel이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칸 수련착복을 하였다.
1713년 Miguel은 서원을 하였고 그 때 Juniper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31년부터 1734년까지 Junipero는 San Francisco Palma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후 초기 몇 년간 그는 학생 프란치스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742년 Junipero 형제는 Jajorca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전통있는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749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49년 4월 13일 Francisco Palou와 함께 Junipero는 Marjoca를 떠나 멕시코를 향하였다.
10월 18일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San Juan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부터 그는 멕시코까지 여정을 계속하였다. 그때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Vera Cruz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멕시코시를 향해 갔다.
그는 멕시코시에 1750년 1월 1일 도착하여 마침 맞게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선교사로의 그의 첫 번째 체험을 했던 곳은 Pame 인디안들과 함께 한 Sierra Gorda에서였다(1750-1758).
그는 Jalpan에 파견되었고, 이 때 집중적으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San Saba de la Santa Cruz (오늘날은 Texas의 Menard County임)에서의 새로운 선교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멕시코시의 선교학교로 돌아갔다.
이 여정은 어렵기도 했지만 위험스럽기도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럭저럭 하는 동안 Junipero는 수련장직을 맡았기에 멕시코시에 머물러야 했다.
1767년 Junipero는 캘리포니아의 Loreto로 파견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배 야욕 때문에 Junipero는 북쪽 San Diego로의 여정을 떠나 1769년에 도착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Junipero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 첫 번째 선교 거점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선교의 여정은 북쪽 Monterey쪽까지 계속되었다.
1771년 8월 24일 Junipero는 San Carlos Borromeo에 두 번째 선교 거점(이것을 Carmel mission이라 함)을 세웠다.
이 선교 본부는 캘리포니아에서 Junipero가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본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후에 San Antonio (1771), San Gabriel (1771) and San Luis Obispo (1772)에 다른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1773년 Junipero는 멕시코로 돌아가 총독에게 새로운 선교를 위해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멕시코로 가는 길에 그는 몸이 많이 아팠다.
그가 멕시코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총독에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representacion"이라는 캘리포니아에 관한 최초의 법적인 문서의 초고를 썼다.
1774년 그는 Carmel Mission에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선교사로서 그곳에 번창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다.
이 때 다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San Francisco (1776), San Juan Capistrano (1776), Santa Clara (1777), San Buenaventura (1782).
Junipero의 건강이 1784년에 많이 악화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결핵과 오래 누적된 과로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78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하였기에 온 피로로 탈진 되었던 것이다.
그는 35년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Carmel Mission의 성당 묘지에 묻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