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처럼/靑石 전성훈
숲속 아침 햇살을 마주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시각에 따라 아침 햇살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숲속의 환한 햇볕을 맞이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흐린 날이나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은 햇빛을 볼 수 없다.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하늘의 선물인 아침 햇살은 다른 곳으로 소풍 간다. 따사로운 햇볕을 쐬지 못하면 안타깝지만, 섭섭해도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여름 햇살이 숲속으로 그냥 스며드는 게 아니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와 태양의 햇살이 서로 궁합이 맞아야 한다. 어리광 피우듯 나뭇가지가 알맞은 각도로 길게 뻗어 나오면 하늘의 미소가 살그머니 그 사이로 날아온다.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면,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달리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아침마다 찾아가는 동네 뒷산 초안산, 이른 아침에는 깡충깡충 귀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뛰어가는 까치 소리만 들릴 뿐 사람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어딘가 깊은 산중에 들어온 듯하다. 세상 만물이 숨죽이고 머무는 듯한 순간이다. 그 순간 만나는 한 줄기 햇살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흘러온 빛처럼 느껴진다. 늘 만나는 숲속의 모습도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다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근심이나 걱정으로 지새운 날은, 몸도 무겁고 정신도 개운하지 못하다. 흐리멍덩한 채 숲을 찾으면 숲의 정취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 터벅터벅 숲길을 그냥 스쳐 지나칠 뿐이다. 편안하게 잠자고 일어나 숲을 찾으면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볍다. 그때 만나는 아침 숲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같이 정겹게 다가온다. 숲속 작은 벌레 한 마리까지도 반갑게 느껴져 살갑게 바라보게 된다. 숲길을 걸으며 행여 개미를 밟을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걷는다. 8월이 끝나가는 시점에 접어드니까 그토록 신명 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치열한 매미의 사랑놀이도 끝난다. 매미가 떠난 숲에는 여기저기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리라.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숲도 천천히 모양을 바꾸기 마련이다. 무르익어가는 가을 정취로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준비하는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아침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런가 하면 페트병에 물을 담아와 적당한 구덩이를 파고서 거기에 물을 붓고 질퍽한 진흙에 발을 담그고 그대로 서 있는 사람도 보인다. 어딘가 몸이 아파서 걷기 힘든 사람은 숲속 의자에 앉아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참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 개중에는 부지런하게 빨리 걸으면서 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숲길을 걸으며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애틋하다. 이토록 다양한 사람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상대방 처지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본다. 역지사지의 태도는 세상을 더욱더 살맛이 나는 풍요로운 곳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가르쳤다. 그렇기에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노래를 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세상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과 늦잠꾸러기인 저녁형 인간, 모두가 괜찮다. 본인에게 알맞은 생활습관을 따라서 삶을 즐기면 좋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세상이다.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게 일반적인 인간 삶의 모습이다. 개미나 일벌과는 다른 삶의 방식인 베짱이는 놀면서 지내는 것 같지만, 특별한 한 가지 재주나 특기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도 많다. 그중에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어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번뿐인 삶일진대, 용기를 갖고 자기만의 삶을 온전히 지켜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저 혼자 잘났다고 중뿔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며 안타깝다. 스스로 초조함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남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숲속 햇살은 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따사롭고 향기로운 게 아니다. 오늘따라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이 보고 싶다. (202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