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기업 이야기 아침 7시, 효문 사거리는 울산의 동맥처럼 펄떡펄떡 뛰고 있다. 아직 통근차가 오려면 10분이 남았다.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문다. 여름 아침은 자동차 매연 가득한 곳에서도 싱그럽게 다가온다. 15인승 그레이스가 다가와 멈춘다. 이미 차 안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다. 차를 타면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날이 참 좋지요?” “어서 오세요” 50이 넘어 보이는 운전수가 몸에 밴 인사를 한다. 흔히 말하는 출퇴근 지입차다. “오늘 두 바리 해야겠네. 인도네시아 아~들까지 태우려면......”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효문 사거리를 출발한다. 북구청에서 세 명을 태우고 호계에서 4명을 태우고 모화에서 또 2명을 태운다. 차는 만원인 체로 구어공단에 도착한다. 먼저 출하과에 가서 업무를 챙긴다. “이대리, 밤새 별일 없었어요?” “말 마소, 새벽 두 시에 불려나왔다 아잉교.” 경주가 집인 이 대리는 아직 총각이다. 나이는 서른 여덟 살이 넘었으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K기업에서는 터줏대감이다. 중소기업의 현실이 그렇듯 이직률이 심하지만 오래 있기로 친다면 이 대리는 여기에 몇 번째 되지 않는 고참이다. “또, 무슨 일인교?” “자동차 3공장에서 라벨이종이라고 불려갔다 조금 전에 왔심더”
주)라벨이종:박스에 부착된 라벨과 실물 부품이 다른 것
특유의 뚝심어린 얼굴을 하며 툭 내뱉는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습니까” “예, 잘못 들어간 물건 갔다 주고, 잘못 부착된 것 다 재작업해 주었심더.” “수고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인사가 그렇다. 자동차는 주, 야 교대 근무를 하여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으레 밤 낮 없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말한다. 새벽에 전화를 했으면, 미안한 감이 조금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당연한 듯이 주인이 종을 부르듯 불러댄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라인 끊지 않으려면 당연한 것 아닌가?’식이다. 물론 자동차가 잘못해서 잘못된 발주를 내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휴게실로 간다. 휴게실에는 납품기사와 직원들이 뒤섞여 커피를 마신다. “어제, 2공장에 갔는데, 생관 자재 금마 거거 되게 빡시게 하더라 아이가” “와?” “저번에 한 박스에 스물 개 담아갔는데, 부품이 기스가 난다고 해서 10개 포장하는 걸로 바깠다 아이가. 지가 허락 안 했는데 마음대로 바깠다고 영업사원 오라고 했다아이가 영업 사원 올 때까지 차 잡아놓고......시팔, 영업 사원 올 때까지 두 시간 동안 기다렸데이. 회사가 잘못 인지 자동차가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오전 한 바리밖에 못했다 아이가. 열채 가지고” “그거 어디 한 두 번 겪나 그것 까꼬 뭘 그카노”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빼고 담배를 두 가치 피우고 휴게실에서 나왔다. 멀리서 부사장과 상무가 돌아다니고 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선다. “미스 김, 안녕” “예, 안녕하세요, 과장님.” “김선돌씨는 아직 출근 안 했나?” “예” 책상 위는 여전히 서류와 파일로 지저분하다. 책상 정리할 생각을 하다 그만두고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미스 김, 인터넷이 안 되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전산실이 따로 있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나서 고쳐줄 사람이 없다. 이때는 이 대리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이 대리님 고과장인데요. 인터넷이 안 되네요?” “컴퓨터 인터넷 선 빼노소” 이 대리는 사무실로 들어와서 모든 컴퓨터의 인터넷 선을 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나간다. 한참을 있다가 들어와서는 “인자 함 꼽아보소” 이 대리의 말을 듣고 인터넷 선을 꼽고 다시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클릭하자 인터넷이 된다. “아, 이 대리님 인제 되었네요. 수고했습니다.” 이 대리는 무뚝뚝하게 출하과로 걸어 나간다. 김선돌씨가 들어온다. 늦어도 미안한 감이 하나도 없다. 이직률이 심하다보니 밑에 직원이 잘못해도 큰 소리 치지도 못한다. 괜히 한 소리 했다가는 나오지 않으면, 그 일을 상급자인 고과장이 다 해야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 달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안 주노, 에이” 회사에서 컴퓨터를 사주지 않아 집에 쓰던 컴퓨터를 회사에 가지고 와서 사용하다가 뭐가 기분 나빴는지 다시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가 버렸다. K기업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비품에 대해서 무척 인색하다. 못 들은 척하고, 서류를 뒤진다. 미결된 서류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뻑적지근해 온다. 그 때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거기 K기업 맞는교?” “예” “사장 바꾸소” “어디십니까?” “와 말이 많은교, 사장 바꾸라면 바꿀거지.” “사장님은 창원에 계시는데요?” “그럼 부사장 바꾸소” 순간 무슨 전화인지 짐작이 갔다. “영업부 고과장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잘 됐네, 여기 생관 4부인데 K기업은 와 자꾸 라벨하고 실물하고 다르게 납품하는교? 진짜 K기업 때문에 못 살겠어요. 대책서 들고 바로 들어오소.” 또 라벨이종인 모양이다. 이번 들어서 벌써 몇 번째인가, 한숨이 나왔다. 자동차는 라벨이종, 수량 착오 등의 문제가 생기면 업체 사장이나 담당 중역에게 대책서를 들고 들어와 대책 발표회를 시킨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무안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K기업에서는 대책 발표를 하러 가는 담당자가 고과장이다. 이 대책 발표만 아니면 그래도 해볼만한 게 이 일인데, 한두 번도 아니고 같은 내용을 계속 발표하려니 스트레스부터 먼저 받는다. K기업은 자동차 1차 BEND이다. 2차 BEND로 나가는 외주가 90%를 넘고 10% 정도만 자체 생산한다. K기업의 BEND도 30개가 넘는다. 모두 영세업체들이다. K기업에서는 2차 BEND에서 납품을 받아 그대로 자동차로 또다시 납품한다. 2차BEND에서 라벨과 실물을 다르게 하거나, 수량이 틀리게 납품해오면 K기업으로서도 방법이 없다. 부품 종류만 4천가지가 넘는 것을 전수 검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문제가 된 업체에 대책서를 받고 대책서를 작성한다. 대책서를 하도 많이 작성해서 대책서 작성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성한 대책서를 프린터하고 나니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옆에서 큰 소리가 난다. 품질관리부 김 차장이다. “야 시팔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너그 뭐하는 놈들이고” 차장으로서 제법 이 회사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부하 직원들에게 큰 소리를 친다. “백대리, 니 와 연락이 그리 안 되노. 핸드폰 꺼놓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이야기 했노? 자동차 문제 생길 때마다 내가 들어가야 되나?” 김 차장에게 다가간다. “열 올리지 말고 한 꼬바리 하러 갑시다.” 못 이기는 척 따라온다. 회의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서 “아침부터 와이리 시끄러운교?” “어제 새벽에 시트에서 백화현상이 일랐는데, 아무도 연락이 안되니까 내 한테 연락이 안 왔는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이 새끼들 핸드폰 다 꺼놓고......” 씩씩대는 김 차장의 모습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씩씩대는 김 차장을 애써 달래고 회의실을 나오니 시간은 거의 12시가 다 되었다. 사무실의 다른 일을 대충 끝내고 대책서를 들고 식당으로 향한다. 벌써 몇 몇 직원들이 줄을 서있다. 점심을 먹고 포터로 간다. 20만 키로를 넘게 탄 포터를 타고 시동을 건다. 그때 김선돌씨가 달려와 “과장님요, 올때 내자 터미널에 들러 빈 박스 좀 찾아오소” “알았다.” 정문을 나와 여름 길을 달린다. 에어콘이 되지 않는 포타, 브레이크 부분에서 뜨거운 연기가 푹푹 올라온다. 도로는 공사가 한창이라 차가 막힌다. 대책 발표를 해야 하는 자신의 심정 같아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 담배 한 대를 뽑아 문다. 담배 연기가 꼭 자신의 가슴이 타서 나오는 연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풀들이 길 옆으로 많이 자라 주변이 무성하기까지 하다.
생관 4부 자재 사무실에 도착하니 정각 1시다. “K기업에서 왔습니다. 아침에 저에게 전화하신 분이 누구시죠?” “아 K기업에서 왔는교? 정조장이 아까 전화하던데 밥 묵고 아직 안 왔심더 조금만 기다려 보소. 아, 그런데 K기업은 와 자꾸 라벨이종 내는교. 정조장이 대게 열받아 하던데,” “죄송합니다. 업체에 주의를 주는데도, 그만” 15분이 지나자 작업복을 입고 한 사람이 들어온다. “정조장, 저 사람 K기업에서 왔단다.” 정조장이란 사람의 얼굴이 금새 굳어진다. “K기업은 와 자꾸 라벨이종 내는교, 내 참을라 카이 더 못 참겠심더. 이리 오소 내하고 사무실로 갑시더.”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아침에 보고 드린 라벨이종 건 안있능교, 여기 K기업에서 사람이 왔으니까 같이 갈께요” 그러고는 고과장을 보고 “내 따라오소” 하면서 앞정 선다. 자동차 라인 속으로 끌려가듯 따라간다. 앞서가던 정조장이 한 작업자에게 가더니 “이 사람이 K기업에서 온 사람임더 이야기 좀 하소” 마치 분풀이라도 하라는 듯 그 사람 앞에 세운다. “K기업 좀 똑바로 하소, 맨날 라벨하고 실물하고 틀려 들어오니 미치겠심더” “아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맨날 말로만 죄송하다카고 지금 몇 번째인지 아능교?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임더” 고과장으로서도 달리 할 말이 없다. 단지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이리 따라오소” 정조장은 또 앞서간다. 한 참을 걸어가던 정조장은 사무실 앞에 멈춰서서 따라 들어오라는 시늉을 한다. 그곳에 들어가니 벌써 몇 사람이 모여 있다. “과장님, K기업 때문에 일 못하겠심더, 크레임 물려야 됨더” 과장이라는 사람이 근엄한 표정을 하고 “와 자꾸 이라는교? 라벨이종 나가지고 다른 제품이 장착되어 출고되모 그 책임 다 질건교? 한 두 번도 아니고 진짜 너무 하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시 고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대책 발표 한번 해보소” “예, 이번 건은 실물을 다 박스에 담고 라벨을 붙이다 보니 옆에 세워 둔 다른 제품에 까 지 같은 라벨을 붙여서 일어난 건입니다. 앞으로는 박스 하나 포장하고 나서 라벨을 바로 붙이는 방향으로 개선하겠습니다.” “만날 그소린교?” 과장은 또 핀잔을 준다. 하지만 라벨이종은 달리 대책이 없다. 전산화와 바코드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는 K기업에서는. 그리고 회장님은 그런 쪽에 투자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위에 까지 보고 다 할거니까 알아서 하소“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위에 까지 보고한다는 것은 회사 중역이 자동차에 와서 다시 발표를 해야 된다는 말이다. 회사 중역의 발표는 곧 바로 고과장에게 다시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것이 뻔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어깨에 힘이 쭉 빠져 포터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또 다시 담배를 문다. ‘이놈의 세상, 꼭 이렇게 살아야 되나“ 절로 한숨이 나온다. 포터를 돌려 자동차 단조 정문까지 왔다. 단조 정문의 경비가 자동차에 다른 것을 실었는 지 여부를 검사한다. 가라는 신호를 한다. 신호를 받으면서 또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문다. 불을 붙이고 차를 출발 시킨다. 또 한 건 했다는 안도감에 잠시나마 마음이 가볍다. 자동차를 타고 효문 부근까지 왔다. 핸드폰 소리가 들린다. 이대리다. “고 과장님, 생관 2부 P20창고에 한 가보소, 또 이종 났담더” 순간 또 맥이 빠진다.
저녁이다. 또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품질관리부 김 차장에게 간다. “오늘 잘 보냈습니까? 마치고 호계 가서 소주 한 잔 어때요?” “좋심더, 원가에 이 차장도 부를까요? “좋죠!” 세 명은 술 멤버이다. 호계에 도착하여 닭발집에서 모였다. 먼저 이차장이 운을 뗀다. “이야기 들은 것 있는교? 성이사가 이번에 짤린다 카든데...” “그 이야기 확실한 것 같던데요. 전에 터진 불량 비용 때문에 짤린다던데...” 김차장이 거든다. “마 그런 이야기 집어 치우고 술이나 한 잔 합시다.” 고과장의 건배 제의에 “건배” 를 외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 차 갑시더” 김 차장이 바람을 잡는다. “어디 갈까요?” 고 과장이 귀가 솔깃해 묻는다. “전에 호프 노래방 거기 괜찮던데, 가서 딱 한 잔만 더 합시더” “좋심더.” 이젠 이 차장이 거든다. 그때 고 과장 옷에서 핸드폰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고 과장입니다.” “K기업 영업부 고 과장 맞능교?” 목소리가 벌써 열이 올라있다. “그런데, 누구시죠?” “여기 생관 4부 P40 창곤데. 와 또 라벨이종 시키는교?” 술이 얼큰하게 된 고 과장은 마침내 속이 터진다. “아니, 이 밤에 전화 해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린 뭐 사생활이 없는 줄 아십니까?” 평소 같으면 그런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못하는 고과장인데, 오늘은 술이 한 잔 되어서인지 그동안 못한 말 들을 쏟아 붓는다. 그 쪽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반응에 할 말을 잊고 있다가 잠시 후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노, 뭐 잘 했다고 큰소리는 큰 소리고, 내일 들어와! 안 들어오면 들어올 때까지 차 다 잡아놀끼다.” “야이 시팔놈아, 나도 가정이 있고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가지고...... 내가 회사 그만두면 될 거 아이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어디서 욕하노, 내일 함보자” 하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고과장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댄다. 대충 분위기를 눈치 챈 김 차장이 “고 과장, 참아. 우리 일이 그런 거 아이가. 월급이 욕값 아이가” 또 다시 담배를 빼어 물고 고과장은 “참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요. 나 내일 사표 쓸겁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효문 사거리에 고 과장이 담배를 빼어 물고 서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