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의 서문
찰스 다윈
나는 군함 비글호號의 박물학자로 승선하여 항해하는 동안 남아메리카의 생물 분포와 과거 이 대륙에서 서식하던 생물과 현존하는 생물 사이의 지질학적 관계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한 위대한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가장 신비로운 일의 하나인 종種의 기원에 대해 약간의 빛을 던져주는 듯 했다.
귀국 후, 1837년에 이 의문과 관계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실들을 모아서 검토해 보면 무엇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5년 동안 끈질기게 그 일을 계속한 결과,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통합시킬 수가 있어서 짤막한 메모를 남겨놓았다. 1844년에 그것을 바탕으로 확신하고 있던 어떤 결론의 개요槪要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문제를 추구해 왔다. 이렇듯 사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내가 일을 경솔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양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지금 나의 연구는 거의 끝나 가지만 마무리까지 2, 3년은 더 걸길 것이다. 그러나나의 건강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 초본抄本을 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밖에도 이 책을 간행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말레이 군도에서 박물학을 연구하는 있는 월리스 씨가 종의 기원에 대해 나와 거의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에 이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찰스 라이엘 경에게 전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나에게로 보내왔다. 그것은 라이엘 경의 검토를 거쳐 {린네 학회보}의 제3권에 수록되었다. 라이엘 경과 후커 박사는 모두 나의 연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후커 박사는 1844년에 내 논문의 개요를 읽었다----영광스럽게도 나의 초고의 간단한 발췌를 월리스 씨의 논문과 함께 발표하도록 권했다.
지금 간행하는 이 초본은 불완전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또한 나의 여러가지 논술에 대한 내력이나 저자의 이름을 일일이 들 수가 없다. 다만 정확하다는 것을 독자들이 믿어주기 바랄 뿐이다. 나는 충분히 권위 있는 것만을 골라 참고삼으려고 신중을 기했지만, 간혹 틀린 곳도 있으리라. 이 책에서는 내가 도달한 일반적인 결론과 그 예로 지적되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 진술할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충분하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여러 가지 결론의 기초가 되고 있는 모든 사실과 그 근거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동시에 앞으로의 저작에서 이 일을 완수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책 속의 여러가지 논점에 대하여 내가 도달한 결론과 가장 정반대의 결론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을 거의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포함된 지극히 많은 박물학자들로부터 받은 친절한 후원에 대해 지면 관계상 충분히 감사의 말을 드리지 못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기회에 내가 후커 박사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후커 박사는 지난 15년 동안 넓은 지식과 뛰어난 판단력을 동원하여 온갖 방법으로 나를 후원해 주었다.
그러면 이제 드디어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로 들어가겠다. 생물이 서로 유사한 점이라든가, 발생학적 관계, 지리적 분포, 지질학적 이동, 그밖의 여러 가지 사실을 검토한 박물학자는, 종은 어느 것이나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변종變種처럼 다른 종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은 비록 이유가 지당하다 할지라도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무수한 종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하는 구조의 완전함과 상호적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박물학자는 변이變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써 언제나 기후나 음식물같은 외적 조건만을 든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어떤 지극히 한정된 의미에서 볼 때는 그것이 옳다. 그러나 예컨대 딱따구리의 발, 꽁지, 부리, 혀 등의 구조가 나무껍질 밑에 있는 곤충을 잡기 위해서는 훌륭하게 적응되어 있다는 사실을 외적 조건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이다. 기생목寄生木은 어떤 종류의 나무로부터 양분을 섭취하며, 그 종자는 어떤 종류의 새에 의해 운반되어야 하고, 그 꽃은 자웅雌雄이 따로따로여서 꽃가루가 한 꽃으로부터 다른 꽃으로 운반되려면 어떤 종류의 곤충에 의해 절대적으로 매개되어야 하는데, 이 기생식물의 구조와 다른 몇 개의 생물에 대해 갖는 관계를 외적 조건이나 습성이나 의지 등의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것 역시 무리이다.
따라서 변형과 상호적응의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통찰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이런 것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가축 및 재배식물을 주의깊게 연구함으로써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문제를 해명해 나갈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 경우나 또다른 복잡한 문제의 경우에도 나는 항상 사육재배하의 변이에 관한 지식이 비록 불완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가장 좋은, 가장 안전한 열쇠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박물학자들은 이와 같은 연구를 흔히 무시하고 있지만, 나는 감히 그것이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나는 이 책의 제1장에서 [사육재배하의 변이]를 기술하게 된 것이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많은 유전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또는 그 이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 ‘인위도태人爲淘汰’에 의해 계속적으로 미세한 변화를 축적해 가는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자연상태 속의 종의 변이성에 관한 문제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주제를 매우 간단하게 취급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적절히 취급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사실을 열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장에서는 온 세계의 모든 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결과 생기는 [생존경쟁]에 관하여 취급할 것이다. 이것은 맬서스의 원리를 동, 식물계에 적용시킨 것이다. 어느 종이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개체가 탄생하며, 따라서 빈번하게 생존경쟁이 일어나므로 비록 조금이라도 변이하는 생물은 복잡하고 또한 때로는 변화하는 환경 밑에서 보다 많은 생존의 기회가 주어지며, 그리하여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것이다. 유전의 확고한 원리에 입각하여 도태된 변종은 모두가 그 새로이 변화한 형태를 번식시켜 나가게 된다.
이 근본적인 ‘자연도태’의 문제는 제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며, 그 다음 우리는 자연도태가 어떻게 하여 거의 필연적으로 덜 발달된 생물을 멸종시키는 원인이 되는지, 그리고 내가 ‘형질의 분화’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장에서는 변이와 성장의 상관관계에 관한 복잡하고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법칙에 관해 논하기로 하겠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장에서는 이 학설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기 쉽고 또한 가장 중대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진술하겠다.
그 첫째로, 단순한 생물 또는 단순한 기관이 어떻게 하여 고도로 발달한 생물 또는 정교한 구조의 기관으로 변화하고 완성되느냐에 대한 이해, 즉 이행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취급하는 것이다. 둘째는 본능, 즉 동물의 심리적 능력의 문제이다 셋째는 잡종형성인데, 종을 교배하면 생식이 불가능한 자손이 나오고, 변종을 교배하면 생식이 가능한 자손이 나온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넷째는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에 관해서이다. 그 다음 장에서는 생물의 시간적인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에 관해서 언급할 것이며, 그 다음 장에서는 생물의 시간적인 지질학적 천이遷移에 대해, 제12장 및 제13장에서는 생물의 공간적인 지리적 분포에 대해, 또 제14장에서는 생물의 분류 또는 성숙한 상태 및 씨눈 상태의 양쪽에 있어서의 상호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전체의 간단한 요약과 결론이 되는 몇 개의 논술을 적기로 하겠다.
우리 주위에 생활하고 있는 모든 생물의 상호관계에 관해 우리가 지극히 무지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한다면, 종 및 변종의 기원에 관해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아무리 많다 해도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종은 널리 분포되어 있고 개체수가 많은 데 반해, 그것과 비슷한 종은 무엇 때문에 좁게 분포되어 있고 개체수도 적은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런 관계는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생물의 현재의 평안을, 그리고 미래의 성공 및 변화까지도 결정하는 것이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여러 지질시대에 살았던 수많은 생물들의 상호관계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너무나 적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명확하지 못한 채로 남을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의를 다해 신중히 연구했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근래에까지 품고 있었고, 나 역시 인정하고 있던 견해, 즉 각각의 종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잘못이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종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종에서 만들어졌다고 인정되는 변종이 그 종의 자손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같은 속屬에 속하는 종들은 이미 일반적으로 소멸해 버린 종으로부터 얻어진 자손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나는 ‘자연도태’가 변화의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도 확신하는 바이다.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이며, 그의 {종의 기원}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같은 충격을 우리 인간들에게 전해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진화론’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것 만큼이나, 신의 섭리를 벗어나 자연의 법칙, 혹은 종의 법칙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은 영구불변적인 어떤 것이 아니며, 따라서 종은 자연도태되거나 끊임없이 새롭게 변모(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학의 고전이면도, 동시에, 우리 인간들의 사상의 고전이기도 한 것이다.
이 글은 홍성표 역의 {종의 기원}(홍신문화사, 1996년)의 서문이며, 독자 여러분들은 꼭 이 책을 구입해서 정독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