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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고전1:18-24)
지금은 사순절기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회상하는 기간입니다. 다음주일이 종려주일이니까 고난주간의 첫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했지만 극히 작은 소수만 그의 쓴잔을 마셨다"라고 말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출발과 기초입니다. 사도바울은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 없이 기독교의 신앙은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십자가 없이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돌아가심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곳이 바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대하는 사람들은 둘로 나누어진다고 사도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다시 보십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찌 죄가 없다는 분이 십자가를 지고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저주의 틀인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조롱하였습니다.
마 27:40-41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 27:40-44)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들 보기에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에 단번에 천둥 번개를 쳐서라도 이 악한 세대에 경종을 울리시고 하나님이 큰 음성으로 한 번 소리치시면 안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이 가룟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 때 성격 급한 베드로가 칼을 빼어 그들중 한 사람을 내리쳤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죽지 않고 귀만 잘려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6:52-54)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이 힘이 없어 끌려가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2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물리칠 수도 있었지만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러 끌려가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전도의 미련한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멸망당할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저주받아 죽은 사형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바보스럽고 어리석게 보일 뿐입니다.
바울은 2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을 강조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 즉 철학과 학문을 중요시했던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배척했고 헬라인들은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미련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저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요 3:14-15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 물려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누구든지 그 놋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신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놋뱀을 쳐다본다고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고통에서 치료받고 살아난다는 것은 이해도 되지 않았고 믿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깟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구! 웃기는 소리하지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저 따위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당장 나타나서 내 상처를 고쳐보라고 해" 완악하게 불신하고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쳐다보지 않은 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누가 은혜를 받게 됩니까?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놋뱀을 장대에 높이 매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죄악으로 죽어가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들려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는 철학이 아닙니다.
어떤 이론도 아닙니다. 그냥 실제입니다. 내가 죽을 것을 예수가 대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믿고 영접하면 삽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고상한 학문이나 철학을 가지고 접근하면 매력있어 합니다. 아주 합리적인 이론을 제시하면 그럴듯하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래서 다른 이방종교들의 경전은 이론적이고 합리적이며 철학적입니다. 여러분, 불교의 경전만 보더라도 그 크기가 팔만대장경입니다.
동양의 유교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서삼경같은 책들은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고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단순합니다. 분량이라고 해야 작은 책자 66권으로 된, 단 한 권의 책입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내용 전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가운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과의 대화의 상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그 깨어진 관계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온갖 불행과 저주, 그리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행과 저주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을 약속한 것이 구약 전체의 핵심이고 신약은 약속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것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가 후일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 전개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도리를 어렵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누구든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멸망당할 사람들은 예수 십자가의 도를 아주 미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아는 그 십자가의 도가 죄인을 구원합니다.
아무 공로 없어도 그 십자가의 도를 알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엡 2:16절에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알고 믿으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어진 관계가 소멸되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엡 1: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고 엡 2:13절에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로 알고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요 12:23절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시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로마군대를 다 몰아내고 메시야 왕국을 완성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진정한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의 영광"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왕의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을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로 생각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광을 승리에서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얻고, 이기고, 누림에서 영광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희생에서 영광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영광을 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죽음에서 영광을 볼 때, 참된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1)대속의 능력입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죄값을 치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사람들은 날마다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대속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형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완전하고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구속사역의 완성하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대속의 능력입니다.
2)생명의 능력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알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그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어야 살고 버림으로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요, 십자가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반드시 죽어야 산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자기 희생이요, 자기 죽음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사는 길이 있고 자기를 포기하고 얻는 것입니다. (롬 6:6,7)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살고 내가 성공하고 내가 잘되고 내가 만족하는 길은, 죄송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의 욕구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욕심이 죽고 내 논리가 죽고 내가 만족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사람들에게 정말 어리석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바로 그속에 숨겨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나의 영혼의 승리입니다. 내 영혼이 승리해야 진정한 승리인 것입니다. 내 보이는 육체가 승리하는 것은 잠시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안에 있는 성령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육신의 욕심을 따르지 마십시요.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거기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가슴깊이 새기고 그렇게 믿고 따라갈 때 우리안에 놀라운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진정한 하나님의 진리를 온몸으로 확신하고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관계회복의 증표입니다.
엡 2:16-17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더하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안에 믿음으로 영접했더니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연합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롬 6:4,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나의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내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도는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연합하면 우리의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고 다 씻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떠나셨던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내 공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죄인중의 괴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나사이에 새로운 살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나님과 나사이에 막렸던 휘장이 찟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혹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대속의 능력이요, 2)생명의 능력입니다. 또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증표입니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놀라운 신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할 때 이 놀라운 복음이 바로 나를 위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믿고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