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새벽의 기습적인 회담 타결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든다. "저 학살자 깡패새끼들…
이번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구나…"
그러다 8월 25일 아침 청와대의 발표를 들었다.
한마디로 “크게 이긴 만족스런 성과이며 앞으로 북한과 교류협력을 확대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취지였다.
▲ 끝까지 김정은을 몰아치지 못하고 서둘러 협상을 끝낸게 몹시 아쉽다.ⓒ뉴데일리 사진DB
회담이야 “지금 평양을 뭉개버릴 게 아니면 결국은 타결했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한, 심지어 ‘비 온 다음 땅 굳어진다’는 뉴앙스를 담은 청와대 발표를 들으며 사기 당한 느낌, 속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정신분열증 환자인가?
아니면 바보인가?
국민, 청년들이 얼마나 비장한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나?
청와대 멘트의 주제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이것 밖에 못 해내서 죄송합니다]가 됐어야 하는데…
청와대 멘트의 톤은 [북한 체제는 결국은 붕괴관리되어야 하는 체제]라는 암시가 되었어야 하는데…"
국민과 청년들은 자기 생명을 내놓고 "북한의 붕괴를 각오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역을 미루고 “동료와 함께 하겠다”는 젊은 군인들이 수십명 나왔고, SNS에서는 “나라가 부르면 바로 달려나가겠습니다”라는 청년 예비군들의 메시지가 홍수를 이루었다.
정부는 이와 같은 국민, 청년의 분위기 덕에 협상을 타결했다.
그에 대한 청와대의 답신은 이것?
“사과 받아냈어!
어때 대단하잖아?
‘유감’은 ‘사과’야!
자, 이제 북한 애들하고 손에 손잡고 쎄쎄쎄 교류-협력하면 되는 거야!
이제 위대한 남북교류협력의 시대가 열리는 거야!”
이는 국민에 대한 조롱이고 모욕이다.
상스런 짓이다.
왜?
예(禮)는 절차와 과정(protocol)이기 때문이다.
국민-청년의 비장한 각오 [덕분]에 흉악무도한 전체주의 학살자 집단으로부터 최소한의 ‘무엇’인가를 끌어낼 수 있었다면, 그에 이어지는 행보는 ‘국민, 청년의 비장한 각오’를 누그러뜨리고 설득하는 절차와 과정이 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절차와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분홍빛 남북교류협력시대’가 튀어나오니까 수많은 국민-청년들은 “정부에 의해 우롱당했다. 우리가 총알밥이냐?”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의 사고방식, 패러다임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 국민-청년은 더 이상 햇볕미신에 매여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 이상 “어떻게든 평양것들과 알콩달콩 지내야 한다”라는 강박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국민-청년들은 이미 평양것들에 대해 단단히 마음을 정한 상태이다.
정책결정자들과 직업정치인들이 이를 모를 뿐이다.
국민-청년들의 이 같은 위대한 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복기해서 해석해 보자.
1. 국민들이 햇볕미신을 완전히 떨쳐내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햇볕미신을 완전히 떨쳐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청년층은 "북한과는 함께 오래 갈 수 없다. 홍역 한 번 치르고라도 자유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거대한 각성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남남갈등 자중지란] 전술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남남갈등 자중지란]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휘둘러 온 가장 강력한 지렛대이다.
6.25 남침이 실패한 다음 ‘그들’은 4.19 이후 1년의 혼란공간에서 시작하여 햇볕정책의 등장까지 무려 36년의 세월에 걸쳐 이 강력한 지렛대를 만들어 냈다. 김일성 집단은 여러 차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잭팟을 터뜨려 왔다.
6.25 이후 첫 잭팟은 1956년이다.
그 해 봄, 그들은 죽을 자리에 놓여 있었다.
중국도, 소련도 [김일성 제거]에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여름부터 싹트기 시작한 중소 분쟁…그리고 그해 가을에 터진 헝가리 민주화시위 학살사건 (당시 헝가리 전체 인구의 0.5% 정도(한국으로 치면 약 20~30만)를 소련군 탱크가 진입해서 깔아 죽였다)을 거치면서, 중국 소련은 김일성 체제 존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일성 일파는 "김일성 제거"를 떠들고 다닌 연안파-소련파-남노당파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보복 숙청을 시작했다.
이게 '종파사건'이다.
두번째 잭팟은 4.19 혼란공간이다.
종파 숙청을 통해 간신히 권력기반을 다진 김일성 일파에게 4.19 혼란공간은 거대한 축복이었다.
북한 내부의 현재적 잠재적 정적들에게 "우리는 남한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사실 혹은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김일성 일파의 지도력은 급속하게 안정되어 갔다.
그들은 그 이후 남한 내부에서 작동하는 지렛대(레버리지)를 만드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60년대 70년대의 굵직굵직한 지하당 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세번째 잭팟은 80년대 후반 386 라디오 종북 (평양방송을 듣고 열렬한 주사파가 된 세대)들이 청년학생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데이어, 1980년대말, 1990년대 초 초대형 거물간첩 이선실이 운동권을 헤집고 다니며 천문학적 거금을 살포해서 뿌리깊은 ‘노땅’ 종북들, 386 라디오 종북들, 그리고 운동권의 잡다한 이념 집단들을 몽땅 하나의 종북/친북 세력으로 엮어낸 일이다.
그 무렵 종북-친북이 거대한 무적(無敵) 흐름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종북-친북 흐름이 1990년대 중반에 완성한 ‘악마의 사탕’이 햇볕미신이다.
“평양도 결국 우리민족이다.
불쌍한 아우 대하듯 조금씩 퍼주고 달래주면 바뀐다.
우리는 전쟁광이 아니지 않은가?”
이 같은 햇볕미신은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다.
평양것들을 ‘반인류 전체주의 학살자 집단’으로 보는 것 자체가 극우팟쇼전쟁광의 관점으로 치부되었다.
평양것들의 도발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도발행위’라고 매도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일체의 도덕적 원칙을 상실한 ‘무도덕의 존재’로 타락했다.
전체주의를 전체주의라 부르지 못 하고 학살을 학살이라 부르지 못 하는 조건에서는, 다른 어떠한 도덕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사상의 본질은 도덕이다.
도덕은 “인간을, 나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 삶을 어떤 과정이어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화두다.
그 화두의 정치적 버전이 정치사상일 뿐이다.
햇볕미신은 대한민국 사람 전체를 무도덕한 짐승으로 타락시켰다.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직접 나서서 그 같은 ‘타락의 길’을 이끌었던 세월이 있었다.
이 무도덕에 대한 거대한 구역질이 시작된 것은 광우뻥 때다.
거짓선동의 폭력적 난동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천안함, 연평포격을 거치면서 이 각성의 씨앗이 다져졌고 드디어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평양것들이 도발한 다음 정부가 물러서지 않고 버티자 예비군 청년들의 '지원 입대' SNS가 봇물을 이루었고 전역 제대를 연기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나오는…이 같은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제 한국인은 햇볕미신을 떨쳐낸 것이다.
2. 불가피하다면, 국민은 정밀외과타격을 지지한다
“햇볕미신을 떨쳐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햇볕미신'으로 요약되는, 남남갈등-자중지란 유발 지렛대가 뽑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평양이 핵이라든지 미사일 등으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정밀 도려내기 타격을 가해도, 국민이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다"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한국인이 햇볕미신을 떨쳐냈다는 사실은, 평양것들의 멸망이 선고되었음을 뜻한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 국민의 각성에 의해 결정지워졌다.
국민은 잠재적, 현재적으로 정밀외과타격(precision surgical strike)을 지지하는 상태까지 각성된 것이다.
3. 북한의 내부가 갈갈이 분열되어 있고 심리전에 대해 지극히 취약하다
확성기 방송이 시작됐을 때 유승민은 "그까짓 확성기가 보복이냐?" 따위의 헛소리를 했다.
그러나 실제 진행과정을 보면, 북한이 심리전에 대해 지극히 취약하다는 점이 증명됐다.
심리전에 대해 왜 취약해졌을까?
첫째, 주민의 70~80%가 배급을 거의 받지 못 하고 암시장(장마당)에 참여하여 살림을 꾸리는 상태가 이미 15년 가까이 진행되었다.
일사 분란한 주민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둘째, 최근의 잔혹한 숙청에서도 드러나듯, 최상부 권력층 내부가 깊게 균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서열1위 황병서 군 총 정치국장과 서열 4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사이는 서로 가족을 잡아죽이고 구금하고 있는 상태라는 정보가 유력하다.
이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확성기, 전단, 라디오, USB 등을 활용한 심리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점이 증명됐다.
▲ 연평해전 당시 모습. 장병들을 총알받이로 내준 DJ정부는 태연히 정부예산을 금강산 관광에 쏟아 부었다.ⓒ뉴데일리 사진DB
4. ‘교류협력의 파트너’라는 분홍빛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영화 ‘연평해전’이 다룬 참혹한 죽음.
장병들을 총알받이로 내주었던 DJ 정부는 그 참혹한 죽음이 일어난 다음달에, 정부예산으로 금강산 관광객을 몽땅 모아 북으로 보냈다.
그래서 연평해전 다음달, 금강산 관광은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깡통진보 서울법대교수 조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연평해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것은,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로 보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합의문 제6항 “여섯째,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라는 구절을 보면서, 문득 연평해전 및 금강산관광이 오버랩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이제 대북정책은 '짝퉁햇볕'이 되는 거고, 대통령은 '리틀DJ'가 될 참인가?”
5. 민간교류와 퍼주기는 절대로 안 된다
평양것들은 UN이 규정한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 학살자 집단이다.
이런 집단과 무슨 심각한 교류, 협력이 가능하단 말인가? 합의문 제6항은 국민에 대한 조롱이다.
평양것들을 교류협력의 파트너로 삼는 것은 혼란과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 학살집단]을 마치 [교류협력의 파트너]인 듯 착각하도록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
당장 올해만도 약 2~3백만톤의 식량이 부족할 게다.
그러나 절대로 대한민국이 북한에 직접 지원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UN 혹은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를 통해, [다자 체제]로 지원되어야 한다.
왜?
첫째,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은 진지한 교류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주민에게 전달되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6. 정상회담의 파트너는 유영철이다
벌써 남북정상회담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해야 한다.
김정은 본인은 세계 최악 학살가문의 계승자이자 고모부까지 잔인하게 처형한 살인자이고, 유영철은 대한민국 최악 연쇄살인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이 격이 맞는다.
▲ 김정은과 유영철. 둘의 공통점은 학살자라는 점이다. 남북회담은 둘이 만나서 해야야 격이 맞는다.ⓒ뉴데일리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능멸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붕괴관리대상 1호]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국정원 대북팀 과장이 아니지 않은가?
7. 햇볕미신을 떨친 국민 vs. 햇볕미신을 떠받드는 정치권
평양것들을, 우리민족끼리 알콩달콩 지내야 할 교류협력 파트너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붕괴관리 해야 할 전체주의 학살집단으로 볼 것인가?
대통령과 정부의 움직임은 평양것들을 “붕괴관리 해야 할 전체주의 학살집단”으로 보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암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흉악무도한 집단에 대해 민간더러 교류를 확대하라니?
그 민간은 호구인가? 총알밥인가?
아니면 종북-친북 간첩후보자들인가?
이번 합의문에 평양것들을 ‘붕괴관리 해야 할 전체주의 학살집단’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 했더라면, 마땅히 8월25일 오전에 이루어진 청와대 멘트에는 그와 같은 관점이 담겨 있었어야 되었다.
그 대신 그저 좋아 날뛰며 “봐! 사과 받아냈어! 사과! 이제 남북 교류협력이야!”라 외쳐대는 경망스러움 밖에 없었다.
청와대, 정부, 그리고 여야 정치인들에게 마오쩌뚱의 <호남농민운동보고서> 마지막 구절을 들려 주고 싶다.
“지금까지 농민은 무식한 존재, 사회주의혁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농민저항, 농민반란의 불길이 도처에서 타오르고 있다.
이제 우리 중국 공산당은 결정해야 한다.
농민반란의 선두에 서서 농민을 지도할 것인가?
농민 반란의 뒤꽁무니를 마지못해 좇아가며 궁시렁거릴 것인가?
아니면 농민반란을 정면에서 가로막을 것인가?
어느 쪽으로 선택해도 좋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결코 길지 않다.”
필 자 주:
마오쩌뚱이 젊은 시절 집필한 팜플렛.
그의 저술 중 유일하게 훌륭한 저술이다.
<모순론>, <실천론>을 포함한 나머지는 쓰레기다.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모순론>은 1937년 8월에 나왔는데, 이는 실은 그해에 결정된 코민테른의 통일전선 노선을 중국식 짝퉁으로 번안한 표절작일 뿐이다.
<호남농민운동 보고서>의 이 한 문단이 중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 시민도 이제 청와대, 정부, 그리고 여야 정치인에게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문단을 들려 주고 싶다.
“지금까지 국민은 햇볕미신에 지배당하고 있는, [평양것들을 섬기는 존재]라고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국민들, 청년들은 햇볕미신을 떨치고 거대한 정신적 각성에 도달했다.
이제 정치인들, 정책결정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국민각성의 선두에 서서 국민을 지도할 것인가?
국민의 뒤꽁무니를 마지못해 좇아가며 궁시렁거릴 것인가?
아니면 국민각성을 정면에서 가로막을 것인가?
어느 쪽으로 선택해도 좋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