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 하나로 만드시는 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분이 하시는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일치’입니다. 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3)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은 미사성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한 빵”을 나누어 먹고 “한 몸”, 즉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집니다. 사제가 ‘하나의 빵’을 성찬례에서 “쪼개고” 우리 여럿이 하나의 빵을 나눠 먹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그리고 같은 빵을 나눠먹은 우리들 사이의 일치를 이루어내고, 이로서 우리가 하나의 몸, 즉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교회로 건설되게 합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앙리 드 뤼박은 이 신비를 두고 “성체성사가 교회를 만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신자들을 모두 하나의 일치로 모으는 이 위대한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에서도 성령께서는 주도적으로 활동하십니다.
미사 중에는 크게 두 번의 성령청원기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병과 포도주를 축성하기 위해 성령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이 기도로 성령께서 예물 위에 내려오시어 그 예물을 성찬제정의 말씀인 “너희를 위해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것에 생명과 힘을 부여하는 성령의 활동이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령청원기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는 모든 이가 성령을 통하여 하나로 모아지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령은 이렇게 함께 일하시어 성찬례에 참여하는 이들을 ‘하나의 빵’,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안으로 모아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체성사 안에서 활동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고, 그 몸을 받아 모신 우리가 그 몸과 하나로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신비적인 변화를 동방교회의 영성가들은 모세가 본 ‘불타는 떨기나무’에 자주 비유했습니다. 두미트루 스터닐로에라는 동방 신학자는 성령을 ‘인간을 불타는 떨기나무’가 되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고, 동방 교부들은 교회를 세상을 향한 ‘불타는 떨기나무’라고 했습니다. 탈출기에서 모세가 본 이 ‘불타는 떨기나무’는 거룩한 불이 이 떨기나무를 불사르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나무를 태워 없애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피조물(떨기나무)과 성령(신성한 불로서 나타나시는)의 위대한 합일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를 이처럼 불사르시지만, 그럼에도 이 불은 우리를 불태워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불이 아니라 당신과 신비로이 하나 되게 만드는 불입니다.
성 에프렘은 “믿음으로 이 빵(성체)을 먹는 이는 이를 통해 성령의 불을 먹는다. 모두 먹어라. 그리고 이를 통해 성령을 먹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는 우리는 모두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살아있는 불, 신과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불, 우리의 고유성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불을 먹은 모든 이를 하나의 몸, 하나의 신적인 불로 타오르는 거대한 떨기나무로 만드는 성령의 위대한 업적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루카 12,49). 이 거룩한 살아있는 성령의 불이 우리 모두를 불사르게 합시다. 불 안에 장작이 몇 개가 있든 불은 그저 하나일 뿐이고 더 많은 장작이 그 안으로 들어올수록 더 큰 하나의 불이 됩니다.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모두 이 불로 불타올라 성령의 사랑으로 타오르는 하나의 거대한 불타는 떨기나무로 변화합시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하느님의 영적 피조물, 천사
9월 29일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자 전령(傳令)으로서 육체 없이 지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이며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천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말락]인데, 구약성경에 213번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그분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예언자나 사제를 뜻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느님의 천상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앙겔로스] (ἄγγελος)로 번역되어 하느님의 천상 대리자 혹은 인간 전달자를 의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는 인간 전달자의 경우 [눈치우스] (nuntius)와 하느님의 천상 대리자의 경우 [안젤루스] (angelus)로 구별되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사도 17,34)의 이름을 빌려 활동한 6세기의 위(僞)-디오니시오는 모든 존재가 서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이론이 구품천사론(九品天使論)입니다. 여기서는 천사의 세계가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높은 계급에는 ① 치품(熾品) 천사 세라핌, ② 지품(智品) 천사 케루빔, ③ 좌품(座品) 천사가 있고, 중간 계급에는 ④ 권품(權品) 천사, ⑤ 능품(能品) 천사, ⑥ 역품(力品) 천사가 있으며, 가장 낮은 계급에는 ⑦ 주품(主品) 천사, ⑧ 대천사, ⑨ 천사가 있습니다. 참고로, 세 대천사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데, 미카엘(Michael, 다니 10,13.21; 12,1; 유다 1,9; 묵시 12,7)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Gabriel, 다니 8,16-17; 9,21; 루카 1,26)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Rafael, 토빗 12,15)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천사의 계급 이론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590~604년 재위)에 의해 전례 기도문에도 반영되지만, 어디까지나 신학적 학설이지 믿어야 할 교리는 아닙니다. 교회가 믿도록 가르치는 바는 하느님께서 감각의 대상인 세상과 함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점입니다.
천사에 관한 내용이 신앙 교리로 선언된 건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서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 곧 세상과 천사를 동시에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DS 800, 3002). 또한 악마는 일찍이 하느님에게서 선한 천사로 창조되었으나(DS 286, 457) 자유 의지로 하느님께 대항하여 타락하였다고 가르칩니다(DS 800).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의 가르침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위엄을 갖추고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오시며(「교회헌장」 49항), 교회는 사도와 순교자들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공경하고 그들의 전구를 간청합니다(50항). 또한 성모님은 천상에서 모든 성인과 천사들 위에 들어 높여 계십니다(69항).
세 대천사 축일인 9월 29일은 5세기 중반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이 봉헌된 날입니다. 이날이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 되었고, 1921년 로마 전례력에는 3월 24일이 가브리엘 대천사, 10월 24일이 라파엘 대천사의 축일로 들어오는데, 1969년 전례력이 개정되면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한 날로 묶어 9월 29일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30) 봉사 직무와 거룩한 권력, 「교회헌장」 제18항
「교회헌장」 제18항은 교회 안의 봉사 직무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진술로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고 또 언제나 증가시키도록 당신 교회 안에 온몸의 선익을 도모하는 여러 가지 봉사 직무(ministeria)를 마련하셨다.” 교의적 정의와도 같은 이 첫 문장에서 전제되는 것은 교회 안의 ‘여러 봉사 직무’가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봉사 직무는 직무 자체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한 직분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직무의 수행은 오로지 하느님 백성을 사목하고 증가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이 직무는 온몸의 선익을 위한 사목 직무입니다. 양 떼를 위한 목자의 직무입니다.
공의회는 이 봉사 직무자가 “거룩한 권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미 10항에서 직무 사제의 “거룩한 힘”으로 언급되었는데, 이 표현 역시 봉사 직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립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권력은 봉사 직무의 수행을 위해서, 곧 직무자들이 형제들에게 봉사하여 하느님 백성 모두가 구원에 이르게 하도록 주어졌습니다. 이 직무의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품위를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고 질서 있게 같은 목적을 함께 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능동적으로 부름을 받은 하느님 백성이 직무자들의 봉사에 협력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연결하여 교계 제도의 영속성, 교황의 수위권 그리고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가르침을 언급하는데, 대부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1회기의 끝에 제출된 필립스의 새로운 의안을 수용한 것입니다. 먼저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들을 파견하셨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설립’이 ‘사도들의 파견’과 조심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이 교회의 목자가 되기를 바라신다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주교들의 파견’이 ‘교회의 사목’과 연결됩니다. 곧 사도들의 파견이 교회의 설립과 관련이 있다면, 그 후계자인 주교들의 파견은 교회를 유지하는 사목과 관련됩니다.
이어서 공의회는 “주교직 자체가 하나로서 갈라지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사도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신 “베드로 안에” ‘신앙과 친교의 일치’를 위한 “영속적이고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를 마련하셨다고 언급합니다. 주교직의 일치를 베드로의 수위권과 연결하는 것은,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한 교도권의 형성에 작용하시는 것이 그분께서 베드로를 사도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신 것과 연계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의회는 「교회헌장」 제3장을 통해서 교황과 주교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선언합니다.
[순례지에서 희년을 보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상징 카타콤베(Catacombe)
64년경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긴 박해 시기 동안 수많은 순교자가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증거했고, 250여 년간의 엄혹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신자수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상징인 ‘콜로세움’(Colosseum)은 네로 황제가 죽은 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티투스 황제에 의해 80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박해 시기 동안 이곳에서 피로써 신앙을 증거하신 순교자들을 기리며, 베네딕토 14세 교황(1740-1758 재위)은 콜로세움을 거룩한 장소로 선포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 되면 전 세계 신자들이 교황님과 함께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며 행렬합니다.
로마 시대에 일반 하층민들이 묻혔던 공동묘지인 ‘카타콤베’(움푹 파인 땅이라는 뜻)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잠들어 있는 곳’(Koimeterion, Cemetery. 안식처)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습니다. 박해 중에도 친교 속에 전례를 거행하며 주님의 말씀과 빵을 나누던(사도 2,42 참조) 교우들이 콜로세움에서 순교한 후 불에 탄 주검으로, 맹수에 찢긴 시신으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 속에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일반인들의 무덤과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구분하고, 그들의 숭고한 사랑과 거룩한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 무덤 위에 특별한 표시를 남겼습니다. 그 표시들은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이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톨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IXΘYΣ’(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와 ‘키-로 십자가’(그리스어 크리스토스 Xριστοϛ의 첫 두 알파벳을 겹쳐놓은 것)를 카타콤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하에 층층이 묻혀 있는 수천의 시신들, 죽음의 내음과 방향을 알 수 없는 미로 속 어둠 때문에, 로마 병사들조차 꺼리던 공간인 이곳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들의 도시)는 박해받던 자들에게는 찬미와 기도로 가득한 ‘하늘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313년 박해가 끝난 후 성 멜키아데스 교황(311~314 재위)이 카타콤베를 성지로 선포하였고 성 다마소 1세 교황(366~384 재위)은 성지를 정비하여 순례자들의 편의를 돕고,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이후 순교성인들 곁에 묻히고자 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면서 카타콤베 내에 새로운 형태의 아치형 무덤과 가족묘들이 생기고 이는 5세기 이후까지 확장됩니다.
로마 성벽 외곽의 많은 카타콤베 가운데 ‘희망의 순례자들’이 순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성지는 가장 규모가 큰 ‘성 갈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San Callisto)’로 박해 시대에 순교한 성인 교황님들과 체칠리아 성녀의 무덤이 있던 장소입니다(현재 유해는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언어] lamb and veal(어린양과 송아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은 때로는 고된 삶입니다. 그러다 보면 안락한 삶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1독서 아모스 예언자는 이렇게 풍자합니다.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어린양 고기와 송아지 고기를 먹는다.” 이는 아주 고급 요리입니다. 12개월 미만의 양은 lamb, 양은 sheep, 양고기는 mutton. 12개월 미만 송아지는 calf, 송아지 고기는 veal, 소는 cow, 소고기는 beef. 복음에서는 이렇게 풍자합니다.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었다.” 자주색 purple 옷감은 아주 비싼 염료로 황제나 입던 옷, 아마포 linen는 대사제나 입던 옷이었다고 합니다.
돈 있는 사람이 자기 돈 쓰는 게 무슨 죄이겠나 싶지만, 앞서서 든 예들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니 티모테오에게 바오로는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1티모 16,10;11)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는 무한리필집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는 성찬의 식탁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귀한 옷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그리스도를 옷 입듯 입었습니다.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한주간 살아가시길.
[가톨릭 신학]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는 기도하기 어려워하는 제자들 간청에 따라 ‘주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셔서 ‘주님의 기도’라 합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께 바치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에, 이 기도는 하느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 말 그대로 ‘저자 직강’(!)입니다. 이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담은 기도입니다. 전반부엔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후반부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기도로 구성됩니다. 먼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이후 바라는 것을 기도하면 이상적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늘은 어디인가요? 어디부터 하늘인가요? 구름 위? 성층권? 태양계 밖?? 하늘이란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하느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하늘이며, 우주 전체가 하늘입니다. 과학자들 주장에 따르면 우리 은하계에 대략 4000억 개의 별이 있고, 우주 전체에는 10의 23승 개의 별이 있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래가 10의 20승이라고 하니, 별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되시는지요?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 하늘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느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언제나 계시고,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분입니다. 우주 전체의 창조주이시고, 우주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Deus semper major 언제나 더 크신 하느님).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물리학적 지식에 근거해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을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더 큰 문제는 중고생들이 공부하며 풀이하는 시험문제 대부분이 자연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문장과 주장을 읽고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신론의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와 구조로 하느님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예전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엄하고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엄부자모’란 말이 통용되던 사회에서 사랑과 자비란 말을 ‘아버지’와 연결시키기 쉽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엔 많이 달라졌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을 우리 아빠, 아버지라 계시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그분의 가장 깊은 본질이 사랑이라 알려 주십니다.(1요한 4,16 참조)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마태 10,30) 우주보다 더 큰 하느님께서 우리도 모르는 우리 각자의 머리카락 개수도 다 아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란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향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하게 되고,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믿음은 기도를 통해 시작되고, 기도로 단단해집니다.
[저는 믿나이다] (44) 3세기 순교자들과 순교 신심
‘순교는 혈세’ 사상과 전구에 대한 인식 생겨나
3세기 막바지에도 가톨릭교회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여전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이민족들이 자주 국경을 넘어오자 모든 신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도록 명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세기부터 많은 이들이 체포되어 형장에서 목숨을 잃자 지방 행정관 플리니우스는 로마 황제에게 편지를 써서 “황제를 위한 희생 제사를 바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완고함과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찬양하는 것 외에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데도 처벌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하기까지 했습니다.
교회는 박해자들을 향해 “우리를 십자가에 매달고, 고문하고, 처벌하고, 섬멸하라! 그대들의 불의는 분명 우리의 무죄에 대한 증명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을 참아내도록 내버려 두신다. (⋯) 그대들의 어떤 가혹한 잔인함도 아무 쓸모가 없다. 그대들이 우리를 낫으로 죄다 베낼 때마다 우리는 더 수가 많아진다. 그리스도인들의 피는 씨앗이기 때문이다”(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50,13)라며 순교를 마다치 않았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 순교 신심과 순교자 공경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더불어 「성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순교행전」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순교」 「성녀 체칠리아의 신앙 고백과 순교」 등 많은 순교록이 저술돼 읽혔지요.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순교자로 기억되는 카르타고의 체칠리우스 치프리아누스 주교(200?~258)는 순교를 독려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싸울 준비를 하고, 영원한 생명의 영광과 주님께 드리는 고백의 면류관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맙시다. (⋯)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변질되지 않은 신앙과 굳건한 용맹으로 이에 대비해야 하며, 그 이유로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이 피를 흘릴 수 있도록 날마다 그리스도의 피의 잔을 마실 것을 생각하십시오.
곧 이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에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곧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1요한 2,6)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독려하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온 힘을 다해 무장하고 순결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과 신심 깊은 용기로 경기에 대비합시다. (⋯) 우리의 전투 상대는 육과 피가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여러분의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에페 6,12 이하)입니다.”(치프리아누스, 「순교 독려」, 황치헌 신부 역,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425~439쪽)
이 시기 눈여겨볼 것은 순교를 ‘혈세’(血洗)로 인식하는 신학 사상이 생겨납니다. “참으로 우리에게는 두 번째 세례가 있는데 그것은 첫 번째 세례와 같으며, 곧 혈세이다. 주님께서 이미 세례를 받으셨는데도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루카 12,50)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혈세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요한이 기록한 바와 같이, 주님께서는 물로 세례를 받고 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물과 피’(1요한 5,6)를 통하여 오셨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물로써 부름 받은 사람들로, 피로써 선택받은 이들로 만드시기 위하여 오셨다. 주님께서는 찔린 옆구리 상처에서 이 두 가지 세례를 나오게 하셨는데(요한 19,34), 이는 그분의 피를 믿는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고, 물로 세례를 받았던 이들이 그분의 피를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혈세가 아직 받지 않은 세례를 대신하고 잃어버린 세례를 회복시키는 세례이다.”(테르툴리아누스, 「세례」 16. 황치헌 신부 역,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299쪽)
더불어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전구’에 대한 인식도 싹틉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며 주님을 본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의 왕이시며 스승이신 분을 향한 그들의 비할 데 없는 신앙심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성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7,3)
가톨릭교회는 순교를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거’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순교자는 하나같이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