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성사(王舍城事)』-불행의 원인은 방법(謗法)에서-(1) 술작(述作) 배경 ☞음성으로듣기☜
본초는 대성인님께 가마쿠라(鎌倉) 궁궐 소실 사건을 보고하셨던 시죠긴고(四条金吾)님에게 주신 어소식입니다.
대성인님이 쓰신 진필은 현존하지 않으며, 제자가 필사한 가장 오래된 본(本)에는 저술 연월이 4월 12일이라고만 되어 있고 연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종래 1275년, 1276년, 1278년 등 여러 설이 있는데 모두 결정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술작 연월일에 대해 이제 와 생각해보면, 본초 중에 「일화(一火)는 몸에 머물러 고쿠라쿠사(極樂寺)가 불타서 지옥사(地獄寺)로 되었고 또 일화(一火)는 가마쿠라에 비화(飛火)하여 궁궐을 태웠으며」(신편어서 p.975)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275년 3월 23일 료칸(良觀)이 주직이었던 고쿠라쿠지(極樂寺)가 불탔습니다. 그리고 궁궐이 소실된 것은 다음 해 1276년 1월 20일의 일이며 같은 해 12월에 다시 또 궁궐에 큰 화재가 있었습니다.
「또 일화(一火)는 가마쿠라에 비화(飛火)하여 궁궐을 태웠으며」라는 말씀은 고쿠라쿠지(極樂寺) 화재 후 1276년 1월에 있었던 궁궐 화재에 관한 것이라 배(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초의 술작은 일단 1276년 4월 12일이라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쿠라쿠사료칸(極樂寺良觀)
1217년(건보(建保)5년(年)) ~ 1303년(가원원년(嘉元元年)) 가마쿠라(鎌倉)시대의 진언율종(眞言律宗)의 승(僧). 이름은 닌쇼(忍性). 료칸(良觀)은 자호(字號). 야마토지방(大和地方)(나라현(奈良縣))시키군(磯城郡)의 출신. 10세때 시기산(信貴山)에 입산수도(入山修道)하고, 24세 때 에이손(叡尊)에 사사(師事)하여 수계(受戒), 남도계율부흥(南都戒律復興)에 진력(盡力)했다. 1252년(건장(建長)4년(年))에 간토(關東)로 내려가, 1261년 홍장원년(弘長元年) 가마쿠라(鎌倉)에 들어가서 율종(律宗)을 홍교(弘敎)했다. 호죠도키요리(北條時頼)는 고센사(光泉寺)를 창건하여 료칸(良觀)을 개산(開山)으로 하고, 나가토키(長時)는 고쿠라쿠사(極樂寺)에 료칸(良觀)을 초빙해서 개산(開山)으로 했다. 그로부터, 가마쿠라(鎌倉)의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큰 세력을 확보했다. 난민구제(難民救濟), 의료시설(醫療施設)의 충실 등 사회사업에 노력했다.
또한 료칸(良觀)은 1271년(문영(文永)8년(年))에 니치렌(日蓮)대성인과 기우(祈雨)를 다투다 패하고부터, 대성인을 참언하여 사죄(死罪)에 처하려고 공작해서, 다쓰노구치법난(龍口法難), 사도유죄(佐渡流罪)를 야기시켰다. 1275년(건치원년(建治元年))에 고쿠라쿠사(極樂寺)에서 불이나 당탑(堂塔)이 전소(全燒)됐다. 대성인에게 시종 적대(敵對)하고, 대성인 문하(門下)에 온갖 박해를 가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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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