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고후4:5-12)
갈등
1. 최근 사도행전 말씀을 주일에 나누며 사도 바울의 회심과 소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의 전환점(터닝 포인트)은 주후 31-32년,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새 삶이 시작되었어요.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전에는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투옥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후로는 거꾸로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그의 모든 생애를 바쳤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복음 전도 이야기를 했어요.
5절,“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한다고 선언했어요. 예수는 구원이란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직분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구세주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모든 사람을 죄에서 건지신 구세주-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다.’입니다.
2. 주라는 헬라어는 큐리오스, 하나님께만 쓰는 용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라고 사도 바울이 선언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함께 한 전도팀은 예수님을 위해 너희의 종이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변화된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이 한 절 말씀에 다 묻어나옵니다. 바울과 같이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전도자로서 주님을 위해서 내가 당신의 종이라고 하는 말, 오늘 본문 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는 어둠 가운데 빛을 비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절,“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보는 것과 같아요.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첫 번째, 빛이 있으라고 선언하실 때 빛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고 말했어요. 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한 복음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을 실제 보았습니다. 그 빛을 보자마자 바울의 눈은 멀었고 삼 일간이나 뜨지 못했어요. 바울은 그 빛의 실체를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빛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비추기를 원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당시 세계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세워갔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자기 온 생애를 통해서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수고를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4.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 평생을 살면서 깨닫고 경험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7절,“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이 귀한 진리를 깨닫고 전해주었어요. 보배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질그릇은 자신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질그릇은 연약하지만 그 안에 보배를 담았습니다. 참 멋진-적절한 비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전도자들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지만, 그들에게는 강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 무기는 세상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능력이었어요.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의 경험 이후 평생 겸손했습니다.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큰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 있는 큰 능력은 8-9절,“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5. 이 선언은 실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당한 온갖 어려움과 박해를 받은 이야기에요.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 현장에서 우겨쌈을 당하고-답답한 일을 당하고-박해를 받고-거꾸러뜨림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셀 수 없이 경험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일을 한두 번만 당해도 나는 이 일에 안 맞아! 내가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있나? 포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을 셀 수 없이 반복해서 당하면서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았어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받았지만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비결은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복음 전도입니다. 바울의 고백 속에도 나타나요. 바울은 이렇게 역설적인 진리를 경험하면서 순교를 하기까지 복음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평생 달려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실마리
6.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당시,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잘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경험으로 그동안 반쪽만 알았던 성경을 완전히 알게 되었어요. 성경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성경을 읽으면 그저 문학작품이나 역사 기록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한 일은 복음 전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없는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홀로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독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을 읽으니, 전에 읽을 때 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저도 성경 통독을 하면서 매번 후기를 기록합니다. 여러분하고도 일부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은 읽고 도 읽어도 좋습니다. 그동안 내 삶의 현장에서 말씀의 실제를 더욱 경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경우에도 성경을 통독하며 크게 세 번의 변화가 있었어요. 첫째는 오랜 신학 공부가 성경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는 기회가 있는 대로 해야 됩니다.
7. 두 번째는 서울에서 마지막 부목사 사역을 할 때 성지순례의 기회가 있었어요. 한 집사님 가정에서 저희 부부가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도록 제공해주었습니다. 성지를 보면서 성경을 더욱 실감나게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성경 이해에 가장 큰 도움은 2010년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서부터입니다. 이전에는 신비적인 기적 이야기 등을 읽으면 성경 시대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나 누린 것이라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늘 나와 함께 하는 공동체가 누리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말씀으로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읽으며 복음을 발견하고 정리한 후,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복음 전도에 전념했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장소 다메섹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세계를 순회하면서요.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것처럼요. 성령이 진짜 임하시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복음 전도현장으로-선교 현장으로 나갑니다. 성령께서 매번 그렇게 인도하시고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8. 사탄의 권세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하는 전도팀을 사탄이 우겨싸고, 답답하게 하고, 박해를 하고, 거꾸러뜨리는 시도를 반복해서 셀 수 없이 행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대략만 말하지만, 11:22-33에는 구체적으로 말했어요. 그가 복음 전도를 위해 한 수고, 옥에 갇힌 일, 수 없이 매를 맞고 여러 차례나 죽을 뻔 했던 일, 태장으로 맞고 돌에 맞고, 배가 세 번이나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헤맸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 시내-광야의 위험,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복음 제시
9.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사도 바울과 전도팀이 복음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나갔던 이유는 10-12절,“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예수의 죽음은 십자가를 의미해요. 십자가로 인해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다고 표현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서 자신이 생명을 얻었음을 밝혔어요. 이렇게 귀한 생명-영생을 얻은 바울과 전도팀은 자신들도 주님과 같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의 선언이 여기에 있습니다.“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전도팀은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죽고, 그들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산다는 선언입니다. 너희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죽는다(희생한다)는 말보다 멋진 말이 세상에 없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알고 전했던 바울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기대
10.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보다 먼저 예수님이 먼저 참 본을 보여주셨고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바울의 다메섹과 같은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신비적 경험으로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주님을 위해 온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의 가치는 바울과 같이 오직 하나에 두어야 합니다. 복음 전도입니다. 가족전도-이웃전도-지역을 넘는 전도-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도(선교)는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전도현장은 바울이 경험한 것과 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많은 도전이 기다랍니다. 온갖 어려움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무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무기입니다. 무기 없이 영적인 전쟁을 감당할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전도와 선교를 하라고 저와 우리 교회에 무기를 허락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제 기도합니다. 이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포항에서-지역과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를 사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