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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차 文化踏査(10-9), 세계문화 이집트(2-1)
세계문화 이집트
-전시기간: 2019.12.16~약 2년간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3층 世界文化館 이집트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年末 世界의 다양한 文化를 선보이기 위해 常設展示館 3층의
旣存 [아시아館; 印度·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中國]을 [世界文化館]으로 改編하고
[이집트실,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시아실, 中國室] 등 4개 展示室로 나누어 展示하고 있다.
이집트室의 展示品은 세계적인 이집트文化財를 所藏하고 있는 美國
뉴욕 브루클린박물관(Brooklyn Museum)이 展示品을 제공해 2년간 공동으로 전시한다.
黃河文明, 메소포타미아文明, 인더스文明과 더불어 世界 四大文明의 하나인 이집트文明은
西洋文化의 根幹을 형성한 文明으로 世界 大部分의 人類가 村落生活 할 때인
BC 3000∼2000년에 中央政府를 세우고, 지금 봐도 驚異로운 피라미드를 만든 最初의 文明이다.
이런 까마득한 過去의 歷史가 31개 王朝로 구분이 가능하고, 어떤 神을 崇拜했으며,
무덤에 누가 묻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는 古代 이집트인들이 神殿, 무덤 등에 새겨둔
‘聖刻文字(神聖하게 새긴 문자)’가 19세기에 解讀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聖刻文字는 1799년
프랑스의 이집트遠征軍이 나일강 三角洲 로제타 인근에서 防禦陣地를 構築하다가 발견한
로제타석(Rosetta Stone)에 BC 196년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내린 명령이 새겨 있었다.
이집트는 BC 3200년에서 BC 332년까지 거의 3천 년 가까이 持續되었는데 제1王朝는
이집트의 통일과 문자의 발명으로 시작되고, 마지막인 제30王朝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大王의 遠征으로 끝났다.
*문화답사(01.14)할 때 [世界文化館 이집트室]은 遺物 몇 點만 대략 보고 走馬看山格으로
자나쳐 사진을 몇 장밖에 찍지 못하여 01.21(火) 다시 방문하여 찍은 사진을 올린다.
세계문화 이집트 사진
(01) 이집트 -삶, 죽음, 復活의 이야기
(02) 이집트 歷史
(03) 이집트의 時代區分
=先王朝時代; 4400 BC~3000 BC
=初期王朝時代(제1~2王朝); 3000~2675 BC -나르메르王 -文字와 달력
=古王國時代(제3~6王朝); 2675~2170 BC -피라미드
=제1中間期(제7~11왕조); 2170~2008 BC
=中王國時代(제12~13왕조); 2008~1630 BC -藝術作品(石像 등)
=제2中間期(제14~17왕조); 1630~1539/1523 BC
=新王國時代(제18~20왕조); 1539~1075 BC -람세스/투탕가멘의 무덤
=제3中間期(제21~25왕조); 1075~656 BC -리비아. 누비아, 페르시아의 統治
=後期王朝時代(제26~31왕조); 662~332 BC
=프톨레마이오스時代; 332 BC ~30 BC -알렉산드로大王의 征服, 이집트와 그리스文化의
融合
=로마時代와 비잔티움時代; 30 BC~642 AD -악티움海戰(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로마의 支配
=이슬람時代; 642 AD~現在
(04) 神話의 世界
(05) 이집트 神의 系譜
(06) 神의 아들 파라오
(07) 람세스 Ⅱ세(RamsesⅡ) -아비도스(Abydos), 람세스Ⅱ세 神殿 [新王國, 제19王朝,
람세스Ⅱ세 治下 -약 1279~1213 BC -石灰岩, 顔料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파라오(*古代 이집트의 王)였던 람세스Ⅱ세의 아비도스神殿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浮彫(*돋을새김)는 팔을 들고 있는 람세스Ⅱ세를 표현한 것으로,
그가 神들에게 禮拜드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라오는 이집트를 管掌하는 많은 神과
關係를 잘 維持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古代 이집트사람들은 王이 神에게 바치는 膳物의
代價로 神이 이집트를 保護한다고 믿었다. (*掌: 손바닥 장)
(08) 프톨레마이오스 王(프톨레마이오스 Ⅵ세로 추정) (오른쪽) –
王의 머리(프톨레마이오스 12세로 추정)
=프톨레마이오스 王(프톨레마이오스 Ⅵ세로 추정) -프톨레마이오스時代
-약 186~145 BC -石灰石 -顔料
머리만 남아있는 이 像은 이집트人들이 네메스(Nemes)라고 부르는 줄무늬 頭巾을
쓰고 있다. 지금은 紛失되었으나 머리꼭대기에 보이는 손잡이 모양은 鴕鳥 깃털형태
金屬裝飾의 아랫부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 聖刻文字에서 ‘正義’를 뜻하는 단어가
타조깃털모양이며, 이 같은 附着物은 王과 正義[이집트語로 마트(maat)]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반적인 象徵이었다. 王은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正義를 보장할 책임이
있었다. (*鴕: 타조 타)
=王의 머리(프톨레마이오스 ⅩⅡ세로 추정) -테베 -프톨레마이오스時代
-약 80~59 BC, 55~51 BC -석회석
上이집트와 下이집트의 두 王冠을 함께 쓴 머리 彫刻像이다. 下이집트를 상징하는
붉은색 왕관 위에 上이집트를 상징하는 길쭉한 흰색 圓形王冠이 결합된 모양이다.
二重王冠을 쓰고 있는 王의 모습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모두 統治하는 王을 상징한다.
*上이집트(Upper Egypt): 나일江 三角洲와 누비아(Nubia) 사이의 地帶
*下이집트(Lower Egypt): 카이로 南部부터 地中海까지의 나일江 三角洲地帶
上·下이집트는 古代이집트를 구성하는 兩大地域이었다.
(09) 큰칼 (왼쪽) – 女王 또는 女神을 새긴 裝飾板
=큰 칼 -이텔 엘아마르나 출토 -新王國, 제18王朝, 아마르나 時期
-약 1352~1336 BC -靑銅
古代 이집트인들은 돌과 靑銅으로 道具와 武器를 만들었으며, 최초의 도구는 石灰岩層에서
발견되는 硅質巖으로 만들었다. 先王朝時代에는 구리와 砒素를 섞어 靑銅을 만들었으며
두 재료는 古代 이집트에서 계속 사용했다. (*硅: 규소 규 *砒: 비상 비)
=女王 또는 女神을 새긴 裝飾板 -나일 델타지역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9세 治下 추정 -116~107 BC -金鍍金한 銀板에 돋을새김
女王과 女神의 이미지는 너무 비슷해 銘文이 없으면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女性은 독수리날개모양의 冠이 귀 뒤쪽까지 이어지는 독수리王冠을 쓰고 있으며
드레스에도 깃털표현의 흔적이 있다. 독수리는 ‘王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네크배트女神을
상징하며, 이집트 象形文字에서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女人의 衣裳에도 독수리의 상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 장식판은 精巧한 상자에 부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裳: 치마 상 *巧: 공교할 교)
(10) 세티 Ⅰ세의 境界碑 -콤 알루피
-新王國, 第19王朝, 세티 Ⅰ세 1년 -약 1294 BC -석회암
碑石에 쓴 글에 따르면 세티 Ⅰ세는 卽位 첫해에 土地 두 區域의 측량을
명령했는데, 이 石碑는 두 領域이 나누어지는 境界에 세웠다. 王은 官廳을
운영하고 百姓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도록 土地를 분배하고 管掌했다.
稅金徵收員과 農夫는 들판에 세운 石碑를 통해 토지에 대한 왕의 규정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며, 一般百姓이 王의 힘을 직접 경험한 事例이다.
비석에 새긴 王은 투구모양의 王冠을 쓰고 있는데, 이는 왕이 직접 나서서
바쁘게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11) 多樣한 神
(12) 아피스 황소 (왼쪽부터)-소베크-뱀 관(棺)-셰솅크王의 스핑크스
=아피스 황소 -後期王朝時代, 제26~30王朝 또는 프톨레마이오스時代
-BC 약 664~30년 -靑銅
古代都市 멤피스의 아피스황소崇拜는 이집트에서 由來가 가장 깊다. 아피스 황소는
프타(Ptah)神의 現身이었다. 일반인들은 이런 彫刻像같은 奉獻物을 바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소베크 -後期王朝時代~프톨레마이오스時代, 제26왕조 이후 -664~30 BC -청동
=뱀 관(棺)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약 664~332 BC -청동, 납
=셰솅크王의 스핑크스 -제3중간기, 제22~23왕조 -약 945~718 BC -청동
(13) 네이트 (왼쪽부터) –개코원숭이 -류트를 연주하는 베스 -고양이
=네이트(Neith) -後期王朝 時代, 제26~30王朝 -약 664~382 BC -石板
네이트는 처음에는 나일강河口 三角洲의 도시 사이스(Sais)를 管掌하는 神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宇宙의 創造者로 생각했다. 이후 役割이 점점 커지면서 네이트는
智慧, 길쌈, 어머니, 江, 물, 出産, 사냥, 戰爭, 運命의 女神이 되었다. 이 像에서 네이트는
자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下이집트의 붉은 王冠을 쓰고 있다. 下이집트를 통치했던
이집트王들도 이 王冠을 착용했다.
=개코원숭이 -後期王朝 시대, 제26왕조 이후 -664~332 BC -청동
=류트를 연주하는 베스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664~332 BC -청동
=고양이 -後期王朝 時代, 제26~28왕조 - BC 약 664~382 -청동, 속이 빈 주형
(14) 숫양머리 기둥장식 -덴데라 -後期王朝 時代, 제22~25왕조
-BC 약 945~656년 -검은색 화강암, 붉은색물감 흔적
(15) 앉아 있는 와제트(Seated Wadjet) –後期王朝時代,
제26~31王朝(BC 664~332) -靑銅
와제트(Wadjet)는 코브라의 모습으로 표현되다가 後期王朝時代에 와서
獅子머리의 女性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太陽神 레(Re)의 딸 중 한 명을
재현한 이 커다란 靑銅像은 이집트 뭉구스의 미라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뱀을 죽일 수 있는 뭉구스는 뱀의 공격에 每日 奮鬪하는 太陽神의
神話를 떠올리게 한다. 와제트와 마찬가지로 뭉구스 역시 太陽神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16) 고양이(Cat) -프톨레마이오시대~로마시대
-BC 305~AD 100 -나무, 金箔 입힌 石膏, 청동, 수정, 유리
고양이는 女神 바스테트를 상징한다. 바스테트는 태양신 레(Re)의 딸이며
下이집트를 守護하는 神이다. 속이 꽉 찬 이 나무 彫刻像은 바스테트神殿에
바치던 供物이었다. 고양이 양쪽 귀 사이에는 아침에 떠오르는 太陽을
상징하는 스카라브가 박혀 있는데 이것은 고양이 털의 줄무늬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스카라브: 이집트人이 神聖視하는 甲蟲모양의 護具
(17) 오시리스(Osiris) -아비도스 -후기왕조시대, 제26왕조
-BC 약 664~525혹은 그 이후 -靑銅, 金箔
이 彫刻像은 죽은 者들의 땅을 다스리는 오시리스이다.
오시리스는 王의 標識인 굽은지팡이와 도리깨를 쥐고 있는 미라의
모습으로 그린다. 이 像은 神에게 福을 祈願하는 사람들이 바친 것이다.
동생인 세트에게 殺害된 후 夫人 이시스에 의해 다시 살아난 오시리스는
地下世界의 王으로 죽은 자들을 審判하는 역할을 한다. 오시리스가 왼손에
들고 있는 갈고리모양의 지팡이는 죽음을, 오른손의 도리깨는 生産을 의미한다.
오시리스가 쓰고 있는 王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시실에서 찾아야 한다.
(18) 하토르가 있는 거울 -아스완 -新王國 제18왕조 초기
-BC 1539~1478 -청동
圓形의 거울판이 건물 기둥을 닮은 손잡이에 달려 있다.
이 손잡이는 ‘回春하다’라는 뜻의 象形文字인 파피루스植物모양이다.
손잡이 일부에는 美의 女神인 하토르의 얼굴을 표현했다. 당시에는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한 裝飾으로 하토르女神을 選好했다.
(19)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後期王朝時代 제26왕조
-BC 664~525 -돌
이시스는 죽은 男便인 오시리스를 復活시켜 아들 호루스를 얻고,
세트 몰래 호루스를 키웠다. 호루스는 결국 세트를 죽여 아버지 오
시리스의 復讐를 했다. 이시스는 獻身的인 아내와 어머니를 상징하는데
이 像도 아들 호루스를 사랑스럽게 안고 보호하는 모습이다.
(20) 피라미드모양의 새김돌 -新王國, 제3왕국 中間期, 제20~22王朝
-BC 약 1185~718 -석회암
女性의 무덤에서 출토된 작은 피라미드이다. 네 면에 장식된 浮彫에는 이집트인의 世界觀이
담겨 있다. 앞면인 龕室과 뒷면에는 死後世界와 연관된 주요 神들인 오시리스와 레神에게
死者가 禮拜드리는 모습을 새겼다. 오른쪽 면에는 무덤 주위를 날아다니는 인간의
머리를 한 새가 復活의 상징인 제드 기둥에 앉아 있다. 왼쪽 면에는 호루스와 토트가
死者의 미라를 앞에 두고 淨化儀式을 행하는 장면을 새겼다. (*龕: 감실 감)
(21) 피라미드(pyramid)
*피라미드(pyramid): 돌 또는 벽돌로 만든 方錐形의 建造物
國王, 王妃, 王族 무덤의 한 형식인 피라미드는 古代 이집트文明의 象徵的인 建築物로,
현재 이집트에 남아있는 피라미드는 80基 이상이며, 學者에 따라서는 112基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피라미드가 나일江 西岸을 따라 南北으로 분포되어 있다.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사카라(Saqqara)에 있는 제3王朝의 제2代 파라오
조세르(재위 BC 2630~2612 추정)의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側面이 平面인 正統 피라미드는 第4王朝 初代 파라오인
스네프루(재위 BC 2612~2589 추정)는 3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世界 七大不可思議의 하나로 꼽히는 기자(Giza)에 있는 쿠푸王의 피라미드는
최대 높이 146.5m(현재 137m), 基底邊 230m, 斜面角度는 51°52'이다.
誤差는 5°30′ 以內로 극히 精巧하며, 각 稜線은 東西南北을 가리키고, 평균 2.5t의 돌
230萬個를 쌓아 올렸다. (*錐: 송곳 추)
(22) 조세르의 階段式 피라미드 –스네페르의 屈折式 피라미드 -쿠푸의 大피라미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한번에 10만명의 人員이 3個月 交代로 動員되었다.
돌덩이를 끌고 갈 길을 내는데 10년동안 百姓들의 苦生이 계속되었다.…. 길을 내고도
그곳에 돌을 쌓아 올리는데 또 다시 10년이 걸렸다.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역사(The Histories)> 제2卷 124章- (*屈: 굽힐 굴)
(23) 토티르데스의 관(棺) -테베 -後期時代, 제26왕조 -BC 약 664~525 -나무, 채색한 회반죽
棺은 미라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亡者와 오리시스를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死者가
死後世界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인 토티르데스(Thothirdes)는
棺의 형태로 보아 제26王朝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棺에는 토티르데스가 死後世界에서 이루고 싶은 所望들을 그렸다.
뚜껑 중앙부분에 미라가 된 토티르데스가 누워있고, 오시리스의 夫人과 여동생인
이시스와 네프티스(Nephthys)女神이 토티르데스를 哀悼하고 있다.
人間의 머리를 한 새모습의 바(ba)가 토티르데스 위를 맴돌며 그의 靈魂이 死後에도
있을 것을 알린다. 바로 위 畵面에는 토티르데스의 心臟과 ‘眞實’이 저울에 올라있고,
두 명의 神이 무게를 측정하는 審判으로부터 토티르데스를 데려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眞實하게 살았음을 증명한 토티르데스는 이제 死後世界에서 復活하게 된다.
*心臟의 무게가 깃털의 무게보다 가벼우면 진실하게 산 것으로 判定된다.
(24) 토티르데스의 관(棺)에서 나온 미라 -테베 -後期時代, 제26왕조
-BC 약 8세기 -亞麻천, 有機物質
이 미라를 對象으로 放射性炭素年代測定 결과, 主人公은 BC 768~545에 사망한 것으로
判明되었다. 遺物을 損傷시키지 않고 內部를 볼 수 있는 CT撮影結果 목 皮膚 아래가
亞麻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技法은 BC 722년에 끝난 제22王朝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調査를 통해 이 미라는 放射性炭素年代測定과 CT撮影分析結果가 겹치는
BC 8세기에 死亡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미라는 앞의 토티르데스棺보다 40년이상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미라와 棺은 원래 따로 出土되었던 것이 19세기에
古代遺物仲介人에 의해 합쳐진 것으로 보고 있다. (*膚: 살갗 부)
(25) 미라 –맨 위에 있는 미라
이 관 안의 미라와 이 관위에 나온 미라 이름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르다고 한다.
*미라(Mummy]
天然的 또는 人工的인 처리로 오랫동안 原形에 가까운 形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人間 또는 動物의 屍體를 이른다. 古代이집트에서는 靈魂不滅思想에 따라 屍身에는 魂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이를 보존하는 것이 故人의 來世에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미라를 만들었는데 아스텍文明, 잉카帝國 등에서도 미라화 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信仰과 儀式은 특히 이집트에서 성행했으며, BC 2600년경부터 그리스도교 時代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그 밖의 古代民族이나 近代 未開社會 등에서도 미라화 의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 발굴되는 미라는 全世界에 분포되어 있다.
(26) CT로 본 미라
CT를 이용해 토티르데스 미라의 內部를 조사한 결과 토티르데스에 대한 숨겨진 사실
몇 가지가 발견되었다. 먼저 性器로 보아 男性이며, 뼈의 상태로 보아 19세 이상의 成人으로,
健壯한 骨格의 소유자였다. 또한 미라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설명을 檢證할 수 있었다.
그는 코를 통해 頭蓋骨에 쇠고리를 넣어 腦를 除去했다고 했는데, 토티르데스의 뇌는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으며, 코와 두개골 사이의 뼈가 완전히 뚫려있고, 뱃속의 臟器는 왼쪽
옆구리를 切開하고 제거한 것을 알 수 있어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일치했으며, 心臟도
남아있었다. 한편 臟器를 카노프스 단지에 넣지 않고 다시 몸 속에 넣은 것은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차이가 있었다. (*蓋: 덮을 개 *腦: 골 뇌 *臟: 오장 장)
(27) 파세바카이엔이페트(Pa-seba-khai-en-ipet)의 관(棺) -上이집트 데이르 엘바하리
-제3중간기, 제21왕조 -BC 1075~945 -나무(삼나무와 아카시아), 색소, 안료
제21王朝에 이르러 이집트의 귀족들은 무덤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무덤壁에 그리던 그림을 棺에 그렸다. 이 관에는 여러 神들을 비롯해 그들을 崇拜하는
死者의 모습을 그렸으며, 死者는 오시리스로 표현했다. 관 왼쪽이 일부 손상되었는데 당시
木手들이 작은 나무 조각들을 나무 못으로 고정해 관을 만들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 補修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또한 겉면은 石膏를 바른 뒤에 채색하여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28) 따오기의 棺 -투나 엘게벨 추정 -프톨레마이오스時代
- BC 약 305~30, 이후 일부 추가제작 -나무, 銀, 金, 水晶
따오기(Ibis)는 달, 智慧, 글의 神으로 알려진 토트(Thoth)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後期時代에 이르러 토트는 아문(Amun)을 대신해 神殿에서 最高神으로 推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智慧, 文字, 科學, 魔法, 藝術과 死者들의 심판을 管掌했다.
이 따오기 棺은 토트神의 動物形象 중 하나를 再現한 것이다. 精巧하게 鍍金된 이 棺 안에는
따오기 미라가 담겨있다. 水晶에 金테두리를 돌린 눈, 鍍金된 몸체, 銀으로 된 다리와
발부분의 纖細한 描寫로 이 관은 藝術性이 뛰어난 動物棺으로 꼽힌다. 따오기의 관처럼
特定神을 상징하는 동물미라는 神에 대한 奉獻物이 되었고, 後期王朝時代와
프톨레마이오스時代에는 이집트 全域에 數十萬具의 동물미라가 묻혔다. 이런 類型의 棺은
대부분 머리와 발을 靑銅으로 만들었다,
(29) 이집트의 自然環境
(30) 늪지대 풍경 -기자 -제5~6왕조 -BC 약 2500~2170 -석회석, 안료
나일江 주변의 늪지대는 이집트人들에게 중요한 食糧源이었다.
이 浮彫처럼 무덤 돌에 그린 늪지대는 이집트의 肥沃함을 상징하며 死後世界에서도
풍족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작은 배 안에서
여러 種의 물고기를 잡고 있는 男性들을 묘사했다. 왼쪽 아랫부분의 새끼를 낳고 있는
河馬는 多産을 상징한다.
(31) 동물을 그린 꽃병 -아우라드 야랴 -先王朝 時代, 나카다 3기
-BC 약 3300~3100 -토기에 채색
이 항아리에는 악어 또는 이집트 몽구스로 추정되는 3마리의 동물과
뱀을 그렸다. 악어는 나일江에서 발견되는 위험한 동물로, 이것을
그려 넣은 것은 呪術로 위험을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砂漠은 언제나 위험한 장소였으며, 反面에 江은 큰 위험을 안고 있는 동시에
生命을 살리는 물의 根源으로 여겼다. (*呪: 빌 주)
(32) 주걱모양 인형 -中王國 -BC 약 2008~1630 -나무에 채색
한때 주걱모양 어린이 놀이감으로 여겨졌으나 女性의 身體를 抽象的인 형태로 單純化하고
앞면에는 해링본 패턴의 드레스를 그린 것이 많았다. 그러나 뒷면에 妊娠한 女性들의
수호자인 河馬形象의 타웨레트(Taseret)를 그렸으며, 앞면에 삼각형모양의 陰部가 표현되어
多産과 順産을 祈願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33) 우유용기(牛乳用器) -사와마 -新王國, 제18왕조 초기
-BC 약 1539~1478 -토기에 채색
土器表面에 女性의 허리, 팔, 가슴모양의 粘土를 붙여 장식한 항아리이다.
이것은 古代 이집트인들의 治療藥과 處方箋을 적어놓은
<에버스 醫學 파피루스>에는 ‘아픈 사람은 이 母乳를 크림이 뜰 때까지
병에 담아 보관했다가 아픈 부위에 바르면 좋다’라고 적혀있다.
이 牛乳用器는 이같은 ‘魔法의 液體’를 담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箋: 기록할 전)
(34) 미라 마스크(Mummy Mask) -로마시대
-AD 약 150~200 -석고에 채색
이것은 로마시대(BC150~200)에 석고에 채색해 만든 <미라 마스크>이며,
이집트의 藝術은 점점 進化했다. 한 男性의 棺에서 나온 이 마스크는
그리스와 로마의 肖像畵樣式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었으며, 이집트의
藝術家는 새로운 思想을 접하면 이를 받아들여 創作物에 녹여 내곤하였다.
이와 같은 로마樣式의 假面은 이집트의 傳統을 이은 마지막 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假面은 전통적인 이집트의 가면과 마찬가지로 미라의 얼굴을
덮을 때 사용한 것이다. 머리모양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모습이었다.
(35) 미라 발 덮개 -로마시데 -약 10~77년 -회반죽, 안료, 금박
발덮개는 富裕한 上流層만 사용할 수 있는 奢侈品이었다. 假面이나 미라덮개는 꼭 갖춰야 할
必需品이었으나, 발덮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발덮개 바닥 면에는 敵들을 묘사했는데,
두 명의 異邦人은 손발을 묶은 채로 그렸으며, 결국 王의 발아래에 짓밟히게 된다.
古代 이집트人들은 異邦人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制壓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奢: 사치할 사 *侈: 사치할 치_
(36) 목걸이 (왼쪽) – 스카라브가 달린 팔찌 (오른쪽)
=목걸이 -메칼리 -新王朝時代 나카다1기 -BC 약 3850~3500
-石英, 紅玉髓, 瑪瑙, 凍石, 蛇紋石.
구슬을 꿰어 만든 이 목걸이는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된 것으로, 232개의 구슬과 펜던트로
만들었다. 가장 큰 펜던트는 不透明한 黃褐色 石英이며, 그 외에 玉髓(chalcedony)로 만든
펜던트 6개와 瑪瑙로 만든 펜던트 한 개가 달려 있다. 여기에 오래지 빛깔의 불투명한 큰
石英고리와 동그란 모양의 褐色凍石구슬을 덧붙였다. (*髓: 뼛골 수 *瑪: 차돌 마 *瑙: 마노 노)
=스카라브가 달린 팔찌 -아비도스 -中王國, 제12王朝 -BC 약 1938~1875 -자수정, 長石
이 보호팔찌는 圓形 또는 계란형의 紫水晶구슬을 꿰어 만들고 끝으로 갈수록 점점
구슬크기가 작아진다. 중앙에는 綠色長石으로 만든 풍뎅이모양의 스카라브가 달렸는데
이것은 太陽神을 상징하며, 반대쪽 끝에는 色이 연한 알 모양의 紫水晶이 달려 있다.
(37) 베스와 타웨레트가 달린 목걸이(왼쪽 )- 신의 흉상이 달린 반지(위) - 귀걸이(오른쪽)
=베스(Bes)와 타웨레트(Taweret)가 달린 목걸이 -新王國 제18왕조
-BC 1539~1292 -금, 파이앙스, 홍옥수
이집트인들은 베스와 타웨레트의 이미지가 달린 이런 목걸이가 妊娠한 女性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난쟁이사자모양의 베스는 아이들의 守護神이고, 임신한 河馬모양인
타웨레트는 出産하는 여성들의 수호신이었다.
=神의 胸像이 달린 반지 -사카라 -프톨레마이오스시대 후기~로마시대
-BC 100~AD100 -金
이 반지는 두꺼운 金製棒을 두 번 반 감아 만들었다. 양 끝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부터 로마시대初期에 오시리스의 現身으로 여겼던 소形象의
세라피스(Serapis)의 胸像과 오시리스神의 夫人인 이시스神의 胸像을 표현했다.
이 반지를 끼는 자는 두 神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귀걸이 -新王國, 제18왕조 -BC 1539~1292 -금
(38) 카우리(Cowrid)모양의 금반지 -제2中間期, 헥소스시대 제13~17왕조
-BC 1630~1539 -釉藥을 칠한 凍石, 金
이집트인들은 女性의 性器 비슷하게 생긴 카우리조개에 多産을 부르는 呪術的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富裕한 이집트인들은 카우리조개모양의 부적이 달린 금반지를 자주 착용했다.
이 부적의 밑면에 표현된 꼬인 고리모양 패턴은 헥소스시대 스카라브에서 자주 발견된다.
(39) 조세르왕(Djoser王)의 병(甁)
-사카라, 조세르 계단식 피라미드 複合채, ‘남쪽무덤’ L실
-古王國 初期 제3왕조 –BC 약 2579~2525 -雪花石膏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트 안에서 출토된 數千 個의
石材用器중 하나이다. 이 時期의 돌用器는 대부분 方解石의 일종인
이집트産 雪花石膏를 彫刻하여 만든 것이다. 바깥面은 끌 모양의 도구와
석재 절구공이로 다듬었으며, 안쪽면은 쪼아서 만들었다.
(40) 계란형 항아리 (왼쪽) - 접시
=계란형 항아리 -엘 아이리야 -新王朝時代, 나키다 1기 -BC 3850~3500 -토기
몸통은 매끄러운 붉은색이고 입부분이 검정색인 이 항아리는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土器形態중의 하나이다. 나일江이 범람할 때 강둑근처에 堆積되는 진흙으로
만들었다. 항아리 몸통은 테쌓기방법을 사용해 얇게 만들었다. 陶工들은 粘土를 자갈로
문지르면 구웠을 때 붉은색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테두리의 검정색 부분은
굽기 전에 검댕을 묻힌 것이다.
=접시 -에드푸 -初期王朝時代, 제1왕조 -BC 3100~2800 -석회암
(41) 재칼 손잡이 숟가락 -사카라 -신왕국, 제18왕조 -BC 약 1589~1292 -나무
古代 이집트인들이 햇빛과 乾燥함으로부터 皮膚를 보호하기 위해 軟膏를 바를 때 사용하던
숟가락으로 추정된다. 이 숟가락의 손잡이는 재칼모양이다. 보통 이런 물건의 動物表現에서
재칼의 머리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의 모습인 반면 앞다리, 몸통과 꼬리는 옆모습이다.
(42) 페피 2세의 병 -古王國, 제6왕조 페피2세
-BC 약 2288~2224/2194 -설화석고
王室에서 사용한 뚜껑있는 병은 페피 Ⅱ세에게 獻呈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식물기름과 動物脂肪을 사용해 皮膚補濕劑와 클렌저를
만들고, 머리모양을 잡기위해 머리에 바르기도 했다. 이집트文字에는
여러 종류의 기름, 軟膏를 일컫는 단어가 최소 7개 이상이 있으며,
이 병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었는지 알 수 없다. (*膏: 기름 고)
(43) 미라 製作
(44) 뚜껑 달린 카노푸스 단지 -後期王朝時代, 제26왕조(혹은 그 이후) -BC 664~525 -석회암
카노푸스단지는 身體를 미라로 만들 때 除去된 臟器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王族들만 사용하다가 뒤에 上流層과 中産層에서도 카노푸스 단지를 사용했다.
물론 王族들이 사용하는 것과 質的으로 차이가 있고, 身分이나 富裕함에 따라 재료가 달랐다.
카노푸스단지 중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이 있어 단순한 奉獻用으로 用途가 바뀐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 한 세트가 4개를 이루고 있는 단지의 뚜껑은 호루스의 네 아들을
象徵한다. 자칼인 두아트무테프는 胃를, 매인 퀘베스세 네베프는 腸을,
人間인 임세티는 肝을, 개코원숭이인 하피는 肺를 보호한다고 한다.
日常生活
(45) 日常生活
부적
이집트인들은 산자와 죽은자 모두를 위해 부적을 쓴다. 彫刻像形態로 많이 만들었으며 神의
形象이나 心臟, 눈, 척추, 새, 곤충모양 등 다양하다. 부적은 형태와 종류에 따라 각각 특별한
保護機能을 했다. 종류에 따라 위치가 정해져있는데 屍身을 싼 亞麻천 안쪽에 놓았다.
바(Ba)부적은 가슴 부위에 놓여 혹시나 바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했고, 心臟을 상징하는
쇠똥구리모양 부적 스카브라는 오시리스 앞에서 裁判을 받을 때 罪를 自白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또한 각 부적의 모양, 재료, 色相도 神話的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미라부적의 겉면을 장식한 푸른색과 녹색의 파비앙스는 식물과 물을 떠오르게 해
再生을 상징했다. 미라의 아래쪽에 놓이는 기둥모양의 부적은 오시리스의 脊椎를 의미하며
安全을 상징한다.
(46) 미이라를 만들 때 붕대 속에 넣는 부적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① 바 부적 -사카라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664~332 -금
바(Ba)는 이집트인들이 超自然的 人格을 구성한다고 믿는 영혼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으면 인간의 머리를 한 새, 바가 무덤 밖을 돌아다니며 死者가 먹을 음식을 모아
무덤으로 가져온다. 바 부적은 무덤으로 되돌아오지 못했을 때 바를 대체하는 機能도
가지고 있다.
=② 와제트 눈 부적(Wadiet-eye Amulet)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32 -금
고대 이집트어로 와제트라고 부르는 눈 부적은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神의
눈을 표현한 것이다 <호루스와 세트의 神話>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왼쪽눈을 도려냈고
그것을 하토르와 토트신이 치료한다. 호루스는 이후 죽은 자들의 땅에 있는 아버지
오시리스를 治癒, 즉 ‘와지’하기 위해 눈(와제트)을 바쳤다. 따라서 미라에 달린 와제트는
治癒, 復元, 保護를 의미한다.
=④ 와제트 눈 부적(Wadiet-eye Amulet) -사카라 -후기왕조 시대, 페르시아 시대
-제27왕조 -BC 약 525~404 -금.
=③ 바 부적(Ba Amulet) -사카라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BC 약 305~30
-金, 靑金石, 터키石, 凍石
(47) 와제트(Wadjet) 눈을 가진 토트(Thoth)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05 또는
프톨레마이오스시대, BC 305~30 –파이앙스
이 부적은 세트神이 호루스神의 눈을 뽑았으며, 그것을 토트神이
治癒했다는 神話를 形象化한 것이다. 여기에서 토트를 상징하는
聖스러운 동물인 개코원숭이가 치유된 눈을 들고 있다.
(48) 베스 부적 – 아누비스 부적 – 타웨레트 부적 (위에서 아래로)
=⑥ 베스 부적 -데리스 엘바하리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0 -금
=⑦ 아누비스 부적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0 -금
=⑧ 타웨레트 부적 -新王國, 람세스시대, 제19~20왕조
-BC 약 1292~1075 -파이앙스
*파이앙스: 朱錫을 함유한 불투명 釉藥을 발라 장식을 그려넣은 陶器.
(49) 와제트 눈 부적-기둥 부적(와지)-쭉 편 오른손 부적 (위에서 아래로)
=⑨ 와제트 눈 부적 -자가지그(부바스티스)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0 -파이앙스
=⑩ 기둥 부적(와지)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0 -파이앙스
=⑪ 쭉 편 오른손 부적 -新王國, 제18~19왕조 -BC 약 1539~1075 -파이앙스
(50) 호루스의 네 아들 부적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0 -파이앙스
-제88차 文化踏査(10-10), 세계문화 이집트(2-2)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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