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분열적 국가관의 소유자들
“지금 남조선에서는 력대 파쑈당국이 우리와 련결시켜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처형하였던 각종 <사건>들이 오늘에 와서 탄압사건으로 재규명되고 오히려 지난 시기 탄압사건을 조작하였던 교형리들을 처벌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시여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시고 극소수 반동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신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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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남파간첩과 빨치산 운동가 3인을 민주화운동가로 규정하여 명예회복과 보상의 길을 터주는 한편, 그들의 죽음에 관계된 당시 중앙정보부와 대전교도소 관계자들을 상해치사,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로 결정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1일 결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아니다. 작년 9월 ‘조선로동당출판사’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 발표이후 남조선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대내에 한함’이라는 딱지를 부쳐 발간한 문건에 담겨있는 문장이다. 이 문건은 이미 몇 달 전 일부 매체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의문사위의 결정만 놓고 본다면, 지금 ‘남조선’은 ‘위대한 장군님’의 소망대로 움직이고 있다. 개발독재에 항거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라 알아왔거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개발독재보다 수천 배, 수만 배 잔인무도한 북한의 수령 전체주의체제를 신봉했던 자들이 단지 개발독재와 맞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화 투사란다. 요컨대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찬반이 민주화운동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북한의 수령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태도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길 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upkorea.net%2Fpds%2Fphoto%2F2004%2F7%2F2%2F20047211408_090000000000_1.jpg)
주지하듯이 우리는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국가보상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를 원망한다. 그런데 남파간첩은 졸지에 민주화운동가가 되어 보상의 대상이 되니 도대체 이 나라는 대한민국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가? 확신컨대 이번에 간첩을 민주인사로 둔갑시킨 의문사위 위원들은 북한의 수령 전체주의체제의 민주화를 위해 남한이 공작원을 파견한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반대할 것이다. 남북 화해협력에 반하는 행위라고. 설사 북파공작원이 북한당국에 체포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해도 이들은 분명 침묵할 것이다. 그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통일 대업을 위해.
이처럼 지금 이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의문사위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그런 곳에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자들이 득실거리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희롱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김영춘 의원은 이번 결정이 월권일 수 있단다. 국기문란 행위를 어찌 ‘월권 우려’ 정도로 축소하려 하는가? 더욱 웃긴 것은 중도와 균형을 표방해 온 일부 지식인의 어이없는 반응이다. ‘중민론’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서울대 한상진 교수는 “그들이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변화시킨 것이어서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잘한 일로 생각한다”고 언급하였다. 이 무슨 궤변인가? 김신조 일당의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이 성공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그 결과, 문민정권이 들어섰다면 김신조의 행위도 민주화 운동이 되는 것인가?
이제 우리 사회의 민주화세력은 깊은 성찰을 통해 심각한 자아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천인공노할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와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로지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할 때, 어떤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되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에게는 엄격하고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자신의 이중 잣대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첫댓글 좌익사관에 놀아나는 세상이 우울해서 여기 게시판에 글을 올린적이 많은데...한참 안들렸읍니다. 조돌쇠님이 힘내실때 그 뒤로.. 네이버에서 블로그만 매달렸답니다. 이 게시판에 활기가 보이니 흥분됩니다. 다들 힘내십시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