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의 『밀양 密陽』
영화 『밀양』은 원작자 이청준의 『밀양, 벌레이야기』를 모체로 하였다 한다. 밀양이라면 밀양아리랑으로 익히 그 지명을 알지만 영화를 만든 이가 왜 하필 그 곳을 택한 것인지 궁금하였다. 감독은 그 궁금증에 대꾸하듯 스크린이 열리자 곧 여주인공인 신애의 입을 통해 답변한다. 밀양密陽, 영어로는 Secret Sunshine, 비밀스런 햇살이라 할까, 몰래 비춘 햇볕이라 할까. 남다른 감성을 지닌 어느 이웃의 권유 탓이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 전도연 때문에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읍내에 볼일 있어 나간 어느 날, 현재 상영 중임을 확인하고 극장을 찾았다. 장마 탓이라 해도 지나치게 퀴퀴한 냄새 때문에 텅 빈 홀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곰팡이 냄새를 견디기 위해 숨은 죽지 않을 정도로 쉬어가며 눅눅한 의자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 집중하였다. 관객은 남편과 나 단 두 사람, 그래도 필름을 돌려야 하는 시골 극장이 가여웠다.
칸 영화제에서 주연여우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면 우리나라에서 흥행을 보장 받기는 힘들 것이다. 유럽 취향의 영화들은 그 내용이 조금은 철학적이고 우리네 인습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시간을 용케 참아내고 극장에서 나오며 재미를 기대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신애라는 서른셋의 젊은 여인의 이야기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살러가는 신애와 그 아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밀양에 거의 다 도착한 어느 지점에선가 고장나버린 자동차를 고치려다가 신애는 남자주인공인 김사장을 만난다. 자동차 수리를 부탁받은 카센타 사장이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똑똑하고 다부져 보이지만 안쓰러운 젊은 여인과 우리주변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그저 적당히 낙천적이고 속물적인 중년 남정네의 사랑이랄 것도 없는 유대관계가 이어진다. 자신의 인생에서 너무나 빨리 겪어야 했던 상실의 땅을 벗어나 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밀양이라는 낯선 곳을 찾아든 신애. 그래도 한 번 살아볼 이유를 붙잡기 위해 그녀는 아들 준에게 온 마음을 기대고 이웃들과도 웃음 나누려 노력하며 희미하나마 희망을 바라본다. 그녀의 생계수단은 피아노학원이고 그 학원 주변에는 늘 김사장(송강호)의 눈길이 따른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깊은 상처로 커다란 옹이를 가슴에 간직한 그녀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창동감독은 관객을 그리 애타게 하지는 않는다. 한두 번의 힌트로 예감할 수 있는 장면을 예비해둔, 일종의 배려라 할까 현재로서는 신애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인 준이 잠시 눈앞에서 사라지는 숨바꼭질 장면을 마련해 두었다. 비비 꼬아 골치 아프게 엮어나가지도 않는다. 단순 소박하게 펼쳐나가는 중심내용에 놀래킴의 장치도 숨겨두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상실감보다 더 큰 아픔이 있을까 했지만 아이를 잃는 것은 내 목숨을 잃는 것의 천 배 만 배의 아픔이요 슬픔이요 두려움이어서 그것은 이미 죽음을 넘어선 공포이다. 차라리 죽어버렸다면 널브러진 절망으로 함께 죽을 수나 있겠지만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납치상황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돈, 아들 준의 납치를 부른 빌미는 너무나 우습게도 신애의 작은 허영에서 비롯되었다. 낯선 곳에 굴러들어와 젊은 과부로 살자니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있는 사람처럼 위장하려는 방어기재가 작동된 것이다. 마치 땅에 투자할만한 돈이라도 있는 양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그것이 엉뚱하게도 이웃인 웅변학원 원장의 범죄 심리를 자극하다니...
영화의 핵심을 흐리지 않으려 이창동은 살인자를 오래 숨겨두지 않는다. 납치된 아들의 안부를 몰라 부들거리는 모정은 연기 잘 하는 전도연에게 맡기고 숨 막히는 고통들을 몇 장면 치른 후 곧 죽음을 당한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는 신애의 넋 나간 모습과 살인자로 연행되어가는 이웃 남정네의 비정한 모습이 엇갈리는 정도로 처리한다. 아주 잠시 관객까지 참담하게 만들지만 용의자가 누구일까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초점은 아니란 얘기다. 삶의 이유였던 아들을 잃고도 신애는 죽지 않는다. 머릿속은 하얗게, 가슴은 까맣게 타버렸어도 아직 숨을 쉬고 있다. 혼이 나간 듯 빈껍데기로 서 있는 그녀에게 한 가지 죄목이 더 들씌워진다. 남편 잡아먹은 년이 자식까지 잡아먹고도 눈물 한방울도 없냐는 시어머니의 독설, 하지만 신애에게는 더 이상 충격을 받을 기력도 없다. 그런 신애가 안쓰러워 노인을 향해 '너무 하시는 것 아니냐.'며 신애를 감싸려 한 김 사장의 몸짓은 '넌 뭐냐!'라는 또 다른 멍에만 하나 얹어준 꼴이 되어버린다. 극한 시련에 몰리면 정말 가슴을 쥐어뜯어도 빼내지 못하는 통증 때문에 숨이 멎기도 할 것이다. 상실 자체만으로도 형벌인데 그 이후로도 치러야 하는 심신의 고통은 더욱 큰 형벌이다.
죽지도 못하는 신애는 별 생각 없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교회 부흥회에 발을 넣는다. 부흥회에서 숨이 막힐 듯 꺽꺽, 겨우 기침으로 숨통을 열고 오열하는 연기 장면은 전도연을 기진하게 만들고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킨다. 감독인 이창동은 그녀에게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단다. 스스로 알아서 연기하도록 맡겨두고 그는 감탄하며 오케이 사인을 했던가 보다. 송강호 또한 작품 안에서의 캐릭터를 스스로 해석하여 연기했다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세 사람이 만들었다는 설명을 굳이 앞세웠나 보다.
이후로 신애는 마음 씻김을 경험한 듯 웃음을 찾고 신자가 된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 곳에도 김 사장의 그림자는 여전히 뒤따른다. 얼마 후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살인자를 찾아가는 신애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김 사장, 영화는 이 쯤에서 하이라이트가 연출된다. 신애는 교도소로 가는 길에 들꽃을 꺾어 용서를 더욱 빛나게 장식하려 애쓰고 동료신자들은 용서에 성공하라며 화이팅을 모아준다. 관객의 응원까지 기대하는 듯한 의미로 해석하면서 용서의 위대함으로 영화를 끝맺으려는 건 아니겠다는 불길함이 머리를 스친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천사 같은 마음이 되어 원수를 용서하려는 신애 앞에 너무나 평안한 살인범의 얼굴이 등장한다. 당한 자의 고통보다 만 배는 힘들어하다가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진 살인자의 얼굴이 아닌 보얗고 미소 그윽한 살인범의 얼굴을 대하는 신애의 충격, 그녀는 천사의 미소를 거두고 서서히 굳어간다. 더구나 살인자의 입을 통해 들은 말 한마디는 그녀에게 내려지는 사형선고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미 용서를 받아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거늘 어찌 하느님이 먼저 용서를 하셨단 말인가. (우리 미천한 인간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없음을 신애는 몰랐을까.)
그녀가 미쳐가는 건 이제부터다. 남편을 잃었을 때는 아직 씩씩하였고 아들까지 잃었을 땐 넋이 나갔지만 미치지는 않았었다. 어불성설, 혼란, 이럴 순 없어, 모든 것은 거짓이야! 배신감에 휩싸인 그녀의 복수심은 점차 비정상인의 행태를 부르고 급기야는 손목의 동맥을 끊는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이제는 괴로움도 함께 겪는 김 사장은 폐인이 되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 절규하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돌보며 곁을 떠나지 않는다. 동맥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살려달라고 길거리를 헤매는 신애,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 고통보다도 죽음으로 피하는 비겁함보다는 살아야하는 본능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걸까.
퇴원하는 날, 핏기 없는 신애는 아직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 김사장과 함께 미장원에 들른다. 머리를 손질하겠다는 건 여자에게 희망이 싹튼다는 징조인데 하필 머리 손질을 맡은 아이가 살인범의 딸이다. 가슴 속 울화를 참으려 애쓰는 그녀와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소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도 소녀는 안다. 소녀를 용서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리 어려운가. 결국 신애는 미장원을 뛰쳐나간다.
배경이 바뀌어 신애의 집. 가위와 빗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는 신애가 거울을 앞에 세워두고 머리카락을 자른다. 때마침 대문을 들어서는 김 사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거울을 잡아준다. 스산한 겨울날에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리고 머리카락을 뒤따르는 카메라는 손바닥만 한 마당 한구석에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잡는다. 한참을 머무르는 한줌 햇살, 그 자리에 봄을 맞는 초록 풀 몇 잎이 햇살에 생명을 기대고 있다. 눈물겨운 밀양(密陽)이다! 이 영화는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란 말이 실감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