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숨은 숨결
김 선 구
선비의 의미는 어질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을 뜻한다. 유학자로서 학문과 예술을 기본 소양으로 삼아, 심신을 수양하고, 도덕적 실천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타의 모범이 되려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선비가 지향하는 기준은 성인이나 군자가 되고자 함에 있다. 즉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실천하는 유학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비는 학덕과 고매한 인품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덕목은 학행일치(學行一致)였다. 익힌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배움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말을 잘 해도 실천하지 못하면 비판받았고, 교묘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과 자신을 속이는 짓을 하면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지탄 받았다.
또한 선비는 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는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체질화하였다.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 방식을 몸에 익혔다. 평소에 아끼고 절약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고 난 다음 여유를 갖는 행위는 덕이 아니다. 이러한 청렴정신이 청백리의 바탕이 되었다. 조선 왕조에 수많은 청백리를 배출한 것은 관직 생활에서도 청렴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토록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시대로 평가 받는 세종 때에 청백리가 많이 배출되었다. 세종 같은 성군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청백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 유관(柳寬)이라고 알려졌다. 이 세 사람은 덕목을 실천함에서도 똑같은 성향을 보이면서 돈독한 우정과 모범으로 세종시대의 태평성세를 이루어 냈다.
황희는 40대 후반부터 50대 전반까지 십여 년 동안 육조판서를 모두 역임하고 18년 동안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 청백리의 귀감을 보여 주었다. 어느 날 조회에 모든 대신이 비단으로 지은 새 옷을 입고 나왔는데 황희 정승만 거친 베로 만든 관복을 기워 입고 나왔다. 그러자 그 다음 날부터 모든 대신들이 헌 관복으로 갈아입고 출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상징적인 인물의 일거 수 일 투족이 미치는 영향력을 말해 준다. 그만한 인품과 인격을 평가받는 인물이기에 사치를 좋아하는 관료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맹사성도 청백하여 살림살이를 늘리지 않고 식량은 늘 녹미(祿米)로 하였다. 어느 날 부인이 햅쌀로 밥을 지어 올리자 어디서 햅쌀을 구했느냐고 물었다. 부인이 녹봉으로 받은 쌀은 너무 묵어서 먹을 수 없을 지경이므로 이웃집에서 햅쌀을 꾸어 왔다고 했다. 이에 “녹미(祿米)를 받았으면 그것을 먹을 일이지 이웃집에 불편을 주어서야 쓰겠소?”하고 부인을 나무랐다. 공인으로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실천했음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우의정을 지낸 유관도 성품이 매우 청렴하고 청빈하여 비가 새는 단칸 초가집에서 베옷과 짚신으로 생활했다. 한번은 장마로 집에 비가 줄줄 새자, 우산을 받쳐 들고서 부인에게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걱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우매하다 할 만큼 청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부귀와 영화를 누릴 만한 충분한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청빈하게 지냈던 것은 그러한 처세와 선비정신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 이다. 세 사람 모두 너그럽고 여유 만만하며 해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청빈과 낙도! 이러한 정신과 품행이 과거 선비들 지향했던 덕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들 세 사람은 함께 모여 서로 대화하고 우정을 다졌다. 그 곳이 지금 아산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한다. 행단이란 선비들이 학문을 닦았던 곳을 의미한다. 원래 최 영 장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손녀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주어 그 곳에 맹씨 집안이 뿌리를 내리게 한 곳이다. 아마도 세 사람이 이곳에 모여 상호 간에 교감된 투철한 사명 의식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의 지기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격려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역에는 많은 서원과 사당들이 있다. 이 곳은 선비들을 키워낼 강학공간이면서 사표가 될 만한 유명선비들의 위패를 모시고 그를 추모함으로써 선비의 덕과 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선비문화가 퇴조되어 지금은 제사공간으로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이 곳을 선비들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하고 잘 가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곳에서 잊어버린 정신문화를 일깨우는 장소로 조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서원 향교 등 문화유적을 찾아 잊어버린 선비문화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고 싶다. 선비문화가 다시 꽃을 피우고 찬연히 빛날 날을 기대해 본다.
*수기치인(修己治人): 내 자신을 닦아 수양한 후 후 남을 교화 함.
*내성외왕(內聖外王): 성인을 목표로 수양하면서 세상을 개혁하려 함.
*박기후인(薄己厚人):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 함.
*학행일치(學行一致): 배운것을 행동으로 실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