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를 제목으로 뽑은게 아닙니다.
그리고 동네 클럽에서 벌어진 가족 간의 오락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어제, 2011년 10월 31일에 네덜란드 리그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입니다.
전설, 레이몽 클루망은 지금도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리그에서 시합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상대팀의 선수인 손자 '피터 클루망'과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전설 클루망의 손자인 피터 클루망은 탑 클래스 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세계 랭킹 100 위권내에 너끈하게 들어가는 강자입니다.
그 경기에서 레이몽은 50-42 로 승리하였는데, 28 인닝으로 끝을 냈습니다.
에버리지 1.79
그의 나이가 올해... 으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기사를 보면서 요즘 젊은 선수들의 선전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당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오랫만에 소식을 접한 김에 클루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네요.
레이몽 클루망.
(1937년 6월 12일, 벨기에 리에르 출생)
기사(騎士) 레이몽 클루망은 당구 3 쿠션 선수로서, 35 번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48번의 유럽 대회 우승과 61번의 국내대회 우승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모든 운동 종목을 망라하여 가장 뛰어난 업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별명은 미스터 100 이다. 그는 2001년 미국에서 당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미국인 이외의 인물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2003년 10월에는 벨기에의 왕 알버트 2세가 그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면서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였다.
(참고: 벨기에의 기사 작위는 귀족 계급의 일종입니다.)
클루망은 7살 경에 아버지의 카페에 있는 당구대에서 당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지역의 축구클럽에서 축구도 하였다. 그는 뛰어난 미드필더였음에도 축구를 그만 두었고 그 이후 당구에 전념하였다.
23살이던 1961년에 클루망은 벨기에 3쿠션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유럽 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1년 뒤 UMB 3쿠션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에버리지 1.307로 세게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이후 11년 연속 우승을 하였고, 1974년에 노부야키 고바야시에게 결승에서 패해 연속 우승 기록이 중단되었다.
그는 에버리지 1.50 과 2.00에 도달한 최초의 선수였다.
1986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1회 BWA 세계 3쿠션 경기대회에서 우승하였다. 1998년에는 1 인닝에 28점을 기록하여 일본의 주니치 고모리와 같이 연속득점 세계기록을 공유하였다.(이 기록은 그 이후에 깨어졌다.)
클루망은 유럽 선수권을 23 차례 차지하였으며 19 차례 방어하였다.
또 3쿠션 세계 선수권을 24차례 차지하였으며(UMB 21번 BWA 3번), 16차례 방어하였다.
64세에 룩셈부르크 대회에서 마르코 자네티를 이기면서 우승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UMB 세계 타이틀이었다.
첫댓글 저에게도 아직 희망이 ㅎㅎㅎ
23살이던 1961년에 클루망은 벨기에 3쿠션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라한님은 11월 2일의 구슬모아 이벤트에서 본인의 당구인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만다...(4명 참가)
아~~ 5.16 군사혁명때도 3쿠션대회가 있었군요.....음....로또님도 참가 하셨었나요....ㅡ,.ㅡ
이 영감탱님은 아직도 현역이라뉘요.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