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을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않는다 !!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북쪽과 남쪽의 위치지만 거리감이 달라진 고향!
서울 사람이 된지 55년이 되었다.
55년 전 시골 촌뜨기 눈에 서울은 모든 것이 다 신기해 보였다.
그때는 서울역 부근에서 마포종점까지 일본이 건설한 “전차”가 있었다.
필자가 3번 타고난 뒤에 철거되었다.
신기한 것 중 하나가 상냥스러운 “서울 말씨”였다.
그 감미로운 서울 말씨에 그냥 귀가 호강을 누렸다.
55년 전 필자의 처음 서울 생활은 지금의 강서구 염창동(鹽倉洞)이었다.
그때는 “강서구”가 없었다.
영등포구 염창동이라 기억된다.
그곳에 필자의 일터인 회사가 있었다.
회사 가까운 곳에 하숙집이 있었다.
55년 지난 지금에도 잊히지 않은 것은 하숙집 처음 밥상위의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하숙집 딸의 상냥하고 감미로운 “서울 말씨”였다.
※김치찌개에 대한 에피소드(episode)가 있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55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에서는 그 상냥하고 감미로운 “서울 말씨”는
듣지를 못한다.
친구 중에 서울 본토박이가 있는데 상냥하고 감미로운 “서울 말씨”가 아니다.
“왜 지금은 서울 말씨가 감미롭지 못하느냐”고 물으면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많이 살아서 “서울 말씨”와 지방 사투리가
짬뽕이 되어서 순수한 서울 말씨를 잃은 것도 있겠지만 55년 동안에 우리나라가
좋은 것 나쁜 것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55년 전 한강 다리는 인도교와 제2한강교(지금의 원효대교)2개뿐이었는데
지금은 31개다.
이처럼 서울이 변하니 상냥한“서울 말씨”도 변했다 생각된다.
약 35년전 경향각지에 단학(丹學)이라는 정신수양 훈련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중국에서는 파룬공(抱輪功 法輪功). 중화양생익지공(中華養生益智功)
등이 기공(氣功)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서울에도 중화양생익지공(中華養生益智功) 기공(氣功) 보유자가 와서 강의를
하였다.
필자도 약 2년간 기공 강의를 들었다.
관악산에서 약 20회 정도 집중도(集中度) 수련도 하였다.
집중수련(集中修練)중 묘한 현상을 경험하였다.
예를 들어 TV 화면에 고등어를 보면 코에 비린내가 나는 느낌이었다.
또는 심한 화재(火災) 장면을 보면 코에서 화기(火氣)를 느끼는 것이다.
지금도 느낄 때가 있다.
55년이 흐른 지금
TV에 나오는 아나운서의 감미롭고 상냥한 말씨는 들을 수 없다.
많은 연예인 출연자들의 말씨는 마치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악을 쓰고
도전적이다.
마치 못으로 철판을 긁는 것 저럼 신경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말투(語套)다.
몸놀림도 자극적이고 도전적이다(K팝 댄스를 말하는 것이 아님)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꽤 오래 되었다)
TV를 켜면 꼭 들어야 할 뉴스나 중요한 내용은 볼륨을 나게 하지만
그 외는 TV 화면만 보고 소리를 듣지 않는다.
화면에 자막이 나오므로 무슨 내용인지 다 알 수 있다.
TV화면에 악쓰고 부정적인 말투가 필자의 정신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TV 소리를 안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들이 퇴근 후 마루에서 TV를 켜고 보륨을 올리면
필자는 내방에 들어간다.
보고 듣는 것이 자신의 정서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본을 따르고
자신을 절제하면 굳이 신앙(信仰)을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V에 악쓰는 소리를 매일 들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명히 TV를 닮아 갈 것이다.
본을 본다는 고사(故事)에
순자(荀子)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말로서
蓬生麻中不扶而直(봉생마중불부이직)이 있다.
쑥은 보통 제 멋대로 곧게 자라지 않지만
똑바로 자라는 삼(대마(大麻)과 함께 있으면
붙잡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삼을 닮아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지란지우(芝蘭之友) 옛글이 있다.
與善人居-좋은 사람과 함께 어울려 친구가 되어 살면
如入芝蘭之室-마치 난초(蘭草) 지초(芝草)꽃 향기 가득한 방 안에 있는것 같아서
久而不聞其香-오래 시간이 지나 서로의 안부를 들을 수 없어도
卽與之化矣라-곧 그 향기가 내 몸에 가득 배이게 된다.
TV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그기다가 모바일(mobil)이 가세를 하니 정신이 받는 악영향(惡影響)은 크다.
사람이 시청각(視聽覺)영향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인다.
왜 좋은 친구를 사귀라 하는가?
좋은 친구의 언행이 나에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왜 자식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해서는 안 되는가
왜 자식들 앞에서 말조심하고 욕설을 해서는 안 되는가
자식들 그 본을 받아 머릿속에 먼지처럼 가벼운 악(惡)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좋은 언행(言行)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만들 수 없다
오직 좋은 혈통과
후천적으로 좋은 본을 보기위한 노력뿐이다.
이것이 개인 행복의 갈림길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