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해서일까? 분명 같은 나무인데, 예전과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나무가 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아카시아(Aacia--)라고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다.
아카시아는 미모사아과 Acacia속에 있는 식물을 통칭한다. Acacia속 대부분 식물들은 호주 또는 아프리카 열대지역에 분포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열대성 식물이다. 어떤 사람이 북미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 처음 보는 나무(아까시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가 열대지역에 있는 아카시아를 닮았다고 하여 영명으로 False (가짜) Acacia, 가짜 아카시아라고 불렸다.
아까시나무 학명도 가짜라는 의미인 pseudo라는 말을 붙여 'Robinia pseudo-acacia'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나무 이름을 받아 가짜라는 오명을 억울하게 뒤집어 쓴 나무이기도 하다. 한국산림과학회’에서는 가시가 많은 나무라는 의미로‘아~까시!나무’라고 우리 이름을 오랜 전에 붙여주었다. 우리말 이름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나무'라는 말을 변형시켜 새로 만든 이름으로 '가시가 많다'는 특성을 살려서 지은 것이다. 가시나무, 휘파람가시나무라고도 부른다. 꽃말은 '우아함, 죽음도 넘어선 사랑, 모정'이다.
피천득 선생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던 5월이 되면, 신발 밑창에 닿는 흙의 느낌이 한결 푹신해지고 초록 이파리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탄성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달큼한 향기가 코끝으로 날아드는데 이팝나무, 라일락, 아카시아이다.
특히 아카시아에는 유독 연인들의 추억이 많다.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다. 가는 줄기를 톡 꺾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먼저 이파리를 한 개씩 떼어내고 마침내 줄기만 먼저 남은 사람이 이긴다. 또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린 아카시아꽃을 튀겨 먹기도 했다.
고향의 정경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박화목의 동요 〈과수원 길〉에 등장하는 그 꽃 -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의 동요 속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 꽃이다.
아마 40대 이상은 기억할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한목소리로 이 나무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웬일인지 그런 목소리는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심지어 꽃을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아까시 꽃을 5월의 꽃이라고 할 정도다. 아름다우면서도 향기가 일품인 까닭이다. 하나같이 있어서는 안 될 나무라고 한 게 얼마 전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름까지 바뀐 채 이 땅에 살게 된 이 나무의 과거는 험난 그 자체였다. 산림 녹화를 위해 어느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이 나무를 곳곳에 심었는데, 워낙 성장세가 좋다 보니 신성한 곳(묘지)을 거침없이 침범했던 것이다. 뿌리로도 번식할 정도로 힘이 좋다 보니 묘지 속으로 ‘마수’를 뻗치는 탓에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이런 왕성한 기운으로 주변 나무들, 특히 소나무들을 죽인다고 해서 한때는 베는 것으로도 모자라 뿌리까지 파헤칠 정도였다. 이 나무가 온 산을 뒤덮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비등했다.
당시 김준민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작고)가 이 나무는 300m 이상의 고도에서는 살 수 없고, 수명이 20∼30년이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기에 그럴 필요가 없으며, 무엇보다 콩과 식물이라 유익한 측면이 많다고 했지만 ‘성난 민심’에 묻혀 버렸다. 김 전 교수가 유익하다고 했던 건, 여느 콩과 식물이 그렇듯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용해 땅속에 질소를 고정시키기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흘러 2000년대가 되자 원성은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들었다. 김 전 교수 말이 옳았던 것이다. 눈앞의 피해는 확실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미래는 멀리 있는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 아까시 꽃은 아찔한 향기와 고급 꿀을 풍성하게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다. 큰 나무 한 그루에서 많게는 50L가 넘는 꿀이 나오다 보니 국내 꿀벌의 70%가량이 이 꽃에서 꿀을 얻고 있을 정도다. 영어 이름이 ‘벌나무(Bee tree)’인 게 이래서다. 하지만 수명이 비교적 짧은 데다 최근에는 이상기후까지 덮쳐, 5월이면 어디서나 맡을 수 있었던 향긋한 꽃내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야 향기나 꿀을 잃을 정도지만 문제는 꿀벌들이다. 인류의 식생활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꽃의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있는 이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꽃인데 예전에는 많다고 난리였고 이제는 없어진다고 난리다. 식물계의 ‘미운 오리새끼’가 따로 없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2023년 05월 04일(목)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글과 사진: 이영일
첫댓글 무원 김명희 화가
그러고보니 요즘 보기가 힘들어졌네요. 지금도 오월이면 지천에 보여 친숙했던, 아까시('아까시아'로 불렀던가~)꽃향기가 코끝에 맴도는 듯 하네요.
~초록 이파리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탄성이 점점 커진다.~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