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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山歌(태산가) 양사언(楊士彦)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 태산이 비록 높다하니 이 또한 산이니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 - 오르고 올라 그치지 아니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으리오
世人不肯勞身力(세인불긍노신력) - 사람이 몸으로 노력하지 아니하고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 - 다만 산이 높아 오를 수 없다고 말하네
유명한 시조인 태산이 높다하되를 한시로 바꾼 것이다. 사람이 산이 높다 말하고 오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따끔하게 이른 것으로 노력여하에 따라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시이다.
처음에는 태산(太山) 인줄 알았는데 직접가보니 태산(泰山)이다. 누구인가하고 이것이 맞네 저것이 맞네 할때 웃음거리가 될뻔했다, 양사언이라는 분이 직접가보고서 이시조를 지었는지 아니면 누구 한테 들어서 상상만으로 이런시를 지었는지 알길이 없다.
중국에는 오악이 잇다.
1, 衡山 hong shan
2, 恒山 heng shan
3, 泰山 tai shan
4, 华山 hua shan
5, 嵩山 song shan
하지만 겨우 태산 1군데 찍었네. 하지만 황산는 갔다왔으니 위로를 삼아야지,,, 오악을 갔다오지 않앗으면 산에 갔다왓다고 하지 마셔!!!! 하지만 오악을 갓다 왔다 하더라도 황산을 갔다오지 않았으면 shut up 이라고 하니......
하지만 소문난 잔치 별볼일이 없다고 하더니 주위를 둘러보아도 태산만 덩그러니 하나있고 주위에는 별로 산다운 산도 보이지 않고
겨우 윗사진에서 보는것처럼 눈요기 로서는 저 바위 밖에 없는것 같다.
우리 나라 산에 가면 저정도의 바위들은 널려있는데....
태산 정상, 옥황정(玉皇顶)은 중국 사람들이 인증샷을 위해서 발디딜 틈도 없다.
또 중간중간에 포토샵을 갔다놓고서 일출 광경을 배경삼아 인물사진을 만들어 주느라 정신이 없다.
그양반들 장사 잘되되네.... 나도 컴퓨터 하나 가져다 놓고 저런 사업이나 하나 해볼까? 그러다가 중국애들한테 몰매를 맞겠지.. 자기네들 밥그릇 건드린다고....
다행히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삼아서 무슨 열매인지 모르겟으나 탐스럽게 열려 잇다..
생긴것은 찔레꽃 열매같은데...
정상부근에는 저런 사찰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사찰들이 건물구조가 매우 조잡하다 저금스럽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벽들은 세멘트 벽돌로 쌇아올리고 나서 겉만 다시 세멘트로 정리하고 페인트를 칠했다.
역시 한국 사찰이 정교하고 세밀하고 부드럽고 멋지고 운치있고 그렇다.
저기 있는 중국 사찰들은 실제적으로는 사진보다 훨씬 못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내가 걸어서 올라온 반대쪽 풍경.
하북성, 하남성 등, 계속해서 평지만 계속 되다가 여기 산동성 에서 산악지대가 형성되었으나 그리 큰 산악지대는 아니었다.
태산은 산동성 성도인 "제남" 에서 약 1시간 20분거리이고 청도에서는 약 4시간 거리이다.
태산에서 청도로 기차를 타고 갈려면 다시 "제남"을 통과 해서 "청도"로 가게 된다. 기차 창문을 통하여서 보니 태산에서 제남까지 가는길 약 30-40분정도만 산악지형이고 좀 괜찮아 보인 낮은 산들이 몇군데 보일뿐 별 특이 사항은 없었다.
내려 오면서 보니 제일 괜찮아 보이는 바위가 저정도이니 산 풍경은 별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또 괜찮아 보이는 곳, 바위마다 저렇게 중국 글자를 새겨 놓앗으니 우리기준으로 보면 대단한 환경 파괴가 아니고 무엇인가?
산이 1500미터 급인데 골짜기에는 물도 없엇으며 겨우 저런 아기 오줌 싸는것 같은 폭포같지 않은 폭포 뿐이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것인지 하고 계곡을 살펴 보앗으나 물이 흐른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 폭포를 배경삼아서 인증샷 한다고 또 소란스럽다,
우리하고 문화가 달라서인지 아니면 여행문화, 혹은 등산문화가 달라서인지 이해 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다.
정상에는 저런 기도하는곳이 또 자리를 잡고 있어서 향불을 사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사람들 때문에 매케한 연기가 이곳 저곳에서 피어 오르고..
또 사랑의 약속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의미의 약속인지 우리 모두 변치 말자고 저리들 많이 열쇠를 채워서 약속들을 했는데 그사람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비가오고 눈이오고 저것들이 녹이슬고 그러면 상당히 보기가 흉할텐데..
다 부질없는 짓이겟지....
정상을 다 둘러보고 이제는 하산을 해야 한다,
올라올때는 홍문, 중천문,남천문으로 올라왔는데 내려 갈때는 다른 길로 한번 내려 가보아겠다고 다른길로 들어섰다,
일단 감으로 방향을 잡고...
한참을 내려 갔는데 길이 내가 올라온 길쪽으로 방향이 되어야 하는데 방향이 반대쪽으로 도는것 같다.
사람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고...
확신이 서질 않아서 도저히 더 내려갈수가 없어서 다시 정상으로 원위치 했다, 할수없이 올라온 길로 갈수밖에 없다. 여기서 길을 잃어버리면 방법이 없다.
고창 선운산에 갔을때 길을 잃어버려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아쉽지만 어쩔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런 상가들이 드문드문 계속되어 있다,..
산이 아니고 완전히 유원지 느낌. 중국 사람들은 등산복 혹은 등산화도 없이 정상까지 올라 왔다, 대부분 케이블카로서 올라온 관광객들....
베짜는 소녀..
한참을 내려오니 가게 앞에서 베짜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크 제품물건을 파는 가계.
쉽게 말하면 호객하는 소녀다..
그런데 맞은편 쪽에 물한잔을 마시며 관찰을 해보니 중국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가계는 비교적 한산한편..
남천문에서 다시 하산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본 계단 풍경. 오후 3시정도 되엇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계단을 힘들게 올라오고 잇다.
아마도 정상 부근 빈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출을 보기 위함인것 같다.
하산하면서 어떤 부부가 카메라를 이리대고 저리대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을려고 노력을 하는것 같다,그래서 무엇을 찍으려고 그러나 하고 보니 산등성이에 소나무가 가지를 쭉 뻗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도 덤으로 원샷!
거의 다 내려오니 화려한 중국 꽃들이...
야생화는 아니고 사찰 앞마당 밭에 널려 잇길래 몇컷을 했다.
그런데 한국 꽃이나 똑같네,,, 다알리아, 진달래인지 철쭉인지,,등등... 그런데 저 철쭉인지 진달래인지는 계절을 잘못알고 잇는거 아니야?
지금 9월 말인데,,,, 태산은 위도가 우리 한국하고 비슷해서 기후가 한국하고 똑같다고 보면 된다...
정상에 있는 사찰들의 내부, 불교는 아닌것 같고 태산이 도교의 본산지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저 앞에 향불 피우는곳에 하나에 10위안 주고 사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1팀도(대충 10인) 안되는 분들이 오셔서 어떤분이 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니 사진 찍는다고 "사진 촬영금지" 팻말을 들고 "看不懂(글자 못읽으세요?) 한다. 그분이 다른분한테 "재들 뭐라그래?" 하면서 궁시렁궁시렁 하신다..
하지만 나는 먼곳에서 카메라 망원으로 당기니 그친구들이 사진 찍는줄을 모른다.
도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깐....
황제(黃帝)•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다신적 종교. 도교는 신선사상의 기반 위에 노장(老莊)사상•유교•불교, 그리고 역리(易理)•음양(陰陽) 등 무술(巫術) 신앙을 수용하여 만들어진 종교로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목적으로 하여 의학•약학•화학•연금술(鍊金術)을 익히고 방술(方術)을 닦음으로써 선인(仙人)이 되고자 하며 현세의 길복을 추구함.
이 가운데 신선술과 연결된 불로장생을 위한 여러 가지 건강 관리법이 생겨났음.
하지만 민간에서는 농민 폭동과도 관련을 가지기도 하였음. 신흥종교였던 불교의 영향을 받아 그 체제와 조직을 모방하고 교리를 체계화하고 체제를 정비하여 하나의 종교로서 성립되었음.
그 지긋지긋한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어떤 도사 같으신 분이 올라가다가 잠깐 휴식을 취하는것 같다.
가까운데서 대놓고 사진을 찍을려고 하면 좀 무안 스럽지만 망원으로 당기면 부담없고 좋다,
거의 다 내려왔다.
이제는 갈증도 나고 배도고프고 해서 길옆 휴게소에 들어갔다.
맥주만 2병 시켜놓고 가지고 온 쇠고기 육포를 안주삼아 마시니 맥주맛이 그리 달수가 없다. 더군다나 가격이 5위엔(1병에 800원)하니 더 기분이 좋다.
육포는 신지에서 업체 직원하고 식사를 할때 내가 잘못주문을 했다. 그냥 쇠고기 가지고 조리를 한것인줄 알았는데 말린 쇠고기 육포다, 대체적으로 메뉴판을 보고 맛있는걸로 성공을 시키는데 그날은 실패했다... ....
그친구한테 그냥 다시 취소하자 그랬더니 표정이 난감한 표정이다. 그래? 그러면 내일 내가 태산에 갈거니까 그때 가지고 가야 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팅 하오" 한다.
사진상에 맥주병 옆에 보이는 것이 그 육포다. 맥주안주로서는 안성 맞춤이다.
그런데 이 휴게소에서 기르는 개 한마리가 내옆에 딱 붙어서 가지를 않고 쳐다만 본다. 내가 말하기를...
이친구야!!!! 나먹기도 부족해, 쳐다만 보지말고 저리가.... 해도 바닥에 접착제를 붙힌것처럼 꼼짝도 안한다.
정말 난감하네... 저리 빤히 나만 쳐다보고 잇는데 무시하고 나 혼자만 먹을수도 없고........
한국말을 잘못알아들어서 그러나? 하고 중국 말로 해도 똑 같다.
에라이!!!! 너도 먹고 살아야겠지... 맥주한모금,,, 육포하나... 너도 육포하나 드시게... 하고 던져주니 잘도 받아먹는다.
마침 내 앞에 말벗도 없는데 니가 나에게 술친구나 해줘라.... 대신 맥주는 달라고 하지 말고.....
닭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목아지로 여기저기 헤쳐서 먹이를 찾는라 정신이 없다.... 생긴것은 똑같은데 대체적으로 중국닭은 한국 닭에 비해서 작다.
닭발가지고 시원한 육수를 넣어서 국을 끊이면 참 맛잇다. 그런데 발톱이나 짜르고 요리를 하지 발톱까지 그대로 있어서 중국사람들은 이빨로 살만 발라먹고 뛔! 하면서 발톱은 입 밖으로 날려보낸다.
닭발 요리가 괜찮은 요리중의 하나다..
증국에 와서 처음 이 닭발을 접한 한국 아가씨들은 기겁을 한다, 또 닭목아지, 오리 목아지 도 따로 구워서 팔기도 한다.
생각외로 그목아지에 살들이 많이 붙어있다
질긴 생명력,
쓰러진 고목나무 썩은 살을 헤집고 나온 새 생명.
다 내려오니 양쪽으로는 고목나무 같은 향나무가.....
태산 기차역,,,,
인터넷으로 검색해본결과 태안역 혹은 태안시 였는데 기차역 이름은 "타이산 잔(태산역)" 으로 바뀐것 같다,
여기 태안시는 태산 때문에 관광수입으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지 길거리 풍경이 활기차고 역동적인 면이 보인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 꿈틀한다,
"달라"를 중국 "인민폐"로 환전하기 위해서 중국은행을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분위기가 괜찮아 보인다,
환전을 하고자 한다면 中国人民银行에만 가야 한다, 다른 은행에서는 취급을 하지 않는다. 여권은 필수.
태산때문에 많은 관광소득을 올리는것 같다,
태산 기차역에서 바라본 태산, 사진상에 보이는 송신 안테나 잇는곳이 태산 정상, 옥황정이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태산에 왔지만 나에게는 실망만 안겨준 태산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
처음부터 끝까지 호객꾼
처음부터 끝까지 상가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파괴
처음부터 끝까지 실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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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악중의 하나인 태산,
오악이 아니라 나에게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잇다면 강력 추천.
태산은 중국사람에게는 우리나라의 강화에 있는 "마니산" 과 같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기원전 600년-700년경은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이며
그후, 기원전 220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00년전,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이루고 나서 여기 태산에서 6국의 왕들을 초청하여 회맹이라는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는 전쟁을 하지말고 평화롭게 지내보자 라는 취지로...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진시황이 탄 마차는 혹여 태산이 다칠까봐서 마차 바퀴에 창포를 덧씨우고 태산에 올랏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시황의 정상등정에 동원되었을까?
아마 그때 저계단들이 없었던것 같다. 마차로 올랐다는 기록을 보면.....
그럼 진시황은 누구인가?
기록을 보면 그당시는 서로가 전쟁을 피하고자 각국에 서로 왕족을 안전보장의 수단으로 해서 볼모로 상대국에 머물럿다고 한다.
진나라의 왕족인 "이인" 도 "주" 나라에 볼모로 와있었는데 주나라에는 "여불위"라는 큰 상인이 있었는데 진나라 왕실의 피가 흐르는 이인을 이용해서 "여불위" 의 자기의 자본을 을 합친다면? 라고 "여불위" 가슴속에는 최고봉을 향한 꿈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시황제의 생모는 원래 여불위의 부인이었다. 그의 미모에 혹한 장양왕(이인)은-당시는 왕위에 오를 가망조차 보이지 않은 희미한 왕족으로 조나라에 볼모로 왔는 신세였다-. 이여인(조희)을 자기에게 넘겨겨달라고 여불위에게 간청을 해서 넘겨주었다.
그래서 시황제는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장양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장양왕한테 가고 나서 12개월만에 시황제가 태어났으니 장양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잇다,
진시황은 천하 통일을 이루고 나서 중앙집권적 정치 형태로 강력한 지도력으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었다.
만리장성, 분서 갱유, 아방궁, 병마총 등등.
동남,동녀 6000명씩 배에 태워서 삼신산에 불로초를 캐어서 불로장생을 하고자 하였지만 남방을 유람하다 지금의 河北省, 沙丘에서 객사를 하고만다,
지나온 파란을 생각하면 너무나 고요한 종막이었다, 왕위에 오른지 37년, 천하를 통일한지 12년 되는해였다.
항우(초나라) 와 협력하여 진나라를 멸한것은 유방(한나라) 이었다. 유방은 이어 항우를 타도하고 한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나서 약 400 년이 지난후, 서기 230년경, 세상은 다시 우리가 많이 말고 있는 삼국지 의 조조, 유비,장비, 관우, 제갈공명, 손권등이 활약하는 삼국시대가 된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교창시자인 노자는 연대 미상이지만 공자 이전의 학자이며 ,
유교 창시자인 공자는 기원전 6-5세기경 사람이고, 불교 창시자인 석가는 기원전 6세기 사람이며, 기독교의 예수는 0세기(AC, BC) 사람이다.
아득히 먼시절의 사람들이다.
현재 우리보다 2000년에서 3000년전 사람들이다.
이런!!!!!
지금 현재 우리 세대 이후 2000년 혹은 3000년후면 세상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리보면 길어야 100세,
사는것도 한 순간, 찰나이로구만,,,,
태산을 걸어서 오르고 내려올려면 체력도(특히, 무릎) 좀 좋아야 겟지만 첫째는 인내심이 필수다.
소요시간은 약 7시간에서 9시간 정도이면 될것 같고 겨울철은 피해야 할듯...
온통 계단이 돌계단이라서 미끄럽기도 하고 경사가 심해서 넘어진다면 큰 부상이 염려 된다. 만약 겨울철에 가야만 된다면 케이블카를 추천하고 싶다.
케이블카를 타면 거의 정상인 남천문까지 가니 거기서 약 20분 혹은 30분정도면 태산 옥황정에 도착할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양은 언제나 똑같이 지평선넘어로 몸을 숨기고 잇다.
이제는 호텔에 돌아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떨어진 자처럼 낮은벼개 높이 베고 아무것도 모르고 내일을 위하여 자고 싶다.
호텔 체크아웃할때까지 이리뒹글 저리뒹글 아침도 건너뛰고 침대커버를 뒤집어 쓰고 황홀한 게으름을 즐기고 싶다,
내일 오후 13시 30분 기차로 청도로 고고 씽해야 되잖아.......
헬로우!!!! 미스터 써니!!!!.
밍티엔 지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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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하고 아름다운 풍광에...자상하신 안내 잘 보고갑니다...
수고 하셧습니다....감사합니다.....^^
예,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십시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기 조심하시구요...
예, 댓글 감사드리며.... 날씨가 많이 추워집니다. 님도 건강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태산 노산 다녀온 1인으로써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ㅎ 즐감입니다 ... 끝없는 계단을 오르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전 아주 행복했던 생각만 ~~
아!!!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저도 청도에 와서 노산을 한번 둘러볼까 하다가 청도 바닷가만 대여섯시간 걸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