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2004년 5월
오늘은 일요일 오랜만에 맞는 한가한 휴일이다.
근래 공사 현장이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생기는 인원 및 장비 지원문제, 자재지원 문제, 기술지원문제 등 이런저런 잡다한 문제로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몇 달째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못처럼 지원을 요구하는 현장이 없어 기철은 참으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맞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신문을 보고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월요일 임원 회의에서 보고하여야 할 사항 중 미리 알아보아야 할 것이 생각나 일찌감치 처리하고 오후에는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이나 찾아보려는 생각에, 서재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막 서류를 꺼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 벨이 올린다.
그동안 바빠서 못만 본 친구들 중에 누구의 전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은 기철이
“여보세요!”
하고 반응하기 전에 상대편에서
“전무님! 박 전무님이십니까?”
하고 생소한 음성의 남자가 다급하게 묻는다.
“네! 그런데 누구십니까?”
모르는 사람의 성급한 말에 의아하게 생각한 기철이 묻는 물음에
“저는 00도로 건설공사 2공구에 근무하는 김부장입니다.” 한다.
00도로 건설공사 2공구는 00도로 건설공사 이후 발주된 후속 공사로 대영건설이 연고권을 주장하여 수주한 공사이다.
그래서 기철은 00도로 건설공사 2공구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여 보고하려는 것으로 알고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더라.’라고 생각하며
“그런데요?”
떨떠름하게 하게 대답하고 보고를 기다린다.
“전무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시공한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후속 공구가 발주되면서 대영에서 2002년도에 준공한 00도로 건설공사는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로 불려지고 있었다.
처음에 기철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아니 김 부장이 보고를 잘못하는 것으로 들었다.
김 부장이 자기 현장 즉 00도로 건설현장 2공구에서 난 사고를 00도로 건설 현장 1공구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어디서 사고가 났다고요?”
하고 정신 좀 차리라는 뉘앙스가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00도로 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글쎄 그게 무슨 말이오?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나다니?” 하고 다시 물었다.
“네!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빨리 와 주셔야겠습니다.”
“아니 준공한 도로에서 무슨 사고가 난단 말이오?”
기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전무님 그런 것이 아니라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중 장대 터널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무어요?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장대 터널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네!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요? 이해가 안 되는군.”
기철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다. 이해하기보다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장대 터널에서 붕괴 사고가 나다니 준공한 지 만 2년이 가까워지는 도로 그것도 터널에서 무슨 사고가 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서
“전무님!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기철은 아직도 김 부장이 보고를 잘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으나 김부장의 보고하는 태도로 정말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어떻든 무슨 큰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원인은 아직 모르나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광주 장대 터널에서 붕괴 사고가 나면서 마침 일요일이라 나들이 나가려고 밀려있는 차량 위로 붕괴된 토사가 떨어져 차량 5대가 묻히고 7대 정도가 파손되어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전무님이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났단 말이요?”
김부장이 사고 내용까지 거론하며 보고하자 비로소 실감한다.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알았소! 내 곧 가리다.”
전화를 끊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기철의 손이 말할 수 없이 떨려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보고가 잘못된 것으로 알았다가 김부장의 계속되는 자세한 보고로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인지되면서다.
현장에 사고가 났다면 현장을 총괄하는 전무로서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현장 소장을 지낸 기철이 도의적 법률적 책임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들은 일요일에 집에 붙어있을 까닭이 없고 오늘따라 집사람도 기철이 집에 있는 날이니 못처럼 친구들 모임에 간다고 나가 기철을 도와줄 사람이 집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아니 어떻게?”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떨리는 몸을 간신히 수습하여 외출복을 갈아입고 허둥허둥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공사 부실에 따른 사고가 아니고 다른 원인에 의해서 생긴 사고이길 바라지만 터널이 붕괴되었다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가물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간신히 그리고 천천히 운전하여 평소 같으면 40여 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한 시간이 넘어 현장 근처 3Km 정도에 접근하자 밀린 차가 생기고 현장이 가까워지며 점점 많아지면서 사고에 대한 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기철의 마음은 밀리는 차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산란해 진다.
밀리는 차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김부장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말하고 오토바이를 보내 달라고 했다.
기철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김부장이 직접 오토바이를 가지고 나왔다.
차를 한쪽 옆으로 비켜 세우고 김부장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사고 경위를 대강 들었다.
김부장이 들려주는 사고 경우는 다음과 같다.
오늘 오전 11시경 나들이 나가는 차들이 붐비는 시간이라 터널 내에도 많은 차량이 밀려서 서행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외로 나가는 하행선 터널의 천정이 갈라져 물과 흙더미가 쏟아져 내려 그 근처에 있는 차들이 위험을 느끼고 피하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차들은 더 엉키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다시 2차로 천정이 완전히 무너지며 붕괴되는 토사가 차를 덮치고 뒤엉킨 차들이 서로 충돌해 여러 대의 차량이 묻히고 파손됐다는 것이다.
오토바이로 겨우 현장에 도착하니 현장 상황을 말이 아니다.
현장에는 벌써 사장이 그리고 영식이 나와 있고 대영의 직원들도 상당수 있었으나 모든 사건 수습은 이미 도착한 119구조대에서 하고 직원들은 잔심부름 정도만 하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은 그동안 일이 바빠 하루도 쉬지 못한 기철을 집에서 쉬게 하고 오후에 영식과 같이 현장 점검 차 00도로 건설공사 2공구 현장에 나와 있다가 사고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곧 달려갔단다.
기철은 얼굴이 하얗게 된 사장을 보고 인사도 제대로 못 했고 사장도 질려버린 기철을 보고 별말을 하지 못했다.
경찰에서도 나와서 사건조사를 하고 방송사 신문사 등에서 나온 보도진들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에도 사건 뉴스를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철은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아 서 있을 수가 없어 맨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기철이 현장 소장으로 책임을 지고 한 공사에서 사고가 났으니, 이것은 자기의 잘못으로 생긴 사고이고 그 사고로 사람이 죽고 다쳤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자책과 그로 인한 형사책임을 면치 못하리라는 걱정으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째서 준공을 하고 2년이나 되는 공사에서 사고가 났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런 기철을 본 사장이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기왕에 벌어진 일인데 걱정한다고 무슨 수가 생기겠습니까. 사건 수습이나 잘해야지.” 한다.
그러나 기철에게는 그 말이 오히려 현장관리를 어떻게 해서 준공시키고 2년이나 되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나느냐고 질책하는 것보다 더 쓰리고 아팠다.
기철이 현장에 도착하고도 열 시간 넘게 사고 처리를 해서 흙더미에 묻친 차량을 끌어내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터널에서 모두 꺼내어 병원으로 보내고 현장은 가까스로 수습이 되었다.
그러나 흙더미를 모두 치우고 터널이 재개통되려면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사건 수습이 늦어진 것은 터널 내에서 추가 붕괴가 일어날 염려로 사고 수습반의 투입을 지연시킨 결과였고 다행히도 추가 붕괴는 없어서 아쉬운 대로 사건을 수습했다.
사건 수습 후 확인한 결과 낙반하는 흙더미에 묻히고 돌에 부딪히고 당황한 차량이 서로 충돌하여 사망자가 7명 부상자가 21명 부서진 차량이 13대이다.
주말에 나들이 나가던 사람들이 많아 사고 피해가 컸다.
00도로 건설공사 2공구에 사고 대책반을 설치하여 한편으로는 사고 피해자들과 보상 협상을 하고 한편으로는 사고 원인을 밝히고 터널을 복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고 당일 기철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찰에 체포되어 구류되었다.
피해보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장례금을 포함해서 1억 5천만 원씩 다친 사람은 다친 정도에 따라 병원비는 별도로 하고 최고 1억 원에서 차등 지급하고 사고로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에게는 병원에 있는 동안 일당을 계산하여 지급하는 것으로 하였고 파손된 차량 중 수리가 가능한 것은 수리하고 폐차가 된 것은 차의 상태에 따라 거기에 맞는 중고차를 사 주거나 찻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했다.
당시로선 보상비가 다소 많은 것 같으나 사고를 낸 회사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물의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자는 것이 대영의 생각이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사고의 원인은 지보공을 잘 못 사용하여 터널에 가해지는 하중을 견디지 못해 지보공이 파손되면서 터널이 무너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