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레시피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소금 5그램. 물 200밀리리터. 오븐온도 180도.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계산된 수치들이다.
그런데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할머니의 된장찌개에는 숫자가 없었다.
"소금 한 움큼 넣고, 고춧가루는 두 줌쯤 넣어라."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상한 일이다. 정확한 숫자는 없었는데 맛은 늘 비슷했다. 저울도 없고 계량컵도 없었지만 음식은
만들어졌고, 옷은 지어졌다.
비결은 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과 발, 팔과 손가락을 기준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측정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말이 되었다.
'한 움큼', '실오리', '한 뼘', '한 길'.
지금은 낡고 투박하게 들리는 이 말들이 한때는 세상을 재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움큼 — 손이 곧 저울이던 시절
'움큼'은 손으로 한 번 움켜쥔 양을 뜻한다. 말의 뿌리는 '움켜쥐다'에 있다.
손을 오므려 무엇인가를 꽉 잡는 동작. 그 동작 자체가 단위가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인간적인 측정 방식이다. 오늘날 100그램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이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뉴욕에서도 같다.
그러나 한 움큼은 다르다. 어른의 움큼과 아이의 움큼은 다르고, 남자의 움큼과 여자의 움큼도 다르다.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부정확함 속에 삶이 있었다.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소금 한 움큼은 단순한 양이 아니다.
그 집 손맛의 기록이다.
수십 년 동안 음식을 만들어온 손의 기억이다. 숫자는 똑같은 결과를 만들지만, 움큼은 그 사람만의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움큼은 단순한 단위가 아니라 생활의 흔적이었다.
실오리와 짚오리 — 한 가닥을 세는 언어
오늘날 '오리'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매우 흔한 말이었다.
오리는 가늘고 긴 한 가닥을 세는 단위였다. 실 한 가닥은 실오리. 짚 한 가닥은 짚오리.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흔적은 남아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라는 표현 속의 실오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실오리에 작은 것을 뜻하는 접미사가 붙어 생긴 말이다.
오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길이 단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를 짜는 사람에게 실 한 오리는 중요한 작업 단위였다.
짚신을 삼는 사람에게 짚 한 오리는 노동의 시작이었다.
새끼줄을 꼬는 농부에게 짚오리는 단순한 짚이 아니었다.
시간이었고, 품이었고, 생활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실을 미터로 사고 전선을 센티미터로 잰다. 길이가 중요하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먼저 존재를 보았다. 몇 미터인가보다 몇 가닥인가가 중요했다.
오리는 길이의 단위가 아니라 관계의 단위였다. 손으로 만지고 다루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래서 베틀이 사라지고, 새끼줄을 꼬는 풍경이 사라지자, 오리라는 말도 함께 사라졌다.
말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필요로 하던 삶이 먼저 사라진 것이다.
한 뼘, 한 발, 한 길
옛사람들은 손만으로 세상을 재지 않았다. 온몸으로 세상을 쟀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벌린 길이는 한 뼘. 발 하나의 길이는 한 발. 양팔을 벌린 길이는 한 길.
몸 전체가 자였고, 몸 전체가 측량 도구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다.
사람마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었다.
내가 걸어야 할 거리. 내가 안아야 할 물건. 내가 지어야 할 집.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크기였다.
내 몸보다 큰지 작은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몸은 단순한 기준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척도였다.
몸으로 세상을 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사실 몸을 기준으로 세상을 측정한 것은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었다.
인류는 거의 예외 없이 그렇게 시작했다.
영어의 피트(feet)는 발에서 나왔다. 인치(inch)는 손가락 마디의 길이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집트에는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를 재는 큐빗(cubit)이 있었다.
중국에도 손 한뺨을 의미하는 척(尺)이 있었고, 여기서 유래한 척과 자를 우리와 일본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인간은 어디에서나 자기 몸을 기준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몸보다 가까운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어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몸의 단위들이 생활 언어 속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데 있다.
한 줌. 한 움큼. 한 뼘. 한 길. 지금도 우리는 무심코 이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몸의 기억이 언어 속에 오래 남아 있다는 뜻이다.
미터가 들어온 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정확한 측정이 필요해졌다.
미터법이 들어왔다. 그램과 킬로그램. 센티미터와 미터.
모두가 같은 기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거대한 진보였다.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고, 세계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여전히 한 움큼과 한 길만 사용했다면 현대 사회는 작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무언가를 남기고 무언가를 가져간다.
우리는 정확성을 얻었다. 대신 몸의 감각 일부를 잃었다.
할머니의 레시피를 그램으로 적어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을 적어놓을 수는 없다.
한 움큼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던 세월과 습관, 경험과 감각까지 숫자로 옮길 수는 없다.
살아남은 말들
그럼에도 모든 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 줌은 살아남았다. 한 뼘도 살아남았다. 한 움큼도 아직 살아 있다.
왜일까. 이 말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금 20그램 넣어라." 라고 말하는 것과 "소금 한 움큼 넣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앞의 문장은 정보를 전달한다. 뒤의 문장은 손의 움직임까지 떠올리게 한다.
감각을 품은 말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래서 움큼은 살아남았다. 사람은 여전히 손으로 세상을 만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몸이 기억하는 언어
우리는 '-아지'를 통해 생명을 향한 다정함을 보았다. 또 '부리'를 통해 세상을 몸으로 이해하는
눈을 보았다. 그리고 움큼과 오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세상을 재는 방식이었다.
조상들에게 세상은 숫자의 집합이 아니었다.
먼저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걷고, 팔로 재는 세계였다. 측량의 대상이기 전에 경험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레이저로 거리를 재고, 디지털 저울로 무게를 달고, 인공위성으로 위치를 확인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정확하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정확해서 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숫자는 정확하다. 하지만 숫자는 따뜻하지 않다.
100그램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이다. 그러나 한 움큼은 다르다.
그 안에는 손의 크기가 들어 있고, 살아온 세월이 들어 있고, 음식을 만들던 사람의 습관이 들어 있다.
그래서 한 움큼은 단순한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몸이 남긴 기억이다.
우리가 "소금 한 움큼 넣어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래전 누군가의 손이 잠시 되살아난다.
말은 그렇게 몸의 기억을 보존한다. 그래서 언어는 또 하나의 화석이다.
첫댓글 <오늘의 연주곡> Summer Rain / Ralf Bach
Ralf Bach(랄프 바흐)는 독일 바바리아 출생으로 원래 기타리스트였다.키보드를 연주하게 되면서, 작곡은 물론 피아노,
오르간, 플루트, 트럼펫, 아코디언, 타악기 등 수많은 악기를 다룬다.
Summer Rain은 여름비의 추억이라는 명상음악으로 유명하다. 자연과의 조화, 평온함,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중시하는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으로 분류된다. https://youtu.be/KSMI9Ned4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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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상식을 알아가네요
비욘뒤 날씨가 선선하네요 ㅎ
감사합니다. 지존이님.
좋은 하루 되세요...
새로운 말로 요리 중에 한 웅큼이 아니고 한 꼬집을 쓰기 시작하더니
이젠 꼬집으로 하더군요 과거엔 아이들 신발을 사러 갈 때 십 리 길을
어른만 가야하니 아해들 발을 어른 손으로 잽니다 조금 크게 잡지요
오래 신으라고 물려 주라고
빨래 줄을 살 때도 손가락으로 잽니다 한뼘 두뼘
장농 들여 놓을 자리도 노인들은 흔한 줄자 집어 치우고
늘 하던대로 손바닥으로 칫수를 잽니다
시골 길 가다 길을 물으면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지요?
"아 저 건너 마실이요 라던가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시요
ㅎㅎ 몇 미터란 말을 몰라서 그 조금이 얼마나 멀고 먼지
저도 어느 새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ㅎㅎ
좋은 예를 많이 들어주셨네요...
ㅇ네비게이션이 생겨서 그렇지
예전에는 그런일이 일상이었지요...
감사합니다.운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