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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썰의 전당> [51회] 미술품 잔혹사 2부 – 도난 스캔들
❁ KBS1 <예썰의 전당> [51회] 미술품 잔혹사 2부 – 도난 스캔들. 2023년 5월 6일. 방송 다시보기
https://tv.kakao.com/v/rvt5rbrqvkqa6cti3l1vfqarm
✵ 예썰의 전당 쉰한 번째 이야기는 미술품 잔혹사 2부, 도난 스캔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자화상’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 1503~1506년, 나무판에 유채, 루브르 미술관, 파리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절규(The Scream)', 1893년, 판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크레용, 91×73.5cm, 뭉크미술관, 노르웨이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자화상(self-portrait)’, 1659년, 유화, 66×84.5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미국 워싱턴 DC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자화상’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세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명화이자, 여러 차례 도난을 당했던 작품이라는 것! 미술 범죄 중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건은 바로 도난 사건이라는데. 수백,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이제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술품 도난 범죄! 그렇다면 도난당한 작품들의 행방은 어떻게 됐으며 훔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게스트 미술 전문 변호사 박주희와 함께, 미술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도난 스캔들에 얽힌 썰을 풀어보자!
✵ 예썰 하나, 도난당한 작품만 무려 13점? 사상 초유 도난 사건의 전말!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노년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Isabella Stewart Gardner)의 초상’, 1888년, 캔버스에 유화, 190×81.2cm
미국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1990년 3월, 미국 보스턴의 한 미술관. 그곳에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렘브란트, 페이메이르, 마네의 작품을 비롯해 무려 명화 13점이 사라져 버린 것! 도난으로 인한 피해 금액만 자그마치 오천억 원에 달한다는데. 현상금만 무려 130억 원이 걸린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 범인을 찾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았지만, 지금까지도 범인을 추적하는 이들이 많다고. 그런 가운데, 사상 초유의 미술 범죄 사건인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엔 유력한 용의자 후보 3인이 등장한다. 그들이 범인으로 의심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은 무엇일까. '예썰의 전당'에서 세기의 미술품 도난 스캔들,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본다.
1990년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13점의 미술품 가운데 한 점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갈릴리 바다 의 폭풍 속 그리스도(Christ in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1633년작품, 캔버스에 유채, 160×128cm - 보스턴 미술관은 2017년 5월 23일 도난당한 13점의 미술작품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주는 현상금을 1000만 달러(112억5000만원)로 2배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가드너 박물관은 30년 전인 지난 1990년에 5억 달러 상당 규모인 13점의 작품을 도난당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미술품 도난 사건 중 하나다. 가드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사라진 작품의 자리에 다른 미술품을 걸지 않고 빈 액자로 남겨두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금도 끈기 있게 도난당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있다.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은 잊힌 옛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용의자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수사가 벌어졌다.
1990년 3월18일 새벽 1시24분, 경찰관 두 명이 가드너 박물관의 후문 초인종을 눌렀다. 23세의 야간 경비 리처드 애버스는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경관들은 ‘소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다른 경비원도 불러달라고 했다. 이윽고 “당신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걸 아느냐”라며 애버스를 벽에 붙여 세웠다. 이로 인해 애버스는 책상 밑에 숨겨진 보스턴 경찰서와 연결된 응급 벨을 누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경관들은 다른 경비원이 도착하자 두 사람 모두에게 수갑을 채운 뒤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우리가 도둑이야.”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검은 옷을 입은 신사와 숙녀(A Lady and Gentleman in Black)', 1633년, 캔버스에 유채, 131.6×109cm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23살의 자화상(Self Portrait aged 23)’, 1629년, 캔버스에 유채- 이 작품은 가져가지 않음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젊은 예술가의 초상(Self Portrait titled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이라 제목이 붙어있던 자화상, 1933년경, 우표 정도 크기, 동판화
도둑들은 경비원들의 얼굴을 덕테이프로 가린 뒤 지하실에 가뒀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걸작품들이 모인 2층 ‘네덜란드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인 ‘갈릴리 바다의 폭풍(Christ in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1633)과 ‘검은 옷을 입은 신사와 숙녀(A Lady and Gentleman in Black)’(1633)를 도둑은 벽에서 떼어내고 액자의 작품을은칼로 도려냈다. 이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겹겹이 채색된 ‘레이어’ 이기 때문에 돌돌 말아 가져갈 수 없었다. 도둑들은 작품을 썰어내는 과정에서 꽤 공을 들였을 터였다. 그들은 반대편의 벽에 걸린 또 다른 렘브란트 유화 작품인 ‘23세의 자화상(Self Portrait aged 23)’(1629)도 벽에서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 작품을 가져가진 않았다. 대신 그 옆의 렘브란트 '자화상(Self Portrait)'(1934) 동판화에 손을 댔다. 이 동판화의 크기는 우표 정도다. 액자째 품에 넣어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기이하게도 도둑은 시간과 공을 들여 액자를 해체한 다음 동판화만 가져갔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 ‘콘서트(Concert)’, 1663~1666년, 캔버스에 유채, 72.5×64.7cm
호베르트 플링크(Govert Flinck, 1615-1660), ‘오벨리스크가 있는 풍경(Landscape with an Obelisk)', 1638년, 오크 패널에 유채, 14.5×71cm
중국제 술잔
네덜란드 방에서 사라진 또 다른 값비싼 작품은 2억5000만 달러로 평가되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의 ‘콘서트(Concert)’(1663~1666)다. 페르메이르는 전 세계적으로 소장된 작품의 수가 35개 내외로 추산될 정도의 과작(寡作)이다. 그러니만큼 ‘콘서트’는 가드너 박물관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작품 중 하나였다. 이 밖에도 같은 방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호페르트 플링크의 ‘오벨리스크가 있는 풍경(Landscape with an Obelisk)’(1638), 중국 고대 화병(기원전 1200~1100) 등이 사라졌다.
에드가르 드가(Edgar De Gas, 1834-1917), ‘울 목장을 나서며(Leaving the Paddock)’, 19세기, 종이에 수채화, 미완성 작품, 10.5×16cm
에드가르 드가(Edgar De Gas, 1834-1917), ‘말을 탄 기수 세 사람(Three Mounted Jockeys)', 1885-1888년, 갈색 종이에 수채화 미완성 스케치, 30.5×24cm
에드가르 드가(Edgar De Gas, 1834-1917), '예술을 위한 저녁 프로그램', 종이에 목탄
앙투안 드니 쇼데(Antoine Denis Chaudet, 1763-1810, 프랑스 조각가) , ‘청동 도금 나폴레옹 제국 최전방 척탄 수비대의 휘장 꼭대기 정식(頂飾) Finial: Eagle, Staff, Flag and Cravat; Insignia of Napoleon's Imperial Guard)’, 1963-1814년, 25.4cm
네덜란드 방에서 나온 도둑들은 복도를 건너 ‘쇼트 갤러리’ 방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화가인 에드가르 드가의 작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드가가 1857~1888년 종이에 그린 ‘울 목장을 나서며(Leaving the Paddock)’ ‘피렌체 근방 도로의 정경’ ‘세 명의 기수(Three Mounted Jockeys)’ 등 세 점과 ‘예술을 위한 저녁 프로그램’ 같은 목탄 스케치 두 점을 골랐다. 이어서 드가 작품 옆에 걸린 나폴레옹 깃발이 표시된 액자의 나사를 풀었다가 도중에 포기한다. 그들은 깃발 작품은 포기하고 다만 깃발 위에 달린 작가 미상의 독수리 모양 청동 장식을 떼어갔다. 사방에 있는 걸작들을 가져가기도 바쁜 시간에 눈에 띄지 않는 청동 장식 액세서리를 훔쳐간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이러한 박물관 내 도둑의 경로는 동작 감지기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도둑은 작품 근접 경보음이 찌를 듯이 울리고 있는데도 도망치지 않고 여유를 부렸다. 떠날 때는 감시카메라의 녹화 테이프와 경비의 책상에 있는 동작 탐지 인쇄물도 꼼꼼히 챙겨갔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토르토니 카페에서(Chez Tortoni)’, 1875년경, 캔버스에 유채, 26×34cm
야간 경비 규정상 경찰이든 그 누구든 해당 시간에 박물관으로 들어올 수 없는데도 도둑은 쉽게 침입했다. 무려 81분간 박물관에 머물렀으며 감시 녹화 테이프 위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FBI는 박물관 내부인의 협력을 의심했다. 무엇보다 기이한 일은 1층의 ‘블루룸’에서 일어났다. 이 방에서는 마네의 ‘토르토니 카페에서(Chez Tortoni)’(1875)가 사라졌다. 그런데 동작 감지기는 도둑이 이 방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기록했다. 블루룸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건 발생 23분 전, 도둑에게 문을 열어준 경비원 애버스였다. 따라서 수사 초기엔 경비원 애버스가 공범으로 강하게 의심되었다.
FBI는 사건 발생 직후 마피아의 소행임을 알아챘다. 훔친 명작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 도둑은 덜미가 잡히기 마련이다. FBI는 마피아가 훔친 작품을 협상 카드나 담보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마피아 조직이 관여한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보스턴에서는 1990년대 말까지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마피아 세력이 위세를 떨쳤다. 보스턴 마피아의 대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아일랜드계 마피아인 화이트 버거였다. 그는 훔친 미술작품을 아일랜드공화국 군(IRA)의 무기 구입 담보로 사용하기 위해 밀반출하려 시도했던 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훔친 작품을 담보로 마약을 들여오곤 했다. 특히 ‘미술품 도둑의 전설’로 불린 마일스 코너는 도난 작품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감옥에서 나오기 위한 협상 카드로 미술품을 활용했던 것이다. 보스턴 외곽에 사는 마일스 코너는 경찰 집안에서 자랐고 동양철학에 능통했으며 멘사 회원이었을 만큼 두뇌가 비상했다. 그는 록 가수로 활동하며 여러 미술관을 털어오다 1975년 어느 대낮에 보스턴 미술관(MFA)으로 들어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유유히 들고 나오는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이때 코너의 패거리는 추격하는 경비원들에게 자동소총을 발사하며 그들을 따돌렸다.
그 후 코너는 메인주에서 훔친 앤드루 와이어스(사실주의적 작품으로 20세기를 풍미한 유명한 미국 작가)의 작품들을 판매하려다 구매자로 가장한 FBI에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보스턴 미술관에서 훔친 렘브란트 작품을 돌려주겠다고 흥정하여 징역 13년을 28개월로 줄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가 훔친 렘브란트의 초기 걸작 ‘금장식 망토를 입은 어린 소녀’(1632)는 무사히 반환됐다.
이 사건 이후 마피아 세계에서 ‘명작 한 점’은 ‘감옥 탈출 카드’와 동의어로 통하게 되었다.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 당시, 코너는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었기 때문에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가 그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는 FBI에 협조하며 가드너 박물관 사건이 자신의 친구인 이탈리아 마피아 바비 도나티의 소행일 것이라는 힌트를 흘렸다. 도나티는 코너와 함께 메인주에서 와이어스 작품을 함께 훔친 동업자였다. 도나티는 자신의 두목인 비니 페라라를 감옥에서 꺼내려는 협상 용도로 가드너 미술품을 훔쳤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따라 FBI가 도나티를 감시하던 중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 1991년 9월, 도나티가 머리를 절단당한 참혹한 모습으로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것이다. 도나티가 숨긴 가드너 미술품은 영워스(코너의 물건을 관리하기도 했다)라는 사람이 빼돌렸을 것으로 의심되었다. 마침 영워스는 〈보스턴헤럴드〉 기자 톰 매시버그와 접촉하고 있었다. 보상금과 협상 카드를 확보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자신이 해당 미술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영워스는 1997년 8월18일, 매시버그 기자를 뉴욕 외곽의 허름한 창고로 데려간다. 매시버그는 어둠 속에서 플래시 라이트에 의지한 채 원통 박스에 담긴 렘브란트의 걸작 ‘갈릴리 호수의 폭풍’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은 이튿날 〈보스턴헤럴드〉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FBI와 가드너 박물관은 그것이 진품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다른 증거를 요구했다. 영워스는 해당 작품의 귀퉁이에서 물감을 긁어내 매시버그 기자에게 보낸다. 가드너 박물관과 FBI의 감정 결과 그 물감은 17세기 생산품이긴 하지만 ‘갈릴리 호수의 폭풍’에 사용된 재료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FBI는 최초의 용의자이자 살해된 도나티의 주변을 다시 뒤졌다. 도나티와 그의 친구인 바비 구아렌테(로제티 마피아의 조직원)가 가드너 박물관 도난을 기획한 것으로 수사망을 좁혔다. 그 밖에도 강력한 마피아 간부들이 사건과 촘촘히 얽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FBI는 거국적인 마피아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마피아 세계 내에서도 사업 영역이 축소되고 변절자가 속출하면서 피의 전쟁이 전개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의 용의자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살해되었다. 박물관 침입자로 마피아 조직원 조지 라이스펠더와 데이비드 터너가 지목되었으나 라이스펠더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가드너 미술품은 마피아의 세력 다툼 가운데 행방이 더욱 묘연해져갔다. 가드너 박물관은 2005년에 9·11 테러 사건 이후 최고의 보안 책임자로 명성을 얻은 앤서니 아모레를 미술품 회수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FBI 전담반과도 밀접한 협력 시스템을 꾸리고 있다.
도대체 도난당한 미술품은 어디 있는 것일까. 2013년 3월, FBI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가드너 미술품 도난 사건이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FBI는 미국 중부와 보스턴에 기지를 둔 범죄조직이 가드너 박물관 도난을 주도했으며 도둑의 신원도 확실하게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훔친 미술품은 여러 경로를 거쳐 코네티컷과 필라델피아 지역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FBI는 용의자의 이름 그리고 미술품이 어떤 경로로 필라델피아로 이동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수사는 지지부진해 보였다. 그러나 2016년에 결정적 제보가 나온다. 도나티와 함께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비 구아렌테(2004년 복역 중 사망)의 아내 엘렌이 FBI를 돕기 시작한 것이다. 엘렌은 남편이 생전에 가드너의 도난 작품 2점을 로버트 젠타일이라는 마피아에게 줬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젠타일은 보스턴 시내 도체스터에서 정비소를 위장한 마피아 아지트를 운영했던 자다. 당시엔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같은 해 5월2일, 미국의 다수 언론은 FBI가 젠타일 아내의 거주지인 코네티컷주 맨체스터의 한 주택을 급습하는 상황을 생중계했다. 100여 명에 달하는 FBI 요원과 경찰이 그의 집을 둘러싸고 도로를 막았으며, 금속탐지기와 개를 동원해서 거주지를 샅샅이 뒤졌다. FBI는 벽과 마루를 뜯어내고 땅까지 팠다. 수일간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헛간 비밀 바닥에서 불법 무기만 수거했을 뿐 가드너의 미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FBI 외에도 보스턴 지역 언론 기자들이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여러 가설도 나왔다. 2018년, 〈보스턴글로브〉의 스테판 커크지안 기자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가드너의 미술품이 묻혀 있다는 전 마피아 보스 루시시의 제보를 받아 발굴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미술품은 나오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 수사 관계자는 나에게 “그 땅은 용의자 소유의 땅이 아니었고 어떤 용의자도 5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작품을 1500마일이나 떨어진 다른 사람의 소유지에 묻어두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수사 관계자는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의 이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도 “가드너 박물관은 그 필름 제작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수사 핵심 관계자들도 인터뷰를 거부했다. 가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할리우드 필름일 뿐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출처: 시사IN 2021년 06월 04일,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편집자)]
앞으로의 수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사건 당일 박물관에 침입한 것으로 추정되었던 용의자 둘 중 생존자인 데이비드 터너는 2019년 11월에 21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풀려났다. 이 수감은 가드너 박물관 도난이 아니라 살인강도 등 다른 혐의 때문이었다. 터너는, FBI가 주요 용의자로 추적했던 바비 구아렌테가 자식처럼 아꼈던 조직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FBI가 터너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년 경-1576), ‘예우로우페의 납치(The Rape of Europa)’, 1562년, 캔버스에 유채, 178×205cm, 강도들이 안가져감
✵ 예썰 둘, 23년 만에 무사히 되찾은 그림! 그리고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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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매년 만 여건 이상 발생하는 미술품 도난 사건! 미술 전문 박주희 변호사 말에 의하면, 도난당한 그림의 60~70%는 영영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작품의 대부분이 지하 세계에서 은밀히 거래되거나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기 때문이라고. 그런 와중에 기적적으로 되돌아온 그림이 있다는데? 도난당한 지 무려 23년 만에 무사히 우리 품으로 돌아온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그런데 이 그림이 돌아오게 된 과정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는데. 그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 예썰 셋, 훔치려는 자 vs 되찾으려는 자의 치열한 도난 예술품 쟁탈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미술품 도난 스캔들! 미술품 도난의 역사는 바야흐로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만끽하는 전리품으로 치부해왔던 미술품 도난. 이는 약탈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히틀러에 의해 약탈 되었던 수많은 미술품이 그러하며, 지금도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 반환 문제가 그러하다. 이는 결국 국가 간의 대립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데. 첨예하게 맞서는 각국의 입장과 여전히 계속되는 미술품 반환 논쟁! 과연 그 해답은 무엇일까?
https://tv.kakao.com/v/rvr11wfu13dcqn7kulseffei8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머리에 꽃을 꽂고 팔꿈치를 구부리고 있는 마들렌(Madeleine Leaning on her Elbow with Flowers in her Hair)', 유화작품, 휴스턴 가정집에서 2011년 9월 8일 무장 강도 사건으로 강탈당했다. FBI 새 리스트로 새로 등업 되었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3-1610), ‘아기예수 탄생(Nativity)’, 2000년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작품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51회] 미술품 잔혹사 2부 – 도난 스캔들,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