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찾아 삼만 리
kch_35@hanmail.net강철수
독자보다 작가가 많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글 쓰는 이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백화점, 도서관, 대학 평생교육원 같은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청이나 주민센터, 종합복지관 같은 공공시설에도 글쓰기 강좌가 있다지 않는가.
시(詩)를 배우는 곳도 있지만,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라고 알려진 수필(隨筆)을 배우는 곳이 대부분이다. 자기 삶을 얘기하는 수필은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숫제 ‘자서전 쓰기’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학생들을 불러들인다. 문학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자서전이라는 말에는 귀를 쭝긋거리지 않을까. 나이가 지긋해지면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누구에게든 얘기하고픈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호되게 시집살이한 할머니들이 가슴을 치며 ‘내 속에 소설책 몇 권 들어있다.’라고 말문을 열곤 한다. 요즈음은 핵가족 시대라 그런 일은 없겠지만 가파른 세상살이에 크든 작든 어찌 가슴속에 응어리진 게 없겠는가. 수필은 그 응어리를 풀어내는 특효약일지도 모른다.
방방곡곡 글공부하는 사람들로 들썩인다. 나이 든 분들뿐만 아니라 삼사십 대의 푸른 이들도 끼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판 문예부흥의 태동일까. 문자 해독력 98퍼센트가 넘는 세계 으뜸의 나라. 이제 글쓰기를 통해 문장 해독력까지 세계 제일이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머리띠 두르고 열공(熱工)하는 수강생들의 최종 목표는 작가로 데뷔하는 데 있을 것이다. ‘등단’이라는 작가 면허증(?)을 발급하는 잡지사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도 여럿 생겨나 삼십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탄생하는 작가가 줄잡아도 일 년에 칠팔십여 명이 넘는다지 않는가. 작가 풍년 시대, 독자보다 작가가 많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2004년에 등단해 수필집 한 권을 내고는 팔 년여 동안 통 글을 쓰지 못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콕’ 처지가 되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개구리가 멀리 뛴다고 했던가. 오랫동안 쉰 게 약이 되었던지 코로나19 삼 년 동안 무려 스물 몇 편을 써낼 수 있었다. 어쩌면 내년에 책으로도 묶을 수 있겠다 싶어 작품 하나, 하나를 다시 톺아보는 과정에서 그만 주춤해지고 말았다. 작품 대부분이 옛날얘기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 때는∼’이나 ‘옛날에는∼’같은 서두를 꺼내기만 해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는 요즘에 ‘보릿고개’, ‘공돌이, 공순이’ 같은 농경시대나 산업화 시절 얘기에 누가 고개를 끄덕일까 싶었다.
더구나 작가가 봇물 쏟아지듯 나오다 보니 수필집도 그와 같이 많이 나옴은 당연지사, 어느 문우님은 사흘이 멀다고 들어오는 책을 ‘읽어야지’ 하며 탑처럼 쌓아 두었다가 종내에는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뒤로 밀쳐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읽히지 못하는 불임의 수필집들, 설령 읽는다 해도 고작 한두 편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이름난 작가의 수필집은 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의 것은 달갑잖은 ‘찬밥’일지도 모른다.
수필집 발간은 서둘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대신 내 글을 읽어 줄 분들을 찾아가는 ‘독자 찾아 삼만 리!’를 선포했다. 내 글에 공감할 수 있는 분이 있는 곳이면 천 리, 만 리라도 달려가겠다는 출사표(出師表)였다. 우선 내 연령대와 비슷한 이들이 많다 싶은 카페와 단톡방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물론 잡지에 실렸던 글들이다. 카페는 여섯 곳이고 단톡방은 성당 친구들, 합평 동아리, 고향 진주 강씨 문회(門會) 등이다. 그 외 M 산악회 회원들을 비롯한 팔십여 명의 카톡 친구들도 있다.
문회 단톡방은 주로 문중 행사를 비롯한 공지 사항을 알리고 회원들의 동정이나 미담들을 올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회장님이 울산 시장님에게서 받은 표창패 사진이 올라와, 축하 댓글이 방울토마토처럼 조롱조롱 달리면서 단톡방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여기에 작품을 올리는 게 생뚱맞은 짓일지도 모른다 싶어, 먼저 문회 회원님들의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2023,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문회 회원님들, 올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축원합니다. 새해 들어 제 나이 여든아홉으로 내년이면 구순입니다. 남은 삶이 많지 않다 싶어 그동안 저를 성원 격려해 주신 문회 회원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아울러 제 삶의 소회를 적은 글 몇 편을 여러 회원님과 공유코자 합니다. 외람되다 싶어 망설였지만 ‘고위 공직자나 법조인이 문회의 자랑일 수 있다면 글 쓰는 작가도 그에 못지않은 자랑일 수 있다’라는 어느 회원님의 부추김에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어쭙잖은 글이지만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하는 회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헤아려 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카페 여섯 곳 중 한 곳은 등업을 신청해야 했다. 글을 올리려면 준회원이 아닌 정회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잡지사와는 글도 싣고 발행인과 가까이 지낸 편이었는데, 팔 년여 만에 찾고 보니 발행인은 와병 중이고 카페지기를 비롯한 대부분이 낯선 얼굴들이었다. 가입자 이천오백여 명으로 내게는 놓칠 수 없는 황금어장과 같은 곳이라 정성 들여 신청서를 작성했다.
등업 부탁드립니다.
귀 잡지사와는 일찍부터 인연이 닿아 안동, 대전 유성온천 같은 귀사의 지방 행사에도 참여했고 인사동 ‘지리산’ 밤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곤 했습니다. 한때 ‘문제 작가특집’의 과분한 예우를 받기도 하고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수필집 한 권을 내고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통 글을 못 쓰다가 최근에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자보다 작가가 많다는 요즘에 누가 제 글을 읽어 줄까 걱정입니다. 독자 찾아 삼만 리, 먼 길을 달려와 식구 많은 이 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고향 문중에서는 즉시 허락이 떨어져 작품 한 편을 올렸더니 ‘형님은 우리 강씨 문중의 자랑입니다’를 비롯한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하지만 등업을 신청한 그 카페에서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쩐 일일까, 조바심을 달래고 있노라니 보름쯤이 지나서야 ‘선생님은 이미 정회원으로 되어 있습니다.’라는 답신이 왔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그곳에 글을 올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카페에 글을 올리면 가입자는 핸드폰으로도 그걸 볼 수 있고 글을 올린 작가도 핸드폰으로 그걸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조회 수’까지도 체크할 수 있다. 단톡방이나 카톡 친구들에게 보낸 글도 ‘읽었음’을 알려주는 표시가 뜬다. 나는 새벽마다 조회 숫자와 읽었음의 숫자를 헤아리는 뿌듯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독자 찾아 삼만리는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문예바다》 2023년 봄호 게재)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강철수선생님은 이곳 카페에서도 자랑입니다.
선생님의 건필을 빕니다.
이장중, 김윤권 선생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철수 선생님 응원합니다. 멋집니다 👍
산 나그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진짜 내년에 구순이세요?
예, 35년 생입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면면 축하합니다.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건강하세요.
감사드립니다.
미리벌, 노순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강철수회장님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에세이문학회장하실 때 많은 교류가
있었지요.
그리고 2010년 에세이스트
안동세미나에 함께 하신것 기억합니다.
23년
저희 신년하례식과 창간행사도
함께 해주심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카페를 훈훈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배영숙 회장님,
고맙습니다.
안동 갔을때 회장님의 배려 잊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