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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나의 일본어 선생님, 료 part.2
“아무래도 민지가 료를 완전히 찍은 거 같던데… 벙개하는 날 민지가 료 자기가 데려다 준다고 난리쳤다며?”
현숙이다. 민지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던 여자 회원 몇몇이 현숙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지금 까페 모든 여성 회원의 관심사는 바로 료! 하얀 피부, 길다 싶을 정도의 갸름한 턱선,
속 쌍꺼풀의 큰 눈, 약간 뒤집어진 아랫 입술, 약간 마른 듯 하지만 언뜻 보이는 팔근육,
어색하지만 열심히 한국어를 하려는 모습, 모두에게 친절한 젠틀맨,
겨울눈도 다 녹여버릴 듯한 환한 미소, …
누가 그런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모두의 우상이 한 여자가 낚아채는 건 눈 뜨고 못 볼 일이지.
그런데 그 둘 은근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민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는 우수한 재원이다.
일본 지사로 발령받기 위해 일본어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며 인사하는 그녀를 보고
까페의 모든 남성 회원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긴 생머리, 갸름한 턱선, 쌍커풀은 없지만 큰 눈, 약간 구리빛이 도는 피부, 키는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슬림한 몸매에다가 항상 7센치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다녀서 키가 커 보인다.
막스마라, 타임 등에서 구입한 정장에, 루이비통, 샤넬 등의 명품 가방을 매치하거나
비비안 웨스트 우드 같은 펑키한 브랜드의 백을 들어주는 센스!
외모와는 달리 내숭떨지 않고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가지고 있어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이쁘다 싶다.
이 옆에 료라~ 미남 미녀 커플. 딱 좋구만! 거기다가 민지가 일본에 가니까 둘이 잘하면 결혼까지...?
“언니!”
“아~”
“전화하면서 뭔 딴 생각이셔?”
“아니… 료랑 민지 잘 어울린단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말야.”
“하긴… 둘 다 잘 생겼잖아.”
“그리고 민지가 료랑 사귀든 안 사귀든 뭔 상관이라고…”
“하긴… 그러네… 다들 삶이 무료한게지… 참 언니는 오늘 뭐해?”
“나? 별로… 더운데 어딜 나가니…”
“그려. 잘 쉬고…”
어렸을 때는 주말에 약속이 없다는 사실이 왠지 서럽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나는 주말에 만날 사람조차 없을까, 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등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끝내는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남자 친구 없는 상황, 결혼한 친구들이 많아진 상황,
주말엔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상황 등등...
그래서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혼자 까페에 가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놀기를 한다.
갈수록 그 놀이가 즐겁게 느껴진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친구 윤경은 독신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남자 접근 금지 아우라를 뿜어내는 비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그 사람의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뺏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론 나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OK지만.
아~ 오늘은 느긋하게 책이나 보면서 지내야겠다.
집에선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그걸 피해서 근처 까페라도 가야지.
세수를 하려고 일어서려니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발신자는… 료!
“여보세요?”
“료입니다.”
“아~”
아~라니, 젠장! 난 꼭 이럴 때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한다. 무슨 자존심도 아니고…
“오늘… 약속있습니까?”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없다고 하기엔 좀 자존심이…’
“아네고?”
“I will go to Seoul Metropolitan Museum of Art.”
“네?”
‘이런, 젠장!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는 뭔…’
“죄송합니다. 아… 그게… 오늘… 저는 미술관에 갈려고 합니다.”
‘아~ 땀나. 무슨 미술관~ 이미 피카소전은 봤다고!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아~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나요?”
“네?”
“다른… 사람과… 같이… 가나요?”
내가 료의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그가 천천히 말해주었다.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 천하의 민경주가 왜 이런 거에 긴장하고 난린게야?
정신차려~ 그냥 까페 일본인 회원일 뿐이라구! 료는 아카니시 진도 쿠로사와군도 아니라구!
“아니. 혼자.”
“나 가도 돼?”
‘왠 반말? 일본에서는 친해지면 반말로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난 너랑 안 친하다구?’
우리가 탄 택시는 경복궁을 지나가고 있었다.
20분 전, 시청역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실직고를 했다.
실은 피카소전은 이미 보았다고,
아까 너무 당황해서 거짓말 해버렸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자식 엄청 화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그래서 대신 내가 맛난 거 사줄 테니 마음 풀라고,
그리고 삼청동이라고 외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무척 이쁜 동네가 있으니
전시회 대신 거기 가서 놀자고 그랬다.
그랬더니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환히 웃더니 좋다고 했다.
진선 북까페가 보이자 아저씨에게 세워달라고 말했다.
“좀 덥습니다만… 에… 삼청동은 걸어다녀야 해.”
“아~”
삼청동.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
좁은 골목 골목 사이 옛날 집을 개조해서 만든 예쁜 카페가들,
독특한 디자인의 샵들,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레스토랑들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료도 처음 온 이 동네가 신기한지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고 이것 저것 묻기도 하고 꽤나 즐거워 보였다.
아~ 구두다. 삼청동 길 초입에 ‘The Shoe’라는 작은 구두 가게가 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그 가게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올해 여름 트렌드를 반영하듯 가게 쇼윈도에는 금색, 은색 또는 화려한 색상에 반짝이는 큐빅을 단 구두들로 가득했다.
‘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마놀로 블라닉’ 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나 또한 화려하게 꾸며진 구두 가게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린다.
마돈나가 ‘섹스보다 마놀로 블라닉 구두가 더 좋다.’라고 했던가?
그 의미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녀만큼이나 신발을 사랑한다.
‘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보그 잡지의 신발 보관소를 보여줬을 때, 나는 캐리만큼이나 탄성을 질렀다.
우연히 멋진 구두나 스니커즈를 보게 되면 마치 미칠 듯이 더운 여름, 얼음을 입 안 가득 넣었을 때 그 얼음이 주는 쾌감과 같은 짜릿함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하는 신음 소리를 내게 된다.
“구두 살꺼야?”
“아니. 나 구두 좋아하거든. 일본어를 배우는 것도 다 구두 때문이야.”
“구두?”
“응. 문화복장학원에 슈즈디자인과가 있어… 가고 싶어. 내 구두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 마놀로 블라닉이나 지미 추 같은…”
내가 아무런 말없이 구두를 쳐다보자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구두를 아무 말없이 봐주었다. 꼭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빈스 앤 빈스’에 앉아 아이스크림 와플을 기다리고 있다.
‘빈스 앤 빈스’는 삼청동 거리 중간 쯤에 위치한 까페이다.
계단을 약간 걸어 올라가 정문으로 들어가면 흡연가를 위한 야외 테이블이 4개 정도 놓여있고
통유리로 가게 안이 다 보이도록 되어 있다.
가게 입구에서는 커피 로스팅 기계가 떡하니 버티고 있고 가게 안에는 각종 커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장이 낮고 테이블도 작아서 불편하지만 나는 이렇게 작고 아담한 까페들을 사랑한다.
“좋아. 여기 정말 좋아.”
라며 창 밖을 보고 있는 료.
사실 그가 아카니시 진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볼 때마다 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진짜 아카니시 진과 함께 있다는 착각에 짐짓 못 본 척하고
일본어로 말도 안하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냥 료일뿐이고 내가 가입한 까페에 있는 일본 회원들 중 한 명일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편하고 다른 동생들한테 하듯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삼청동에 오는 동안, 삼청동 거리를 거니는 동안 긴장감 같은 건 내게 없었다.
물론 말이 잘 안 통하니 어색한 순간이 있기 했지만…
“맛있게 드세요.”
“우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와플이 왔다. 나는 포크를 입에 물고는 말했다.
“쪼아, 쪼아”
그랬더니 료가 ‘푸훗’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
“아네고 진짜 30살 맞아?”
“엉”
“나이에 안 맞게 귀엽잖아.”
“고마워. 먹자!”
귀엽단 말에 나는 금세 다른 쪽으로 화제를 옮겼다.
귀엽다니…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 이 맛이야!
와플과 휘핑크림, 아이스크림, 메이플 시럽을 함께 떠서 입 안에 넣는 순간 행복감이 내 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빈스 앤 빈스’는 커피가 유명한 곳이지만 커피를 못 마시는 나는 이 곳의 아이스크림 와플을 좋아라 하지.
“어! 맛있어.”
“그치, 그치?”
“와플스도 맛있지만 여기도 맛있는 걸.”
“일본 가면…에… 나도 그 곳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일본… 안 왔어요?”
“1번. 출장으로만”
그래, 이제 물어보자! 오늘 왜 약속있냐고 물었는지…
그게 아까부터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민지에 대해 물어볼라구? 아님… 아~ 모르겠다. 당최 날 왜 만나자고 한거야?
“음… 왜 만나자고 한거야?”
“응?”
“아~ 그러니까… 음… 왜 만나…자고 했어?”
그는 대답없이 포크를 내리고는 입 안에 있던 와플을 꿀꺽 삼켰다.
혹시… 첫 눈에 반했다고?
왜, 드라마에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 그럼 안돼~ 우린 말도 잘 안 통하고 나이 차이도…
“아네고가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주었음 좋겠어.”
“아~ 뭐?”
“음… 아네고가…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나는… 아네고의… 일본어 선생님이 되어주겠습니다.”
“아니, 나는…”
료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왜 하필 나를 선택했을까? 료, 이야기해주세요!
“일본에 있을 때 유학 온 한국 여학생이랑 나는 일본어를, 그 애는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주기로 했어.
아~ 그 애는 한국어 학원에서 하는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
한국어가 도통 늘지 않아서 한국 사람이랑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거든.
몇 번 만났는데 성격도 좋고… 그리고 그 애 꽤 예뻤거든.
매주 주말에 만나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좋았어.
근데 문제는…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때 그 아이도 같이 가게 되었어.
거기서… 둘 다 술도 마신데다가 같이 밤하늘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기분이 들떠서 말야
키스를 하게 된거야. 그리고 같이…
나는 그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고 서로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내가 그 애한테 딱 잘라서 우리는 그냥 친구다, 더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어색한 관계가 계속되면 서로 주말에 만나서 공부하는 것도 관두자고 했어.
그리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임에 친했던 친구가 전화가 왔어.
너 걔한테 무슨 짓을 했냐고.
내가 같이 여행가자고 해서는 강간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한테 울면서 말했단 거야.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를 믿어주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끝내는 학원도 관뒀어. 내 잘못도 있는 거니까. 더 이상 변명하는 것도 웃기고 말야.”
“아~”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섹스라~ 가능하긴 한가보다.’
“사귀지?”
“시간이 더 흘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여자 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돼서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한국에 와서 몇몇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자고 했지만 그런 일이 또 생길까봐 조심스러웠어. 또 그렇게 되면 미안하니까… 근데 아네고는 그러지 않을꺼란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않을 꺼라고? 뭐가? 같이 안 잘 꺼 같다고? 아니면 자기한테 반할 가능성이 없다고? 아니면 자기가 나한테 반할 가능성이 없다고?’
“아네고는 사람과의 관계가 분명할 것 같고 설사 좀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같이 있으면 즐겁거든. 공부는 즐거워야 하잖아. 내 한국어 실력이나 아네고 일본어 실력도 비슷하니…”
“응”
“그럼 주말마다 어디서 만날까?”
“잠깐… 난 한단… 말 안 했다고.”
“아… 죄송합니다.”
약간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는 료. 안돼!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란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그 여자애 말이 맞을 수도 있잖아. 그… 치?
“그래, 좋아.”
내 생각과는 다르게 ‘툭’하고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내 대답에 환히 웃으며 료가 말했다.
“정말? 아네고 감사합니다. 공부를… 같이 해보면… 정말 좋아요. 나도 전에 공부해서… 많이 늘었어요.”
이렇게 돼서 료는 나의 일본어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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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는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초보생 힘내라고 많은 답글 부탁드립니다!
모두 행복해집시다!
첫댓글 재밋어여~~담편두 기다릴꼐여~~작가님 홧팅~~^^
작가님이라니... 아기새님 말씀에 완전 감동했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 이런 재미가 있는 줄 몰랐네요..ㅋㅋㅋ 열심히 써주세요^^
넵! 못쓰는 글이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 재미있게 봐주세요!
재미있어요 흑발님 힘내세요 ^^*
승헌맘님! 힘낼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