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논평 2006년 3월 6일(월)
유동훈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의 단식농성은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FTA 저지를 위해 투쟁 중인
전 영화인들의 결의를 모은 것이다!
신임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영화인들의 피눈물 어린 결의와
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열화와 같은 국민여론에 귀 기울여
스크린쿼터 사수에 앞장서야 한다!
영화계의 어른이자 선배인 유동훈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이 지난 3월 3일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누가 고령의 유동훈 이사장(65세)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단식을 하도록 강요하는가? <삼포 가는 길>을 비롯하여 수준 높은 수많은 작품을 만들면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그가 후배ㆍ제자 양성, 작품 활동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단식 농성이라는 힘겨운 투쟁의 길에 서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다. 그는 영화 현장의 한 복판에서 영화산업의 수많은 부침과 질곡을 모두 보아왔다. 특히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침체기를 극복하고 다시 서서히 부활하는 한국영화를 바라보게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부활에서 스크린쿼터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 이사장이 현 상황에서 단식농성이라는 힘겨운 투쟁을 결심하게 된 것은 노정권이 스크린쿼터 축소의 명분으로 한미FTA 체결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하여 만약 현 정권이 짖어대듯이, 스크린쿼터 축소가 전체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영화인들은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듯 과연 스크린쿼터 축소를 통해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농산물이나 영화산업 일부는 악영향을 받더라도 국가 전체 이익은 확대될 수 있는가?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미FTA는 한칠레 FTA처럼 일부에 국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제조업은 물론이며, 방송, 광고, 의료, 교육, 심지어 법률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100% 개방해야 하는 초강수의 포괄적 협정이다. 의료, 보험, 금융, 교육, 법률, 방송, 시청각 등 대다수의 분야에서 미국에 현저히 뒤쳐져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반도체, 핸드폰, 섬유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영역이 적자와 피해를 입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뿐인가. 이렇게 100% 개방된 모든 산업과 경제 영역은 90%의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지 경제 양극화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교육양극화, 의료서비스 양극화, 보험양극화, 법률서비스 양극화, 물과 전기ㆍ가스ㆍ석유 소비 양극화 등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공공 서비스와 재화들을 비싼 값에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거나,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 전반에 있어 ‘쓰나미’, 혹은 ‘카트리나’와 같은 무지막지한 영향을 미칠 한미FTA를 한국 정권은 국민과의 합의는커녕, 지켜야할 절차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속도를 내며 밀어붙이고 있다. 이렇듯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때문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한미FTA 체결의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내걸어 왔다. 몇몇 대재벌의 이익과 미국의 협박과 회유에 결국 노정권은 스크린쿼터를 내 주었고, 이로써 문화주권과 국민 대다수의 이익을 팔아버리고 말았다.
유동훈 이사장의 단식농성은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스크린쿼터는 단지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한미FTA라는 국민적 재앙을 지금까지 막아왔던 자물쇠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과 모처럼 이들과 뜻을 같이하게 된 ‘조중동’등 보수언들은 오히려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집단이기주의, 혹은 ‘국가 전체 이익에 반하는 행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분노하지 않을 이가 누구인가? 신자유주의 시장이데올로기를 광신하여 쿼터축소를 지지해온 극소수의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영화학자들을 제외한다면 현장 영화인들은 물론 영화교육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영화인들 모두는 유동훈 이사장의 힘겨운 단식투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통해 쿼터 사수를 위한 뜨거운 결의를 다시 한번 굳게 다질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영화산업과 나아가 국가 전체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행복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똑똑히 따져보아야 한다. 만일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어 한국 영화가 망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영화노동자들이다. 스타급 배우들은 할리우드나 다른 영화 시장에서도 충분히 한 몫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스타급 배우들이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추운 거리에 나서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 만약 스크린쿼터가 ‘밥그릇 싸움’이라면, 바로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영화노동자들의 ‘밥그릇 싸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스크린쿼터는 한미FTA가 야기할 끔찍한 상황들을 막아왔던, 작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자물쇠였다. 국민 대다수의 이익을 진정으로 바라는 이들은 미국이나 노정권, ‘조중동’이 아니라, 바로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고 있는 영화인들과 시민들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동훈 이사장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3일, 정부는 문화관광부 장관에 김명곤 전 국립극장장을 새로 임명했다. 그나마 있던 좋은 문화 정책들을 후퇴시키고, 급기야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만 정치장관 정동채가 물러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문화가 아닌 정치와 경제의 논리에 모든 것을 내주고 나서 단지 지방 선거를 위해 이루어진 장관 교체 과정에서 얼떨결에 김명곤 장관이 임명된 것은 결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더군다나 보수 언론들은 김명곤 전극장장이 영화계와 친분이 두터운 것을 내세워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운동을 무마시키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하지만 김명곤 장관은 보수언론의 딴죽과 압력을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아무리 청와대와 경제ㆍ외교 부처가 스크린쿼터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다 해도, 김명곤 장관은 <서편제>의 주인공답게 명분과 고집을 가지고 영화계와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 문화 단체와 국민의 여론을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그 혼자 힘으로 쿼터 축소 방침을 철회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정체성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 김명곤 장관이 보수 세력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꺾고 쿼터 축소 반대 운동의 장애물이 되거나 이를 희석하는 데 앞장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70년대 암울한 시절, 탈춤과 연희 운동의 첫 세대로 문화운동에 앞장섰고‘난민전 사건’으로 고초까지 겪었던 그가 많은 지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은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문화 주권을 지켜가는 일일 것이다.
유명무실했던 스크린쿼터가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활동으로 제 기능을 찾기 시작한 해가 바로 1993년이다. 그리고 그 해 김명곤 장관이 주연을 맡았던 <서편제>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달성했다. 누구보다 스크린쿼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김명곤 장관이 유동훈 이사장을 지율스님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친구이자 동지였던 수많은 영화인과 문화예술인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길은 문화정체성과 문화다양성 증진에 기여해온 그의 평생의 삶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것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6년 3월 6일
첫댓글 잘돼면 좋겠는데....
집단 이기주의자들..질린다, 질려..
전 집단이기주의라기 보다는 영화인들이 과잉방능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군요. 아무리 봐도 집단이익 집단의 행동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